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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우진 중령.
ⓒ 도서출판 삼인 제공

'최초의 여성 헬기조종사'는 유방암 병력이 문제가 돼 올해 전역처분을 받았던 피우진 예비역 중령이 아니라 김복선(54) 예비역 대위인 것으로 확인됐다.

김복선 예비역 대위는 26일 오전 <오마이뉴스>에 보내온 해명서와 전화통화 등을 통해 "저는 81년 7월 11일 육군항공학교에서 회전익 12기를 졸업해 여군 최초의 헬기조종사가 되었다"며 "이후 K-16 비행장에서 81년 7월 16일부터 85년 3월 21일까지 대위로서 UH-1H를 조종했다"고 밝혔다.

한국항공학교 정훈실장인 류영숙 소령(진)도 이날 오후 "두 분이 모두 81년도에 수료하긴 했지만 김복선 예비역 대위는 조종 12기, 피우진 예비역 중령은 14기"라며 "최초의 여성헬기조종사는 김복선 예비역 대위가 맞다"고 확인해주었다.

실제 81년 당시 김복선 중위가 육군항공학교를 졸업했을 때 대다수 언론들은 '여군 헬기조종사 첫 탄생' '국내 첫 여군 헬기조종사 김복선 중위' 등의 제목을 달아 최초 여성헬기조종사의 등장을 알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마이뉴스>를 비롯해 대다수 언론들은 최근 피우진 예비역 중령이 국방부의 전역처분에 반발해 행정소송을 내자 사실확인은 하지 않은 채 그를 '최초의 여성헬기 조종사'로 부각시키며 전역처분에 문제를 제기해왔다.

하지만 피우진 예비역 중령은 이날 저녁 <오마이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제가 어느 매체에다 '헬기조종사 1호'라고 얘기한 적 없다"며 "제 입으로 얘기한 게 아니고 오래 전부터 그렇게 불려왔을 뿐"이라고 해명했다.

그는 "81년 당시 여성 헬기조종사 3명이 교육을 받았는데 2명은 전역했고, 저는 계속 군생활을 하니까 저를 1호라고 부르기 시작했다"며 "각계 여성 1호를 모아놓은 여성 플라자 건물(대방동)에도 제가 '1호'로 기록돼 있는 걸로 알고 있다"고 덧붙였다.

또 그는 "1호 여부가 중요한 게 아니고 1호로 살아왔던 제가 결국 병을 얻었고 그것 때문에 전역을 강요받았던 데 초점을 두어야 한다"며 "제가 군문화의 문제점 등을 얘기하니까 지금의 사태를 마무리하기 위해 나를 흔들려는 의도가 있는 것 같다"고 주장했다.

"'영웅' '최초'에만 집착하는 풍토 없어져야"

▲ 김복선씨를 여성최초 헬기조종사로 보도한 <조선일보>.
ⓒ <조선일보> PDF
김복선 예비역 대위는 "피우진 예비역 중령은 사관후보생 후배이자 항공학교 후배들 중 한 명"이라며 "제가 그의 영어교관을 하기도 했고 K-16 비행장에서 함께 근무했다"고 말문을 열었다.

그는 "청주대 체육학과 출신인 그는 태권도와 탁구 등 운동을 잘했고 대인관계에 능숙했다"며 "걸음걸이도 씩씩하고 특전대 중대장도 지내는 등 군인정신에 철저한 후배였다"고 회고했다.

하지만 그는 "당시 누군가의 투서로 인해 공정하지 않는 군 조직의 결정에 염증을 느껴 군을 떠나게 되었다"고 '안타까운 과거'를 털어놓으며, "그후 고지식하고 단순명료하며 명예엔 관심이 없었던 저는 몇몇 사람들의 의도적 노력과 인터넷의 폭발적 등장으로 기억의 저편으로 사라졌다"고 말했다.

