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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류근일 전 <조선일보> 주필
ⓒ 오마이뉴스 남소연
보수진영을 향한 60대 논객의 분석은 날카롭고, 비판은 따끔했다.

지난 19일 오후 분당의 한 카페에서 만난 류근일(69) 전 <조선일보> 주필은 "보수진영에서는 누가 <실미도>나 <웰컴 투 동막골>, <태극기 휘날리며> 같은 영화를 만드냐"며 "우파진영의 음악밴드에 신해철 같은 가수가 없다는 게 상당한 약점"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젊은 세대에게 감동을 줄 만한 문화주의적 접근, 감성정치의 노하우에서 보수진영이 떨어진다"며 "보수진영도 젊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문화상품을 개발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류 전 주필은 보수 인터넷매체의 약진에 높은 만족감을 나타냈다. 그는 "1~2년 전까지만 해도 담론싸움에서 보수진영이 추풍낙엽이었다"며 "하지만 2년 전부터 보수매체들뿐만 아니라 보수논객들도 많이 생기고 그들의 논지도 날카롭고 공격적"이라고 분석했다.

"보수 신문·논객들 약진 두드러져"

@BRI@그는 "종이신문이 내년 대선에 영향을 미칠 수 있겠지만 이전보다 제한적일 것"이라며 "아젠다 세팅을 하는 데는 종이신문의 헤드라인이 중요하지만 대중사회를 순식간에 움직이는 데는 방송(과 인터넷)을 못따라간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그는 "전지전능하다는 측면에서 보면 종이신문의 영향력이 약화됐지만 논평을 기대하거나 심층분석기사를 읽고 싶다면 종이신문을 봐야 한다"며 "방송이나 인터넷의 약진에도 불구하고 종이신문의 존재이유는 살아 있다"고 종이신문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또한 자유주의연대 상임고문인 류 전 주필은 뉴라이트그룹의 현실정치 참여와 관련 "지금 단계에서 뉴라이트가 특정후보와 동일시하려는 흔적이 있다면 거기에 대해선 반대"라며 "개인적으로 선호를 나타낼 수 있지만 그것을 표출하는 것은 삼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한나라당의 전위부대가 되겠다는 것과, 반좌파의 종착역에 도달하기 위해 누구를 찍느냐는 것은 다르다"고 강조했다. 이어 "뉴라이트운동을 정계진출의 발판으로 삼으려는 사심이 들어 있으면 그 운동은 실패한다"며 "(정치적) 야망이 앞서면 그 운동은 실패한다"고 경고했다.

이어 그는 "대선후보가 확정될 때까지는 마음 속에서도 개입을 하지 않으려고 한다"며 "(뉴라이트그룹도) 경선과정에 개입해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정치운동과 사회운동은 각자 분화되어야 한다"며 "사회운동을 할 사람은 순수성을 지켜 나가야 하고, 정치에 접속하겠다는 사람은 그 사회운동을 떠나서 본격적인 정치인으로 변신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끝으로 그는 4·19혁명 이후 박정희와 장면의 행로를 대비시키면서 "역사에서 이긴 사람은 목숨을 건 사람"이라고 강조한 뒤, "지금 한나라당은 목숨을 건 것 같지 않다, 정권을 잡고 싶다면 국민들이 감동할 수 있는 비장한 결의를 보여줘야 한다"고 충고했다.

이와 함께 그는 "좌파진영도 하루빨리 NL(민족해방파)적 전체주의에 벗어나 민주사회에 적합한 진보파로 거듭 태어나야 한다"며 "뉴레프트(new left)가 용감하게 (신좌파적 노선을) 표방하고 나서길 바란다"고 주문했다.

다음은 류근일 전 주필과의 인터뷰 전문이다.

"아젠다 세팅은 종이신문, 대중 사로잡는 건 방송·인터넷"

ⓒ 오마이뉴스 남소연
- 지난 2002년 대선 결과를 놓고 일각에서는 '뉴미디어가 올드미디어를 이겼다'고 평가했는데 이런 평가를 어떻게 생각하나.
"거시적으로 우리 사회의 변화 욕구가 그런 식으로 표출된 것 같다. 그럼 어떤 변화냐? 노무현 대통령 말대로, 주류세력을 교체하려는 욕구가 있었다. 그런데 보수세력은 그 교체 욕구를 충분히 수용하지 못했다. 그 불만이 반대쪽으로 쏠렸다."

