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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월 11일 마지막 회를 방영한 MBC <하얀거탑>
ⓒ MBC
<하얀거탑>이 가지는 역동적 전개의 끝은...

숱한 화제를 뿌리고 종영한 MBC 특별기획 드라마 <하얀 거탑>. 메디컬 드라마를 표방한 사회학적인 드라마라는 외적인 찬사에서부터 배우들의 열연과 특히 조연들의 눈부신 활약을 찬양하는 내적인 찬사를 받았다.

그리고 원작 드라마보다 월등한 연출력에서 풍기는 모습과 역시 원작과 전혀 괴리감을 느낄 수 없었던 대본편집에 이르기까지 최근 몸통만 커지고 내실은 부실해져만 가는 여타 드라마와는 달리 드라마 <하얀 거탑>이 남긴 모습은 참으로 이상적이다.

@BRI@주지하다시피 <하얀 거탑>은 처음 주인공 장준혁(김명민 분)이 명인대학교 외과과장이 되기 위해 온갖 술수와 계략을 펼치며 정치적 드라마라는 냄새를 강하게 풍긴다. 나아가 우리나라가 가지는 조직사회의 병폐나 보이지 않는 권력암투에 비판적인 시각(그것이 의도되었든 되지 않았든)까지 담아냈다.

그 이후에는 장준혁의 진료 실수에 의하여 의료분쟁소송에 휘말리는 법정 드라마로 이전했다가 종국에는 인간 장준혁에 대한 휴먼드라마로 마무리 짓는 다소 역동적인(?) 전개로 이어졌다.

그 결과 드라마 <하얀 거탑>은 많은 마니아층을 양산해냈고, 인기에 비해 다소 부진한 시청률과 실제 의료계의 모습과 맞지 않는다는 의견에도 많은 이들에게 회자하며 화려하게 막을 내렸다.

ⓒ MBC
인간 장준혁은 분명 악인(惡人)이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이 드라마가 가지는 가장 큰 매력은 주인공 장준혁에 대한 인물탐구이다. 장준혁은 표면적으로 대한민국 최고의 대학에서 최고의 기술을 가진 최고의 외과의사이다.

장인의 금전적인 지원과 어리고 어여쁜 아내, 사회적인 명성과 아울러 친밀한 조력자들을 거느리고 있음은 물론, 자발적 심복이라 할만한 제자들을 거느렸다. 게다가 그런 그의 옆에는 언제나 헌신하는 어머니의 지극한 사랑과 지적이고 아름다운 애인의 육체적인 사랑도 가지고 있으며, 일반인은 상상도 하기 어려운 고급스런 외제차를 굴리며 고급 저택에서 살고 있다.

이렇게 하나하나 따져보면 마치 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것들만 가지고 있는 이러한 주인공에게 시청자들은 질투나 어떻게 사람이 저렇게 다 가질 수 있느냐는 시기 어린 조롱 대신, 연민과 그에 대한 애정의 감정을 대신 퍼부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었을까? 어떠한 의미에서 그는 우리 사회가 가장 용납하기 어려운 위치와 호사를 누리고 있지 않았던가? 그것도 부적절한 방법을 이용해서 말이다.

거기에 대한 답은 인간 장준혁이 가지는 중의적인 위치 때문이다. 다시 말해, 그는 악(惡)에서 출발하여 선(善)으로 끝난 인물이었고, 그러한 변환과정에서 그가 느꼈을 인간적인 갈등과 고심에 시청자들은 같이 공감을 가져주었다는 것이다. 즉, 가지는 정도에 차이는 있으나 시청자들 역시 장준혁처럼 각자 악(惡)적인 측면에 야심과 욕심이 속에 내재되어 있는 인간이고, <하얀 거탑>에 등장하는 인물들이나 환경 역시 내가 지금 겪고 있는 현재 모습에 축소판이라는 것을 암묵적으로 자각했다.

따라서 장준혁이 얻는 것은 시청자인 내가 얻는 것이고, 장준혁이 잃은 것은 시청자인 내가 잃은 것이라는 동화(同和)가 일어난 것이다. 그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장준혁이 여타의 드라마에 주인공들과는 달리 실제로 인간의 어두운 부분에 욕심과 야망을 거리낌 없이 표현했었고, 자신의 보신(保身)을 위해서라면 악행도 서슴지 않은 악인이었기에 가능했다고 본다.

