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오랜만에, 아주 오랜만에 목욕탕엘 갔다. 내 어릴 적에는 그곳에 안가면 정말 몸이 근질근질하여 못 견딜 지경이어서 아무리 못 가도 한 달에 한번씩 정도는 꼬박꼬박 가곤 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러던 것이 점차 한옥이 양옥화 되고, 아파트화 되다 보니 목욕탕 가는 일이 점점 드물어진 것이다. 결혼 후 아파트에 살다 보니 집안에 욕조가 있어 자주 샤워를 하게 된다. 그러니 때를 벗길 때까지 두지 않고 자주 슬렁슬렁 쓸어내는 정도가 되고, 그도 마땅찮으면 욕조에 들어앉아 때를 밀면 그만이었다.

가끔 아내에게 등을 밀어달라치면 아연 기겁을 해서는 벗고있는 모습도 흉물스러운데 그도 모자라 때까지 밀어달라며 질색을 하곤 했다. 그러던 것이 자꾸 시켜대니 마지 못해 들어와 등짝만 밀어주곤 했는데 때가 어떻게 그리도 많이 나오던지… 하긴 그 동안은 혼자만 내리 밀다가 가끔씩 등짝을 미는 것이었으니 오죽했을까.

아내가 등짝을 밀어주는데 시원하기야 그지 없지만 아내는 "어구구. 에구… 세상에… 이렇게나 많이… 이를 어째…"를 연신 연발하며 내가 이런 남자랑 살았나 싶었냐는 둥… 어쨌다는 둥 하며 오만가지 잔소리를 따발총으로 들어야 했다. 그래도 마누라가 제일이라더니 그렇게 씻고 나니 얼마나 개운하고 시원턴지.

설도 다가오고, 등산 후라 겸사겸사 들른 것이다. 옷을 벗고는 수건이나 때밀이 타올을 찾으러 미적거리며 왔다갔다 하는데 사람들이 자꾸 나를 쳐다보는 것이 아닌가. 그것도 자꾸 내 밑쪽을 바라보면서… 나는 속으로 왜들 저러지, 나 그리 불쌍할 정도로 가냘프지도 않고, 여직까지 아무일 없이 무수한 밤도 잘 지켜냈는데 뭐가 문제길래 저러나 싶어 슬쩍 내려봤더니…

순간 나도 모르게 웃음이 절로 배어나와 버렸다. 그 사람들이 슬쩍슬쩍 내려보면서 야릇한 웃음을 지은 이유를 그제야 안 것이었으니.

며칠 전의 일이다. 내가 요즘 한창 재미나는 드라마 <주몽>에 몰입해 있는데 아내가 샤워를 하고 들어와서는 내 발 밑에서 크림을 바른다, 팩을 한다 하며 꼼지락 꼼지락거린 적이 있었다. 그때 발 끝에 자꾸 뭐가 걸리적거리는 것 같았지만 드라마가 워낙 재미있는지라 무심코 넘어갔는데 드라마가 끝나고 일어서려니 아내가 내 손을 부여잡고는 조금만 있다 일어나란다.

흔한 일도 아닌 것이 또 머리를 말려달라든지 아니면 등을 두드려달라든지 하는 줄 알고 침대 위에 주저앉았는데 아내는 시킬 생각은 안하고 내 얼굴만 빤히 바라 보며 연신 배시시 웃는 것이었다. 나는 저 사람이 뭐가 저리 좋아 웃는가하며 갸우뚱하고 있는데 딸 아이가 숙제를 물어보러 들어와 앉다가 그만 박장대소를 하며 하는 말이, “아빠! 아빠, 엄지 발가락에 앵두빛 매니큐어 바르셨네요. 앵두빛이 너무 예뻐요” 하는 것이 아닌가.

그제야 내려보니 오른 엄지발가락이 어느새 빨간 앵두빛으로 덮여있는 것이었다. 나도 그것을 보며 한참을 웃다가 정신이 번쩍 들어 그만 지워달라 했더니만 이왕 바른 건데 마저 한 쪽도 바르자며 왼쪽 엄지 발가락마저 칠하고 만다.

나야 너무도 싫었지만 아내와 아이들이 몰려와 그렇게 신나게 행복한 웃음을 짓는 것을 보니 그만 주저앉을 수 밖에. 그런 것을 그만 잊어버리고는 탕에서 보무도 당당하게 옷까지 홀딱 벗고는 돌아다녔으니 뭇사람들이 오죽하게 보았을까.

그런 발가락에는 아직도 반쯤 남은 빨간 앵두빛 매니큐어가 행복하게시리 발그스름한 빛을 발하고 있다.

▲ 이젠 점점이 바래가는 앵두 빛 매니큐어
ⓒ 염종호

태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한국브리태니커회사 콘텐츠개발본부 멀티미디어 팀장으로 근무했으며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스마트스튜디오 사진, 동영상 촬영/편집 PD로 근무했습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