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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동차가 들어오고 있습니다. 한걸음 뒤로 물러서주십시오."
ⓒ 김현자
9월 8일 금요일 밤 10시 30분 을지로 3가역. 두번째 탑승이다. 2호선 내부순환선을 타고 한 바퀴 도는데 87분. 주5일 근무제의 마지막 근무일인 금요일 밤에는 모임이나 회식 등이 많아 취객이 가장 많은 날이라고 한다.

이번에는 혼자 운전실에 탑승했다. 신분 확인과 탑승 절차는 사령실을 통해서 짧은 순간에 이루어졌다. 얼떨결에 처음 탔던 며칠 전보다는 마음의 여유가 조금 생겼다. 서울 지하철 중 가장 많은 사람이 이용하고, 환승역이 가장 많은 노선이다.

기관사가 "출퇴근 러시아워에 몇 사람 정도 탈 수 있을 것 같으냐"고 질문한다.

"한 칸에 100명? 쉽게 감이 오질 않아요."
"한 칸에 300명 정도 탑니다."

러시아워엔 한 칸에 300명... 그럼 한 열차에 3000명?

▲ 지하철 운전실에는 안전한 속도만 있을 뿐 야경의 낭만은 없었다.
ⓒ 김현자
며칠 전에 이어 만난 세번째 기관사다. "운전하면서 무엇이 가장 힘드세요?" 두 명의 기관사와 한 명의 차장처럼 이번에도 대답은 거의 같다.

"불규칙한 출퇴근 시간과 불규칙한 식사로 인한 위장병, 나빠지는 시력과 청력, 전자파…. 그러나 누구든 해야할 일이니 힘든대로 참을 수 있습니다. 이런것 저런것 따지면 끝도 없죠. 다른 직장인들이라고 편하게 돈 벌겠습니까? 우리들이 가장 힘든 것은 언제 일어날지 모르는 사상사고입니다."

며칠 전에 만난 기관사들도 같은 대답을 했다. 언제 어떻게 일어날지 모르는 사고 때문에 역으로 들어설 때 가장 긴장하고 많은 신경을 쓴다고 한다. 아차 하는 순간이 발생하더라도 일반 자동차처럼 브레이크를 함부로 밟을 수도 없지 않은가!

"아무 잘못이 없어도 자책하고 사고 순간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요. 사람이니까 별별 생각이 드는 거죠. '그 때 어떻게든 죽음을 막을 수 있었을 텐데….' 이겨내지 못하고 정신과 치료를 받다가 결국 이직하는 사람들도 많아요. 그러나 이직한다고 눈 앞에서 일어난 죽음이 어디 쉽게 잊혀지겠습니까? 평생 치유할 수 없는 치명적인 일이죠."

이런 경우 십중팔구 죽는 사람과 눈이 마주친다고 한다. 자살하는 사람들은 선로가 아닌 달려 들어오는 전동차를 보면서 뛰어들기 때문이다. 죽음 직전의 얼굴을 보았는데 어찌 쉽게 잊을 수 있을까?

지하철에 뛰어들어 자살을 하는 경우 한 사람의 죽음으로 끝나지 않는다. 오죽하면 목숨을 버릴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도 이로 인해 죄없는 기관사들이 심한 정신적 고통을 겪고 심지어 가정이 피해를 입는 부분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 사상사고를 줄이기 위해 설치한 스크린 도어. 열림중(좌)와 전체열림완료(우)
ⓒ 김현자
▲ 빨간핸들의 용도는?
ⓒ 김현자
지하철 자살, 죄책감과 충격으로 이직하는 사람들도

몇 정거장이나 왔나? 2호선은 지상구간이 3분의 1이다. 200m 간격으로 설치되어 있는 신호기를 확인하면서 3호선처럼 기관사가 일일이 수동조작을 하고 있었다. 구간마다 제각기 다른 속도제한에 맞추어 속도조절을 한다.

앗! 지하철 선로에도 오르막길이 있었네? 객실에서는 오르막길이 있다는 걸 전혀 몰랐고 곡선도 심하게 느껴지지 않았는데, 운전실에 타보니 곡선 구간이 나타나면 마음이 조마조마해졌다. 오르막길이 있다는 것은 아무래도 그랬다.

