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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려대 본관과 바로 마주하고 있는 출교 학생들의 천막.
ⓒ 홍성희
천막 바닥에는 낡고 상처가 많이 난 학생증이 떨어져 있었다. 학생증 안에선 입학 즈음에 찍었을 앳된 얼굴의 사진이 빙그레 웃고 있었다. 그때 사진 속의 그 앳된 학생은 어떤 대학생활을 꿈꾸고 있었던 것일까. 하고 싶은 공부? 동아리 활동? 수업? 하지만 학생증은 오랫동안 멈춰있다. 그리고 파란 천막 안에 갇혀있다.

"중앙도서관에 들어가려고 무심코 학생증을 찍는데, 이상하게 안 찍히는 거야. 그 순간 아차, 난 이제 여기 학생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BRI@고려대생 7명은 올해 2월 통합된 고려대 병설 보건대 학생들의 총학생회 투표권을 인정하라며 4월 5일부터 17시간 동안 보직 교수 9명을 건물 계단에서 나가지 못하게 한 일로 4월 19일 '출교' 조치를 당했다.

'출교' 조치는 학적부에서 기록을 완전히 지우는 것으로, '퇴학' 처분과 달리 재입학 가능성도 원천적으로 없앤 징계다.

당시 학교측은 4월 5일의 사건을 '감금'으로 받아들이고 학생들을 징계했다.

고려대 성영신 학생처장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징계사유와 관련, "사람을 야간에 17시간 동안 감금한 것은 교칙뿐 아니라 휴머니즘에 위배되는 행위"라면서 "단순한 가담 정도뿐 아니라 감금행위에 대해 뉘우치는지 여부 등을 모두 고려해 처리했다"고 밝힌 바 있다.

학교측은 학생들에게 소명 기회를 줬지만 반성의 기미를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교육적 차원에서 내려진 불가피한 조치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그 사이 여러차례의 대화시도가 진행됐지만, 고려대 7명의 출교 결정은 번복되지 않았다.

학생들은 여전히 출교철회를 위해 고려대 본관 앞에서 천막농성을 이어가고 있었다. 이들은 학교로 돌아가고 싶다고 했다. 아니, 꼭 돌아갈 것이라고 한다.

이들의 인생에서 '출교'는 어떤 의미일까. 240여일의 기나긴 투쟁은 이들에게 무엇을 남기고 있는 걸까. 12월 14일 늦은 6시, 기자는 천막을 찾아 이들과 함께 하룻밤을 보냈다.

"이길 수 있을까요?" "절대 패소하지는 않을 겁니다"

▲ 오랜 천막생활에 약만 늘어간다.
ⓒ 홍성희
천막의 겨울옷은 너무 얇았다. 하얀 스티로폼에 긴 비닐을 씌우고 마지막으로 파란 천막을 덮은 것이 전부다. 노트북 키보드를 두들기는 내내 손가락이 시렸다. 희미한 입김을 보니 마치 에스키모들의 이글루에 들어온 기분이 들었다. 곳곳에서 고된 생활의 흔적이 묻어났다. 약품통에는 소화제, 감기약, 두통약 등 갖가지 약들이 가득했다. 세면도구와 양말통도 보였다.

밤 11시가 넘으니 출교 학생들이 속속 천막으로 들어왔다. 하지만 출교 학생 7명 중 한 명은 넉 달 전부터 연락이 두절된 상태라 6명이 이 곳을 지키고 있다. 이들은 낮에는 각자 밖에서 활동하지만 밤에는 꼭 천막에 들어와 잠을 잔다. 모두 둘러앉자 서범진(철학 02학번, 24)씨가 이야기를 시작했다. 출교 학생들은 징계의 부당함을 주장하며 학교를 상대로 소송을 진행 중이다. 이날은 양측 변호사가 판사에게 자료를 제출하는 날이었다.

▲ 판사를 만나고 돌아온 서범진씨.
ⓒ 홍성희
"학교 측에서 현장에서 우리 사진을 다 찍었더라고요. 언제 찍었는지 정말 세세하게 다 있는 거예요. 사진 밑에는 '지시하는 누구, 뭐 하는 누구' 이렇게 써 놓고."

학생들은 학교 측에서 자신들의 사진을 찍어왔다는 사실에 놀라는 얼굴이었다. 저마다 한마디씩 하자 순식간에 성토대회가 열렸다. 기자는 슬쩍 '고대 재단의 힘이 막강한데 이길 수 있겠냐'고 물어봤다.

서씨는 강제조정이 떨어질 수는 있어도 패소하지는 않을 거라고 말했다.

"학교는 절차를 어겼고, 학과장이나 학장의 소견서를 첨부하지 않았어요. 출교가 과연 교육적 처사인지, 진짜 목적이 학생자치권 탄압은 아니었는지 따져봐야겠죠."

학생 측 변호는 법무법인 '정평'의 김승교 변호사 외 네 명이 맡고 있다. 내년 1월 18일에 첫 공판이 열린다.

