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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랑스 2텔레비전> 논설위원 알랭 뒤아멜의 직무정지 사건을 다룬 블로그사이트 <아고라복스>의 기사.
질문 : 신과 프랑스인의 차이점은?
대답 : 신은 자신이 프랑스인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프랑스인은 스스로를 신이라 여긴다는 패러독스. 프랑스인의 오만을 조롱한 농담이다. 이것은 현재 프랑스 언론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

"신과 기자의 차이점은?"
답은 이미 여러분이 알고 있다. 2007 대선이 정확히 두 달 남은 지금 프랑스 유권자들은 선택된 엘리트들이 좌지우지 하는 프랑스 언론의 전통에 신물이 나있다.

특정 후보 지지발언 혹은 침대 속의 정언유착

@BRI@지난 15일의 일이다. 역대 프랑스 대통령의 인터뷰를 전담해온 정치부 기자이며 프랑스 공영 TV 채널 <프랑스 2텔레비전>의 논설위원인 알랭 뒤아멜의 직무가 전격 정지됐다. 정지 기간은 이번 대선 1, 2차전이 모두 끝나는 5월 6일 다음날까지. 언론인으로서 대선에 대해 발언할 기회를 박탈당한 것이다.

인터넷에 공개된 비디오가 문제의 시작이었다. 비디오 속의 뒤아멜은 지난해 11월 27일 '시앙스 포'로 알려진 파리정치대학교의 학생들 앞에서 말했다.

"나는 프랑수아 바이루에게 투표할 것이다."

중도 정당인 프랑스민주동맹(UDF)의 총재 프랑수아 바이루는 여론조사에서 집권당 대중운동연합(UMP) 대선후보 니콜라 사르코지와 사회당(PS) 대선후보 세골렌 루아얄에 이어 줄곧 3위를 차지해온 강력한 후보. 지난 19일 여론조사기관 '입소스(IPSOS)'는 바이루가 오는 4월 22일 대선 1차전을 통과할 경우 2차전에서 루아얄이나 사르코지를 제치고 당선될 확률이 높다고 전망했다.

'뒤아멜 비디오'는 바이루가 대선 출마를 공식적으로 선언하기 전에 촬영됐으나 <프랑스 2텔레비전>은 이것이 '언론의 독립과 중립을 위협한다'는 이유로 뒤아멜의 직무정지를 결정한 것. 평소 루아얄에 공공연히 반감을 표시해온 뒤아멜은 이번 비디오가 발견되기 전까지 사르코지파라는 혐의를 받아왔다.

<프랑스 텔레비전>이 대선과 관련해 기자의 발언 기회를 박탈한 것은 '뒤아멜 건'이 처음은 아니다. <프랑스 2>와 <프랑스3> 텔레비전에서 각각 뉴스 앵커로 활동하고 있는 베아트리스 숀베르그와 마리 드뤼케르가 대표적인 경우.

숀베르그는 장-루이 보를루 사회통합장관의 아내이며 드뤼케르는 프랑수아 바루앵 해외령장관의 동거인으로 '정언유착'이 불가피한 까닭에 공식 대선운동이 시작되는 다음달 중순경부터 자의반, 타의반 방송을 쉬게 된다. 특히 보를루는 사르코지가 당선될 경우 총리로 거론되고 있는 인물.

좌파정당도 정언유착의 기억에서 자유롭지 않다. 지난해 11월 대선후보 경선에서 루아얄에 패배한 사회당의 대표적인 '코끼리' 도미니크 스트로스-칸 전 재무장관의 아내라는 이유로 프랑스의 민영 TV 채널 <테에프1>(TF1)의 인기 앵커였던 안느 생클레르는 2002년 대선 기간 해고된 바 있다.

그 자신 의사 출신으로 '국경없는 의사회', '세계의 의사회'의 공동 창시자인 베르나르 쿠쉬네르가 보건장관 재임 당시 그의 아내이자 인기 언론인 크리스틴 오크란트는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을 인터뷰해 파문을 일으키기도 했다. 남편의 입김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기때문.