ⓒ MBC
인간 최도영은 분명 선인(善人)이었다, 하지만...

이 드라마에 또 다른 주인공은 최도영(이선균 분)이다. 최도영이야 말로 청진기를 환자 가슴에 대기 전에 먼저 자신의 손으로 따뜻하게 데울 줄 아는 휴머니즘을 가진 진정한 의사이며, 또한 장준혁과는 달리 선(善)에서 출발해 끝까지 선을 행하는 주인공의 전형이다.

그러나 그것은 <하얀 거탑>이 아닌 드라마에서나 가능한 것이었으니, 최도영은 결국 드라마의 전개 사이에서 장준혁만큼 명확한 선을 긋는 대는 어떤 의미로는 실패한 캐릭터로 보인다. 이것은 송선미가 분했던 이윤진이란 인물에서 더욱 명확하게 일어나는데, 표면적으로 이윤진은 약자에 편에선 정의 어린 사회운동가로서 어찌 보면 시청자들에게 응원받아 마땅한 인물이었지만 실제로 그러지 못했다는 것은 이를 반증한다.

결국 인간 최도영은 그 누가 봐도 정의이며 선이지만, 장준혁이라는 거대한 캐릭터에 막혀 그 뜻을 다 펼치지 못한 태생적인 한계를 지닌 인물이기도 한 것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에서는 당연히 장준혁 같은 인물보다는 최도영이나 이윤진 같은 사람들이 더 많아야 함은 자명하지만, 그것은 장준혁이 버티고 서있는 드라마 <하얀 거탑>에서는 제대로 먹히지 못했다. 그래서 <하얀 거탑>이 재미있었다는 것이며, 어쩌면 그 점이 인기의 핵심이다.

ⓒ MBC
<하얀 거탑>이 말하고자 하는 정의(正義)란 무엇일까

이제 이쯤 되면 혼란이 온다. 과연 무엇이 정의일까? 우리는 분명 정도를 걸어야 하는 도덕적인 인간임에도 장준혁이 재판에서 그 힘없고 어려운 원고 측 서민들을 제치고 이기길 바랐다. 장준혁이 자신의 애인과의 사이를 아내에게 들키지 않길 바랐다. 이미 엄청난 지위를 누리고 있는 그가, 더 큰 힘과 명성을 가지길 바랐다. 최도영이 세상과 타협하여 장준혁에 편에 서길 바랐다. 분명 그것은 우리가 배웠던 도덕책이 말하는 '정의'와는 어긋난 것이리라.

드라마 <하얀 거탑>은 장준혁을 결국 암으로 죽여버림으로써 드라마를 끝마쳤고 많은 시청자들은 그 장면에서 눈시울을 붉혔다. 그가 이전에 어떠한 행위를 했으며, 어떠한 모습에 사람이었느냐 하는 진지한 성찰과 고민은 이 마지막 장면에서(최소한 드라마 내에서는) 끝이 나버린다. 어찌되었든 장준혁은 세상을 떠났고 그는 이미 '불쌍한 사람'이 돼버린 것이다.

▲ 장준혁. 그의 죽음은 많은 것을 의미한다
ⓒ MBC
세상의 무상함에 파묻히는 쓸쓸함과 악인의 최후에 대한 복잡한 연민의 심경만 남긴 채, 이로써 <하얀 거탑>이 주는 마지막 메시지는 결국 시청자의 몫으로 돌아갔다.

제작진과 원작자가 이렇게 드라마를 끝맺음을 한다는 것이 약간 무책임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현실에서 우리는 장준혁같이 살 것인가, 최도영같이 살 것인가 하는 각자의 답을 내릴 것이고, 그 답에 따라 진짜 '정의'가 무엇인지도 생각해 볼 기회를 가진다.

그렇다면 장준혁의 죽음은 헛되지 않았다. 그는 마지막까지 우리를 생각하게 했고,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해서 단편적으로나마 이야기해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덧붙이는 글 | TV리뷰 시민기자단 응모


태그:#하얀거탑, #장준혁, #최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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