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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향을 조금씩 넣으시고
ⓒ 정현순

강원도 강릉에 있는 오죽헌에 가면 이율곡 선생의 사당을 모셔놓은 문성사가 있다. 호가 율곡인 '이이'는 사헌부 감찰을 지낸 아버지 이원수와 어머니 신사임당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는 1549년(명종3년) 진사시에 합격하고, 19세에 금강산에 들어가 불교공부를 한다. 그 다음해에 성리학에 전념. 22세 노경진의 딸과 혼인. 다음 해에 예안의 도산으로 이황을 방문하였다.

그 해변에서 <천도책>을 지어 장원하고 이때부터 29세에 응시한 문과 전시에 이르기까지 아홉 차례 과거에 모두 장원하여 '구도장원공'이라 일컬어 졌다. 그동안 <동호문답, 만언봉사, 성학요집>등을 지어 국정전반기에 관한 개혁안을 왕께 제시하였고 성혼과 '이기 사단칠정 인심도심보'에 대해 논쟁하기도 하였다.

한번 장원급제도 힘든 일을 9번이나 했고, 오늘 날까지 존경을 받는 이율곡 선생의 탄생에 대한 해설을 들어봤다.

▲ 문성사 안에 있는 이율곡 선생의 모습
ⓒ 정현순

봉평 가는 길을 가다보면 까만 비석 몸돌에 자연석 지붕을 얹어놓은 판관대라는 기념비가 있다. 조선 중종 때 수운판관을 지낸 이이의 아버지 이원수 직함을 따 '이판관의 집터'라는 뜻으로 판관대라 불리 운다. 율곡의 탄생지는 오죽헌이고 잉태설화는 이곳이라 전해진다. 그때 신사임당의 친정은 재력가로 알려져 있어 집이 여기저기 있었다고 한다. 그곳 봉평에도 신사임당의 집이 있었다고 한다.

▲ 율곡, 이이의 잉태지인 판관대
ⓒ 정현순

그의 잉태설은 이렇게 전해지고 있다. 어머니인 신사임당이 친정 오죽헌에 머물고 있던 어느 날이었다. 어머니와 떨어져 있던 아버지 이원수가 신사임당을 만나려고 처가 집으로 가던 중 날이 저물어 어느 주막에 머물게 되었다. 밤이 깊어 잠을 청하려 들자 과부였던 주모가 이원수의 이불 속으로 자꾸만 들어오려고 했다.

몇 차례 뿌리쳤지만 주모는 아랑곳하지 않고 "오늘밤엔 저의 서방님으로 모셔야 한다"면서 막무가내였다. 그것을 보다 못한 이원수는 깊은 밤에 짐을 챙겨 그만 그 주막을 나서서 봉평 집으로 향했다고 한다. 그 무렵 신사임당도 무슨 일인지 오죽헌을 나와 봉평 집으로 갔다고 한다. 바로 그날 이원수와 신사임당이 만나 아기를 만든 곳이 바로 이곳 판관대라 전해지고 있다.

이원수는 신사임당과 헤어진 뒤, 이원수가 다시 되돌아가던 중 그 주막에 다시 들어가서 주모를 만난다. 하지만 주모는 그날 밤만이 서방님으로 모셔야 했고, 지금은 안 된다고 거절을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우린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 때나 이때나 사람 사는 모습은 다 비슷한가 봐"하면서 한바탕 웃었다.

▲ 오죽헌과 이이를 낳은 몽룡실
ⓒ 정현순

▲ 사임당이 율곡을 낳기 전에 용꿈을 꾸었다는 몽룡실
ⓒ 정현순

▲ 오죽헌
ⓒ 정현순

▲ 어제각안의 모습
ⓒ 정현순

율곡 선생이 유년시절 사용했던 벼루(정조임금이 어필한 글을 새김)

▲ 격몽요결
ⓒ 정현순

격몽요결은 세상을 살아가는데 올바른 사람이 되기 위해서 배우고 깨우쳐야 할 10가지 덕목을 제시 해놓은 책. 이 책은 수세기가 지난 지금까지도 되새길 만한 생활교육 지침서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덧붙이는 글 | SBS U포터에도 송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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