"언론은 늘 헛다리만 짚는다"

"언론은 늘 헛다리만 짚는다."
현재 프랑스 언론을 향한 손가락질은 불행히도 앞서 언급한 정언유착에만 한정되지 않았다. 언론의 생명이라할 '신뢰도'가 도마 위에 오른 것이다.

프랑스 언론에 켜진 빨간 불은 지난 2002년 대선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언론이 선거 결과를 주도하려한다' 혹은 '언론이 선거에 어떤 영향도 행사하지 못 한다'는 두 개의 상반된 비난이 쏟아졌다. 지난 2002년 대선 1차전에서 극우당 국민전선(FN)의 장-마리 르펜에 밀려 사회당의 리오넬 조스팽 전 총리가 탈락한 '정치 대지진'은 프랑스 언론을 궁지에 몰아넣은 구체적인 사례다.

이를테면 대선 직후 일간지 <리베라시옹>이 공개한 독자들의 편지는 하나같이 이렇게 항의하고 있었다.
"당신들(언론)은 르펜이 이길 수도 있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알려주지 않았다. 만약 알려줬더라면 우리는 '작은' 후보들에게 표를 던지지 않았을 것이다."

총 16명의 후보가 난립한 가운데 자크 시라크 현 프랑스 대통령과 조스팽의 1차전 통과를 기정사실화한 언론이 유권자들의 표를 분산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는 비난이다.

지난 2005년 5월 29일 치러진 유럽헌법 국민투표는 이같은 양상을 악화시켰다. 유럽헌법이 부결될 수도 있다는 가정을 설정한 언론의 부재. 프랑스에서 유럽헌법은 그러나 부결됐다. 언론의 오만을 질타하는 목소리가 터져나온 것은 물론이요 기자들은 '사이비 점쟁이', '무능한 전문가'로 취급되기도 했다.

현실을 외면한 언론의 무지 즉 '선거결과에 어떤 영향도 미치지 못 하는 언론'을 보여준 것이 앞선 예라면 그 반대의 경우 이른바 '선거결과를 주도하려는 언론'의 모습을 보여준 사례로 대표적인 것이 1995년 대선이었다. 지난 2003년 2월 출판된 '<르 몽드>의 숨겨진 얼굴'이라는 저서는 당시 <르 몽드>가 시라크의 정적인 에두아르 발라뒤르 '대통령 만들기'에 앞장 선 비화를 공개해 파문을 일으킨 바 있다. 당시 유권자들은 언론이 지지한다고 판단되는 후보에 '반대해' 투표함으로써 언론에 반기를 들었다.

▲ 민영 TV 채널 <테에프1>의 시민패널 프로그램 '질문 있습니다'. 지난 19일 방송에서 인기 앵커 파트릭 푸아브르 다르보르가 프로그램에 초청된 세골렌 루아얄 사회당 대선후보를 소개하고 있다.
'질문 있습니다', 스타기자를 몰아낸 시민패널

프랑스의 시사주간지 <마리안느>의 편집장 장-프랑수아 칸은 지난 17일자 일간지 <르 몽드>를 통해 여론을 외면한 프랑스의 언론 권력을 현대판 교황의 지배에 비유한 바 있다.
"시민들은 기자나 정치인들이 그들의 관심사만 늘어놓는다고 생각한다."

일련의 굵직굵직한 사건이 치러진 과정들은 곧 거대한 언론과 여론이 결별하는 과정이었다. 그리고 언론을 향한 여론의 반감은 2007 프랑스 대선의 판도를 뒤집고 있다.

지난 30여 년 간 몇몇 스타 기자들이 주도해온 TV 정치 토론회에 낯설지만 가까운 얼굴들이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름하여 시민 패널. 대표적인 것이 <테에프1>의 '질문 있습니다'. 프랑스의 최고 인기 앵커 파트릭 푸아브르 다르보르가 진행하는 '질문 있습니다'는 지난 5일 집권 대중운동연합의 사르코지를 시작으로 매주 월요일 대선후보들을 초대해 두 시간에 걸쳐 열띤 토론을 펼치는 프로그램이다. 지난 19일은 루아얄의 차례였다.

