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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초등학교 입학하기 전 날, 어머니께서 새로 산 책가방과 함께 머리맡에 놓아주신 빨간 구두가 아마도 내가 처음으로 신어본 구두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전까지는 늘상 고무신을 끌고 다니며 술래잡기도 하고 고무줄 놀이도 하고 심지어 축구도 하며 지냈다.

한참 뛰어 놀 나이에 고무신이 참으로 불편했으리라는 짐작이 가지만 그 당시에는 전혀 불편함을 못 느꼈었다. 오히려 쉽사리 닳지도 않던 고무신이 지겨워 뒤축을 뒤집어 우스꽝스런 모양을 만든 채 뒤뚱거리며 놀았던 기억이 난다. 뒤집어진 고무신을 신고 발뒤꿈치를 살짝 들어올린 채 양장차림에 굽 높은 구두를 신고 외출하던 어른들을 흉내냈던 어린 여자아이들의 동심이 아련히 그립다.

반복되는 일상이 고무신처럼 질긴 것이라면 한번쯤 고무신 한 짝을 벗어 푸른 하늘로 던져버리듯이 스스로 파격에 몸을 담그는 것은 어떨까? 알 수 없는 곳으로 날아가버린 고무신 한 짝을 핑계 삼아 나머지 한 짝도 더 멀리 날려 버릴 용기가 생기지 않을까? 마침내 맨발이 되는 자유를 만끽하기 위해서라도.

크리스마스에 단행한 평범한 이들의 특별한 반란

@BRI@나는 이번 성탄절에 자타가 공인하는 평범한 아저씨, 아줌마들의 파격과 반란을 바라보며 덩달아 숨통이 트이는 특별한 경험을 했다. 그들은 불과 2개월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외진 곳에서 끼니도 거르고, 몸살을 앓아가며 뭉쳐다니더니 성탄절 강단을 접수(?)해 버리는 사고를 쳤다.

서울 도심 한복판 명동 향린교회에서 '늙은 시인의 노래'라는 제목의 연극을 무대 아닌 설교 단상에 올린 겁없는 40대들은 목사님과 성가대, 국악찬송 연주자들까지 쫓아낸 그곳에서 시커먼 천으로 십자가를 덮어씌우고 거지들이 사는 초라한 방공호 무대를 차려놓은 채 신명나는 몸짓과 열기를 뿜어냈다.

경건하고 엄숙하게 예수 탄생을 찬양하고 엎드려 기도드릴 줄만 알았던 교인들은 예수님 탄생과는 거리가 먼 거지들과 철거민들의 얘기를 연극으로 드리는 새로운 예배에 처음엔 어리둥절했지만, 마침내 진심에서 우러나는 감동과 감사의 눈물까지 흘리며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연극을 연출하고 대본까지 썼으며 늙은 시인 역할을 맡은 송바울(극단 은행나무 대표)씨를 제외한 열한 명의 배우들은 모두 무대라고는 처음 올라와보는 순수 아마추어들이었다.

아이 둘을 제외하면 연령도 30대 후반에서 40대 후반을 바라보는 중년 아저씨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만큼 각자의 영역에서 중책을 맡고 있는 처지여서 개인의 여유로운 취미 생활은 아예 생각지도 못했던 우리 시대의 평범한 '일벌레' 중년들이었다.

비오듯 땀을 쏟아가며 몸으로 헌신한 연극이자 신앙고백이었고, 자신의 시간과 삶을 과감히 쪼개어 그 바쁜 연말의 희생을 감수한 실천적 기독인들이었다. 자신의 발을 편안히 감싸주던 고무신 한 짝을 나무 꼭대기에 던져 걸어놓고 졸지에 절름발이 신세가 된 것처럼 그들의 단 하루, 한 시간 공연을 위한 희생은 일상을 무던히도 힘들게 흔들어댔다.

