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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문수 경기도지사
ⓒ 오마이뉴스 남소연

"민노당은 비판하는 역할만 한다"

- 94년 민자당에 입당할 때 밝혔던 것처럼, 지금도 현실적으로 가장 개혁적인 사람이 YS였다고 생각하나?
"YS가 상당한 기여를 했다. DJ나 노 대통령도 개혁을 많이 했다. 개혁이 중요한 게 아니라 선진국에 올라가고 국민이 잘 살기 위해 우리나라의 수준을 업그레이드시키는 게 중요하다. 노 대통령이 권위주의를 타파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상당히 기여했다. 하지만 말을 한 다음에 국민의 존경심을 높여주는 리더십이었다면 박수를 많이 받았을 것이다. 그런데 그게 잘 안됐다. 권위주의를 타파하려고 노력했으나 결과가 별로 안좋다. 그게 문제다. 이것은 결국 방향이 잘못된 것이다.
@BRI@
부동산문제와 관련, 나는 강남보다 더 좋은 집을 지어서 주면 집값이 떨어진다고 얘기한다. 사회주의가 실패한 것도 인간의 욕구를 제대로 못짚었기 때문이다. 본성적 욕구를 잘 파악해야 한다. 사람이 뭘 원하는지, 멋있고 예쁜 것을 원하면 그걸 도와줘야 한다. (개인주의가 발달하지 못한) 나도 다분히 위험한 수준에 있다. 공이라는 이름 아래 그것을 억압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 민자당 안 들어갔더라도 민주노동당이 원내진출에 성공했기 때문에 좀 늦게라도 국회의원이 되지 않았겠나?
"그렇게 될 수 있었을 것이다. 나도 상당히 순위가 높았겠지. 문성현 대표도 내가 잘 안다. 그런데 민주노동당이 실제로 노동자들한테 득을 안준다는 것이 문제다."

- 민주노동당 활동에 굉장히 비판적이다.
"그 사람들은 비판적 역할만 한다. 물론 비판적 역할이 필요하지만 비판적 역할은 우리 사회의 주류를 이루지 못한다. 예를 들자면 우리는 자동차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는 것보다 자동차를 만드는 것을 하려고 한다. 물론 민주노동당처럼 검사해서 비판해주는 역할도 필요하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제한된 역할만 하는 것은 원하지 않는다. 자동차를 만들어 내야지."

- 이재오 의원은 언젠가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은 '소금의 역할'을 하기 위해 민자당에 입당했다고 하더라.
"이재오 의원은 나보다도 소극적이었다. 나는 좀더 적극적이었다. 긍정적 역할에 대해 더 적극적이었다는 얘기다. 한나라당이 부패했기 때문에 내가 소금이 되어야겠다고 한 것이 아니라, 한나라당은 근대화세력과 민주화세력의 통합을 통해 선진화를 이룩할 역사적 과업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 정말 '소금의 역할'은 했다고 자부하나?
"그렇게 하려고 노력했다. 안간힘을 썼다. 하여튼 정치권에 들어와서 대학 입학시험 칠 때보다 더 열심히 했다. 그렇게 살고 있다. 우리 집사람은 늘 '당신 왜 밥도 제대로 못먹고, 잠도 제대로 못자고, 그러면서도 욕은 진탕 얻어먹고 사느냐, 우리도 좀 여유있게 살자'고 얘기한다."

- 정당 밖에서 운동을 하다가 정당으로 들어간 인사들을 보면 재미있는 경향을 발견할 수 있다. 주로 PD계열은 주로 민자당-신한국당-한나라당으로, NL계열들은 평화민주당-국민회의-민주당-열린우리당으로 들어갔다. 어떤 것이 이런 경향의 차이를 낳는다고 생각하나?
"인연이 (많이) 작용하는 것 같다. 나하고 같이 일하는 사람들도 NL계열이 많다. 우리 때는 PD적 성향은 무시했던 것 같다. 우리의 뒷세대들은 NL이 많았다. 그런 경향이 있었다. 꼭 그렇게 구분할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인연이 있다 보니, 아는 인맥에 따라 들어가다 보니 그런 것 같다."

