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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라산의 위용
ⓒ 윤영국
한라산은 가장 남쪽에 있는 산이라 단풍이 가장 늦게 든다? 꼭 그런 건 아니다. 육지의 산들보다 고도가 높아, 해발 1000m 이상은 이미 단풍이 절정이다. 늦더위와 가을 가뭄이 길어 올해 단풍은 예년만 못하다지만 그래도 단풍은 단풍이다. 원래 습도가 높은 한라산 단풍의 품질은 평년작은 된다.

한라산에는 수많은 등산로가 있으나 현재 입산이 허용된 등산로는 네 개뿐이다. 영실, 어리목 코스는 정상까지 갈 수 없고, 정상까지 갈 수 있는 길은 성판악코스(9.6km)와 관음사코스(8.7km)다. 성판악코스는 완만하고 관음사코스는 비교적 험하다.

관광목적으로 제주에 와서 등산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성판악코스를 이용한다. 왕복할 때 모두 성판악코스를 이용하거나, 성판악코스로 올라가서 관음사코스로 하산하는 게 일반적이다.

그러나 등산에 전문성을 갖춘 사람일수록 관음사코스로 등산, 성판악 코스로 하산하는 것을 선호한다. 성판악은 끝없이 이어지는 완만한 오르막길이지만, 관음사는 오르막과 내리막이 반복되며 마지막 약 1.5km 구간이 매우 가파르다. 보통 급경사를 오르는 것보다는 내려오는 것이 편할 것이라 생각하지만, 그것은 힘이 비축되어 있는 상태에서다. 정상까지 오르느라 이미 피곤해 있는 상태에서는 하산길이 완만한 게 더 안전하다.

일반적인 방법의 역순인 관음사코스로 등산, 성판악으로 하산하는 길을 탐구해 보자. 예전의 등산로는 관음사 뒤로 길이 나 있었지만, 지금은 그 절에서 500m 서쪽에 등산로 입구와 '한라산 국립공원 관음사지구 관리사무소'가 있을 뿐이다. 실제 절집과 관련이 있는 건 아니다. 백록담 북벽에서 발원하는 탐라계곡 언저리 길이므로 탐라계곡코스가 정확한 표현이겠으나 통상 관음사코스로 불린다.

한라산은 단풍이 늦다?

▲ 탐라계곡의 가을
ⓒ 윤영국
초입에서 2km까지는 단아한 오솔길을 걷는 느낌이다. 힘 들이지 않고 걸을 수 있다. 따뜻한 남도라 해도 해발고도가 높아 10월 초면 단풍이 번진다. 계곡(동탐라계곡, 서탐라계곡)을 거푸 건넌다. 계곡이라고 하지만, 폭우가 쏟아질 때 외에는 물이 흐르지 않는 건천이다. 이 계곡물은 제주시를 남북으로 관통하는 한천과 맞닿고 용두암 옆 용연으로 흘러들어 영주12경을 이룬다.

입구에서 2.5km, 해발 750m 지점에는 1980년대 초까지 사용하던 숯가마터가 남아 있다. 고도별 온도차 때문에 식생이 세계에서 가장 다양하다는 한라산이다. 이 지점에서는 숯 재료로 가장 좋은 참나무류가 많이 자라기 때문에 예전에는 숯가마가 많이 있었다. 참나무 숯은 1그램당 7000cal에 달할 정도로 발열량이 커서 제철, 화약 제조 등에 쓰였다고 한다.

▲ 얼룩조릿대
ⓒ 윤영국
등산로 양옆은 물론 거의 모든 숲 하단부를 조릿대가 뒤덮고 있다. 옛날 쌀의 뉘나 돌을 거르는 주방기구인 조리를 만드는 데 쓰는 대나무라 하여 조릿대라 부르는데, 한라산의 조릿대는 잎 가장자리가 흰무늬가 있는 얼룩조릿대다.

이 대나무는 육지보다 제주도와 일본에서 많이 나는 관상용 식물이다. 조릿대가 번성하면, 조릿대 넝쿨뿌리에 걸려 다른 식물의 씨앗이 땅에 떨어지지 못하므로 식생이 피폐해진다. 한라산 전체를 덮고 있는 조릿대 퇴치 방법을 연구할 정도다. 얼마 전, 조릿대를 이용한 음료를 개발했다는데 그 후 소식이 없다.

