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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서주공 철거민들의 가재도구가 담긴 트럭. 철거민들은 이곳에서 밥을 짓고, 설거지를 한다.
ⓒ 유지연
지난 12월 16일. 수원 화서 주공아파트에서 강제철거를 당한 뒤 노숙 농성을 하고 있는 철거민들을 만나기 위해 수원시청으로 향했다. 시청은 대형 할인매장과 백화점 그리고 아파트와 오피스텔 등 크고 화려한 건물로 둘러싸여 있다. 시청 정문 바로 오른쪽 스티로폼을 깔고 앉은 철거민들의 모습이 보였다. 이들 옆에는 취사도구를 가득 실은 트럭도 있었다.

취재를 나오기 전 임경숙 전국철거민연합회 총무를 통해 철거민 인터뷰를 요청했다. 그러나 철거민들은 인사만 건네고 질문에는 잘 입을 열지 않았다. 현장에 함께 온 임 총무는 "그동안 주요 신문사에서 취재를 했다, 그러나 철거민들이 돈을 요구하기 위해 노숙 투쟁을 벌이고 있다고만 보도됐다"며 "철거민들은 기자들을 반갑게 여기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찻길 바로 옆에서 바람을 피할 천막도 없이 맨몸으로 앉아 있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어색한 시간이 흐르고 추위가 더욱 깊어갈 무렵 화서주공철거민대책위원장(철대위) 유경렬씨가 입을 열었다.

"생각을 해봐요. 갈 곳이 있으면 진작 갔죠. 이 추위에 길 위에서 노숙을 하고 있는데도 시청은 우리가 돈 몇 푼 더 받기 위해 애들까지 동원한 데모꾼들이라고 하잖아요."

"애들까지 동원한 데모꾼이라고?"

유씨는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동안 이들에게는 어떤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장태봉 철대위 규찰부장이 철거 당일의 기억을 풀어냈다.

"그때가 아침 7시쯤이었을 거야. 보다시피 내가 몸이 아파서 자고 있었지. 그런데 자꾸 유리창 깨지는 소리가 들리는 거야. 처음에는 학생들인 줄 알았어. 사람들이 이사를 가서 빈집이 많은데 가끔 학생들이 그런데 들어가서 유리창을 깨곤 했었거든.

근데 이게 소리가 끊이질 않는 거야. 뭔가 심상찮아 보여서 밖으로 나갔는데 난 전쟁이 난 줄 알았어. 제복을 입은 사람들이 줄을 착착 섰는데 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은 처음 봤어. 그 사람들이 유리창을 부수고 집안에 있던 사람들을 물건처럼 발로 밟고 던지면서 끌어냈는데…."

▲ 장태봉 수원 화서 주공아파트철거대책위원회 규찰부장.
ⓒ 유지연
담담하게 이야기를 하던 장씨는 그날의 폭력 사태에 관한 대목에서는 말을 잇지 못했다. 철거 용역업체 직원 500여 명과 경찰병력 4개 중대, 그리고 소방차까지 동원된 강제 철거였다.

집에서 쫓겨난 장씨를 비롯해 화서 주공아파트 세입자들은 얼마동안 목욕탕에서 생활을 했다. 목욕탕 생활이 어렵게 됐을 때 철거민들은 가수용 단지와 국민임대아파트를 마련해 줄 것을 요구하며 수원 시청 앞에서 노숙 농성을 시작했다.

2000여 세대가 거주했던 화서 주공 아파트 주민 95%는 세입자였다. 그리고 세입자들은 대부분 노인들과 비싼 집 값을 낼 형편이 안 되는 도시 빈민들이었다. 강제 철거 전, 세입자들은 이주 대책을 마련해달라고 시청에 요청했다. 그러나 세입자를 보호할 법적 근거가 없다는 답이 돌아왔다.