- 가장 보수적인 정당에서 가장 급진적인 운동가를 데려다 쓴다?
"그것도 생각해봐야 한다. 뭐가 보수냐 이런 부분을 생각해 봐야지."

"원래 내 꿈은 이 나라가 잘되는 것"... 마지막 꿈은 '대권도전'?

ⓒ 오마이뉴스 남소연
- 학생운동가→노동운동가→정당활동가→국회의원→광역자치단체장으로 변신해왔는데, 가장 만족도가 높은 역할은?
"도지사가 가장 높다. 그러나 정신적으로 가장 사명감이 높았던 것은 학생운동 때였다. 그때는 정신적으로 순백하다. 지금은 좀 노쇠해졌다. 신선한 감수성이 무뎌졌다. 늘 말하듯이 청춘은 뭘 하든 예찬받아 마땅하다."

- 원래 국회에 진출하면 노동부장관을 하도 싶다고 했는데, 결국 한번도 하지 못했다.
"지자체장에게도 노동관련 일이 많다. 도지사 자리는 종합행정이다. 최고책임자로서 주도하다 보니 특정부서를 더 해야겠다는 생각은 적다. 지금 꼭 하고 싶은 게 있다면, 외교관계에서 잘 균형을 잡아나가고, 경제문제나 남북관계에 더 주력했으면 좋겠다."

- 마치 대권에 도전하는 사람들의 경로를 그대로 밟으려고 하는 것 같다.
"그런가? 원래 내 꿈이 그런 것이다. 운동을 했던 사람들은 그것을 꿈으로 생각한다. 여기 앉아 지방세가 어떻고, 하천을 어떻게 하고, 이런 걸 생각하는 운동권은 없다. 모든 운동권들이 비슷하다. 원래 과업 자체가 그런 걸 가지고 운동을 했다. 내셔널 히스토리컬 제너널 어젠다(national, historical, general agenda)지. 원래 젊었을 때 꿈과 과업은 그런 것이다. 이 나라가 잘 되는 것."

- 지난해 한 강연에서 "예외적인 발전을 미리 내다본 사람이 박정희 대통령" "대한민국의 기적을 이룩하는 데 공헌한 주역"이라고 극찬했다. "박정희 대통령이 피살됐을 때 만세를 불렀다"는데 어떻게 이렇게 정반대의 평가를 할 수 있나?
"박정희 대통령이 시해됐을 때 만세를 불렀던 것은 독재자의 갑작스러운 소멸이 나에게 엄청난 자유를 줬기 때문에 그랬다. 그러나 박 대통령이 추구했던 중화학공업 위주의 성장위주정책은 필연적으로 종속경제로 가고 자생력이 떨어져 넘어진다고 봤는데 전두환 대통령 초기에도 안 무너지고 지금까지도 안 무너지더라. 지금 우리나라 자동차와 반도체는 세계 1위다.

전에는 고속도로를 만든다고 하면 국도나 제대로 포장하라고 반대 데모를 했다. 자동차의 경우도, 땅도 좁고 기술과 돈도 없는데, 설사 만든다고 한들 팔 데도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것이 신화를 만들었다. 박정희의 '하면 된다'는 정신으로 예외적인 틈새를 비집고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한 것이다. 한국 민주화도 그런 것인지 모른다. 쓰레기통에서 장미꽃을 피운 것이다. 우리는 위대한 민족이다. 나는 나대로 작은 기여를 했지만 박 대통령은 굉장한 기여를 했다.

물론 그가 독재자라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박 대통령이 시해 당했을 때) 만세로 환호한 것도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는다. 내 젊음과 양심에 비추어서 정당하다. 할 일을 한 것이다. 하지만 자동차, 고속도로, 포항제철 등 박 대통령의 중화학 공업화 정책에 반대한 것은 아주 잘못된 것이다. 헌법을 비판하지 말라, 유신을 비판하지 말라고 한 것은 말도 안된다. 그래서 이중성이 있는 것이다.