그는 "당시 여군단장이 '지금 육군본부에서 여군단을 해체하려고 하는데 여군장교들끼리 싸운다고 하면 금방 해체될 게 뻔하다, 네가 참고 여군단으로 돌아오라'고 설득했다"며 "승복할 수는 없었지만 할 수 없이 여군단으로 돌아와 6개월 근무하다 전역했다"고 밝혔다. 그는 "사회가 다 그렇지만 전역하면서 바르게 해결하기보다는 편안한 것을 많이 추구한다는 것을 느꼈다"며 "당시 제 전역문제를 누가 나서서 손대기 힘들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어 그는 "제 비행시간이 700시간인데 (헬기를) 한번 띄우는 데 엄청난 비용이 들어간다"며 "엄청난 자원인데도 불구하고 그만두고 나왔는데 군에서도 손실"이라고 당시 전역에 대한 아쉬운 속내를 털어놓았다.

그는 "어제 나간 고등학교 동창회에서 (최초 여성헬기조종사에 관한) 많은 질문을 받고 대답을 못하고 쩔쩔매며 괴로워했다"며 "저 같은 매스컴 피해자가 다시는 나오지 않기를 바라면서, 있는 사실은 그대로 밝혀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친지들이나 옛날 동료들한테 제 입지가 분명하지 않다"며 "'네가 최초라고 했는데 어떻게 된 거냐'며 걱정하거나 비아냥거리는 사람이 적지 않다"고 토로했다.

또한 그는 "피우진 예비역 중령은 자신이 최초의 여성 헬기조종사라고 하는데 최초보다는 노력해서 최고가 되는 게 더 중요하다"며 "이제는 여성도 최초가 아니라 최고가 될 때가 됐다"고 강조했다.

그는 "저는 '최초'라는 명예에 집착하지 않지만 매스컴에 의해 사기꾼이 되어버린 듯한 상황에 처하고 싶진 않다"며 "올해의 인물이 'You'가 아닌 사회, '평범한 당신'도 최초일 수 있는 사회를 꿈꾼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매스컴에서 사실을 확인해줬어야 했다"며 "영웅만들기에 나선 매스컴도 이번 기회에 (보도)태도를 바꿔야 한다"고 주문했다.

항공학교 측 "알고 있었지만 핵심이 아니어서 소극 대처"

@BRI@김복선 예비역 대위는 건국대 영문학과를 졸업한 뒤 78년 8월 여군장교로 임관해 여군단장 부관과 여군사관후보생 영어교관, 군수참모부 FMS(Foreign Millitary Service) 담당으로 근무했다.

그는 80년말 최초의 여성헬기조종사 모집에 응시했고, 81년 7월 육군항공학교 조종 12기로 졸업했다. 이후 그는 '여성 최초의 헬기조종사'라는 명성을 얻으며 언론의 집중적인 조명을 받았다. 81년 7월부터 85년 3월까지 약 3년 8개월간 700시간 비행시간을 기록했다.

당시 한 언론은 "161㎝의 키에 51㎏ 체격인 김 중위는 영어회화와 운동 등에도 다재다능해 조종사 훈련을 할 때는 '삐삐(만능 재주를 지닌 만화영화 주인공 소녀)'라는 별명을 가졌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그는 뜻하지 않는 투서사건에 휘말려 85년 9월께 제대했다. 이후 그는 학원 영어강사로 활동했다.

한편 '최초 여성헬기조종사'와 관련 사실관계를 바로잡지 않는 점에 대해, 류영숙 소령(진)은 "언론보도의 핵심은 '최초 여성헬기조종사' 부분이 아니어서, 알고 있었지만 소극적으로 대처했다"며 "특별한 이유는 없다"고 해명했다.

그는 "우리가 최초의 여성헬기 조종사라고 밝힌 게 아니라 본인이 말한 것"이라며 "어떤 언론으로부터도 사실을 확인하는 문의는 없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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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전남 강진 출생. 조대부고-고려대 국문과. 월간 <사회평론 길>과 <말>거쳐 현재 <오마이뉴스> 기자. 한국인터넷기자상과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2회) 수상. 저서 : <검사와 스폰서><시민을 고소하는 나라><한 조각의 진실><표창원, 보수의 품격><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국세청은 정의로운가><나의 MB 재산 답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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