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 트롯음악 "짱이야!"로 정식 데뷔한 남궁유순.
ⓒ 남궁유순 제공
"유년시절 아버지가 논에 나가 일을 하시며 종종 들려주던 시조나 노래가락이 성장하면서 음악생활에 많은 밑거름이 되었던 것 같아요. 이제야 첫 앨범을 갖게된 저로선 의미가 상당히 깊습니다"

현재 가요계는 음악경력은 있지만, 음반 하나 제대로 못내 무명으로 묻혀가는 사람들이 아주 많다. 가수 남궁유순도 그런 사람 중 한 사람 이었다. 그녀가 최근 서울시립대 '원우회'에 노래가 아닌 아버지를 기리는 애틋한 글을 올림으로써 주변 사람들에게 잔잔한 감동을 던져주고 있다.

하지만 모르는 사람들이 그 글을 봤다면 이럴지도 모르겠다. "누구나 인간이 늙다보면 자연스레 생을 마감하는 건 순리다. 누구에게나 돌아가실 아버님인 것을. 그리움의 글이 뭐 그리 대단할까" 라고 반문하지 않을까 싶다.

첫 앨범 '짱이야!' 로 데뷔...새벽시장 의류점원, 지하철 편의점 등으로 생계

그러나 남궁유순은 어머니가 먼저 돌아가시고 아버지 역시 오랜 투병생활로 직접 뒷바라지 하고, 사실상 집안의 가장 노릇 등 가수로서의 꿈을 당분간 접어야 했었다. 6남매 중 유독 아버지에 쏟았던 지극정성, 즉 현세의 인연을 쉽게 놓을 수 없는 기나긴 질김 때문이었다.

게다가 형제들이 많은 어려운 가정 탓에 남대문 새벽시장에서 옷가게 직원으로, 또는 지하철 모퉁이에서 조그만 편의점도 운영하며 가족들의 살림을 지금까지 도맡아 꾸려오기 까지 했다.

최근에 아버지를 여의고 나서야 본격적인 가수로 접어들어 첫 번째 앨범(홀로가는 길, 갈색추억 등 14곡 수록)과 두번째 앨범(트롯댄스 타이틀 '짱이야!') 등으로 팬들 앞에 나섰다. 그동안 가장으로서 미뤄왔던 가수의 꿈도 펼치며,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된것이다.

지난 6월에 만들어진 첫번째 앨범은 7080세대 들에게 잘 알려진 여러가수의 곡들로, 추억을 더듬는 리메이크 '카페음악'이자 여러가지 색깔로 표현한 노래 등이 담겨있다. 뒤이어 9월경. 두번째지만 사실상 자신의 정식 데뷔곡인 "짱이야" "당신은 나비" 등이 수록된 앨범도 제작했다

김난영의 뒤를 잇는 감성적인 멜로디에 인터넷에 잘 알려진 김진복, 이승희, 선수현 등을 믹스한 듯한 가수이다. 특히 '짱이야'를 들어보면 가사의 끝부분이 마치 감기듯 올라가며 약간은 비음섞인 창법이 매력 포인트. 리메이크 곡 '가을을 남기고 간 사랑'을 들어보면 '패티김'으로 착각할 만큼 거의 흡사하다. 다만 트롯가요계 현실에서 활동해가는 그 과정이 그리 녹록치가 않을 것이란 걱정도 든다.

하지만 본인이 의지가 강해 활동을 이어 간다면, 노래풍으로 미뤄볼 때 당분간 30-50대 감성이 아주 예민한 여성층을 중심으로 사랑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정직' '겸손' 실천...패티김, 김난영 등을 잇는 트롯가수

볼때마다 느껴지는 건 '겸손'과 '정직함'이 있어 보기 좋다. 대화를 나눠보면 무엇보다 자기 관리에 철저하고 누구에게나 인간적인 마음 씀씀이가 자연스레 배어있는 요즘에 보기 드믄 가수다.

▲ 애틋한 글을 올렸던 남궁유순. 세상의 딸들이 그렇듯, 그역시 아버지를 쉽게 놓지 못했다.
ⓒ 남궁유순 제공
남궁유순은 이제야 지인들의 도움을 조금씩 받으며 자신의 데뷔 앨범을 알려가고 있다. 음악 경력에 비해 늦깎이 가수지만 '명함'같은 존재인 첫 앨범은 그만큼 의미가 크기 때문이다.