▲ 원점은 어디인가
ⓒ 윤영국
입구에서 4km 지점의 등산로 우측에 '원점비'라는 팻말이 보인다. 1980대 초반 대통령이 제주를 방문할 때, 경호 목적으로 제주에 선발대로 파견된 공수부대 1개 제대(약 60명)가 비행기 추락으로 전원사망한 지점이다.

전 대통령 당시, 각 방문지마다 대통령보다 2~3일 먼저 공수부대가 가서 요충지를 점검하는 경호 방식이었다고 한다. 공식적으로는 '훈련 중 순직'으로 발표되고 사고 규모가 컸음에도 단신으로 처리됐지만, 악천후를 무릅쓰고 경호 목적으로 제주에 왔다가 발생한 어이없는 사고로 알려져 있다.

그 후 제주도에는 공수부대 1개 제대가 교대로 주둔, 몇 개월씩 순환근무하기 때문에 공수부대원 중 상당수가 제주도에서 근무한 경력이 있다고 한다. 휴양소라는 간판이 걸린 이 부대가 제주도의 유일한 육군부대이기도 하다.

젊은 영혼을 위로하려는 듯 이곳부터 붉은 기운이 더 완연해진다. 철거 예정인 무인대피소를 지나 입구에서 6km쯤 떨어진 곳에 가면, 해발고도가 1100m를 넘고 소나무가 군락을 이루며 자라고 있다. 가늘어 보여도 100년 이상 된 이 소나무는 껍질이 붉은 적송이다.

▲ 붉은 소나무 군락
ⓒ 윤영국
육송, 혹은 흑송과 대비해 적송이라고 부르는 이 소나무는 곧게 자라는데다 군락을 이루고 있다. 적송은 예로부터 배를 만들거나 건축자재로 쓰였다. 강원도 봉화군 춘양면에서 많이 생산돼 춘양목으로 부르기도 하며 금강송으로도 불렸다. 적송은 송진이 골고루 배어 잘 썩지 않아 고급목재로 썼다고 한다. 오죽하면 대궐 목재로 쓰이는 적송이 나오는 산을 황장산 혹은 황장봉산이라 부르며 국유화해 일반인의 출입을 금지했을까.

원의 간섭기에 한라산 나무를 베어 일본정벌에 쓸 배를 만들었다고도 하고, 조선시대에도 목재를 진상했다는 기록이 있다. 헬기로 실어 올려 쌓아놓은 자재들을 보면서, 옛날에 이 첩첩산중에서 어떻게 거목들을 베어 날랐을까 생각했다.

▲ 백록담 북벽에서 발원하는 탐라계곡
ⓒ 윤영국
입구에서 6.2km 지점에 헬기장이 있다. 여기서 삼각봉과 한라산 정상의 북쪽사면이 한눈에 보이는 장관이 연출된다. 불심검문하듯 막아선 삼각봉 주위가 붉게 빛나고 탐라계곡의 양쪽 능선에 붉은 해일이 넘어오는 듯하다. 키 큰 나무가 사라지고 관목대가 시작되며 산의 위아래로 탁 트인 전망을 제공한다.

헬기장에서 500m 더 가면 용진각 대피소다. 그 사이에 샘이 있다. 이 샘은 하루 용출량이 4000톤에 달할 만큼 수량이 풍부해 요즘 같은 가뭄에도 마르지 않는다. 여기까지는 험한 코스가 아니므로 500ml 물 한 병 정도면 되지만, 여기서 출발하여 정상에서 점심을 먹고 다시 반대편 하산길의 사라악 샘물까지 가려면 물을 두 병 정도 채워야 한다.

용진각대피소는 한시적 유인대피소로 등반 성수기에는 입산통제를 위해 국립공원 직원이 나와 있다. 매점 같은 편의 시설은 없으나 제법 깨끗한 화장실이 있다. 겨울에는 3~4m씩 눈이 쌓여 히말라야 원정대들이 훈련하러 오는 곳이기도 하다.

