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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반 시민의 폭력장면 촬영을 금지하는 법안을 발의한 프랑스 대중운동연합(UMP) 대통령 후보 니콜라 사르코지.
ⓒ AP=연합뉴스
1991년 3월 3일, 과속 혐의로 체포된 흑인 로드니 킹은 로스앤젤레스 시경 고속도로 순찰대 소속 백인 경관 4인으로부터 집중 구타 당했다.

폭력 현장은 인근에 살던 이웃 조지 할리데이가 비디오카메라로 촬영해 방송국에 제보함으로써 '사건'이 됐다. 1분 30초가 넘지 않는 시간 동안 곤봉을 이용한 경찰의 무자비한 폭력은 미국뿐 아니라 전세계에 충격을 던져줬다.

그리고 1992년 4월 29일 백인이 다수였던 배심원단의 결정에 의해 폭력경찰이 무죄평결을 받자 로스앤젤레스는 폭동에 휩싸인다. '로드니 킹' 사건이다.

그로부터 정확히 16년이 지난 오늘 할리데이가 만약 프랑스에서 두들겨맞는 로드니 킹을 촬영해 배포한다면 징역형이나 벌금형에 처해질 것이다. 할리데이는 직업기자가 아니기때문이다.

지난 2005년 <조선일보> 기자가 만취상태에서 난동을 부린 사건같은 경우도 앞으로 프랑스에서라면 보도할 수 없게 된다. 휴대폰 동영상을 찍어 오마이뉴스에 제보한 사람은 당연히 직업기자가 아니라 일반 시민인 택시기사였으니 말이다.

'해피 슬래핑' 규제 위해 표현의 자유를 억압?

프랑스에서 직업기자가 아닌 일반 시민이 폭력 현장을 촬영해 유포하는 행위는 엄격히 처벌된다. 폭력 행위를 목격하고 이것을 촬영한 사람이나 해당 동영상을 게재한 인터넷 사이트 담당자에게는 최고 5년형이나 7만 5천 유로(우리 돈 9500만원 상당)의 벌금형이 부과된다. 새로 공포된 범죄예방법 때문이다.

집권당 대중운동연합(UMP)의 대선후보인 니콜라 사르코지 내무장관이 제안해 또 하나의 사르코지 법으로 불리는 이것은 마약 밀매매와 인터넷 게임을 통한 현금거래, 가정폭력, 소아성애에 대한 처벌을 강화해 일견 타당해 보인다.

문제의 법에는 그러나 동영상 유포를 제한하는 내용의 인터넷 규제 조항이 포함됐다. 폭력을 담은 영상을 유포한 사람이 직업기자가 아닌 것이 확인될 경우 범죄가 되는 것. 보도를 목적으로 직업기자가 폭력 장면을 인터넷에 올리는 것과 법정 증거자료 확보를 위한 촬영은 그러나 처벌 대상에서 제외했다.

@BRI@이것은 최근 유럽에서 유행하고 있는 '해피 슬래핑(Happy slapping)' 통제를 위한 고육지책이라 한다. 우리 말로는 '행복한 때리기' 정도로 풀이될 해피 슬래핑은 특별한 이유없이 타인을 구타하고 이것을 카메라폰으로 찍어 친구들 사이에 유포하거나 인터넷에 올리는 행위. 영국에서 시작돼 유럽 전역으로 번지고 있는 해피 슬래핑 마니아들은 재미로 구타를 일삼지만 심각한 경우 살인으로 이어질 우려도 있다.

프랑스에서는 특히 해피 슬래핑을 강력히 규제하게 된 직접적인 계기가 있었다. 지난해 4월 24일 파리 서부 포르슈빌의 라부아지에 고등학교에서 발생한 교사폭행 사건. 고등학생 압둘라 웰(19)이 '그냥 맘에 안 들어서' 교사를 구타한 사건이다.

오후 2시 30분 경 교실에 들어선 웰은 수업중인 교사 이자벨 B.의 뺨을 느닷없이 갈기고 바닥에 고꾸라진 교사에게 수차례 발길질을 가한 것. 교실에 있던 다른 학생은 카메라폰으로 이 폭력장면을 녹화해 사건 당일 인터넷을 통해 유포했다. 그리고 지난 1일 법정에 선 웰에게 13개월 징역형이 구형됐다. 이것은 프랑스에서 일어난 첫 '해피 슬래핑' 재판이었다.

"더 신뢰할 만한 정보의 출처는 직업기자 아닌 일반 시민"

웰의 경우처럼 이유없는 폭력은 물론 처벌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법정 증거자료를 위한 촬영과 '해피 슬래핑'을 구별하는 기준이 모호하다는 게 문제. 무엇보다 문제의 법률은 '표현의 자유'를 심각하게 위협한다는 측면에서 각계각층의 반대에 부딪치고 있다.

지난 1월부터 상원에서는 집권 대중운동연합의 주도로 문제의 법안이 거론됐고 지난달 13일 하원에서 통과됐으나 집권당 의원들만 찬성표를 던졌다. 중도 정당인 프랑스민주연합(UDF) 의원들은 기권으로 항의했고 사회당(PS)을 비롯한 좌파 정당은 반대표를 던졌다. 하원의 결정에 승복할 수 없었던 사회당은 헌법재판소에 제소했으나 헌법재판소는 지난 5일 문제의 법안을 승인했다. 효력을 발생하게 된 것.

"새 법률은 직업기자가 폭력 영상을 유포하는 것은 허용하고 일반 시민은 같은 이유로 징역형을 감수해야 하는 위험천만한 차별법이다."

표현의 자유를 위해 싸우는 국경없는 기자회(RSF)는 "해피 슬래핑을 규제하려는 정부의 의도를 과소평가하지 않는다"고 전제하면서도 이 법은 "특히 공권력이 남용할 수도 있는 폭력 동영상의 인터넷 유통을 금지해 매우 유감"이라는 내용의 항의 성명을 발표했다.

"'시민 기자들은 특히 전세계 권력을 감시한다. 이집트의 블로거들은 최근 일명 '몰래 카메라'를 이용해 여전히 성행하고 있는 교도소 내의 고문 행위를 폭로했다. 인권 영역에서 정부를 더 곤혹스럽게 하는 동시에 더 신뢰할 만한 정보의 출처는 직업기자가 아닌 바로 일반 시민이었다. 심각한 권력남용의 감시책이라 할 시민기자의 활동이 민주주의 국가에서 범죄화되는 것은 충격적이라 할 것이다."

"오늘날 모든 누리꾼들이 정보를 생산하고 보급하는데 참여하고 있다"고 강조한 국경없는 기자회는 "카메라 폰과 비디오를 이용해 사건을 포착하는 누리꾼은 인터넷 상에 그들 자신만의 콘텐츠를 배포할 자격이 있다"며 "문제의 법안이 시민의 정보 제공 활동을 위축시킬 것"이라 평가하기도 했다.

태그:#시민기자, #사르코지, #프랑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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