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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경제사(經濟史) 연구와 관련하여 일부 뉴라이트 경제학자들이 내세우는 주무기는 통계와 실증이다. 그런데 통계의 경우 통계를 어떻게 처리하고 분석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판이하게 달라지는 경우가 많다. 또한 그래프를 어떻게 그리느냐에 따라 독자의 판단을 바꿔 놓을 수도 있다. 실제로는 완만하게 상승한 경우에도, 그래프를 그리는 방법에 따라서는 급상승한 것처럼 보이게 만들 수도 있다. 뉴라이트를 대표하는 일부 경제학자들의 저서와 논문을 집중 분석한 결과, 통계 처리 및 분석에서 의도적이든 그렇지 않든 간에 적지 않은 오류가 있음이 발견되었다. 이번 글에서는 그 일례로서 교과서포럼이 편집하고 이영훈·김승욱 교수가 공저 <경제 교과서 무엇이 문제인가?>(두레시대, 2006년 발행)를 살펴보기로 한다.<기자 주>

@BRI@산업근대화 과정에서 농촌이 도시에 비해 차별을 받았다는 것은 한국 사회의 통념이자 상식이다. 굳이 학문적으로 연구를 하지 않더라도, 눈과 귀를 통해서도 얼마든지 확인할 수 있는 사항이다.

그런데 일부 뉴라이트 교수들은 통계자료를 근거로 그 같은 차별을 부정하고 있다. 이들 중 일부는 농업이 공업보다 더 많은 특혜를 받았다는 주장까지 하고 있다. 위 <경제 교과서 무엇이 문제인가?>라는 책의 제2장 제3절 '한국 경제는 농촌경제를 차별하였나?'에서 그 점을 살펴볼 수 있다.

이 부분을 집필한 서울대 경제학부 이영훈 교수는 1965~2004년 기간 동안 농산식품과 공산품의 상대가격지수 추이를 근거로 "한국 농업은 차별을 받은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지나치게 보호를 받아왔다고 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리고 그는 "(농업에 대한 지나친 보호는) 1987년 이후 민주화시대를 맞아 농민운동이 활성화되면서 두드러졌다"고 말하였다. 그가 내린 결론은 다음과 같다.

▲ 교과서포럼이 발행한 <경제 교과서 무엇이 문제인가?>.
ⓒ 두레시대
"그러한 모순적이며 비체계적인 농정으로 말미암아 오히려 한국 농업의 선진화를 위한 구조조정이 지연되어 왔음이 지난 10여 년간 한국 농업의 실태였다."(위의 책 33쪽)

최근 10여 년간의 과도한 농업 보호 때문에 한국 농업의 구조조정이 지연되었으며 바로 그것이 한국 농업의 문제점이라는 지적이다. 군부 독재 시절에는 농업정책상의 문제점이 없었던 것 같은 인상을 주는 대목이다.

그럼, 한국 농업은 과연 과도한 보호를 받았을까? 이에 관한 이영훈 교수의 논리를 자세히 검토해 보자.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이영훈 교수는 1965~2004년 기간 동안에 농산식품 가격지수가 공산품 가격지수보다 상대적으로 더 빨리 상승했다는 점을 근거로 한국 농업은 공업에 비해 더 많은 보호를 받았다고 주장하였다. 이영훈 교수가 제시한 그래프는 다음과 같다.

▲ <경제 교과서 무엇이 문제인가?>에서 이영훈 교수가 제시한 그래프.
ⓒ 두레시대
위에서 밑으로 하강하는 검정 곡선이 공산품의 상대가격지수이고, 밑에서 위로 상승하는 회색 곡선이 농산식품의 상대가격지수다.

먼저, 이 그래프가 어떤 방식으로 작성되었는가를 설명하기로 한다. 이 그래프는 다음과 같은 순서로 작성된 것이다. ▲2000년을 기준년도로 설정한 다음에, 농산식품과 공산품의 가격지수를 연도별로 작성한다. ▲각 연도의 농산식품과 공산품의 가격지수를 상대 비교한다.

이 점을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이러하다. 2000년을 100으로 설정하였을 때에, 1965년의 농산식품 가격지수는 2.5341이고, 공산품 가격지수는 9.0511이다. 여기서 농산식품 가격지수를 공산품 가격지수로 나누면 0.28이 되고, 공산품 가격지수를 농산식품 가격지수로 나누면 3.57이 된다.

이렇게 산출된 1965년도의 상대 가격지수는 각각 0.28과 3.57이다. 위 그래프상으로는 수치가 약간 다르게 되어 있지만, 이것은 문제의 본질과 관계없이 통계기법상의 사소한 차이라고 생각한다. 이영훈 교수가 인용한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http://ecos.bok.or.kr)에는 농림수산품 항목으로 나와 있는데, 아마 이영훈 교수가 이 항목을 농산식품으로 변경하면서 통계에 다소 변경을 가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 문제는 지엽적인 문제에 불과하므로, 이 점에 관하여는 논의하지 않기로 한다.

그런데 위 그래프를 보면, 누가 보더라도 공업이 농업보다 차별을 받은 것 같은 인상을 받을 수 있다. 검정 곡선인 공산품 가격지수는 계속 하강하는 반면, 회색 곡선인 농산식품 가격지수는 계속 상승하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농산품 가격지수가 공산품 가격지수에 비해 상대적으로 더 빨리 상승했다는 이영훈 교수의 주장은 객관적으로 진실이다. 필자가 1965~2005년까지의 상대 가격지수를 확인해 본 결과 이영훈 교수의 주장은 사실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위 그래프 자체다. 그래프 밑에 보면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http://ecos.bok.or.kr)을 출처로 제시해 놓았다. 그러나 필자가 확인해 본 결과, 한국은행 홈페이지에는 그러한 그래프가 없었다. 한국은행 홈페이지에 제시된 원래의 그래프는 아래 그림과 같다. 이영훈 교수가 사실을 왜곡한 것은 아니지만, 자신의 주장을 강조하기 위하여 그래프를 바꾸어 놓았던 것이다.

