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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운동장을 꽉~~(?) 채운 정배학교 아이들이 줄넘기를 합니다. 전교생(33명) 모두가 함께 해도 넓은 자리입니다.
ⓒ 공순덕
지난 18일 월요일 경기도 양평군 서종면, 중미산 자락 끝에 자리한 정배분교에서 가을운동회가 열렸습니다. 전교생 33명. 유치원생 13명. 굳이굳이 유치원생까지 합하여 가을운동회를 엽니다.

본교인 서종초등학교에서 교장선생님과 교감선생님이 오시고, 전교생이 모여 운동회 시작 전 체조로 몸을 풉니다. 시골 분교 작은 운동장을 넓게 넓게 차지하며 팔 다리를 마음껏 휘둘러도, 휑하니 넓은 공간이 비어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의 주인공은 정배분교 아이들만이 아닙니다. 윗마을 아랫마을 함께 하면 200가구가 넘습니다. 아이들은 비록 50명도 채 안 되는 숫자지만, 마을 어르신들도 모두 나와 함께 하는 마을 축제의 자리입니다.

운동회 프로그램이 25가지... 숨 돌릴 틈이 없어요

▲ 뛰고, 구르고, 터뜨리고, 굴리며 신나는 가을운동회. 프로그램이 무려 25가지나 되었습니다.
ⓒ 공순덕
▲ 오늘은 엄마와 아빠들도 물찬 제비. 허들을 힘차게 뛰어넘고, 망가지는 것도 불사하며 달리고, 또 달립니다.
ⓒ 공순덕
정배분교 가을운동회에는 프로그램이 엄청 많습니다.

왜냐구요? 전교생이 달리기 경주를 해도 10여분이면 경기가 끝납니다. 유치원생들부터 3-4명씩 짝지어 달리는데 12팀이 달리고 나면 끝이 납니다. 도시학교의 한 학급 경기시간이면 충분합니다.

그래서 정배학교 운동회는 프로그램이 쭈~~~욱 많습니다. 모두 합해 보니 25가지나 되었습니다. 그러나 가을운동회에 빠지지 않는 단체 무용·부채춤 같은 것은 볼 수 없습니다. 4·5·6학년을 합해야 15명, 단체로 무엇을 해봐야 그닥 폼이 나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도 신나고 흥미진진합니다. 유치원생부터 고학년, 선생님, 엄마, 아빠, 동네 어르신들까지 모두가 오늘 가을운동회의 선수입니다. 흉내만 내듯 잠깐 참여하고 마는 '찬조' 선수가 아닙니다.

아이들끼리 뛰고, 아이와 엄마 아빠, 선생님이 함께 뛰고, 위험에 빠진 아이들을 구출하기 위해 아이를 둘 셋씩 안거나 팔에 매달고 뛰어야 하며, 온 얼굴에 밀가루 범벅으로 장애물을 넘어야 하는 온몸을 불사르며 참가하는 '주전' 선수들입니다.

운동회에 빠질 수 없는 달리기 시합, 유치원 어린이부터 시작해 전교생이 뛰었고, 엄마 아빠들도 오늘은 물찬 제비가 되었습니다.

널뛰기 판 위에 올려놓은 공을 높이 쳐 받아서 달리는 '날아가는 공을 잡아라'가 이어졌고 하키 장비를 이용해 럭비공 이어 굴리는 '럭비공이 통통 튀어요', 양쪽 발에 풍선을 묶고 상대팀 선수의 풍선을 터뜨리는 '내 풍선은 절대 안돼'가 이어졌습니다.

유치원 아이들이 허들을 아래로 통과하는 장애물 넘기와 초등학교 어린이들의 그물 터널 통과하기, 매트 구르기, 엄마와 아이들의 생수통 굴리기 릴레이도 합니다. 그러고 나선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선물 낚기 게임인 '무엇일지 궁금하시죠'가 이어졌습니다.

숨가쁘게 10경기 해치우고도... 오후 경기 남았네!

▲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선물 낚기 게임인 '무엇일지 궁금하시죠'. 어르신들의 저 낚시줄에 과연 어떤 녀석이 걸려들까요?
ⓒ 공순덕
카드에 쓰여진 지시문을 따라 안경 쓴 사람, 치마 입은 사람, 모자 쓴 사람 찾아오기, '줄넘기는 자신 있어요'의 개인 줄넘기와 청백 단체 긴줄넘기인 '얼씨구! 잘도 넘네!'까지… 이렇게 숨가쁘게 오전 경기를 마치고 점심을 먹었습니다.

오후에는 가위 바위 보로 이긴 사람의 꼬리를 잡는 '내 꼬리를 잡아봐', 전교생이 모두 선수로 뛰는 저학년 축구와 고학년 축구, 그리고 피구경기를 했습니다.

위험에 처한 아이들을 구하는 '살려주세요'도 했고요. 경기에 이기겠다는 열정에 넘치는 아빠들은 안고, 업고, 두 팔에 아이를 매달고, 셋씩 넷씩을 구출하는 영웅심(-.-;;)을 발휘했습니다.