하절기(5월~8월)에는 13시, 동절기(11월~이듬해 2월)에는 12시, 봄가을에는 12시 30분이 넘으면 이 지점에서 더 이상 정상 쪽으로 등산하는 걸 허용하지 않는다. 입구에서 3시간 정도 걸리므로 오전 9시 전에 등산하면 된다.

용진각에서 정상까진 난코스

▲ 오름, 오름들
ⓒ 윤영국
용진각에서 정상까진 2km 남았으나 여기서부터 1.5km 구간이 가장 난코스다. 경사가 심하지만 길은 잘 정돈되어 있다. 백록담의 깎아지른 북벽을 눈높이로 마주하며 탐라계곡과 멀리 제주시내와 남해바다를 굽어볼 수 있다.

정상에 가까워질수록 구상나무 군락의 순도가 높아진다. 소나무과의 상록교목인 구상나무는 한국 특산종이다. 세계에서 한라산, 지리산, 덕유산에서만 자생한다. 한라산에서는 1500m가 넘는 북벽과 서벽 인근에서 군락을 이루고 있다. 한대성 수종으로 지구온난화에 따라 수목한계(고도)가 점점 높아지고 있다. 폭설 때문에 고사한 나무와 햇빛을 받아 은녹색으로 보이는, 살아있는 나무가 혼재하고 있다.

구상나무 군락이 끝나자마자 정상이다. 백록담은 오랜 가뭄으로 말라 있었다. 화구호 언저리의 젖은 부위를 보며 물이 고여 있었음을 짐작할 뿐이다. 둘레 1720m, 화구의 지름은 동서 700m, 남북 500m며 내부면적은 21ha에 달한다.

▲ 오랜 가뭄으로 바닥을 드러낸 백록담
ⓒ 윤영국
자연보호 개념이 없던 시절엔 분화구 안에서 철쭉제를 열어 수만 명이 운집한 적도 있었다고 한다. 야영과 수영을 하고 밥도 지어먹었다는 옛날 얘길 들으면 기가 막힐 뿐이다. 화구 안에는 평소에 노루가 뛰어놀지만, 이번 가뭄으로 물이 말라 화구 바깥으로 이동했다고 국립공원 직원이 말했다.

산 정상에는 낮 12시경 국립공원 직원이 올라와 흡연 여부를 확인하고 쓰레기 등을 추스르게 한다. 직원은 오후2시가 되면 등산객들에게 하산을 지시한 뒤 마지막에 하산한다.

많은 사람들이 정상에서 앞 다투어 기념촬영을 하지만, 실제 정상은 반대편으로 입산이 통제되어 있다. 등산객이 도달하는 지점은 동릉(서, 남, 북은 경사가 가팔라 '벽'이라 하지만 성판악에서 올라오는 동쪽은 능선이라는 의미로 '동릉'이라 부른다)은 해발 1933m다. 그러나 한라산의 실제 정상은 사진 반대편의 서벽 쪽이다.

나무가 자라지 못하는 화구 둘레에서 내려다보는 경치는 장관이다. 날씨가 좋으면 동쪽 끝 일출봉은 물론 전라도 남해안까지 보인다. 그러나 그 정도까지 보려면 운이 상당히 좋아야 한다.

내가 오른 날은 날씨가 엄청 좋은 날이다. 10월 중순치고는 초여름 같은 날씨에 바람도 없다. 바람으로 유명한 제주에서도 한라산의 칼바람은 상상을 초월한다. 산 정상에선 바람 때문에 일어서지도 못하고 엉금엉금 기는 경우가 태반이다. 안개라도 낄라치면 산정에서조차 백록담이 보이지 않는다.

정상에서 성판악으로 하산하는 길은 총 9.6km로, 폐쇄된 돈내코 코스를 제외하면 가장 길다. 그러나 경사가 완만해 빠른 걸음으로는 2시간, 보통 걸음으론 3시간 정도 걸린다.

한 번으로 안 되는 한라산

▲ 삼나무 숲
ⓒ 윤영국
이 코스에서 유일한 휴게소인 진달래밭 대피소까지는 정상에서 2.3km로 하산하는 데 40~50분, 오르는 데 90분 정도 걸린다. 이곳부터 하산길의 경사가 완만해지지만, 돌밭투성이이기에 발 디딜 때 주의해야 한다.

