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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원시청 정문 앞 인도에서 매일 오전 11시에 집회를 열고 있는 수원화서주공 철거민들
ⓒ 이혜진
수원시청(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정문 앞 인도에서는 하루도 빠짐없이 집회가 열린다. 이곳에서 320여 일째 노숙투쟁을 하고 있는 사람들은 수원화서주공 철거민들이다.

이들은 화서지역 재건축과정에서 강제철거를 당한 세입자 8세대다. 이들은 올해 1월 23일 강제철거된 후부터 수원시청 정문 앞에서 24시간 상주하면서 시청 화장실에서 세면과 용변, 빨래를 해결하고 밤에는 비닐천막을 치고 자는 등 모든 생활을 수원시청 인도 위에서 해결하고 있다.

이들이 이곳에서 320여 일째 노숙투쟁을 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필자는 이를 알아보기 위해 지난 한 달여 동안 철거민들과 시청 관계자들을 만났다.

6년의 역사, 화서주공2단지 아파트 재건축사업

@BRI@먼저 6년 전 재건축 과정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 화성동 일대의 화서주공 2단지 아파트 재건축 사업은 2000년 7월 각 동 소유권자들을 대상으로 설명회를 개최한 것으로 시작됐다. 그 후 재건축 조합설립추진위원회가 구성됐고 그해 9월 경기도안전진단공사에 안전진단을 신청, 재건축 필요 판정(E급 판정)을 받았다.

그 후 조합설립추진위원회는 시공사를 공개모집했다. 재건축 절차에 따르면, 사업시행인가를 받은 후 시공사를 선정하게 돼 있지만 조합설립추진위원회는 사업승인을 받기도 전에 벽산건설을 최종 시공사로 선정했다.

2001년 12월 21일 최종 조합설립인가를 받고, 1년 후 사업계획승인을 신청했으나 학교부지 확보문제로 사업에 어려움을 겪었다. 그리고 다시 2년 후, 수원시가 조합의 사업신청을 받아 재건축사업을 승인해주면서, 주춤하던 재건축사업이 다시 활기를 찾았다.

재건축 과정 중 가장 많이 문제가 된 부분은 관리처분계획인가 단계. 화서주공2단지 세입자와 시공사 간 갈등이 제기된 것도 관리처분계획인가가 추진되던 때부터다.

관리처분계획에서는 세입자들을 위한 이주대책이 마련돼야 한다. 이 단계에서 화서주공조합과 시공사측은 이주계획과 일정을 협의하고 세입자들에게 이주비를 지급해야 했다. 하지만 세입자들은 조합과 시공사가 세입자의 이주대책을 마련하지 않았기에 이사를 할 수 없다고 맞섰다고 주장한다.

올해 1월 23일, 세입자들이 모두 이주하지 않은 상태에서 시공사는 화서주공 2단지 아파트 강제철거를 감행했다. 그리고 6월에 착공 신고서를 접수하고 화서주공2단지에 새 아파트가 건설, 12월에 분양을 완료했다.

▲ 재건축 추진 과정
ⓒ 이혜진
시공사·조합 '선대책, 후철거'... 시청 "철거민 지원할 근거 없다"

철거민들은 화서주공2단지 재건축 사업으로 그동안 살아온 집을 잃었다. 또한 이들은 조합과 시공사측에서 보상금과 보증금 등을 충분히 받지 못했다고 주장한다.

화서주공 철거민들에 따르면, 그곳에 살던 세입자는 대부분 생계 문제 때문에 서울을 떠나 경기도까지 싼 집을 찾아서 온 도시 빈민이었다. 그들은 산동네에 있는, 지은 지 20년이 넘은 화서주공아파트 13평짜리에서 보증금 200만원에 월세 12만원~20만원을 내고 살았다고 한다.

이들은 이 적은 월세 금액으로 집을 새로 마련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라고 말한다. 또한 이미 재건축이나 택지개발 때문에 화서지역뿐 아니라 인근 지역의 전세 시세가 갑자기 상승했기 때문에 보상금을 받고 보증금을 돌려받는다고 해도 집을 구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화서주공 철거민들은 자신들이 받지 못한 보상금에 대한 대책을 세운 후 철거해야 했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시에서 자신들이 국민임대아파트에 입주할 수 있도록 대책을 세우고, 입주하기 전까지 살 수 있는 가수용 단지를 만들어줘야 한다며 이 사항이 받아들여질 때까지 투쟁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수원시청 재건축과는 자신들이 시행사가 아니므로 철거민들이 요구하는 임대주택 입주우선권 보장과 이주대책에 대해 어떠한 보상의 의무도 없다고 밝혔다. 2003년에 개정된 '도시 및 주거환경 정비법'에는 "사업시행자는 3~5항인 임시수용시설을 포함한 주민이주대책, 세입자의 주거대책, 임대주택의 건설계획 내용을 포함하지 아니할 수 있다"고 '임의규정'으로 명시돼 있다.