간경화를 앓고 있는 장씨는 노숙 투쟁 이후 건강이 더 악화 됐다. 빨리 입원치료를 받아야하지만 싸움을 멈출 수 없다며 300일 넘게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미진 철대위 홍보부장은 "95%의 세입자가 희생을 당하는 건 옳지 않다, 도시및주거환경정비법도 중요하지만 내 집에서 살 수 있는 기본권이 명시된 헌법보다 중요할 순 없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이씨는 몇 개월 전까지 아이들을 키우고 살림을 하던 평범한 주부였다. '투사'로 변신한 이씨가 단호하게 말했다.

"우리 같은 사람들은 먹고살기 바빠서 기본권 같은 걸 모르고 살았다. 나도 강제철거 당하기 전까지 몰랐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우리는 주거권을 주장할 수 있고, 가수용 단지와 국민임대아파트 같은 대책을 요구할 수 있다는 것을."

곁에서 눈을 감고 듣던 안석훈씨는 "아이들 학비 걱정 없이 공부시킬 수 있고, 집세 걱정 없이 내 집에서 살 수 있는 날까지 투쟁을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안씨는 최근 공무원들의 업무를 방해했다는 혐의로 1개월 동안 감옥 생활을 했다.

▲ 철거민들의 비닐 천막. 한 겨울의 바람을 막기는 힘들지만 이마저도 저녁에만 설치가 가능하다.
ⓒ 유지연
"경찰 아저씨들은 나쁜 사람들"

강제철거의 상처는 아이들에게 치명적이었다. 수원 시청 앞에서 노숙 농성을 벌이고 있는 8가구 중 아이들은 총 4명. 학교를 들어가지 않은 5살 여자아이와 6살 남자아이, 그리고 중학교 1학년이 된 두 명의 아이들이다.

한창 예민한 시기를 겪고 있는 사춘기 여학생 혜영(가명)이는 낡고 허름한 비닐천막 안에 전기장판을 깔고 8명이 누워 잠자는 상황을 하고 있다. 숙제는 수원 시청 앞 가로등 아래 마련된 자리에서 한다.

중학교 1학년 태준(가명)이와 6살 태식(가명)이는 부모와 이웃 어른들이 용역업체 직원들과 경찰에게 구타당하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다. 태식이는 "경찰 아저씨들은 나쁜 사람들"이라고 말한다. 강제철거의 충격으로 병원을 다니고 있으며 아직도 밤이면 경기를 일으키고 오줌을 싼다.

태권도를 하고 있는 태준이는 지나가는 사람들의 무심한 눈길에도 흥분하며 적의를 드러냈다. 누구라도 유심히 자신들을 보고 있으면 용역업체 직원으로 여기고 방어태세를 갖춘다. 아이들의 입에서는 "죽여버린다"는 말이 자주 튀어나왔다.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몇몇 철거민들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스티로폼 위에 국과 반찬 몇 가지가 올려졌다. 순식간에 밥상이 차려졌다.

"여기서 먹으려니까 어색하지? 그래도 좀 들어봐."

한 아주머니가 웃으며 말했다. 사람들이 지나 다니는 길에서 밥을 먹으려니 어색했다. 그러나 찌개, 김치와 함께 몇 숟가락 먹다보니 어색함은 금방 사라졌다.

▲ 일주일에 한 번 하는 철거민들의 빨래. 인도에 널려 있는 빨래는 먼지가 가득하다.
ⓒ 유지연
저녁 6시가 넘어서야 바람을 피할 비닐 천막이 설치됐다. 얇은 비닐 몇 겹과 스티로폼 위의 담요와 전기장판이 한겨울 철거민의 잠자리다. 불편한 몸으로 천막 치는 일을 돕던 장씨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농성이 길어지면서 다투는 가족이 부쩍 늘었어. 벌써 헤어진 가족도 있고…. 가족과 함께 행복하게 살겠다고 투쟁하는 건데, 가정이 깨지고 난 뒤 대책이 나오면 뭐하겠어. 제발 가정의 평화가 깨지기 전에 해결됐으면 하는 바람이야.”

장씨의 바람은 이뤄질 수 있을까. 16일 시청의 바람은 더욱 차갑게 느껴졌다.

덧붙이는 글 | 성공회대학교 웹진 INK 7.0에 유사한 기사를 올렸습니다.
그러나 추가 취재하여 내용을 변경, 추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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