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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월 11일 후쿠오카 미와중학교 2학년 학생이 자살하면서 남긴 유서. 상단부분에는 "자신의 돈을 학급에 기부한다"고 적혀있고, 하단부분에는 "이지메가 원인"이라고 씌여져 있다.

"내가 모아 놓은 돈은 반친구들에게 나눠줘"

지난 10월 11일 후쿠오카 치쿠젠쵸의 미와중학교를 다니고 있던 한 학생(2학년생)이 자택에서 목을 매 자살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학교의 교장선생, 반친구, 그리고 자신의 양친에게 남긴 3통의 유서에는 자살의 원인이 '이지메(집단따돌림)'였음을 짐작할 수 있는 내용이 담겨져 있었다.

"(전략) 다시 태어난다면 딥임팩트(일본최고의 현역 경주마)의 아들로 태어나고 싶어. 엄마, 아빠, 바보 같은 자식이어서 미안해. 그리고 내가 모아 놓은 돈은 반친구들에게 나누어 주길…."

일본의 모든 매스컴이 북핵 문제만을 본격적으로 다루던 이 때, 이 뉴스는 그냥 사회면의 톱뉴스 정도로 처리되는 듯 보였다.

그러나 그로부터 1개월여가 지난 지금, 후쿠오카의 중학생 자살사건으로 촉발된 일본 교육현장의 '이지메' 문제는 연일 각 매스컴의 톱뉴스로 자리잡고 있다.

10월 16일 후쿠오카 미와중학교는 공식적으로 기자회견을 갖고 "자살한 학생이 1학년이었을 때, 학급을 담당했던 담임선생이 급우들의 이지메를 유발하는 발언을 했다"고 밝혔다. 해당 교사 역시 "앞으로 남은 여생을 그 학생에게 참회하는 마음으로 살아가고 싶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10월 21일에는 큐슈 쿠마모토현을 제외한 전 지역(46개 토, 도, 부, 현)의 약 600여 고등학교가 문부과학성 방침으로 정해져 있는 "고교 졸업에 필요한 이수과목을 불이행하고 있다"는 사실이 적발되었다.

이 사건으로 인해 다른 지역의 교장 선생 2명이 "교육자로서의 책임과 학생들에게 고개를 들 수 없다"는 내용의 유서를 남기고 목을 매 숨졌다.

또 10월 29일 기후현에서는 다시 여중생이 목을 매 자살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여중생은 유서에 이지메가 직접적인 원인이라고 명시하지는 않았지만 "나같은 애는 살아봤자 아무런 쓸모없어"라는 내용을 남겼었고, 또 학교가 전교생 454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앙케이트에서 41명의 학생이 "(자살학생이) 이지메를 당하는 모습을 보았다"는 구체적인 내용을 적었다고 한다.

그리고, 11월 7일 새벽 0시 15분, 문부과학성은 부처의 특성상 거의 행하지 않는 심야 기자회견을 가졌다. 이유는 11월 4일자 소인이 찍힌 '자살예고' 편지 때문이었다.

▲ 11월 6일 문부과학성이 심야기자회견에서 공개한 자살예고 편지. 한편, 이 편지에 대해 학생이 쓴 것이라고 보기에는 어려운 단어들(재중, 지급, 증명등)이 들어가 있다는 점에서 진위를 의심하는 목소리도 있다.

문부과학성이 새벽에 기자회견 연 까닭

'이부키 문부과학성 장관님, 저는 이지메를 당하고 있어서 자살로 이를 증명합니다'라는 긴 제목의 편지는 문부과학장관에게 보내는 편지 1통과 교육위원회, 담임선생, 학급의 친구, 친구들의 부모, 자신의 부모 등에 보내는 6통으로 6일 문부과학성에 도착했다.

편지의 겉봉에는 수신처인 문부과학성의 주소와 '지급, 문부과학대신에 전달할 것'이라고 표기되어 있다.

"저는 지금 이지메를 받고 있으며 11월 8일까지 이 상황이 개선되지 않을 경우, 11일에 자살하는 것으로 제가 이지메를 받았다는 것을 증명할 것입니다."(이부키 분메이 문부과학장관 앞)

"제가 이지메를 당하고 있다고 몇번이나 선생님께 이야기를 했습니까? 그런데도 선생님은 저를 외면했습니다. 선생님도 똑같은 사람입니다.(담임선생 앞)"

"엄마, 아빠 미안. 그렇지만 너무 힘들어서 살 수가 없어. 나를 용서해 주길.(부모 앞)"


7일 이부키 장관은 "절대 자살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라면서 우표 소인에 희미해가 보이는 '토요(豊)'라는 한자를 단서로 삼아 '토요'라는 이름이 들어가는 지역의 교육위원회에 긴급히 지시했다.

그리고 7일 오후 전문가 감정결과 도쿄 '토시마(豊島)'라는 가능성이 높게 나와 토시마 교육위원회에 비슷한 내용의 상담전화가 들어와 있는지를 확인하는 등 부산하게 움직이고 있다.

▲ 후쿠오카 중학생의 죽음에 1학년때 담임선생이 자살 학생의 이지메에 관여했음을 밝히는 10월 16일자 <닛칸스포츠>.

이지메 때문에 자살한 학생은 없다?

하지만, 이러한 일련의 조치 및 진화작업에 대해 소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라는 지적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학교교육 관련 시민단체의 간사를 맡고 있는 안도씨(가명)는 7일 오전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문부과학성의 의지(?)를 무참하게 깎아내렸다.