그러나 그들의 공연은 24일 하루 공연으로 끝나지 않았다. 정작 우리 시대에 모른 척 지나칠 수 없는 한국의 베들레헴, 평택에서의 공연이 연이어 잡혀버린 것이다. 나머지 고무신 한 짝도 벗어던져야 할 판이었다. 같은 교회를 섬기는 신앙공동체 안에서 우리끼리 깨닫고 좋아라 할 수준이 아니라, 원정공연을 그것도 삶의 뿌리째 강탈당해 척박한 심정으로 바라볼 대추리에서의 공연이 버티고 있는 것이었다.

대추리로 무대를 옮기다

두 배로 강도 높은 긴장이 엄습했고 갑자기 더 넓어진 대추리 마을 창고무대에 선 '초짜' 배우들은 목청이 잦아들고 대사도 더욱 꼬이는 것만 같아 불안해졌다. 하필 공권력에 의해 쫓겨날 운명 앞에 선 대추리 주민들이 아닌가? 그들이 관객으로 앉은 자리에서 철거민으로 오갈 데를 잃어 거지들의 소굴로 찾아간 가난한 이들의 얘기를 풀어내야 했다.

연출을 맡은 송바울씨는 이 부분에서 가장 조심스러웠고 고민이 많았다고 후에 털어놨다. 어르신들의 조각난 가슴에 다시 한 번 칼질을 하는 일이 되어선 안되는데. 그래서 더 진지하게, 더 열성을 담아 연기에 몰입하자고 서로를 다잡고 추스려 무대에 올랐다고 한다.

걱정은 기우에 지나지 않았다. 마치 어린아이처럼 몸을 앞으로 내밀며 연극에 빠져든 대추리의 주민들은 손톱만큼의 경계도 없이 웃고, 울고, 박수 치며 배우들에게 열렬히 화답해 주었다. 진심은 진심을 타고 흘러 넘친다. 크리스마스 선물을 쥐어줄 자식들과 근사한 외식을 시켜주며 일년 동안 진 마음의 빚을 털어야 할 아내조차 외면하고 대추리로 달려온 평범한 남편이자 아버지, 어머니인 배우들의 진심어린 마음을 서러움과 억울함을 넘어 외로움까지 감당해야 할 대추리 주민들이 몰라줄 리가 있겠는가!

겉보기엔 모두들 여유 있고 행복해 보이는 현대인들 사이로 비집고 들어가 보면, 그나마 점심 한끼라도 해결할 수 있었던 급식이 생각나는 극빈층 아이들이 있고, 밤 사이 종이박스 더미 속에서 시체로 변해버리는 노숙자들의 아픈 뒷모습이 널려 있다. 잘 살지도 못 살지도 않으면서 온갖 몹쓸 병은 다 걸려버린 오늘의 한국을 바라보는 하느님의 시선은 어떠할지.

25일 자정이 넘은 명동거리는 이미 성탄절의 열기가 싸늘하게 식어버린 냉랭한 상가로 돌아가고 있었다. 선지국과 빈대떡을 안주로 소주잔을 기울인 '2일 천하'의 배우들은 내일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야 하는 자신이 어제의 자신과 아주 달라졌다는 걸 깨달았다.

굳이 그렇게 사회와 물질과 타인에게 치이면서 살아갈 이유가 없다는 것, 내 안에 가두어 놓은 자신을 이제 끄집어내어 크게 숨을 쉬며 살아도 좋다는 것, 자기의 신앙과 신념도 겁없이 덤벼들어 해낸 연극처럼 내가 주인공이 되어 무대에 올리면 된다는 것이었다. 나를 던져 나를 건진 셈이 된 것이다.

내 마음 속 가지런한 고무신 한 켤레처럼 나를 지켜준다고 믿었던 고정관념들을 키 큰 미류나무 꼭대기로 집어던지고 희고 발그레한 맨발로 설 그날이 내게도 올 수 있을까? 그들과 헤어져 돌아오는 귀가길에 내 발에 신겨진 신발이 몹시 무거웠다.

덧붙이는 글 | 향린교회 게시판에도 올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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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이모작을 솔향 가득한 강릉에서 펼치고 있는 자유기고가이자 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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