- 인터넷매체가 지난 대선 결과에 미친 영향은 어느 정도라고 생각하나.
"그 이전까지만 해도 오피니언 대표들은 활자언론을 보고 세상을 읽으려고 했다. 그런데 (인터넷언론 등) 쌍방향 매체들이 많이 나오면서 집중된 관심이 흩어졌다. 변화의 욕구가 홍수처럼 터졌다. 기존 언론이 장악하고 있던 것을 놓친 것이다. 이것은 좋고 나쁘고의 문제가 아니라 시대적 조류다. (이제) 어떤 언론도 (여론을) 독점할 수 없는 시대가 온 것이다."

- 보수진영도 2002년 대선 패배 이후 다양한 정치웹진·인터넷언론 등을 선보이고 있다. 즉 보수진영도 '디지털족'으로 변신중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2002년 대선 패배를 분석하는 과정에서 보수진영이 사이버월드(cyber world)에서 완전히 밀렸다고 판단하고 (뒤늦게) 분발한 것이다. 사이버월드란 중립적인데 이걸 좌파에게 점령 당한 이유가 뭐냐, 우리도 배우자 하면서 뒤늦게 뛰어든 것이다. (그래서 이제) 사이버월드에서 우파가 약진하고 있다. 댓글만 봐도 8 대 2 정도로 밀렸는데 지금은 5 대 5로 올라갔다. 사이버월드는 중립의 세계이기 때문에 누구나 하면 된다. 보수세력이 대선 패배의 이유를 성찰한 결과라고 본다."

- 내년 대선에서 인터넷매체의 위력은 어느 정도라고 예상하나.
"정확하게 짚기 어렵지만 뉴미디어의 긍정적인 측면을 발견하고 이걸 활용해야겠다고 느끼는 것 못지 않게 역기능이나 폐단까지 알게 됐다. 인터넷에 들어가 보니 저질이더라, 이래서 되겠느냐는 반성이 일어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이버월드에서 충돌이 일어날 경우 저질적인 풍토가 완전히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정확하지 않은 논쟁에 휘말려서 정확하지 않은 판단을 할 우려가 있다. (인터넷매체를 통해) 증명될 수 없는 루머급 얘기들이 터지면 문제다. 기존 언론에서는 데스크가 있어서 그걸 잡아주면 되지만 인터넷언론에 데스크 기능이 있는지 의문이다. 대중적 레벨에서 자극적인 기사일 경우 영향을 많이 받을 것이다. 기사요건을 갖추었는지는 보지 않는다. 그런 폐단이 있을 것이다."

- 과거에 비해 종이신문의 영향력이 약해졌다고 판단하나.
"(종이신문이) 전지전능하다는 측면에서 보면 약화됐다. 하지만 '논평'을 기대하거나, 심층분석기사를 읽어 싶다면 종이신문을 봐야 한다. 그런 필요는 상존한다. 근래 어떤 신문의 부수가 올라가고 있다고 하더라. 방송이나 인터넷의 약진에도 불구하고 종이신문의 존재이유는 살아 있다.

종이신문이 영향을 미칠 수 있지만 이전보다 제한적이다. 아젠다 세팅을 하는 데는 종이신문의 헤드라인이 중요하다. 그러나 대중사회를 순식간에 움직이는 것은 (종이신문이) 방송을 못따라간다. 턱도 없다. 아젠다 세팅은 종이신문이 하지만, 대중을 사로잡는 데는 방송이 강하다."

- 요즘 '조문동'(조선·문화·동아)이라는 조어가 생길 정도로 '조중동'에 균열이 생긴 것 같다.
"<중앙>의 필진들도 개인차가 있다. 외부에서는 <조선>은 이렇다, <동아>는 이렇다, <중앙>은 이렇다 하지만 내부에 들어가면 사람마다 논조가 다르다. 예컨대 M씨가 상당히 보수적이고, K씨는 그와 좀 차이가 있다. 이런 신문이다, 저런 신문이다 규정하고 싶지 않다. 개인 필자로서 존중하고 싶다.

