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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I@인터넷이 등장하면서 학교 소식이나 사회의 떠들썩한 이야기는 인터넷에서 시작되고 그곳에서 사그라졌다.

학교에 나붙어 자유롭게 목소리를 내던 대자보라는 존재를 기억하는 이는 얼마나 될까?

그런 관심에서 취재를 시작했다.

대자보의 실태를 알아보기 위해 지난 7일부터 17일까지 만 18세~만 34세까지 현재 대학을 다니거나 대학에 다닌 경험이 있는 사람 100명에게 설문을 실시했다.

68%, "대자보, 관심 있게 보지 않는다"

ⓒ 이세라
ⓒ 이세라











설문결과를 보면, 대학생에게 대자보가 소통의 매개체이기는커녕 대자보에 대한 인식 자체가 모호하다는 걸 알 수 있다. 필자는 설문에 '대자보가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고 말한 응답자에게 대자보의 유형을 간단히 설명한 후 '학교에서 대자보를 관심 있게 보시는 편입니까'하고 물었다. '아니오'라는 답이 전체의 68%였다. 이들 중 대부분은 '대자보가 관심사가 아니어서' 주목하지 않는다고 했다.

ⓒ 이세라
ⓒ 이세라












대자보를 관심 있게 보는 편이라고 응답한 32%의 응답자에게 대자보를 통해 주로 얻는 것과 대자보의 주요한 역할을 물었다. 응답에서 대자보를 통해 얻는 것으로는 학내 소식이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했지만, 주요한 역할이라고 생각하는 것에 대해서는 '정보전달', '여론형성', '집단 또는 개인 의견 피력' 순으로 응답했다.

설문만으로 부족하다고 생각해 현장취재에 나섰다. 서울과 경인지역 7개 대학(서울대, 고려대, 연세대, 서강대, 홍익대, 이화여대, 경인교대)을 찾아가 대자보 실태를 직접 살펴봤다.

대자보, 무관심 속에 방치되다

▲ 서울대
ⓒ 차해영
▲ 고려대
ⓒ 이세라


▲ 홍익대
ⓒ 구현정
방문한 대학들 가운데 뚜렷한 목소리를 내는 대자보가 부착된 곳도 간간이 있었으나, 대개 무관심 속에서 빛을 발하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대자보는 대부분의 대학에서 더 이상 소통의 기능을 하는 미디어가 아니었다. 학생들의 무관심 속에서 그 기능을 잃어가고 있었다.

대자보, 목소리가 필요한 곳에 존재한다

필자는 '혹시 논란거리가 없어서 조용한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 '통폐합' 문제로 떠들썩한 경인교대를 방문했다. 경인교대에서는 자신들에게 닥친 통폐합 문제 등과 관련, 다양한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 경인교대에 즐비한 현수막
ⓒ 이세라
▲ 경인교대 건물을 덮은 투쟁 현수막
ⓒ 이세라

우선 교문부터 펼쳐진 색색의 현수막 행렬이 눈길을 끌었다. 어디부터 둘러봐야 할지 막막했던 필자에게 길을 안내하는 듯했다. 건물 위부터 내려오는 투쟁 문구의 현수막도 눈에 띄었다.

▲ 경인교대의 대자보거리
ⓒ 이세라
▲ 경인교대 대자보거리의 게시판
ⓒ 이세라

필자는 경인교대의 '대자보거리'에 놀랐다. 서울대에도 그렇게 불리는 곳이 있었지만, 그 기능이 미비했다. 그러나 경인교대의 대자보 거리는 '의견의 장' 노릇을 톡톡히 해내고 있었다.

위에 보이는 사진 크기의 두 배 정도 되는 게시판이 경인교대의 대자보거리에 배치돼 있다. 각 과별로 대자보 공간이 따로 있었으며 예비역 공간까지 두는 배려가 돋보이기도 했다. 공동의 공간에선 주장하는 이의 의견이 간결하고 보기 쉽게 담긴, 투쟁적인 연재 카툰이 이목을 끌었다. 대자보 형식 중 하나인 카툰 형식의 대자보는 내용을 핵심적으로 정리해 구성되기 때문에 전달 효과가 크다.

경인교대생에게 대자보가 학교에서 활성화돼 있는지 물었다. 그러자 한 학생은 "대자보거리는 강의동과 학생회관 사이에 있어 유동인구가 가장 많다"고 말하고 "거의 모든 정보를 그곳에서 얻는다"고 말했다.

통폐합 사건 전에도 대자보 거리에 활발하게 대자보가 붙었는지 물었다. 그러자 그 학생은 "그전에는 물론 지금처럼 떠들썩하진 않았지만 과별로 정보를 공유할 내용이 있을 때 그곳에 대자보를 붙여 의견을 나누었다"고 답했다.

▲ 성공회대 대자보
ⓒ 이세라
필자가 다니는 성공회대에서 대자보는 주목받는 의사소통 매개체는 아니다. 그렇지만 작은 캠퍼스의 특성에 맞게 학교 안의 소소한 소식을 전할 때도 대자보로 시선을 끌려는 노력이 이뤄진다.

예를 들면, 동아리연합회에서 학생과 약속을 지키기 위해 사비를 들여 동아리연합회실에 충전기를 마련해 놓았다는 소식을 대자보로 전한다. 동아리연합회가 출범 당시 했던 약속이 지켜지길 바랐던 학생이 보면 반가워할 소식이다. 이것은 분명 의미 있는 소통이다.

무전기 노릇을 하는 대자보

인터넷이 없었던 과거 1970~80년대처럼 대자보가 활성화 될 수는 없는 것 아니냐는 질문도 나올 법 하다. 하지만 대학생에게 대자보는 시대를 뛰어 넘어 대학내 의견을 나누는 특수한 소통수단이다.

대자보는 일종의 무전기 노릇을 한다. 일정 거리 내에서 소통만 가능한 탓에 조금 불편한 통신수단으로 생각될 수 있다. 하지만 무전의 매력은, 한정되기는 하지만 밀접한 소통이 가능한 공간을 만들어낸다는 데 있다.

또 무전기는 일방적 외침이 아니라, 답하는 무전이 와야 비로소 소통이 완성되는 쌍방향성을 전제한다. 대자보가 일방적 소리침이라면, 우리가 그것에 주목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대자보에 많은 사람들이 동조하고 시선이 모인다면 대자보는 대학의 소통수단으로서 자리를 이어나갈 수 있다.

대학 안의 소통기구인 대자보가 무전기 역할을 통해 캠퍼스에서 작은 울림을 내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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