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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학사
오랜만에 강의를 듣는 기분으로 책을 읽었다. 두 번을 읽었는데, 처음에는 가벼운 마음으로 두 번째는 의미를 되새기는 기분으로 읽었다. 처음 보았을 때 놓친 것이 두 번째 읽을 때 자연스레 눈에 들어왔다. 좋은 책은 그렇게 여러 번 읽을수록 내 것이 되는가 보다.

결론부터 말하면 강신주의 <철학, 삶을 만나다>는 좋은 책이다. 한 해를 정리하며 올해 읽은 책들 가운데서도 가장 좋은 책 몇 권 꼽아보라면 그 안에 너끈하게 넣을 수 있는 책이다. 인문학의 위기라는 말이 심심찮게 들려오는 시대를 살면서 전공자가 아니면 딱히 관심을 가지기 어려운 분야가 철학이 아닌가 싶다. 그런 사람들을 위해 이 책이 나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세상에 좋은 책은 도처에 널려있지만, 사람들이 읽느냐 읽지 않느냐에 따라 그 책은 진가를 발휘하기도 하고 묻히기도 할 것이다. 시간이 흘러도 알음알음으로 좋은 책은 꾸준히 오래도록 사랑받는다.

1부 '철학적 사유의 비밀'에서는 사유를 발생시키는 조건과 인문학적 경험들, 철학의 두 가지 흐름에 대해, 2부 '친숙한 것들을 낯설게 만들기'에서는 사랑과 가족이데올로기, 국가, 자본주의에 대한 생각들을, 3부 '삶을 위한 철학적 성찰'에서는 마음의 고통을 치료하며 즐거운 주체로 살아가며 타자에 대한 우리들의 태도에 대한 것들이 깃들어 있다. 차례를 보며 읽고 싶은 마음이 모락모락 피어오르기도 참 어려운 일일 텐데, 이 책은 다르다.

생각이란 무엇인가

@BRI@매일 똑같이 반복되는 일에서 때론 우리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출근할 때 문을 잠그고 걸어 나가 신호등을 기다리고 버스를 기다리는 일에 대해 우리는 생각을 하지 않지만 어쩌다 아무리 기다려도 신호등이 바뀌지 않을 때 우리는 비로소 생각을 하게 된다.

'왜 신호등이 바뀌지 않는가? 고장이 난 건가.'

일상적이지 않은 낯선 상황과 조우하게 될 때 우리는 생각을 하게 된다고 한다. 즉 '생각은 오직 기대하지 않았던 사건과 조우할 때에만 발생하는 것'이며 '낯섦과 불편함을 친숙함과 편안함으로 바꾸려는 자기 배려'가 인간의 생각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어떤 것을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그것에 거리를 두어야 하는 것처럼, 삶을 제대로 영위하기 위해서는 철학적 사유를 통해 삶을 낯설게 만들어야 한다 ... 음미되지 않은 삶은 맹목적인 삶일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철학은 풍성한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불가피한 것이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13~14쪽

"우리의 삶 자체는 항상 낯설어지는 그 무엇이기 때문에 그 불가피한 사태가 도래하기 전에 철학적 사유를 통해 우리는 미리 삶에 낯설어지는 방법을 배울 수 있다"고 한다. 말하자면 미리 생각해보는 것이다.

지금 일어나지 않았지만 나중에 일어날 수도 있는 일에 대해서 말이다. 굳이 일어날 지 안 일어날 지도 모르는 일에 대해 미리 생각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지만, 미리 생각하는 일에는 에너지가 조금 소모된다면 나중에 실제로 일이 일어났을 때는 그보다 훨씬 많은 에너지가 소모된다. 그런 의미에서 철학적 사유란 '다시 반복되지 않을 소중한 삶을 후회 없이 살겠다는 우리의 의지와 결단'이 되는 셈이다.

친숙한 것을 낯설게 보기

저자는 철학이 산을 오르는 것과도 같다고 말한다. 산을 오르기까지 무수히 힘든 순간이 찾아온다. 하지만 정상에 올랐을 때의 기분은 남다르다. 그 처럼 수많은 철학자들을 만나는 일은 힘겹지만 일단 진리에 이르는 순간의 기쁨은 무엇과 비교할 수가 없다.

그렇다고 많은 철학자들을 다 만날 필요는 없다. 많은 철학자들 가운데 나의 생각과 일치하는 철학자들의 사상만을 따르면 되니까. 나에게는 와 닿지도 않는 사상을 굳이 따라가느라 힘들 필요는 없다는 이야기다.

사랑을 하며 우리는 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는데 그에 얽힌 오해와 진실, 스톡홀름 증후군에 빗대어 이야기하는 국가라는 존재, 약육강식의 자본주의 사회를 사는 우리 자신의 모습을 책은 여과 없이 조망한다.

자본주의는 기본적으로 인간을 상품으로 그리고 화폐를 신으로 만드는 체계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인생 대부분의 시간을 돈을 벌기 위해서 고단하게 보내지 않으면 안 되게 되어 있습니다. 그것도 언제 올지 모를 먼 훗날의 행복을 기대하면서 말이죠. 이제 세계화라는 거역하지 못할 현실 속에서, 우리 대부분은 돈을 벌기 위해서 더 힘든 일에 종사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만큼 행복은 우리로부터 더 멀어지겠지요. 그러나 사실 자본주의 속에는 진정한 행복이라고 말할 만한 것이 애초에 없었습니다.

단지 소비의 행복, 소비의 자유만이 존재했을 뿐이니까요. 우리는 자신만의 삶을 위해서 시간을 보내고 있지는 못합니다. 오직 잘 팔리는 상품으로 자신을 만들기 위해서 하루하루를 열심히 보내고 있습니다. 영어를 공부하기 위해서라면 언제든 학원에 나가지만, 역사 강의를 듣는다거나 혹은 판소리를 익히기 위해서 편안하고 여유 있게 학원에 나가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겁니다. 역사, 문학, 철학, 판소리 등을 배워서 무엇하겠습니까? 이런 것들은 여러분을 구매할 산업자본에게는 전혀 불필요한 것이기 때문입니다.-197쪽


행복한 주체가 되어 집착 없이 살아가기

'집착은 우리의 삶을 유아론적인 것으로 만들어버리기에 우리는 고통에 빠져들고 인생이 시들어가는 것'이라고 저자는 이야기한다. 고통에 빠진 우울한 존재가 아니라 다른 것을 다시 사랑할 수 있는 즐거운 주체가 되기 위해서 우리는 집착에서 헤어나야만 한다. 소중한 행복은 떠나버린 사랑이나 돈, 자신의 업적이나 성적, 한때 젊고 아름다운 외모에 있는 것이 아니라고 저자는 강조했다.

책 한 권을 통해서 세상을 다시 바라보게 된다면 그 책은 이미 제 몫을 다한 게 아닐까. 삶을 낯설게 바라보기가 바로 철학의 시작이다. 많은 사람들이 철학과 더 가까워지려면 이처럼 쉽게 쓰인 철학 서적이 많이 출간되어야 할 것 같다. 인간 없는 철학은 무용지물이고 철학 없는 인간의 삶도 마찬가지라는 저자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순간 우리는 이미 이전의 내가 아님을 발견하게 된다.

철학, 삶을 만나다

강신주 지음, 이학사(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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