균열이 아니라 다양화나 분화라고 보면 나쁠 게 없다. 우리 사회가 다양해진다는 얘기인데 얼마나 좋나. 특정 논조에 찬성하고 반대하고는 별개의 문제다."

"변덕스러운 유권자, '깜짝쇼'에 넘어가지 말란 법 없어"

- 현재 보수진영의 인티넷매체는 어떻게 평가하나.
"1~2년 전까지만 해도 담론 싸움에서 보수진영이 추풍낙엽이었다. 보수는 죽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런데 2년 전 가을부터 내가 놀라기 시작했다. 보수매체들이 많이 생길 뿐만 아니라 보수논객들도 많이 생기고 논지도 날카롭다. 방어적이지 않고 공격적으로 나온다. 학습효과가 아닌가 싶다. 노 정권을 몇 년 겪어보니까 기대에 어긋났다. 그래서 거기에 대한 대항 담론, 자유주의적 보수 논리가 탄력을 받기 시작했다."

- 어떤 변수가 내년 대선 결과를 좌우할 것으로 보나.
"한나라당이 분열할 거냐 안할 거냐, 좌파진영의 노선이 좀더 우경화 혹은 중도화할 거냐 안할 거냐, 대중들이 지난 4~5년간의 좌파실험에 대해 어떤 결론을 내리느냐, 학습효과가 얼마나 발휘될 거냐, 대중들이 이미지정치에 얼마나 휩쓸릴 거냐 등이 대선결과를 좌우할 것이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한국 선거에서는 인물이 (대선결과를) 결정한다. 국민의 보편성을 정확하게 표출하는 후보가 나오느냐, 편파적인 논리를 가진 후보가 나오느냐도 크게 작용할 것이다. 지난 번 대선에서는 김대업이 선거를 좌우했다. 이런 김대업적 현상에 대중들이 넘어갈 것이냐, 안넘어갈 것이냐도 변수다. 남북정상회담이 열리면 이것도 상당한 변수가 될 것이다.

하지만 그리 간단하지 않다. 대중은 변덕스럽다. 대중의 항심(恒心)을 신뢰하지 않는다. 상당수의 젊은이들이 노무현 후보를 찍었다. 하지만 불과 몇 개월 만에 귀향해 형님 부모님 앞에서 잘못 찍었다고 고백했다는 기사가 신문에 났더라. 대중화된 유권자의 변덕스러움 때문에 깜짝 쇼에 넘어가지 말란 보장이 없다."

- 정권교체의 측면에서 볼 때, 한나라당 대선주자 중에서 누가 적합하다고 생각하나.
"(대선후보가) 확정될 때까지는 마음 속에서도 개입을 하지 않으려고 한다. 경선과정에 개입하지 않는다."

- 그렇다면 어떤 인물이 나와야 대선에서 승리할 수 있다고 보나.
"일단 아무리 머리가 좋아도 품격이 높아야 한다. 또 포용성이 있어야 한다. 갈등의 시대를 대표하는 인물보다 통합의 시대를 열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또 실용적이고 합리적이며, 과거 회귀적인 인물이 아니라 미래지향적인 인물이어야 한다. 특히 세계적 안목, 국제화된 안목을 가져야 한다. 민족주의보다는 애국적 세계주의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 지금 대선주자로 거론되고 있는 사람 중에 그런 인물이 있나.
"지금은 다른 사람이 나오기는 늦었다. 정치권에 맡겨야지. 내가 바란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현실적으로 대통령 후보나 후보감은 국민의 수준을 넘지 못한다. 그래서 너무 이상적으로 바라지 않으려고 한다. 현실적으로 보면 100% 맞는 사람을 데려올 수도 없고, 나온 사람 중에서 비교적 누가 낫겠느냐."

- 뉴라이트쪽은 이명박 전 서울시장을 선호하는 것 같다.
"지금 단계에서 뉴라이트가 특정후보와 동일시하려는(identify) 흔적이 있다면 거기에 대해서는 반대다. 경선과정에 개입해서는 안된다. 개인적으로 선호할 수 있지만, 그것을 표출하는 것은 삼가야 한다."

