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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석훈 박사.
ⓒ 오마이뉴스 이종호
"(한미FTA가 체결되면) 80%정도의 국민이 나쁜 영향을 받을 것 같아요. 물론 나머지 상위계층은 이득이 될 수도 있겠지요. 제 생각엔 최소한 4인 가족 기준으로 연소득 6000만원 이하 국민들은 이민을 심각하게 고민해야할지 모릅니다."

우석훈 박사(39)는 거리낌이 없어 보였다. 경제학자로서 한미FTA(자유무역협정)에 대해 국민들에게 제대로 알려야 한다는 것이었다. 국민 개개인에게 어떤 변화가 생길 것인지 말이다.

또 한미FTA 협상으로 누가 이익을 보고, 손해를 보게될 것인지조차 우리는 모르고 있다고 단언한다. "왜 그러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아직 그런 분석조차 한번도 제대로 된적이 없다"는 답이 돌아왔다.

우 박사는 독특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프랑스 10대학에서 공부를 마치고 정부 산하 기관과 국무조정실 등에서 5년 동안 공직자 생활을 하기도 했다. 그동안 유엔의 기후변화협약 총회 등에서 정부를 대표해 협상을 이끌기도 했다. 그는 당시 미국 등 강대국과의 협상과정을 짤막하게 소개했다.

"협상장 분위기는 한마디로 살벌하죠. 실무진들 회의에선 서류를 집어던지기도 하고, 물론 본회의에선 그런 일이 없지만…. 별 상관도 없는 투자유치 건을 들면서, 압박하기도 합니다."

지난 26일 <오마이뉴스> 사무실에서 2시간여 동안 그를 만났다. 우 박사는 최근 '한미FTA 폭주를 멈춰라'라는 제목의 책도 냈다. 그는 이 책에서 한미FTA가 체결되면 한국 국민의 절반 이상이 피해를 입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좀더 구체적으로 보면, '4인 가족기준으로 연봉 6000만원'이라는 가이드라인을 내놓았다.

"왜 6000만원이냐"고 물었다. 그는 "한미FTA로 국민의 50% 이상이 손해볼 가능성이 크다"면서 "국민소득을 1만5000불로 잡고, 4인 가족으로 환산하면 그 정도(6000만원) 된다"라고 답했다.

4인 가족 연봉 6천만원 이상만 살아남을 듯... 국민 80% 타격

그렇다면 누가 살아남을까. 한미FTA가 현재 방식대로 진행됐을 때의 가정이다. 일단 4인 가족 기준으로 가구소득이 연 6000만원 넘는 사람들이다. 농민들도 있다. 5000평 수준의 다품종 소량생산의 유기농 체계를 갖출 수 있는 사람이다. 유기농 시장을 염두에 뒀기 때문이다.

제조업에선 기술력이 있는 업종의 사람들이다. 미국 기업의 하청으로 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서비스업에선 자신의 업종이 보호조항에 들어가 있다면 일단 생존할 수 있다.

금융관련 직종은 정규직 창구직원인 경우는 1차로 생존 가능하다. 월급도 약간 높아질 가능성이 있다. 비정규직은 어렵다. 동네 부동산업체들도 일단 안정권으로 본다.

공무원과 교사, 군인들은 한미FTA와 직접적으로 해당사항이 없다. 하지만 정부출연기관이나 유관기관에서 일하는 사람 가운데 소득이 6000만원 이하라면 자신이 살아갈 방법을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 법무법인, 회계법인, 병원 등은 보다 치열한 경쟁에 놓이면서, 토종을 찾아보기란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다.

한미FTA 이후 현재보다 삶이 나아질 국민은 어느 정도일까. 우 박사는 "추정하기 쉽지 않다"면서도 직업분포와 소득분포도 등으로 분석했다. 그는 "소득 수준이 10% 이내의 사람들은 지금보다 사정이 나아질 것"이라면서 "공무원을 포함해 20% 정도 국민은 큰 타격 없이 상황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문제는 나머지 80%. 국민의 다수가 이에 들어간다. 자신이 한심스럽거나 태어난 것이 괴로운 상황에 직면할 것이라고 했다. 또 취업하지 않은 대학생이나 더 어린 국민들의 경제적 운명도 그리 밝지 않다고 했다. 우 박사는 '양극화'라는 단어보다는 '해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말로 마무리했다.

정작 국내시장도 잘 파악 못하는 정부와 전략 부재의 업계

▲ 우석훈 박사.
ⓒ 오마이뉴스 이종호
이야기는 자연스레 한미 간 협상테이블로 옮아갔다. 우 박사는 한국 협상단이 국내 시장에 대해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지조차 의문스럽다고 했다.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김영삼 정부까지 철강이나 석유화학, 시멘트산업은 별도로 (정부부처 안에) 전담하는 부서가 있었어요. 근데 국제통화기금(IMF) 체제 이후 정부에서도 구조조정이 일어났죠. 그래서 이들 분야를 '기초소재산업과'라는 한 과가 담당하게 됐죠. 담당관 한 명이 말이죠."

여기에 국내 공무원사회의 독특한 '순환보직제'가 있다. 정부 담당자의 전문성을 살리기 어려운 구조인 셈이다. 우 박사는 "최근 담당자들 보면 자신이 파악해야할 산업 업체 이름도 잘 모르는 경우가 있을 정도"라며 "어차피 몇 달 안에 다른 자리로 옮길 것이기 때문에 굳이 파악할 이유를 느끼지 못하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민간 부문도 마찬가지다. 업종별로 협회에서 나름대로 공동 대응하고 전략을 만들어야 하지만 이마저 여의치 않다는 것이 우 박사의 지적이다.

그는 "정부도 국내시장을 잘 파악하고 있지 못하고, 업계도 협회를 통해서 전략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 우리 현실"이라며 "그런 한국이 지금 세계에서 가장 협상 능력이 뛰어나다는 미국을 상대로 협상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협상 끝나고 국회 거쳐 국민투표해야"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우 박사는 책 제목으로 '한미FTA의 폭주를 멈춰라'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렇다고 당장 폭주가 멈춰지기는 어려울 것 같다. 이는 그도 인정하고 있다. 다시 그의 말을 들어보자.

"지금 해야할 것은 국민과 다양한 대화를 시작하는 일이예요. 선진국이 될수록 국민들은 정부가 '친절한 정부'가 되길 바라지, '빅브라더'처럼 국민들 위에서 미리미리 결정해주는 전부가 되길 바라지 않아요."

우 박사는 국민투표를 대안으로 꼽는다. 그는 "협상안 체결이 끝나고, 국회의 비준동의가 종료된 다음에 국민투표가 진행되는 것이 가장 부드러운 절차"라고 말했다. 이렇게 되면, 정부의 협상력을 높이고, 협상 내용도 보다 철저한 검토가 진행될 것이라는 것이다.

"한국사회는 경제규모가 커짐에 따라 정치도 더 분화할 것이고, 시스템의 복잡성도 높아질 것 입니다. 한미FTA를 통해 '한강의 기적'이 또 다른 기적을 만들 것인지, 아니면 노무현이라는 조금은 특별한 대통령을 만나서 '한강의 괴물'이 될 것인지. 그 분기점에 지금 우리가 서 있는 거죠."

우 박사의 마지막 충고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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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황의 원인은 대중들이 경제를 너무 몰랐기 때문이다"(故 찰스 킨들버거 MIT경제학교수) 주로 경제 이야기를 다룹니다. 항상 배우고, 듣고, 생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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