▲ 한국은행 경제시스템에서 확인되는 그래프. 이영훈 교수는 이 그래프를 근거로 자신이 새로운 그래프를 작성했다.
ⓒ 한국은행
흔히 학술 논문에서 다른 책의 그래프를 인용할 때에는 그 출처를 밝힌다. 그리고 그 다른 책의 그래프를 자신이 개조했을 때에는 그런 사실도 함께 밝혀야 한다. 그런데 이영훈 교수의 글에서는 그 점이 밝혀지지 않았다. 이 점에서 '연구 윤리'의 문제를 제기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영훈 교수의 그래프가 독자들에게 착오를 줄 수 있다는 점은 한국은행 그래프와 비교함으로써 파악할 수 있다. 한국은행이 제시한 위 그래프에서는, 농림수산물과 공산품 두 분야의 가격지수가 모두 다 가파른 상승을 보이고 있음을 한 눈에 파악할 수 있다. 이영훈 교수의 말대로 농림수산물이 공산품보다 상대적으로 더 많이 상승한 것은 사실이지만, 한국은행 그래프에서 육안으로 그 점을 확인하기는 쉽지 않다.

그리고 한국은행의 그래프에서는 '공업이 농업보다 더 많은 차별을 받았다'라는 느낌이 생기지 않는다. 그런데 이 표를 이영훈 교수의 방식대로 바꾸어 놓으면, 공업이 농업보다 더 많은 차별을 받았다는 인상을 갖게 된다.

그래서 독자들은 이영훈 교수의 주장이 한국은행 홈페이지의 그래프에 근거한 것 같은 인상을 받을 수 있다. 한국은행 자료를 그대로 인용하지 않고 자신이 임의로 표를 바꾸었다는 점을 밝히지 않았기 때문에 생기는 결과인 것이다.

이 대목에서 어떤 사람들은 “그 그래프가 이영훈 교수의 작품이라고 하더라도, 어쨌든 그 그래프는 사실이고 공산품 가격지수보다 농산품 가격지수가 더 많이 상승한 것은 사실이 아닌가?”라고 반문할지 모른다.

이영훈 교수의 주장대로 지난 40여 년간 농산품 가격지수가 공산품 가격지수에 비해 상대적으로 더 많이 상승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 점을 근거로 '농업이 공업보다 더 많이 특혜를 받았다'는 결론을 도출할 수는 없다.

분명히 지난 40여 년간 공산품 가격지수는 농산품 가격지수에 비해 상대적으로 더 많이 하강하였다. 이는 공산품이 그만큼 가격인하에 성공했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더 나아가 이것은 그만큼 공업분야의 생산성이 향상되었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또한 이것은 정부의 지원이 공업 생산성 향상에 집중되었음을 보여 주는 증거이기도 하다.

'가격의 상대적 인하'라는 경제적 사실로부터 추론되는 직접적 사실은 '생산성의 상대적 향상'이다. 그런데 경제학자인 이영훈 교수는 '가격의 상대적 인하'라는 경제적 사실로부터 '생산성의 상대적 향상'이라는 경제적 명제를 추론한 게 아니라, '공업분야에 대한 차별'이라는 정치적 명제를 추론하였다. 그러므로 '가격의 상대적 인하'로부터 엉뚱한 명제를 도출한 것이다. 가격 상대적 인하가 생산자의 소득 감소로 이어질 수는 있겠지만, 그것이 '공업분야에 대한 차별'을 보여 주는 것이라는 결론을 도출하려면 추가적인 증거 제시가 있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지난 40여 년간 가격의 상대적 인하에 성공하지 못한 농업 분야는 그만큼 생산성의 상대적 향상에 실패한 것이고, 농업 분야가 생산성의 상대적 향상에 실패한 것은 정부의 지원 부족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영훈 교수가 제시한 근거는 오히려 공업이 특혜를 받았음을 보여 주는 증거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이영훈 교수의 농촌 특혜론은 다음과 같은 3가지 문제점을 안고 있다. 첫째, 한국은행 통계자료를 있는 그대로 제시하지 않고 자신이 임의로 개조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점을 밝히지 않았다(연구 윤리의 문제). 둘째, 통계기법을 통해, 공업이 농업보다 차별을 받은 것 같은 인상을 주었다(그래프 처리의 문제). 셋째, 가격의 상대적 인하라는 사실은 생산성의 상대적 향상을 나타내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거기서 공업 차별이라는 엉뚱한 결론을 도출하였다(통계 분석의 문제).

이러한 점들을 볼 때에, 뉴라이트의 일부 경제학자들이 제시하는 논리가 상당 부분 학문적 타당성을 결여하고 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뉴라이트 경제학자들이 과거 군부정권 시절의 경제정책을 합리화하고자 한다면, 연구 윤리-통계 처리-통계 해석상의 문제점부터 시정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그리고 도농 차별에 관한 문제는 굳이 학문적으로 연구하지 않더라도, 고속버스를 타고 전국을 여행하면 충분히 절감할 수 있을 것이다. 통계와 실증을 지나치게 신뢰하면, 바로 그 통계와 실증 때문에 학문적 착오를 범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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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일제청산연구소 연구위원,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패권쟁탈의 한국사,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조선노비들,왕의여자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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