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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 기자들이 지난 5일 파업에 들어갔다. 지난해 7월 금창태 사장은 삼성그룹 관련 기사를 삭제하고, 이에 항의하는 이윤삼 <시사저널> 편집국장의 사표를 수리했고, 그 뒤 6개월 동안 사측과 기자들은 공방을 벌여왔다. 최근에는 기자들이 배제된 채 만들어진 '짝퉁' <시사저널>이 만들어지는 사태에까지 이르렀다. 이에 <오마이뉴스>는 시사저널 사태에 대한 각계 인사들의 릴레이 기고를 싣는다. 정일용 기자는 한국기자협회장이다. <편집자주>
▲ '삼성기사 삭제 파문' 이후 회사측 주도로 만들어진 <시사저널> 899호(2007.1.16일자)가 9일 오전 서울 중구 충정로 시사저널 편집국에 놓여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지난 해 9월 서울 서부지검에 출두했습니다. <시사저널> 금창태 사장께서 명예훼손 혐의로 저를 고소했기 때문입니다.

경찰 출입하면서 저도 몇 번 검사들 상대한 적이 있어서 대체 내가 무슨 신분으로 검찰에 불려가나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검사한테 물어 봤더니 "피의자 신분"이라고 딱 잘라 말하더군요.

피의자라…. 몇 번 혼잣말로 되뇌어봤습니다. 한 마디로 기가 막히더구만요. 검사의 피의자 신문은 그 전에 흘낏흘낏 지나쳐본 것이 전부였습니다. 막상 철제 의자에 앉아서 검사도 아닌 조사관 앞에서 신문을 받자니 참으로 부끄러웠습니다.

명예를 아시는 분이 이런 일을 하십니까

@BRI@처음에는 화가 치밀었습니다. <시사저널> 경영진이 편집권을 침해한 것 잘못했다고 지적하고 한국기자협회 이름으로 편집권을 침해하지 말라고 촉구하는 성명서를 낸 것이 무슨 잘못이길래, 검찰에 불려와서 조사를 받는 것인지 화가 났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바뀌지 않은 것은 인적사항부터 묻는 검찰의 관행이었습니다. 결혼은 했느냐? 아내 이름은? 애들 이름은? 재산 보유 정도는?

이미 내 이력 조회까지 다 했을 정도면 이런 것도 다 알았을 텐데, 뭐하러 또 다시 꼬치꼬치 캐묻는지 납득이 안 됐습니다. 창피 한 번 당해 봐라 하는 듯 했습니다. 점심 먹고 나서 한 시간 더 조사를 받았으니 그날 아마 세 시간 정도는 검사실에 머물렀던 것 같습니다.

검사실에 머무는 동안 점차 부끄러운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금창태 사장은 언론사의 사장이자 개인적으로 언론계, 그리고 학교의 대선배이십니다. 젊은 조사관 앞에서 내가 잘했니 네가 잘못했니 설명하고 해명하는 것 자체가 부끄럽기 짝이 없었습니다. 이렇게 할 수밖에 없었는지 솔직히 금 사장이 원망스러웠습니다.

▲ 지난해 6월 정일용 한국기자협회장이 <시사저널> 사무실 벽에 붙은 대자보를 보고 있다.
ⓒ 시사저널 노조
다행히도 그 뒤 금 사장의 명예훼손 고소는 무혐의로 끝났습니다. 그래서 이제 <시사저널> 사태도 결말을 보겠지 생각했지만 전혀 해결될 기미가 안 보였습니다. 연말까지는 어떻게 좋은 방향으로 끝맺겠지 했으나 그 예측도 빗나갔습니다.

금사장이 책상에다 노동법 관련 서적을 잔뜩 쌓아놓고 연구한다는 말은 들었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정말 기자잡는 전문가가 되셨나 허허롭기만 합니다.

붉은 스티커 붙이고 상받은 기자들

1월 16일자 제899호 시사저널을 받아보고 또 한 번 기가 막혔습니다. 이게 내가 알던 그 <시사저널>인가, 누가 그러듯 '짝퉁' <시사저널>인가, 어이가 없었습니다. 꼭 <주간00)>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동시에 떠오른 낱말이 있습니다. '노욕'과 '노추'입니다. '노욕(늙은이의 욕심)'은 누구도 막기 힘들고 '노추(늙은이의 추한 모습)'가 풍기는 역한 냄새는 코를 돌리게 한다는 옛말이 틀림이 없었습니다.

이 글을 쓰기 몇 시간 전 '이 달의 기자상' 시상식이 있었습니다. 한국언론재단과 한국기자협회가 한 달 동안 출고된 기사 중 가장 괜찮은 작품을 골라 기자에게 주는 상입니다. <시사저널>의 정희상·신호철 기자가 '제이유 그룹 정관계 로비 의혹 및 로비 리스트' 기사로 상을 받았습니다.

내부 사정이 어떻든 할 일은 해야겠다고 성심성의껏 뛰어다닌 그 기자들이 너무도 고맙고 자랑스러웠습니다. 시상식장에 나온 수상자들, 또 동료들 옷깃에는 '편집권 수호'라고 적힌 붉은 스티커가 붙어 있었습니다.

상을 받았으면 어깨라도 한 번 두드려주고 소주 한 잔이라도 사 주는 것이 선배로서 낯 한 번 내는 일이겠으나 저는 다른 일정이 있다는 핑계로 식장에서 나와 바로 헤어졌습니다.

언론계에서 잔뼈가 굵어 지금도 "기자란 모름지기…"라고 강의를 하시곤 한다는 금창태 사장님, 심상기 회장님께 묻습니다. 이들이 무엇을 잘못했습니까.

노욕과 노추를 거두십시오

▲ 9일 오전 서울 중구 충정로 시사저널 편집국에서 노조 집행부가 회의를 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아무리 의술이 발달했다 해도 '인생 칠십 고래희'는 여전히 유효합니다. 끝마무리를 멋있게 하겠다고 스스로 다짐하고 계신다는 말도 전해 들었습니다. 저도 이제 두 분 선배님께 드리는 말씀을 마무리해야겠습니다. 지금 노욕을 부리고 계십니다. 노추를 그만 보이십시오.

사적인 자리에서 조용히 드리고 싶은 말씀이었으나 아쉽게도 그런 기회조차 거부하셨습니다. 지난해 좋지 않은 기억을 깨끗이 없애 버리고 새해를 시작하고 싶었지만 역시나 그것도 혼자만의 바람이었습니다. 그래도 마지막 기대가 있습니다.

"'끝이 좋으면 다 좋다"는 말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평소 다짐대로 끝마무리를 잘 하십시오. 그래야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오는 이명증도 사라질 것 같습니다. "대체 이게 뭐 하는 짓입니까"라는 어떤 노학자분의 한탄이 귓속을 어지럽힙니다.

태그:#시사저널, #짝퉁 시사저널, #금창태, #한국기자협회, #명예훼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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