처음에는 '빌라던' 부모님, 이제는 '기운내서 싸워라'

출교 학생들의 저녁 회의가 끝나고 이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240일의 긴 투쟁은 많은 것을 바꾸었다. 특히 출교를 계기로 부모님과 관계가 많이 변했다고 했다. 김지윤(사회학 03학번, 23)씨는 출교 결정이 내려진 후 이틀이 지나도록 부모님께 출교 사실을 알리지 못했다.

"부모님은 제가 운동하는 사실을 전혀 모르셨어요. 그래서 더 얘기하는 게 두렵고 힘들었죠. 그런데 어머니가 먼저 아시고 전화를 하시더니 '해결을 위해 우리가 뭘 해야겠냐'고 하시는 거예요. 왈칵 눈물이 났죠."

부모님들이 처음부터 자식들을 이해한 것은 아니었다. 농성 초기에는 학교에 빨리 '사과'하고 선처를 빌라고 '협박'(?)하셨다고 한다. 하지만 부모님들도 대화를 거부하는 학교의 고압적 태도에 화가 났다. 부모님들은 이제 자식들이 옳다고 믿는다.

출교 학생들은 대부분 취업이나 진로를 고민할 나이다.

"원래 저는 내년에 어학연수를 가고 졸업하려고 했는데… 출교 때문에 더 헌신적으로 운동을 하게 되어 버렸죠. (웃음) 가끔 직업란에 학생이라고 체크할 때 뭔가 망설여져요." (김지윤)
"출교 문제를 해결하기 전에는 아무 것도 손에 잡을 수가 없습니다."(서범진)

출교된 학생들은 다른 학생들과 이질감을 느낄 때 가장 힘들다고 했다.

주병진(지리교육 02학번, 23)씨는 "방학 때 제일 힘들었어요, 누구도 만날 수가 없으니까, 피곤해도 개강해서 선전 활동을 하고 유인물을 내는 게 낫지라는 생각을 많이 했죠"라고 말한다. 서범진씨도 "플래카드를 걸기 위해 고연전에 갔는데 함성이 장난 아닌 거예요. 순간 소외감이 들면서 '나도 저 속에 있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하고 말했다.

19일 날아든 '천막 철거' 고소장

▲ 새벽 5시, 추운 천막에서는 자는 것도 투쟁이다.
ⓒ 홍성희
새벽 2시가 되어 학생들은 하나둘 짝을 지어 칫솔을 들고 밖으로 나갔다. 학생증 기능이 중지되었기 때문에 화장실에 가기 위해서는 주차장 지하 이층까지 걸어 내려가야 한다. 새벽에는 두세 시간씩 '규찰조'를 짜서 천막 주위를 살핀다. 1학기 때는 천막이 철거될 위기가 몇 차례 있었다고 한다.

'쿨럭쿨럭', '뒤척뒤척.'

모두 입던 옷을 그대로 입고 잠들었다. 물에 젖은 수건을 걸어보지만, 건조한 날씨에 마른기침이 계속 목구멍을 쥐어짜며 올라왔다. 뜨거운 장판과 난로를 장만했지만, 머리 위에 가득한 냉기를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서로 농을 치며 안고 밀어내기를 반복하는 모습이 그나마 쓸쓸한 천막에 온기를 불어 넣었다.

출교 학생들은 곧 취임할 예정인 이필상 총장 내정자에게 작은 기대를 걸고 있었다. 하루빨리 대화의 문이 열리기를 기대하며, 두꺼운 담요를 손에 꽉 쥐었다. 어둠 속에 외롭게 서 있던 파란 천막은 그렇게 잠이 들었다. 곧 밀어닥칠 한파가 걱정됐다.

그러나 기자가 천막을 찾은지 5일 만인 19일, 출교 학생들의 천막에는 학교의 고소장이 날아들었다. 본관 앞뜰을 오랫동안 무단점유하고 있는 학생들의 천막을 빨리 철거하라는 내용의 고소장이었다. 고소 대상은 출교학생과 이를 돕고 있는 학생들을 포함해 스무 명에 달했다.

"언론에서 이필상 총장 내정자는 출교 학생들과 대화를 시도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취임식도 하기 전에 무조건 철거부터 하라니, 정말 대화할 생각이 있는 건지 모르겠다."

출교 학생들은 실망한 빛이 역력했다. 이필상 총장 내정자는 지난달 20일 <연합뉴스>와 한 인터뷰에서 "총장에 취임하면 출교학생들과 대화하고 이들이 학교에 돌아오고 싶어 하는지, 반성하고 있는지 알아보고 사태 해결에 힘쓸 생각"이라고 말했다.

고려대 학생처 학생지원부장은 19일 통화에서 "현재 소송이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일단 두고 봐야한다"면서 "천막 문제는 철거하도록 결정된 사안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 4월 19일 삭발식 사진. 사진 찍던 기자들도 많이 울었다고 한다.
ⓒ 홍성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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