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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해
벗겨진 앞머리와 우스꽝스럽게 땋아내린 꼬랑지머리, 유랑기마민족이면서도 남의 나라 땅을 차지하고 앉아 삼백년 동안이나 통치했던 무지막지한 나라, 우리의 임금이 땅에 머리를 짓찧어 사죄하게 만들었던 야만스러운 오랑캐…. 청나라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이다. 가만, 청나라가 정통 중국사에 포함되는 나라이던가? 문득 궁금해진다.

한국인들에게 있어 청나라의 이런 이미지는 어쩌면 인조반정이 성공하고 광해군이 역사의 패자로 새겨지던 그 순간부터 이미 정해진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조선의 사대부들이 일생에 걸쳐 사모했던 대국, 천자의 나라는 명나라가 망하는 것과 함께 그 존재가 휘발되어 버렸다. 그리고 그 이후, 그들의 먼 후손인 우리의 머릿속에서도 청나라는 여전히 정체성이 모호하다.

<창궁의 묘성>은 청나라를 본격적으로 다룬 소설이다. 청은 1616-1911까지 중국을 지배했던 나라로 자신보다 열배는 넘는 인구를 가진 한족을 삼백년 가까이 통치하면서 두 민족의 통합을 이루어낸 강대국이었다. 강희제, 옹정제, 건륭제라는 걸출한 황제를 세 명이나 탄생시켰으며 이미 강희제 시절부터 서양문물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부국강병의 수단으로 삼았다.

야만스런 오랑캐쯤으로 치부해버리기엔 너무나 선진화된 문물을 가지고 있었던 나라였던 것이다. 서양문물을 실컷 흡수한 뒤 무자비한 천구교 박해에 들어가는 모습은 ‘실리’로서 제국을 지탱해나갔던 청나라의 성격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예시라 할 수 있겠다.

이 작품은 청나라가 외세에 휩싸이기 시작했던 서태후 통치기를 기본 골격으로 하고 있지만,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혼용시점을 사용하여 사실상 청나라의 시작부터 끝까지를 다 보여주고 있다. 특히 청의 전성기라 할 수 있는 건륭제 시절은 청나라 말기 못지 않게 자세하게 그려진다.

서태후의 최측근 환관이었던 이춘운과 황제의 오른팔이었던 양문수라는 두 인물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펼쳐가지만 중간 중간 여러 인물들의 시선을 삽입하여 점점 더 시대를 확장해가는 작가의 솜씨는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아사다 지로가 이토록 훌륭한 역사작가였던가.

삼백여년에 걸친 중국사를 물흐르듯 자연스럽게 그려내는 작가의 손끝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는 동양의 뜨거운 감자, 영원히 이국적인 도시 ‘홍콩’의 운명과 만나게 된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경우 대단히 편리한 표현이 있어요. 그것은 이런 겁니다. 완전을 백이라 합시다. 백에 한걸음 못미치는게 99요. 즉 99라는 숫자는, 우리나라에서는 영원을 의미하오. 그리고 이것을 황상 폐하께 보고하면, 나는 영토를 빼앗겼다는 책임을 회피할 수도 있소. 빌려주는 것은 어디까지나 빌려주는 것이니까 말이야. 황제폐하도 노신들도 모두 암묵 속에서 나의 처지를 이해해 줄테지요.

물론 당신네들도 의회로부터 책임 추궁을 당할 일은 없을 것이오. 설마하니 우리나라가 99년이나 지속되리라고는, 누구 한 사람 생각지 않을테니까. 어떠시오, 명안 아닌가? 그래서 나는, 이 <전확향항계지전조>의 조차 기한을 조인한 때로부터 헤아려 향후 99년간, 즉 서기 1997년 6월 30일까지로 할 것을 제안합니다…


이 장면은 청나라 전권대사 이홍장이 영국대사와 만나 홍콩할양을 담판짓는 장면이다. 이홍장이 아니었다면 홍콩은 영원히 영국의 영토가 되어버렸을 것이다. 이홍장은 아무도 생각하지 못한 99년과 영원이라는 은유를 사용하여 홍콩이라는 도시를 영국의 마수에서 건져내었고, 당대의 사람들은 그 의미조차 깨닫지 못했다.

그러나 백년 후의 시대를 살고 있는 현대인인 우리들, 홍콩의 번영을 보았고, 99년동안 엄청난 도시 기능을 갖게 된 홍콩이 통째로 중국으로 다시 넘어가는 것을 목격했다. 그리고 그로부터 몇 년이 흐른 후, 일본 작가의 붓끝을 통해 그 운명을 만들어낸 이가 누구였었는지를 알게되고 마냥 감탄하게 된다. 역사를 움직이는 건 결국 한 명의 인간이구나. 청은 참담하게 폐망했지만 이홍장이라는 걸출한 인물을 가졌다는 면에서 그나마 행운이었다고 할 수 있으리라.

거대한 제국이 스러져가던 시기, 각자 속한 곳에서 스스로 정한 최선의 도리를 다했던 사람들의 인생이 역사 곳곳에 스며들어 별처럼 빛난다. 외국인이, 그것도 청나라 침략에 주도적인 역할을 했던 일본 국적을 가진 소설가가 청나라의 모습을 이처럼 깊이있게 그려냈다는 사실이 놀랍다.

역사소설이란 결국 ‘개연성’하나를 붙잡고 끝까지 걸어가야하는 험난한 여정이다. 한정된 자료와 역사적 사실 몇가지를 가지고 몇백년전의 이야기를 마치 현재 살아있는 인물의 이야기를 듣는것처럼 친근하게 그려내는 것은 전적으로 작가의 상상력에 달려있다. 그리고 이 상상력이라는 측면에서 아사다 지로의 역량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재미있게 읽히는 통속소설을 많이 짓는 작가 정도로만 생각했던 아사다 지로의 변신은 놀랍고, 한편으론 뿌듯하다. 타고난 재능으로 한번에 두각을 드러내는 사람보다는 오랜 세월에 걸쳐서 스스로 조금씩 발전을 이루어내는 사람에게, 아무래도 같은 유한자인 인간으로서 좀 더 친근감이 가는 법인가 보다.

이 작품은 1996년 '한국경제 신문사'에서 세 권 짜리로 이미 출간했었던 것을 근래에 '창해'에서 네 권으로 다시 펴냈다. 책의 권수를 늘린다는 전형적인 상업적인 몸짓조차도 아주 미미한 흠 정도로 인식하게 만들어버리는 이 방대한 소설은 작가 스스로도 ‘이 작품을 쓰기 위해 작가가 되었다’라고 말한 바 있는 아사다 지로 최고의 역작이다.

창궁의 묘성 - 전4권 세트

아사다 지로 지음, 이선희 옮김, 창해(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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