박 대통령은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그가 근대화에 성공한 것은 위대한 업적이다. 반면 민주화세력을 억압한 것은 허물이고 잘못이다. 이렇게 공과가 있다. 근대화의 공이 워낙 크니까 민주화(세력)를 억압한 것은 많이 묻힌다."

"뉴라이트, 좌파→우파라는 점에서 나와 코드가 맞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 박정희 대통령은 이렇게 적극 평가하면서 박근혜 전 대표의 리더십에 대해서는 "박정희의 후광일 뿐"이라고 평가절하한 이유는?
"평가절하가 아니라 객관적으로 평가한 것이다. 박 전 대표와 나는 동갑이다. 그의 리더십의 핵심은 그가 박정희의 딸, 육영수 여사의 딸이라는 것이다. 두 분은 비참하게 돌아가셨지만 이룩한 업적은 크다. 그는 육영수 여사의 우아함과 부드러움, 박 대통령의 단호함을 갖추고 있어 매력적이다. 대통령을 해야 한다 안된다를 떠나서 그에게는 국민적 사랑이 상당히 있다. 이것이 (큰) 정치적 자산이다."

- 박정희 전 대통령의 후광이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나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나.
"아주 긍정적인 영향이 많다. 부정적인 영향은 적다. 아버지가 없었다면 국회의원 할 수 있었겠나?"

- 지금 뉴라이트 진영에서는 자신들과 가장 잘 통하는 인사로 김 지사를 꼽는데.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내가 볼 때, 그 사람들이 길을 잘 말하고 있다. 그러나 나이가 어리고 경험이 없어 미숙한 점이 많겠지만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잘 정진해 나가면 국가에 큰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 '김문수 지지그룹'으로 봐도 되나?
"지지를 많이 해줬다. 뉴라이트는 과거에 좌파였지만 현재는 좌파의 문제를 느끼고 우파가 되었다. 그리고 그들은 기본적으로 속물이 아니라 운동가이고, 상당한 이상을 가지고 있는 이상주의자이다. 이상을 추구하는 현실주의가 되었다. 우리는 이상을 잃어버린 현실주의자를 속물이라고 하고, 현실을 잃어버린 이상주의자를 망상가라고 한다. 그런 점에서 뉴라이트는 이상을 추구하는 현실주의자다. 그런 점에서 나하고 코드가 맞다."

- 이제 '뉴라이트'를 자처하겠다는 뜻인가?
"뉴라이트를 자처한다? 난 내가 뉴라이트라고 말해본 적은 없는데 (뉴라이트에) 공감하는 바가 많다. 나는 아주 다양한 걸 많이 체험했기 때문에 뉴라이트보다 폭이 약간 넓다. 난 때묻은 사람들하고도 잘 지낸다. 라이트는 물론 레프트 한 사람과도 대화가 잘되고 잘 맞는다. 왜냐하면 내가 그런 길을 걸어왔기 때문에 급진적, 좌파적 성향에 있는 사람과도 잘 맞는다. '당신도 경험을 더 하면 세상을 더 많이 느낄 것이다' 하면서 인내할 수 있는 경험을 가지고 있다. 난 사람의 생각에 대해 단정적이거나 조급하지 않는 나이다."

- 아직도 '운동'(사회운동이든 노동운동이든)을 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가끔 보는데 그 사람들을 잘 안 건드리지. 필요한 얘기만 한다. 사상의 근저를 건드리면 시간을 많이 잡아먹기 때문에 손을 잘 안댄다. 괜히 시작했다가 해결도 못하고 헤어지면 감정만 안 좋아지잖아. 가능하면 서로 잘 지낸다.