여론조사기관 <소프레스>가 선정한 100인의 다양한 프랑스인은 대선 후보에게 직접 질문을 던진다. 기존 스타기자들의 자리를 시민패널이 장악한 것. 2005 유럽헌법 국민투표를 앞두고 TV 토론회에 등장한 시라크 대통령이 젊은이들과 대화한 이후 이것은 프랑스 역사상 획기적인 시도다. 개인의 애정사와 같이 선정적인 소재를 놓고 일반 시민이 마이크를 드는 일은 종종 있으나 정치 토론회에서 시민패널을 본 일이 없었다. 정치토론회는 말 그대로 스타기자들이 독점해온 것이다.

▲ '질문 있습니다'에 참여한 시민패널들.
대선후보와 마주한 시민패널들은 점잔빼지 않고 일상의 경험을 토로한다. 한부모 가정의 가장인 여성은 절박한 탁아시설 대책을 묻고 장애아를 가진 아버지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불평등을 생생히 증언한다. 물론 시민패널이 스타기자의 전문성을 따를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의 질문은 단순하지만 절실하고 세련되지 않지만 솔직하다는 평가를 이끌어내고 있다.

시민의 참여는 시민패널에서 멈추지 않았다. 정치인의 발언이 '선택된' 엘리트들의 전유물이라는 전통에 반대하는 시민들. 스스로 말하고자 하는 시민들. 시민기자의 출현.

무대는 <아고라복스>였다. '시민의 목소리'로 풀이되는 <아고라복스>는 유럽헌법 국민투표 시기였던 지난 2005년 5월 탄생했다. 그리고 <아고라복스>는 지난 9일자 프랑스의 무가지 <20분>이 선정한 가장 영향력 있는 블로그 10선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프랑스의 여론이 궁금하면 <아고라복스>를 봐라."

넷심(net心)이라는 신조어를 프랑스에 그대로 적용한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아고라복스>인 것.

▲ <아고라복스>의 메인 페이지(위)와 영문판 메인페이지. 영문판 오른쪽에 '시민들에 의해 만들어진 유럽 최초의 온라인 신문'이라고 씌어있다.
오마이뉴스? 프랑스에는 <아고라복스>가 있다

현재 9천 여 명에 달하는 시민기자들이 매달 6백 여 건의 기사를 송고하고 있는 <아고라복스>에는 보름 간격으로 수 천 여명이 회원으로 등록하고 있다. 6명의 상근기자를 포함한 총 20명의 편집기자들이 시민기자들의 기사를 검토한다. 시민기자가 쓴 기사는 평균 100건 당 50건 즉 절반 이상이 정식기사로 채택되고 있다. 독자들은 기사를 평가하고 의견을 올려 활발한 토론을 주도한다.

눈치챘겠지만 <아고라복스>의 성공스토리는 우리나라의 <오마이뉴스>가 모태다. <오마이뉴스>의 시민기자 개념이 '위로부터 아래로 흐르는 정보'에 반기를 드는 프랑스 시민의 욕구와 만난 것이다. 때문에 <아고라복스>는 프랑스판 <오마이뉴스>라 해도 무리가 없다. '모든 시민은 기자'라는 <오마이뉴스>의 슬로건이 <아고라복스>에서 약간 변형된 점만 다를 뿐.

"모든 시민은 주요 정보의 포착자다."

기실 지난 13일자 프랑스의 경제일간지 <레제코>는 <아고라복스>의 대표 카를로 리벨리의 입을 빌어 <오마이뉴스> 모델이 유럽으로 수출되고 있다고 썼다.

"<아고라복스>는 그의 조상인 <오마이뉴스>의 놀라운 경험을 물려받았다."


그리고 <아고라복스>는 일시적 현상이 결코 아니다. 지난해 프랑스의 대표적인 스포츠 일간지 <레제킵>과 손 잡고 스포츠 전문 사이트 <스포츠복스>(Sportvox.fr)와 환경문제에 집중할 <나튀라복스>(Naturavox.fr)의 창간을 준비하고 있는 것. 인터넷을 통한 시민권력의 확장이라 할만한 <아고라복스>는 이미 무가지에 떼밀린 프랑스 종이신문의 종말을 부채질 하고 있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그들은 이렇게 외치고 있다.

"기자가 신이요 교황이던 시대는 지났다!"

태그:#아고라복스, #프랑스, #대안언론, #전통언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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