남궁유순은 "가수라면 누구나 한번쯤 자신의 앨범을 갖고 싶은 열망이 있게 마련이다" 면서" 첫 앨범이 나왔으니 사람들을 더욱 즐겁게 만들어 주는 좋은 가수가 되도록 전념하겠다"고 말했다

만학도이기도 한 그녀는 현재 '서울시립대 최고경영자 과정 24기' 동문들과 총동문회 등을 중심으로 도움을 받아 가고 있다. 또 자신의 지난시절 '삶의 터'였던 서울시내 지하철 역내와 동대문 새벽시장 등을 찾으며, 연말 행사나 각종 모임 등에 초빙되어 적극적인 활동을 해가고 있다.

언제나 주변을 환하게 만들어 주는 가수 '남궁유순'. 열심히 활동하며 그역시 팬들과 더불어 행복해 하는 모습을 기대해본다.

아버지 천상에 보내던 날

하관때 내 눈물을 봇물터지듯 쏟아내게 했던 것은 고무신 때문이었다. 한번만, 꼭 한번만 한 발자욱만 이라도. 그 간절함 뒤로하고, 보공(補空)되고 만 하얀 그 고무신.

울아버지 보내드리던 마지막(장지에서)그날. 늦 가을 벌판엔 파란 바람이 불었다. 누비옷 태운 연기가 닿는 하늘은 온통 노란색 이었다. 저리듯 눌려오는 슬픔은 차라리 아픔 이어라. 가슴패기가 뻐근해 온다.

농사에 지쳐 돌아보는 얼굴에는 서러운 세월이 담겨있었고, 고단한 삶의 흔적으로 굽은 등 굽은 허리리라.당신 고통 내 아픔 될까 봐주무시듯 조용히 가신 그 길. 호상(好喪)이라 위로해주는 지인(知人)들의 미소속에서 내 슬픔 말없이 심연(深淵)을 이룬다.

트럼펫 울림따라 발인하던 병원에서의 그날 아침, 그 소리 그렇게 구슬픈 줄 나 예전엔 몰랐었다.장남으로, 장손으로, 지켜온 한 세월을 운명이라 여기며 단 한번의 거스름도 없었던 순하디 순한 사람. 그저 사람 좋은 울아버지!

모진 매 한번 든 적 없어도 바르게 잘 자라주는 기특한 6남매에게 농사 짬짬이 들려주던 고시조와 노랫가락. 구성진 하모니카 소리는 어릴적 나의 정서 발달요인.3살 이후 세뇌 되도록 외워대던 부여팔경을 비롯한 시(詩)몇 편은 지금도 여전히 정수리 끝으로 부터 전해 울려온다.

모나지도, 요란하지도, 굵지도, 화려하지도 않은 울아버지의 생은 위대했다. 내가 끝까지 사랑할 수 밖에 없는. 고인을 위해 드리던 예배 중 울아버지는 영(靈)으로 오셔 '내 이름자'가 있는 나라가 있다는게 너무너무 신기하고 놀랍다고, 그래서 딸들에게 고맙다고.

날 위해 기도해 준 많은 사람들에게 고맙다는 인사도 잊지않고 챙기시던 예의 바르고, 천품좋은 울아버지.장례식 마지막날. 봉분앞에 놓인 영정 사진위로 날아든 귀하디 귀한 초미니(2센티미터 가량) 예쁜 새는 참으로 좋은 징조인 듯. 이제 더 이상 욕심내지 않고 편하게 아버지 보내 드리련다.

여태껏 무건 짐 벗어 육신(肉身)과 더불어 땅에 묻고, 외로움 일랑 허허로이 혼(魂)과 더불어 날리우고, 거듭난 영(靈)은 가셔야 하는 그 나라 본향에서, 기쁨으로 더 나은 구원 이루시길 기도한다.

아버지 사랑해요. 예전에도, 시방도, 앞으로도 영원히. 나보다 더 나를 사랑하는 님의 이름으로.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뉴스 타운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문화경제 전문 프리랜서로 글과 사진으로 소통해 가고 있습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