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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석회석암으로 형성된 백아산의 암릉
ⓒ 최향동
햇살좋은 지난 토요일(20일), 전라남도 화순의 백아산을 찾았다. 잔설이 남아 있어서인지 겨울산의 자태가 그림처럼 다가온다.

@BRI@수리마을에서 팔각정으로 오르는 길은 급경사! 백아산의 정상인 매봉(810m)은 아직 보이지 않는다.

수리마을을 지나 매표소를 거쳐 등산지점인 산막에서 1.7km를 타고 750고지를 넘어서야 팔각정을 만날 수 있다. 그야말로 조망권이 좋다.

멀리는 지리산 반야봉이 보이고 무등산, 모후산, 조계산을 시원하게 감상할 수 있는 천혜의 요충지이다. 그 때문인지 백아산은 백운산, 지리산과 함께 빨치산의 최강부대인 전남 빨치산의 본거지로 빨치산의 '3대 성지'로 인식되는 곳이다.

백아산(白鵝山)! 산정(山頂)이 석회석암으로 되어있어 멀리서 보면 마치 흰 거위들이 옹기종기 앉아 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 하여 '하얀 거위'라는 이름을 가진 산이다.

▲ 저 멀리 지리산의 반야봉이 한 눈에 들어온다.
ⓒ 최향동
오지에 있지만 이곳은 위치상 광주와 전남의 중심지로 산세가 험하여 빨치산 본거지로서 유격활동의 최적지로 알려졌다. 6·25전쟁 이전부터 빨치산 활동의 중심지였고, 입산투쟁이 활발했던 1950년 9월 이후에는 백아산 곳곳이 요새가 된 곳.

조정래의 <태백산맥> 주무대가 바로 이곳이다. 열네다섯 광부의 아들로 조직된 30여 명의 항미소년돌격대가 싸우다 뜨거운 피를 흘린 역사의 현장이다. 백아산의 겨울 햇살이 산허리를 감싼다. 산을 누비던 빨치산누이의 시린 발등을 녹여주는 그 겨울 햇살은 아직도 백아산에 머물고 있다.

▲ 산을 오르던 오누이들의 발등을 따뜻하게 감싸주었을 백아산의 겨울햇살
ⓒ 최향동
지리산과 무등산을 잇는 지리적 요충지인 험한 산 때문에 6·25 당시 빨치산 전남총사령부가 주둔(노치리 뒷산 해발 700m고지)했으며 수리, 노치, 솔치 지역에 병기공장을 건립하고 활동하였다. 또 노치 동화석골에 진지를 구축, 매봉과 마당바위에서 빨치산과 토벌대간에 피바다를 이룬 곳으로 유명한 산이다.

산골짜기에는 빨치산 전남도당부와 전남유격대 총사령부, 광주부대, 전남도당 학교가 있었고, 전남빨치산의 대장인 박영발 도당위원장이 머물던 곳이다.

▲ 잔설이 남아있는 겨울산
ⓒ 최향동
팔각정에서 1km를 타면 문바위(750m) 삼거리가 나온다. 간혹 산행길에는 빨치산이 구축했다는 '비트'가 지금도 잔존해 있고, 이 진지는 사방을 돌로 쌓아놓고 올라오는 적을 향해 총구를 겨누었을 것이다.

산속 곳곳에 발동기와 연자방아를 두고 식량을 조달하며, 바위와 작은 굴 속에서 솟아나오는 샘물로 연명하며, 장기항전을 펼친 분노의 산. 동상에 걸린 발을 감싸며 혀를 깨물고 운명을 틀어쥐고자 했던 오누이들의 숨결이 이곳에는 아직 살아있다.

문바위 삼거리에서 800여m 오르자 드디어 정상인 매봉이다. 매봉에서 바라보는 남도의 연봉들이 구름 속에 수놓아 있고, 근현대사의 아픈 흔적들이 운무처럼 피어오르는 듯하다.

▲ 민족혼을 지킨 남도의 연봉들
ⓒ 최향동
▲ 하얀 거위가 옹기종기 앉아있는 모습의 백아산 정상, 매봉(810m)
ⓒ 최향동
▲ 빨치산들이 수없이 오르고 내린 매봉 정상에서
ⓒ 최향동
매봉에서 1km를 타면 그 유명한 마당바위(756m)에 오른다. 삼백여평 남짓한 넓은 마당에 흙과 잔디가 있고 소나무 숲이 우거져 있다. 바위라기보다는 마치 널따란 평원에 서 있는 듯하다.

사방이 낭떠러지를 이루면서 바위 자체가 천혜의 요새다. 이 때문에 이곳을 차지하기 위해 빨치산과 토벌대 사이에 치열한 전투가 벌어져 수많은 희생자를 낸 역사의 현장이다.

발아래를 굽어보면 아찔하고 건너편 능선에는 천개의 불상을 닮았다는 '천불봉'이 버티고 있다. 이른바 사방을 감시할 수 있는 천혜의 망루이다.

▲ 빨치산과 토벌대간의 뺏고 빼앗긴 천혜의 망루 백아산의 얼굴, 마당바위
ⓒ 최향동
▲ 우람한 산철쭉 군락, 5월초쯤 원혼들의 넋을 달래듯 그 자태를 자랑한다.
ⓒ 최향동
마당바위 아래로는 백년은 묵었을 법한 산철쭉이 바다처럼 펼쳐져 있다. 5월 초순쯤이면 이들이 보여줄 꽃잔치가 파노라마처럼 아련하다. 오는 봄에 꼭 다시 오고픈 곳이다.

면서기이자 대지주의 아들로 태어나 중학교 때부터 <자본론>을 읽었다는 영민한 학생이었던 소년 빨치산 박현채! 소설 <태백산맥>에서 등장하는 조원제가 바로 실존인물 박현채다. 광주서중 3학년 때 16세의 나이로 입산하여 소년 빨치산 문화중대장으로 활동하며 뻐 속 깊이 파고드는 백아산의 겨울을 지킨 경제학자 박현채 선생의 피끓는 청춘이 묻어 있는 곳.

산이 좋아 그저 오른다지만 이 산에는 우리가 보듬어야 할 백성의 혈투와 생존의 몸부림이 있었던 곳이다. 일본 오키나와에 있는 미공군 전폭기의 공중폭격지원을 받아 비로소 빨치산의 전투역량이 감소되었던 피끓는 산이 바로 이곳이다. 골 깊은 산허리마다 눈 내리는 능선마다 핏빛이 물들었던 곳, 백아산은 그래서 지금도 조심스럽다.

▲ 저 돌탑에는 무슨 염원이 담겨 있을까?
ⓒ 최향동
머릿속에 떠도는 상념을 따라 걷다 보니 적송이 빼곡한 아산목장 방면 산길 1.7km를 어느새 내려왔다. 백아산 정상, 매봉에서 느긋하게 산밥을 먹고도 오전 10시 40분에 시작한 산행이 오후 3시 40분에 하산을 하였다. 하루쯤 짬을 내어 전남 화순의 백아산에 오를만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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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답없음도 대답이다. 참여정부 청와대 행정관을 지내다. 더 좋은 민주주의와 사람사는 세상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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