오후 11시를 넘긴 금요일 늦은 밤. 역마다 많은 사람들이 지하철을 기다리고 있었다. 전동차 운전실은 며칠 전보다 훨씬 시끄러웠다. 기관사는 지하철 사령실과 자주 교신하고 있었다.

기자가 탑승한 전동차는 출발부터 17분 가량 늦었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타면서 한 군데 역에서 몇 초씩 초과하다 보면 결국 몇 분이 늦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지하철이 조금이라도 늦는 가장 큰 이유는 자기만 생각하는 한두 사람과 질서에 둔감한 사람 때문이다.

"대부분 승객들은 질서를 잘 지키는 편입니다. 그런데 꼭 한두 사람이 문제입니다. 말 그대로 대중교통이니 다른 사람도 배려를 해야 하는데 자기 편한 대로만 하려는 사람들이 있어요. 무리한 탑승을 시도하는 사람들 때문에 몇초가 우습게 지나갈 때도 많아요.

또 걸핏하면 민원을 넣는 사람도 있어요. 에어컨이 세게 나오지 않는다는 민원에 확인해 보면 자기는 넥타이 매고 양복입고 덥다고 민원을 넣는 경우가 대부분이죠."

밤 12시 가까운 시각. 많은 사람들로 혼잡했고 문이 닫히는 순간 무리하게 타려는 사람도 많았다. 차장 혼자는 무리. 기관사는 차장의 일을 돕기도 했다. 만취한 사람이 역에 앉아 졸고있는 것까지, 지하철에서 일어나는 모든 상황이 기관사와 사령실 간에 신속하게 교신되고 있었다.

ⓒ 김현자
▲ 까만 수화기의 용도는?
ⓒ 김현자
"대부분 승객은 질서지키는데, 꼭 한두 사람이 문제"

"명절 때는 기분이 좀 그렇죠?" 앞서 세 사람에게도 했던, 대답이 뻔한 질문을 했다.

"운 좋으면 몇년에 한 번 명절에 쉴 수도 있습니다(웃음). 명절에도 지하철은 운행을 해야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죠. 다 쉬면 누가 운전해요? 직업으로 택할 때 각오한 일이죠. 이런 거 저런 거 따지면서 먹고 살 수 있습니까? 주5일근무제도 딴 나라 이야기일 뿐이죠. 지난번 월드컵 때 친구들과 술 마시면서 응원하는 사람들이 참 부럽더군요(웃음)."

"지하철을 이용하는 승객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 없으세요?" 이미 다른 사람들에게 했던 질문을 똑같이 했다. 사전에 약속이라도 한 듯 대답도 같았다.

"질서에 대해 가장 부탁하고 싶습니다. 질서는 서로 상대적이지 일방적으로 한 방향일 수는 없지 않습니까? 내가 질서를 지키면서 혜택을 받으려고 해야지 자신은 질서를 지키지 않으면서 상대방에게만 바랄 순 없죠.

기관사야 승객들의 시간과 안전, 편의를 위해 최대한 배려하려고 노력하지만 자기만 생각하는 몇몇 사람들 때문에 다른 사람들까지 피해를 입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질서는 사회의 소중한 약속입니다."

승객으로만 생각했던 나, 무조건 반성한다

밤 12시쯤 을지로 3가에서 내렸다. 늘 승객으로 타다가 운전실에 타보니 승객의 입장일 때 전혀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였다.

바쁠 때 나도 가끔 뛰어 탄다. 차장의 다그치는 듯한 목소리에 기분 나빠하면서. 지하철 안이 어느 때는 너무 차갑다고, 어느 때는 너무 덥다고 속으로 투덜거릴 때도 있다. 요금을 올릴 때는 불만도 있었다. 떠나버리는 차를 향해 원망할 때도 있다. 무조건 반성한다.

이번에도 아주 잠깐 탄 줄 알았는데 87분! 긴장을 하다보니 시간이 정신없이 흘렀다. 이번에도 지난번처럼 눈이 벌겋게 충혈되어 있었다. 운전실의 전자파 때문이다. 내가 편하게 이용하는 지하철은 기관사와 차장, 사령실 간에 손발이 척척 맞아서 가능했고, 무엇보다 기관사와 차장의 '승객의 안전이 최우선'이라는 자세에서 가능했다는 걸.

▲ 질서는 사회의 소중한 약속이다
ⓒ 김현자

덧붙이는 글 | ※취재에 협조해주신 서울 매트로 관계자분들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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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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