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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은 급속하게 모든 게 변하니 노인의 경험이 별 볼일 없어지는 게 사실이잖아요. 젊은 세대와 단절되어 어른으로서 역할을 잃어버린다는 건 슬픈 일이예요. 우리는 각고의 노력으로 배우고 봉사하며 영향력 있는 노인상을 세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난 15일 오전 (사)대한노인회 경기도연합회 강당에서는 이색경진대회가 개최되었다. 노인의 날 기념으로 개최되는 '지역봉사원 사례발표 경진대회'. 연합회 산하 24개 지회에서 활동한 연사들이 '저출산 고령화시대 노인들의 나아갈 길'을 비롯해 '청소년 충효예절 및 한자교육'의 예 등 다채로운 봉사활동 사례를 발표했다.

그중 우수한 사례 5명이 선발되어 10월 연합회 노인의 날 큰잔치에서 다시 발표하여 우열을 가리게 된다. 특별히 경기도 안산시 상록구지회에서 참여한 변영희(82) 어르신 이야기를 소개하고자 한다.

몇 안 되는 할머니 출연자, 여든이 넘은 나이에다, '노인IT봉사단'이라는 놀라운 제목까지. 우수 사례 5명에 들진 못했지만 영향력 있는 새 노인상을 힘주어 발표했다.

"노인도 지식과 정보에 소외되어서는 안 돼"

▲ 변영희 어르신이 '노인IT봉사단이 갑니다'라는 제목으로 사례발표 하고 있다.
ⓒ 김화숙
"저는 세상이 너무 빠르게 변하는 게 무서웠어요. 아직 살 날은 많은데 잘못하면 이 세상에서 정말 소외되겠다는 위기감이 찾아왔어요. 노인도 지식과 정보에 소외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게 되니 컴퓨터가 보였어요."

80대가 되니 발음이 또렷하지 않은 건 어쩔 수 없다고 부끄러워하시는 어르신. 그러나 내가 보기엔 내 나이의 두 배가 되신 어르신이라고는 믿을 수 없게 생기발랄한 분이다.

"2001년 인근 복지관에서 컴퓨터를 3개월 배운 것을 시작으로 안산시에서 지원하는 노인 정보화 교육에 참여하게 되었어요. 그게 꼬투리가 되어 컴퓨터를 계속 더 배우고 싶은 어르신들이 모여 길을 찾던 중 2003년에는 본오경로당 2층에 노인컴퓨터 중앙교육원이 발족되었고 제가 은빛둥지라는 모임의 회장을 맡게 되었지요."

처음 컴퓨터를 시작할 때 물론 들어도 무슨 소리인지 몰라 무척 시간이 걸렸단다. 시에서 지원한 강사들이 노인들의 특성을 이해하고 친절하게 가르쳐준 내용을 '해보고 또 해봐서" 눈이 뜨이는 기분이 되었다.

은빛둥지 노인IT봉사단

▲ 은빛둥지 교육장에서 컴퓨터를 배우는 어르신들.
ⓒ 김화숙
"노인들의 심정은 노인들이 잘 알잖아요. 컴퓨터를 먼저 배운 노인들이 다른 노인들을 위해 봉사해야 한다는 데 뜻을 모았어요. 지역 노인들과 경로당 회원들이 그 대상이 되었지요."

그것은 한마디로 '가진 것을 나누는 은빛둥지'를 틀었다고 할 수 있다. 둥지를 트니 관심 있는 어르신들이 모여들었고 2000명 가까운 노인들이 은빛둥지를 통해 컴퓨터를 배웠다.

2005년에는 그동안 은빛둥지를 통해 컴퓨터를 배운 60대, 70대 노인들 여섯 명이 컴퓨터 강사자격을 땄다. 이분들을 중심으로 노인IT봉사단이 만들어졌다.

작년 한 해 노인IT봉사단은 10개 경로당을 비롯해 정보화 교육의 사각지대 16개소를 찾아가 컴퓨터를 가르쳤다. 파견 노인강사의 수요가 증가하여 더 많은 어르신들이 강사 교육을 받았다. 조금이라도 컴퓨터 교육을 받은 어르신들이 회원활동을 하고 월 1만원 회비로 노인정보화에 힘을 보태게 되었다.

컴퓨터로 노소간의 벽을 허물어

"컴퓨터는 우리 노인들을 위한 신의 선물이 아닌가 해요. 컴퓨터 교육 덕에 지역 사회 봉사를 하는 노인들이 늘었어요."

변영희 어르신은 여든이 넘은 연세로 2003년 경기도 주최 '실버정보화경연대회'에서 금상을 받았고, 2005년 정보통신부 주최 정보검색대회에서도 특별상을 받았다. 그뿐 아니라 일본의 노인정보화 현장을 방문하기도 했단다.

컴퓨터 활용은 노소간의 세대통합을 도와주었다. 예를 하나만 들자면, 박영순(78) 할머니는 대학졸업식에서 디지털 카메라로 사진을 찍어 CD로 구워 손자의 친구들에게까지 나누어 주었다. 손자들이 할머니를 더욱 따르고 e메일과 채팅 대화가 되니 행복해하고 있다.

"제가 회장으로 봉사하는 정곡경로당 역시 경로당에서 컴퓨터를 배우고 있어요. 현재 다섯 대의 컴퓨터로 1주일 두 번 파견강사와 제가 지도하지요. 배우려고 애쓰는 노인들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몰라요."

3년 전 변영희 어르신이 처음 회장이 되었을 때 50명이 안 되던 회원이 지금은 80명을 넘어 자꾸 경로당이 좁아져 행복한 고민을 하고 있다.

"노인IT봉사단 회원들 중 70대, 80대 할머니들 8명은 춤으로도 봉사하고 있습니다. 한국무용과 현대무용을 두루 배운 춤꾼들이 어르신들의 행사가 있는 곳에 찾아가 봉사하고 있습니다."

디지털 카메라로 다시 찍어가는 황혼의 길손

▲ 디카로 찍은 어르신 작품.
ⓒ 김화숙
디지털카메라, 프린트, 포토샵까지 배운 회원 중에는 어르신들의 영정사진 봉사활동도 하고 있다. 스튜디오를 꾸미고 현재까지 100여 명의 영정사진을 찍어 드렸다. 지난 금요일(9월 15일) 저녁 KBS TV 에도 영정사진 찍는 어르신들이 소개되기도 했다.

IT봉사단은 작품전시회도 준비하고 있다. '디지털 카메라로 다시 찍어가는 황혼의 길손'이라는 제목으로 70세 이상 어르신 40명이 8개월간 익힌 사진기술로 찍은 작품들이 전시된다. 노년에 새 길을 찾은 이들과 새 길을 찾는 이들이 이 전시회를 통해 용기와 행복을 맛보는 기회가 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급하게 변하는 시대에 열심히 컴퓨터를 배우며 봉사하시는 어르신들께 박수를 보냅니다!

'디지털 카메라로 다시 찍어가는 황혼의 길손' 전시회는 오는 10월 10일(화) 오후 1시 경기도 안산시 올림픽 기념관 3층 전시실에 열립니다. (문의 031-438-40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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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산. 운동하고, 보고 듣고, 웃고, 분노하고, 춤추고, 감히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 읽고, 쓰고 싶은대로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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