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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무현 대통령은 9일 오전 11시30분 대국민특별담화를 통해 현행 5년 단임 대통령제를 4년 연임제로 바꾸는 헌법개정 논의를 제안하면서 추후 이 같은 방향으로의 개헌을 발의하겠다고 밝혔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노무현 대통령이 카드를 꺼내들었다. 원 포인트 개헌 카드다. 대통령 5년 단임제를 4년 연임제로 바꿔 대선과 총선을 동시에 치르자는 제안이다.

반응이 갈린다. 열린우리당은 대체로 환영하는 분위기이지만 한나라당은 부정적이다. 특히 박근혜 전 대표는 "선거만 생각하는 대통령"이라면서 "나쁜 대통령"이라고까지 평했다.

무슨 이유로 반응이 이렇게 갈리는 걸까?

셈할 필요없다더니... 무지하게 복잡한 개헌 계산법

노무현 대통령 말만 놓고 보면 반응이 갈릴 이유가 없다. 개헌 제안에 어떤 정략적 의도도 없고 셈도 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셈을 하더라도 어느 정파에게도 손해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왜 박근혜 전 대표는 격한 반응을 마다하지 않았을까?

일각에서는 '국정 주도권 장악용'이라고 분석한다. 정국을 개헌 국면으로 끌고 가면 다른 국정 논란이 상대적으로 약화되고 그에 따라 레임덕도 제어할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는 분석이다.

또다른 일각에선 '업적쌓기용'이라고 진단한다. 2002년 대선 당시 노무현 후보가 내건 시대정신이 '낡은 정치 청산'이었다는 점, 집권 후에 정치개혁에 상당히 공을 들여왔다는 점에 비춰볼 때 개헌을 자신의 정치개혁 완성표로 삼고자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다른 건 몰라도 정치개혁 분야에선 업적을 남긴 대통령으로 남고 싶어 한다는 진단이다.

틀린 분석과 잘못된 진단은 아니다. 하지만 그게 다는 아니다. 더 큰 게 있다.

두 선거가 동시에 치러지면 총선은 대선 구도에 갇히게 된다. 총선 또한 양강 대결구도가 되면서 대선 후보의 경쟁력이 같은 당 국회의원 후보의 당락을 좌우하는 결정적 요인이 된다. 싫든 좋든 국회의원 후보가 대통령 후보와 운명공동체로 묶이게 된다는 얘기다.

바로 이 점 때문에 복잡다단한 셈이 성립된다.

열린우리당에겐 약이자 독, 한나라당에겐 밑지는 장사

정계개편 몸살을 앓고 있는 열린우리당 의원들에겐 약과 독의 양면을 동시에 던져준다. 극히 저조한 국민 지지도에 견줘보면 약이 되는 측면이 있다. 대선의 양강구도가 지지율을 인위적으로 끌어올리는 동인으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독이 될 수도 있다. 어떻게 처신하느냐에 따라선 힘 한번 써보지 못하고 주저앉아야 할지도 모른다. 한나라당 후보에 맞설 여권의 후보가 누가 될지를 면밀히 재서 줄을 잘서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공천장조차 챙기지 못하는 일이 발생할 수 있다.

이렇게 보면 노무현 대통령의 개헌 카드가 여권의 정계 개편 움직임을 제어할 공산이 크다. 일단 저지르고 보자는 식의 정계 개편 움직임에 찬 물을 끼얹으면서 알아서 은인자중하는 모습을 유도할 수 있다.

노무현 대통령이 개헌 카드를 지금 꺼내든 이유도 여기서 헤아릴 수 있다. 노무현 대통령의 개헌 제안 시점은 열린우리당이 2월 14일 전당대회를 앞두고 폭발 일보 직전으로 내달리던 시점과 일치한다.

그럼 한나라당에겐 어떨까? 결론부터 말하면 별로 좋을 게 없다.

지금의 구도가 그대로 이어진다면 대선 승리는 따놓은 당상일 뿐 아니라 총선 압승도 기대할 수 있다. 12월 19일 대선 이후 2008년 총선까지 정국의 주도권은 대통령 당선자 측이 완벽하게 쥐게 돼 있다. 특별히 실정을 범할 이유도 없고, 국민의 관심이 사그라질 여지도 없다. 대선 승리 여세를 총선에 집중시킴으로써 압승을 일궈낼 수 있다.

하지만 대선과 총선이 동시에 치러지면 상황이 달라진다. 대선 승리의 여세를 몰아 치르는 총선과 양강 대선구도 하에서 치르는 총선은 성격이 완전히 다르다. 설령 총선에서 승리를 일궈내더라도 압승을 기대할 수는 없다.

▲ 노무현 대통령이 개헌안에 대한 대국민특별담화를 발표한 뒤, 빙그레 웃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노무현의 다음 카드는?

노 대통령의 장담과는 달리 계산 결과는 이렇게 다르다. 개헌 성사 가능성을 높게 볼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궁금하다. 노 대통령은 정말 모든 정파에 이득이 되는 개헌이라고 믿고 있는 걸까? 그래서 개헌이 가능하다고 판단하는 걸까? 지금 구도라면 사실상 불가능하다. 하지만 구도를 바꿔놓는다면? 개헌 카드가 지금의 구도를 바꾸는 촉매 역할을 한다면?

이런 가정 상황은 노무현 대통령의 개헌 제안이 한나라당의 분화를 촉진하는 결과를 가져올지도 모른다는 예측에 근거한다. 즉, 한나라당 대선주자가 개헌 찬반으로 입장이 갈리고 이것이 여야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정계개편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가설 말이다.

하지만 노 대통령이 이런 상황을 염두에 두고 있다면 제2의 카드가 반드시 필요하다. 여야 어느 대선주자도 개헌 그 자체만으로는 정치적 실리를 손에 쥘 수 없다. 플러스 알파가 필요하다. 최소한 자기 계파를 기반으로 노무현 대통령이 주장해온 '연합정치'를 펼 수 있는 여건이다.

그게 바로 선거구제 개편이다. 현행 소선거구제를 중대선거구제로 개편하면 '도 아니면 모' 식의 정치게임에서 벗어나 윷을 확보하고 도를 더 얹을 수 있는 정치보험을 확보할 수 있다.

선거구제 개편 논의는 자연스럽게 시동을 걸 수 있다. 대선과 총선을 동시에 치르는 개헌에 동의한다면 그렇다.

양수겸장 일석이조

이렇게 보면 노무현 대통령의 개헌 제안은 불지피기에 불과하다.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노 대통령으로선 나쁠 게 없다. 잘 되면 선거구제 개편을 얻게 되고, 여권 정계개편 향배에 따라 자기 계파의 정치 기반을 확보할 수 있다.

못 돼도 그만이다. 최종적으로 결렬되더라도 거기에 이르기까지는 상당 기간이 걸릴 것이다. 노 대통령 스스로 개헌 발의권을 행사할 것이라고 분명히 밝히지 않았는가. 최소 두세 달은 족히 벌 수 있다. 이 기간 동안 여권의 정계개편 움직임을 제어하면서 노무현 대통령 자신이 정치의 중심에 설 수 있다.

이런 걸 두고 양수겸장, 일석이조라고 한다.

태그:#개헌, #원 포인트, #4년 연임제, #노무현, #선거구제 개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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