수원시는 이 법 조항에 근거해, 철거민을 보호할 법적인 근거가 없다고 일축하고 있다. 그러나 철거민들은 이 법 조항이 '임의규정'인 만큼 대책을 마련했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번 재건축 사업의 시행자가 철거되기 전 아파트 소유자들로 구성된 재건축조합과 시공사라는 건 분명히 맞지만, 수원시청도 재건축과정 중 기본계획수립과 구역지정단계를 제외한 모든 사업에 관여하는 것도 사실이다.

이에 대해 다산인권센터의 김영기 변호사는 "수원시가 재건축사업의 시행자는 아니지만 시에는 재건축 승인, 준공검사 등 재건축사업 추진 과정에서 조합을 감독할 권한이 있다"고 말하고 "따라서 철거과정에서 보상금 등 철거민을 위한 대책을 마련할 책임이 시에도 있다고 본다"고 지적했다.

김 변호사는 "헌법상 시민들의 주거권이 보장될 수 있도록 행정을 펴야할 의무가 있는 시청이 철거민 문제를 방관하거나 방치하는 것은 바람직한 태도가 아니다"라고 비판했다.

철거민들과 수원시청의 다툼은 점점 격해지는데...

그러나 투쟁이 길어질수록 이들의 의견차는 좁혀지지 않고 갈등의 골은 깊어지고 있다. 조금숙 수원시 화서주공철거민대책위원회 위원장은 "수원시청이 용역업체를 고용해 철거민을 감시하고 철거민들의 비닐천막을 27번이나 철거했다"며 분개했다.

철거 과정에서는 폭행이 진행됐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2006년 4월 14일자 <중부일보>는 "수원시청 정문 옆 인도에서 진행된 강제철거 집행 현장에서 용역업체가 폭력을 행사해 (철거민들이) 수원시청 공무원들에게 도움을 요청했지만 (공무원들은) 지켜보고만 있었다"고 보도했다.

급기야 수원시청은 철거민들의 투쟁을 막기 위해 시청 정문 앞 인도에 돌기둥과 화단을 설치하기까지 했다. 개당 10만 원짜리 돌기둥 30개를 설치하는 데 들어간 비용은 300만원. 수원시청 재건축과의 최규태씨는 "시민이 이용하는 인도에 시위 차량을 세워놓고 독점적으로 사용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고 돌기둥을 세운 이유를 설명했다.

철거민들은 한마디로 어이없다는 반응이다. 화단 설치비용까지 합해 500만 원 정도 드는데, 그 비용으로 가수용 단지를 설치하는 편이 훨씬 경제적이라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이뿐 아니라 철거민들은 수원시청이 철거민들과 철거민들의 자녀들이 수원시청에 진입하는 것을 금지하고 화장실 물을 사용할 수 없도록 절수기를 설치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지난 11월 2일, 당시 화서주공철거민대책위원장이던 안모(45)씨가 확성기로 시청 업무를 방해한 혐의로 구속되면서 철거민들과 시청 측의 의견 차이는 본격적으로 감정싸움으로 번지게 됐다. 안씨는 12월 11일, 구속된 지 한 달 만에 석방됐다.

▲ 돌기둥이 설치된 수원시청 앞 인도(왼쪽)와 일반적인 인도(오른쪽)
ⓒ 이혜진
갈등 해결은 '대화'로

철거민들이 투쟁하는 동안, 올해 11월 24일 수원 화서지구 벽산블루밍 분양사업설명회가 열리고 12월 초 225가구가 일반 분양됐다.

점점 격해지는 화서주공 철거민과 수원시청의 싸움의 끝은 어디일까? 철거민들은 가수용 단지와 국민임대아파트를 요구하며 투쟁을 시작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철거민과 수원시청의 의견 대립이 심해지면서, 철거민 대책 마련과 민생안정이라는 목표 대신 양측은 상대방에 대한 불신감만 늘었다.

화서주공 철거민들은 대화를 요청하지만 시청에서 전혀 대화를 시도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수원시청은 시행사도 아닌데 재건축 문제에 끼어들 수 없다는 주장만 되풀이하고 있다.

그러나 법적인 문제 해결이 중요한 만큼 양측의 소통 문제도 중요하다. 이들이 상대방의 처지를 조금씩 이해하고 대화해야만 화서주공 철거민문제의 해결점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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