현실을 잘 봤으면 좋겠다. 그분들은 주로 책을 많이 보고, 운동을 많이 한다. 현실을 많이 보고, 사람들을 많이 만나면 좋겠다. 그러면 생각이 상당히 현실화될 것이다. 이념적으로 많이 묶여 있는 분들은 사람을 별로 안 만난다. 난 사람을 엄청 많이 만난다. 사람들을 많이 만나고 현실을 많이 보면 좋은 생각에 도달할 것으로 본다. 사람은 다 똑같으니까."

- 지금도 노동운동을 하고 있었다면 어땠을 것 같나?
"늦가을에 시들어서 매달려 있는 호박꽃 같지 않았을까?(웃음). 사람이 철을 잘 봐야 한다. 정년퇴임할 나이에 노동운동을 하고 있다면 안 맞겠지."

- 원래 집안에서는 판검사가 되길 바라지 않았나?
"아버지는 그게 뭔지 알았는데 다른 사람들은 몰랐다. 내 고향은 깡시골이다. 학교에 가면 등록금 걱정부터 했다. 그 골치 아픈 학교 안 가면 안되나…. 아버지 정도만 빼면 뭔가 되는 걸 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내가 아버지한테 '정치 같은 거 해보면 어떻겠냐?'고 하면 '그런 것은 생각도 하지 마라'고 했다. 아버지는 격동기를 살아와서 정치인 하면 다 맞아 죽는 걸로 생각했다. 또 정치는 건달이나 하는 짓이어서 하면 안된다고 생각했다."

"문익환 목사는 이념의 틀로 규정할 수 없어"

ⓒ 오마이뉴스 남소연
- 경기도는 남북관련 사업이 많은데, 김 지사가 반북적 성향이라 그런 사업이 축소되지 않을까 걱정하는 목소리도 있다.
"내가 왜 반북적이냐? 북한인권을 얘기하는 사람만이 북한을 도와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인권을 보지 않는 사람은 위선이다. 정치적 목적으로 도와주는 것이다. 사람과 인권을 생각해서 도와주는 것이지 독재자를 생각하고 도와주는 게 아니다. 진정한 휴머니스트만이 (북한을) 도와줄 수 있다."

- 문익환 목사는 북한인권을 생각하지 않았다고 생각하나?
"문 목사는 내가 굉장히 가깝게 모셨다. 내가 전태일기념사업회 사무국장을 할 때 회장으로 계셨다. 그 분은 아주 순수한 휴머니스트다."

- 올드라이트나 뉴라이트에서 보면 문익환 목사는 '친북주의자' 아닌가?
"더러 친북적인 게 있지만, 친북이냐 반북이냐 하는 게 중요하지 않다. 그 분은 정말 순수한 휴머니스트였다."

- 한나라당에서는 여전히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은데.
"이념적으로만 보면 그렇다. 하지만 문 목사는 이념만 가진 사람이 아니다. 이념의 틀로 그 분을 규정하는 것은 많은 위험이 있다."

- 문익환 목사에 대한 존경심이 상당히 커 보인다.
"그 분의 순수한 뜻은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다. 그 분을 세속의 상태로 박제할 수는 없다. 감옥에서도 교도관과의 벽을 뛰어넘는 독특한 분이다. 아주 인간적이다. 세상 잣대로 보면, 법으로 보면 간첩일지 모르지만 그런 것으로 그 분을 잴 수는 없다."

- 이제는 국가보안법을 철폐할 때가 되지 않았나?
"그대로 유지해야 한다는 게 아니라 그건 정치적으로 공안의 관점에서 검토해야 한다. 현실에 맞게 개선하고 발전시켜야 한다. 한번에 다 할 수는 없다."

- 존경하는 문익환 목사는 국가보안법 폐지를 바랐다.
"그 분이 그렇게 본다고 나까지 그렇게 볼 필요가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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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전남 강진 출생. 조대부고-고려대 국문과. 월간 <사회평론 길>과 <말>거쳐 현재 <오마이뉴스> 기자. 한국인터넷기자상과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2회) 수상. 저서 : <검사와 스폰서><시민을 고소하는 나라><한 조각의 진실><표창원, 보수의 품격><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국세청은 정의로운가><나의 MB 재산 답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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