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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린 시절 오후 다섯시만 되면 애국가가 울려퍼지고 마을회관이나 학교에 걸려있는 태극기를 향해 국기에 대한 맹세를 함으로써 제도적, 습관적, 은연중에 애국심을 강요당한적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의 중학교 도덕교과서는 어떨까요? <도덕교육의 파시즘>이라는 책에 잘 설명돼 있더군요.
ⓒ 윤태

중학교 도덕 과목의 문제점을 지적한 <도덕교육의 파시즘>이라는 책을 읽었다. 이 책에는 '노예도덕을 넘어서'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그리고는 현재 중학교에서 행해지는 도덕교육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게 됐다. 그 도덕교육이 일상생활에 미치는 영향까지 한번 생각해보게 됐다. 평상시에는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했던 것을 이 책을 읽고 나서 '아하 그럴수도 있구나'라고 깨닫게 됐다.

<도덕교육의 파시즘>의 저자는 중학교 도덕 교과서는 '착한 노예를 기르는 도덕'이라고 책에서 설명한다. 그러면서 저자는 중학교 교과서의 '예절'을 문제점으로 들었다. 학생들에게 예절을 지키라고 지나치게 강요하는 것은 도덕 교과서가 가진 심각한 결함중 하나라고 설명한다.

@BRI@중학교 1학년 도덕 교과서는 아예 절반이 예절에 할애되어 있는데 가정 예절, 친척간의 예절, 이웃간의 예절, 마지막으로 학교 예절을 다루고 있다. 그런데 한국에서의 예절이란 처음부터 사람들 사이의 불평등한 권력관계를 전제하고 있는 규범이라고 지은이는 설명한다. 많은 경우 예절이란 사회적 약자에게 요구되는 것이고, 사회적 강자에게는 처음부터 해당사항이 없다고까지 말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학교 생활 예절' 단원은 선생님에 대한 예절을 가르치는 부분인데, 선생님에게 감사와 존경의 마음가짐을 가질 것을 요구하면서도 선생님이 학생들에 대해 가져야 할 예절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말하지 않는다. 마치 교사가 학생에게 지켜야 할 예절 같은 것은 처음부터 존재할 수 없다는 듯이 말이다. 이러한 사정은 부모에 대한 예절, 형제나 친척 사이의 예절 또는 선배에 대한 예절을 가르칠 때도 마찬가지다.

교과서는 하나같이 사람들을 아래 위로 나눈 다음 윗사람은 아랫사람을 사랑으로 감싸주고 아랫사람은 윗사람을 존경하고 공손히 대해야한다고 가르친다. 그리고 이를 통해 사람들 사이의 불평등한 권력관계를 제도화한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즉 아랫사람이 윗 사람에게 지켜야 할 예절은 가르쳐도 윗 사람이 아랫사람에게 지켜야 할 예절은 가르치지 않는다. 그런 까닭에 우리는 어떤 자식이 예의바른 자식이고 어떤 학생이 예의바른 학생인지를 배우기는 하지만 어떤 부모가 좋은 부모이고 어떤 선생이 좋은 선생인지를 전혀 배우지 못하고 어른이 된다는 것이다.

이처럼 윗사람의 도리와 예절을 배우지 못하고 어른이 되는 까닭에 많은 사람들이 무례하고 폭력적인 사람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흔히 군대에서의 폭력과 자살사건 등을 보면 이 나라에서 도덕적으로 정말 문제가 되는 것은 하급자가 상급자에게 무례한 것이 아니라 어디서나 상급자가 하급자에게 가하는 횡포와 폭력이라고 저자는 강조한다.

저자는 또한 중학교 도덕교과서의 '타인과 공동체를 위한 도덕'에도 문제점을 제시한다. 즉 도덕교과서는 '보다 나은 가치를 추구하는 삶'을 말하면서 언제나 앵무새처럼 자기를 희생하고 타인과 공동체를 위해서 사는 것만이 '보람 있는 삶' 이라고 가르치고 자기자신에 대한 건강한 배려와 관심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는다는데 있다는 것이다.

물론 타인과 공동체를 위한 삶을 부도덕한 삶이라 비난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러나 타인을 위한 자기희생이 아무리 숭고한 것이라 하더라도 언제나 자기를 잊고 타인만을 위해서 살아야 한다고 가르치는 것은 자유인이 아닌 노예를 위한 도덕이요, 언제나 개인의 이익보다 국가의 이익이 더 중요하다고 가르치는 것은 파시즘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도 저자는 강력히 주장한다.

저자는 한편 중학교 3학년 도덕 교과서에 나오는 '법과 규칙 그리고 획일적 질서의 절대화'를 비판하면서 '파업'에 대해 설명했다. 교과서는 자신들의 권익을 지키기 위해 파업한다는 입장과 시민들에게 불편을 주면서 파업하는 것은 나쁜 일이라는 입장을 대립시킨 다음 이 두 입장을 절충하여 "자신들의 권익을 향상시키기 위해 시민생활에 불편을 주지 않는 범위 내에서 마지막 수단으로서 파업하는 행위는 나쁘지 않다"는 원칙을 제시한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이는 파업을 하지 말라는 말과 같다. 어떤 파업이 시민생활에 불편을 주지 않고 수행될 수 있는가? 모든 파업은 직·간접적으로 시민생활에 불편을 끼친다.

그리고 파업의 효력은 바로 그런 불편에서 나오는 것이다. 아무리 격렬하게 아무리 오랫동안 노동자들이 파업을 한다 하더라도 그것이 시민생활에 아무런 불편도 끼치지 않는다면 도대체 누가 파업하는 노동자들의 호소에 귀를 기울이겠는가? 그런데 중학교 교과서는 시민생활에 불편을 주지 않는 범위 내에서 마지막 수단으로 파업을 해야 한다고 윽박지르면서 노동자의 파업권을 제한하려 하는데 이것이야말로 파업이 있을 때마다 모 일간지를 비롯해 극우 언론들이 파업을 매도하는 논리의 원조라고 강조한다.

이 밖에 이 책은 도덕교과서에 들어 있는 새마을 운동과 국가주의, 은연중에 강요당하는 타율적인 애국심 등 자아의지와 실현이 아닌 타율에 의한 착한 노예를 기르기 위한 교육으로 문제점이 많다고 지적한다.

도덕 교육에 관심이 있거나 중학교 도덕 교육에 문제점이 있다고 생각하는 독자는 한번쯤 읽어도 큰 도움이 되리라고 생각한다. 이와 함께 아무 그동안 도덕교과서에서 강조했던 예절 등을 배운 중 장년 층 기성세대에게 다시한번 되새기며 읽어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도덕교육의 파시즘 - 노예도덕을 넘어서

김상봉 지음, 길(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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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소통과 대화를 좋아하는 새롬이아빠 윤태(문)입니다. 현재 4차원 놀이터 관리소장 직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다양성을 존중하며 착한노예를 만드는 도덕교육을 비판하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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