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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필로그

“엄마 저게 뭐야?

수많은 사람들이 등산을 하는 주말 오후, 나무 사이로 조르르 기어오르는 동물을 본 어린 아이가 손가락을 치켜 올리며 큰 소리로 물었다. 주위 사람들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어린아이의 손가락을 따라 나무로 향했지만 막상 아이의 엄마는 눈길도 주지 않은 채 아이의 질문에 답했다.

“저건 다람쥐란다.”

나무 위를 바라보던 노인이 느릿하지만 굵은 어조로 말했다.

“저건 다람쥐도 아니고 청설모도 아니여. 세상이 변하려나...... 산중에 못 보던 짐승이 뛰어다니는구먼.”

그 못 보던 짐승은 사실 세계 곳곳에서 발견 되고 있었으며 빠른 속도로 종 분화를 해가며 동물학자들을 곤란하게 만들고 있었다. 우선 동물학자들은 그 동물의 학명을 결정하는 것에서부터 의견이 분분했다. 많은 부분에서 포유류의 특징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다른 점이 많았다. 털을 가지고 있다는 것과 체온유지가 가능하다는 것은 분명 포유류의 특징이었지만 새끼를 낳으면서도 수유를 하지 않는 다는 점에서는 동물학자들의 머리를 갸웃거리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그 동물은 새끼를 돌보는 것에는 소홀함이 없었고 의외로 학습능력도 뛰어나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었다. 평균수명이 길지는 않았지만 지능은 개와 비슷한 수준이었으며 잡식성이었고 작은 변화에도 짧은 세대에 쉽게 아종으로 분화하고 곧 다른 종으로 변화하는 이상한 특징을 가지고 있었다.

이 생물은 통칭 ‘하라쉬’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어원은 확실하지 않았지만 처음 발견된 지역에서 사람들이 그렇게 불렀기 때문이라는 속설이 지배적이었다.

하라쉬는 아프리카에서 아시아, 유럽에 걸쳐 발견되었는데 천적이 많은 지역에서는 엄청난 후손을 남기는 종이 되고는 했고 추운 지역에서는 몸집이 커지기도 했다. 동물학자들은 고민 끝에 이 생물을 포유강에 이은 새로운 강으로 명명하기로 했지만 해부결과 충격적인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이 동물은 척추가 기존의 동물과는 전혀 다른 십자형태로 뻗어나가는 식이었다. 결국 이 생물에 대한 분류는 DNA 분석까지 이루어지게 되었지만 그 결과는 더욱 어처구니가 없었다.

하라쉬의 DNA는 인간과 매우 유사했다. 인간과 가장 가깝다는 침팬지 보다 더 가까웠으며 그 유사도는 99.9%였다. 인간과의 공통조상을 추정해 본 결과, 극히 최근에 분화했다는 충격적인 사실이 밝혀졌다. 이는 당장 창조론을 믿는 종교인들에 의해 비웃음거리가 되었고 과학자들은 잠시나마 혼란에 빠져 버렸다. 이들이 인간과 상당히 다른 이유를 밝혀내는 데에는 그다지 오래 걸리지 않았다.

“하라쉬의 DNA중 아무런 유전자 정보도 들어있지 않다고 알려진 쓰레기 DNA까지 비교하면 그 차이는 40%에 달합니다. 인간과 침팬지 사이에서는 이 쓰레기 DNA의 차이가 4%에 그칩니다. 그렇다면 이 쓰레기 DNA에 대한 고찰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국제 생물학회에서 하라쉬에 대한 연구논문을 발표한 영국의 스티븐 박사의 말은 새로운 생물의 출현에 당혹스러워 했던 학자들의 숨을 돌리게끔 만들었다. 그러나 하라쉬의 생물학적 위치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은 끊이지가 않았다.

이런 논란이 벌어지고 있는 가운데 남현수는 최근 부쩍 잦아진 해외 출장을 위해 인천공항에 들어섰다.

“호주머니에 있는 것은 모두 여기 꺼내주십시오.”

공항 검색에서 남현수는 안내원의 지시에 따라 바구니에 자신의 소지품을 모두 꺼내놓았다, 보안 검색요원이 금속탐지기를 들고 남현수의 바지자락과 옷소매를 죽 훑어 대었다. 무엇인가 뭉클한 것이 바지자락에서 걸리긴 했지만 탐지기의 반응이 없자 검색요원은 남현수를 통과시켰다.

“놀랬지?”

비행기로 걸어가며 남현수는 혼잣말로 속삭였다. 남현수의 목적지는 브라질 상파울로였고 그의 통 넓은 바지자락에는 처음으로 남미 아마존 유역에 정착할 두 마리의 하라쉬가 숨어 있었다.

‘머나먼 별을 보거든 그 곳에 생명이 숨쉬고 있을지 모른다는 꿈을 꾸자. 지구는 인간들만의 것이 아니고 지구 생명의 것만도 아니다. 생명의 존재, 그것만으로도 소중하다.’

남현수의 바지자락 밑으로 하라쉬의 녹색 눈이 반짝였다.

‘같은 지구의 생명도 이해하지 못 한 내가 과연 이래도 되는 것일까?’

남현수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바지자락에 숨어있던 하리쉬가 살며시 입 꼬리를 올렸다. 그 모습은 웃는 것 같기도 했고 누군가를 비웃는 것도 같았다.

덧붙이는 글 | 그 동안 '머나먼 별을 보거든'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 좀 더 흥미있는 얘기로 찾아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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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 '고주몽', '홍경래의 난' '처용'을 내 놓은 작가로서 현재도 꾸준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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