이어진 줄다리기, 유치원생부터 전교생, 학부모 모두가 함께 하는 격전의 장이 펼쳐졌습니다.

오늘 가을운동회의 하이라이트, 청백 계주가 마지막으로 펼쳐졌습니다. 매 경기마다 흥미와 긴장이 함께 했지만 마지막 경기인 단체 계주는 스릴 만점의 대 격돌이었습니다.

5살 유치원생 채운이와 미르부터 시작한 계주는 유치원생·초등학생 46명의 어린이 모두가 참여했습니다. 아이들은 가쁜 숨을 몰아쉬며 운동장을 뛰었고 선 밖에서 함께 하는 할머니, 할아버지, 엄마, 아빠들의 함성과 박수가 함께 한 응원 열기는 운동장을 들썩이게 했습니다.

정배분교의 운동회에는 선생님과 아이들, 엄마와 아빠, 마을 어른들 모두가 함께 하는 마을의 큰 행사입니다.

학부모회가 중심이 되어 몇 번의 모임을 통해 역할을 분담하고, 선생님들과 의견을 나누고 참여하는 과정을 함께 했습니다.

선생님들이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행사의 이모저모를 챙기며 아이들의 체력을 단련시키는 동안 엄마, 아빠들은 운동회 날 손님맞이를 위한 대청소와 먹거리 준비에 힘을 쏟았습니다.

뷔페음식을 하는 회사에 식사를 주문하고, 운동회 진행을 이벤트사에 맡기고, 학부모는 편안히 즐기는 운동회는 아니었습니다.

엄마들이 집에서 멸치도 볶고, 콩나물도 무쳐내는 소박한 상. 학교 뒤편에 무쇠 솥 걸어 참나무 장작으로 밥 짓고, 쇠고기 무국 끓여 내는 손 맛 나는 정성담긴 축제 음식이었습니다.

점심은 무쇠솥밥에 쇠고기 무국, 상품은 빨래판과 고무신

▲ 멸치도 볶고, 콩나물도 무쳐내는 소박한 상. 학교 뒤편에 무쇠 솥 걸어 참나무 장작으로 밥 짓고, 쇠고기 무국 끓여 내는 손 맛 나는 정성담긴 축제 음식이었습니다.
ⓒ 공순덕
▲ 선수로 뛰고, 어르신들 상 차려드리며 1인 3~4역을 담당했던 정배분교 아빠들이 설거지까지 맡아주었습니다.
ⓒ 공순덕
함께 해주신 마을 어르신들 모두 맛나게 국 한 그릇을 후딱 드시고는 송편과 절편, 포도로 입가심을 하며 흐뭇해 하셨습니다.

동문 후배인 손주 아이들의 건강한 모습을 안주삼아 막걸리 한잔으로 흥을 더한 점심이었습니다. 뛰고, 달린 아이들과 엄마, 아빠, 선생님들도 준비한 점심을 맛나게 나누었습니다.

상품도 푸짐하게 준비해 모두모두 받아갈 수 있었습니다. 상품의 하이라이트는 'OX게임'의 승자에게 주어지게 됩니다.

최고상에는 '최신형 드럼세탁기'(=O.O=), '전통 한과'와 '명품 신발'이라는 소문이 돌아 모두를 엄청 설레게 했습니다.

그런데! 뚜껑이 열린 상품의 내용은 이랬습니다.

▲ 최신형 드럼세탁기 → 빨래판
▲전통 한과 → 뻥튀기 과자
▲명품 신발 → 고무신


선수로 뛰고, 어르신들 상 차려드리며 1인 3~4역을 담당했던 정배분교 아빠들이 설거지까지 맡아주었습니다. 머리를 길러 묶은 신세대 아빠들이 앞장섰고, 먹거리 준비까지 한 엄마들은 깨끗이 닦여진 그릇을 마른 수건으로 닦아 정리하는 마무리를 맡았습니다.

매년 그렇지만, 이번에 열린 가을운동회에는 마을 어른들이 많이 참석해 주어 자연스럽게 마을 잔치가 되었습니다. 작은 학교지만, 마을의 중심에 있는 정배분교는 마을 공동체의 자연스런 나눔과 만남의 장이 되어줍니다.

태풍 끝자락이라 파란 가을 하늘은 아니었지만, 학교 운동장을 둘러싼 은행나무의 은행이 노랗게 익어가고, 귓가를 스치는 바람이 시원하고 싱그러웠던 정배학교 운동회는 그렇게 정배마을의 축제가 되어 흥겨운 잔치마당이 되었습니다.

내년에는 더 많은 아이들이 정배학교에 함께 해서 더욱 알차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나누며 함께 하는 흥겨운 놀이마당이 마련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 봅니다. 학교가 마을 공동체의 구심이 되는 그런 곳 정배마을을 꿈꿔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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