"지금까지 문부과학성이 이지메에 관해 조사하거나 움직인 적은 한 번도 없다. 이지메가 갑자기 나온 거냐? 몇 십년 전부터 줄곧 있어 왔다. 그리고 이렇게 이지메가 원인이 되어서 자살한 사례는 엄청나게 많았다. 그런데 문부과학성이 지난 10년동안 이지메가 원인이 되어 자살한 건수를 몇 명이라고 발표했을 것 같나? 놀라지 마라. 0명이다. 0명. 제로."

실제로 국회도서관의 문부과학성 통계조사 백서를 찾아본 결과 그의 말은 사실이었다. 1999년부터 2005년까지 매년 전국의 초중고 학생의 자살자 수는 163명, 147명, 134명, 123명, 137명, 126명, 105명에 이지메 관련 상담접수는, 편차는 있지만, 2만건에서 3만건 선이었다.

그런데, 정작 '이지메가 원인으로 자살한 학생수'는 7년 연속 '0'이라는 숫자가 나열되어 있었다. 매년 100명 이상의 학생들이 목숨을 스스로 끊고 있고, 이지메로 인한 고통을 호소하는 학생들이 저렇게 많은데, 이지메 원인으로 자살한 학생수가 7년간 한 명도 없다니.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아 바로 문부과학성에 전화를 걸었으나 "담당자가 자리에 없어 지금은 대답하기 힘들고, 정식취재 요청을 해달라"는 답변만 돌아왔다.

앞서 등장한 안도씨는 10월 11일 있었던 후쿠오카 자살사건 당시 문부과학성의 복지부동을 고발하기도 했다.

"그때 문부과학성이 딱 3장짜리 보고서를 썼다. 하긴 분량은 중요한게 아니니까. 그런데, 내용이 가관이다. 이 학생의 죽음에 (선생도 포함한) 이지메가 원인인가 아닌가가 가장 중요한 핵심이었는데, 그 부분은 '현재 조사중으로 인식하고 있다' 라고 적어 놓은 거야. 이지메가 원인이라는 것을 다 아는데, 그걸 조사중이라고 하면서 게다가 자기네들이 '직접' 조사하는 게 아니고, 누군가가 조사를 하고 있다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거다. 이게 말이 되나?"

▲ 지난 9월 17일 도쿄 도내에서는 '교육기본법 개악 반대집회'가 열렸다.
ⓒ 박철현

교육기본법 통과를 노리는 자민당의 전술인가?

그런 와중에 자민당-공명당 연립내각은 "현행 교육기본법이 제시하고 있는 평등교육의 기본이념을 심각하게 저해할 우려가 있다"며 시민단체들이 반발하고 있는 <개정 교육기본법>을 오는 16일에 통과시키겠다고 발표했다.

자민당이 개정을 추진하는 교육기본법 개정안 2조에는 현행 교육기본법에는 없는 '애국심'을 강제하는 구절이 들어가 있고, 5조에는 '능력에 따른 교육'이라는 대목이 있다. 전자는 기미가요 제창과 히노마루 게양을 합법화하고, 후자는 전후 일본 교육의 가장 큰 미덕이라 평가되어 왔던 교육의 평등권을 저해할 것이라는 걱정을 안겨주고 있다.

연립내각의 교육기본법 개정안은 올해 3월부터 본격적으로 매 회기마다 중의원에 상정되고 있으나, 자민당의 법안이 "경제논리에 따른 교육의 차별, 격차사회 조장, 심지어는 의무교육의 폐지까지 불러올 수 있다"는 민주당의 반발로 인해 심의보류 상태가 지속되고 있었다.

속칭 '쪽수'로 밀어붙이는 강행체결이지 않을까 예상하고 있었는데, 11월 7일 NHK의 7시 뉴스에서 "민주당이 개정안을 받아들일 것"을 전망하는 코멘트가 나왔다.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민주당의 내부사정에 밝은 관계자에 전화를 걸자 그는 씁쓰름한 목소리로 "11월 16일에 통과될 가능성이 높다"면서 묘한 이야기를 덧붙였다.

"요즘 이지메니 이수불이행이니 하는 것들이 나오고 있는데, 이게 결정적인 것 같다. 사건이 이렇게 막 갑자기 연달아 터지까, 국민들이 느끼기에는 무언가 현행 교육기본법이 잘못된 것 같잖아. (일반시민들은) 딱딱한 법조문 내용을 확인할 수도 없고, 확인하지도 않는다. '그냥 한번 바꾸어보자' 이렇게 되어버린 셈이다."

백년지대계라는 교육에 정치적 의도나 목적이 들어가는 것을 상상하고 싶지 않지만, 적어도 지난 10여년간, 아니 한 달 전만 하더라도 이지메나 이수불이행 문제 등에 관심도 보이지 않고 있던 문부과학성의 발빠른 대처가 왠지 어색해 보인다는 느낌만은 지울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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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부터 도쿄거주. 소설 <화이트리스트-파국의 날>, 에세이 <이렇게 살아도 돼>, <어른은 어떻게 돼?>, <일본여친에게 프러포즈 받다>를 썼고, <일본제국은 왜 실패하였는가>를 번역했다. 최신작은 <쓴다는 것>. 현재 도쿄 테츠야공무점 대표로 재직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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