성판악코스로 하산하는 길은 완만해 다니기는 편하나, 숲에 가려 좋은 전망을 기대하기 어렵다. 그러나 5월의 진달래밭은 백미다. 진달래가 질 무렵이면 철쭉이 시작돼 천지를 붉게 물들인다.

1.7km 더 내려가면 사라악 약수가 나그네를 반긴다. 관음사코스엔 용진굴 약수, 성판악코스엔 사라악 약수가 있어 물을 보충할 수 있다. 용진굴 약수는 정상 바로 아래 있어 등산객들이 물을 보충하기 좋지만, 사라악 약수는 거리상으로는 중간이지만 산행시간으로 보면 성판악등산로 입구 초입에 치우쳐 있다.

물맛이 좋지만 겨울에는 얼어붙거나 눈에 파묻히는 경우가 있으니 식수 보충처로 지나치게 믿어서는 안 된다. 양쪽 약수 모두 등산길에는 최소한 1000ml, 하산길에는 500ml 정도 보충하면 된다.

등산길인 탐라계곡에서 적송군락을 만난 것처럼, 하산길인 성판악코스에서는 삼나무숲을 만날 수 있다. 수령이 40년 정도 된 것으로 통나무집을 짓거나 건축, 보도용 데크를 만드는 데 쓰인다. 일본 규슈지역에 많이 나는데 일본에서는 스기나무, 제주에선 쑥대낭(쑥쑥 크고 대나무처럼 곧아서)으로 불린다. 천연살충물질인 피톤치드가 가장 많이 나오기에 삼림욕에 가장 적합한 수종이라고 한다.

필자는 직업상 관광객을 안내하느라 자주 정상에 등반하지만, 대부분 성판악을 왕복하거나 관음사로 하산하는 코스를 이용한다. 그러나 반대편, 즉 관음사로 올라 성판악으로 하산하면 시간도 덜 걸리고 체력도 덜 소모된다.

체력이 있어야 경관을 감상하는 여유도 생긴다. 이미 지친 하산길에선 땅바닥 보기에 바쁘다. 그런 의미에서 한라산을 감상하는 데에도 이 코스가 더 유용하다. 아니다. 공정하게 말하면 단풍이 좋은 가을에는 탐라계곡으로, 꽃이 좋은 봄에는 성판악으로 오르는 것도 좋다. 이래저래 한라산은 한 번으로는 안 된다.

덧붙이는 글 | 한라산 높이가 곧 달라질 지 모른다. 통칭 1950m였던 한라산이 최근의 측정결과 1947m로 격하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근대기술로 한라산을 첫 측정했던 독일의 지리학자인 지그프리드 젠테가 1950m 라는 측정치를 얻었고 일제때와 1966년 국립지리원에서 현대측량기술을 이용한 결과치도 1950m를 뒷받침했다.

6,25일어난 연대, 혹은 한번(1)구경(9)오십(50)시오. 라고 가이드 들이 설파했던 그 높이였는데  제주산업대의 양영보교수는 GPS 를 이용한 방법으로 1947m의 측정치를 얻어내고  측정기술의 고도화와 자연적 풍화, 등산객들에 밟인 답압에 의해 낮아졌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국립지리원에서 반박하는등 아직 공인되지는 않았으나 낮아질 가능성에 대해서는 일부 수긍이 가는바가 적지 않다.

한라산은 한반도 대동강 이남에서 가장 높은 산이지만 분단덕분에 한국에서 제일 높은 산이 되어버렸다. 그런데 백두산의 장군봉이나 지리산의 천왕봉, 금강산의 비로봉고 달리 정상을 한라산 정상이라고 할뿐  봉우리명칭이 없다. 다만 1950고지일 뿐이다. 

삼신산(방장산=지리산, 봉래산=금강산)의 하나로 영주산이라고도 불리며, 정상부가 움푹패여 머리가 없다고 무두악 혹은 두무악, 분화구가 솥을 닮았다고 부악(釜岳)이라거나 태풍을 막아주어 호남의 곡창을 지켜준다고 '진산' 등 20여가지 이름이 있으나 오늘날 한라산과 대표적 이명으로 영주산만 기억 될 뿐 이다.  한라산은 은하수 漢에 잡을 拏로 은하수를 잡을 만큼 높은 산 이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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