- 왜 그런가.
"당내 경선과 같은 협의의 정치에 끼여드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뉴라이트가 우리의 미래 비전을 제시하는 것은 좋은데, 정치권력투쟁에 일일이 개입하는 것은 옳지 않다."

"대중에게 감동 주는 노하우 보수진영이 떨어진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 한나라당이 분열할 가능성은 있다고 보는가.
"이제까지 떨어져 나온 사람의 정치적 말로가 안좋았기 때문에 학습효과가 있을 것이다. 두 차례에 걸쳐 입증됐다. 감히 그렇게 하지 못할 것이란 기대가 있다. 정신 차려야 한다. 물론 망하려고 작심하면 내가 무슨 수로 막겠나?"

- 한나라당에 희망은 있다고 보는가.
"한나라당보다 더 나은 대안을 생각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늦었다. 신당 창당? 방법이 없다. 그런 현실을 인정한다."

- 20∼40대가 전체 유권자의 60%가 넘는데 보수진영이 이들을 잡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나.
"상당수 20∼40대가 노무현 정부 지지를 철회했다. 하지만 그것이 고스란히 반대쪽으로 완전히 이동했느냐 하면 이건 아니다. 중간 어딘가에 걸쳐 있다. 이들을 누가 더 끌어안느냐가 대선을 결정하는 요인이 된다. 박빙의 승부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젊은 세대에게 감동을 줄 만한 문화주의적 접근, 감성정치의 노하우에서 보수진영이 떨어진다. 예술, 노래, 율동, 드라마, 영화 등의 수단을 동원해야 감동을 줄 수 있는데 그 노하우에서 보수진영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당장 누가 <실미도>나 <웰 컴 투 동막골>, <태극기 휘날리며> 등의 영화를 만드나? 우파 진영의 음악밴드에 신해철이 있느냐? 그게 상당히 약점이다. 문화인들은 상당히 민족주의자들이다. 조금씩 반미 성향이 있다. 이런 점에서 보수진영의 노하우가 뒤쳐진다."

- 아무래도 세대의 특성상 20∼40대는 진보성향의 후보를 지지할 것이란 분석이 있는데.
"내년 선거는 우파와 중도의 담론 싸움이 될 것이다. 진보진영은 진보를 잠시 유보하고 평화세력이나 양심세력 등 다른 말을 쓸 것이다. 보수 진영도 젊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문화상품을 개발해야 한다.

하지만 일부 보수 리더들이 젊은 층에 코드를 맞추려고 하는데 자기의 지적, 도덕적 우월성을 가지고 (지지를) 끌어올 생각을 해야지 그 사람들에게 아부하거나 아첨하려는 것은 옳지 않다. 리더십을 발휘해서 지지를 끌어와야 한다는 것이다. 교수가 학생 눈치 보고, 애비가 자식 눈치 보면 안된다."

- 요즘 열린우리당 등을 비롯해 중도를 표방하는 정치세력이 많아지고 있는데.
"교과서에서 중도란 남을 배척하지 않는다, 극단에 치우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공자도 중용을 택하라고 했다. 자유민주헌법을 존중하는 정치세력은 광의의 중도다. 파시시트와 볼세비키를 뺀 거니까. 민주적 보수주의, 자유주의, 민주사회주의, 사민주의 등은 광의의 중도다.

그러나 중도를 할 수 있는 경우가 있고, 할 수 없는 경우가 있다. 할 수 있는 것은 분배의 문제다. 빵 5개 중 2개씩 먹고 나머지 1개는 남을 주자고 하는 것이 바람직한 중도다. 하지만 할 수 없는 경우가 있다. 김정일과 나의 관계에서 중도는 무얼 말하나. 그런 중도는 없다.

태극기냐 대추리에 꽂힌 한반도기냐? 태극기를 반 자르는 중도란 있을 수 없다. 자유민주주의를 존중하는 정파 사이에서 절충이나 타협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전체주의냐 중도주의냐에서 중도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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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전남 강진 출생. 조대부고-고려대 국문과. 월간 <사회평론 길>과 <말>거쳐 현재 <오마이뉴스> 기자. 한국인터넷기자상과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2회) 수상. 저서 : <검사와 스폰서><시민을 고소하는 나라><한 조각의 진실><표창원, 보수의 품격><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국세청은 정의로운가><나의 MB 재산 답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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