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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둔리. 지금은 모든 도로가 아스팔트로 포장됐지만 어느 방향에서 가더라도 큰 고개를 2, 3개 넘어야 하고, 거리에 비해 시간이 많이 소요되는 곳이다. 흔히 '오지'라고 말하는 곳이라 생각하면 되겠다.

▲ 내린천이 휘감아 흐르는 살둔마을.
ⓒ 우관동
고개를 다 내려가면 생둔2교 다리가 나오며 그 다리 끝나는 부분에서 왼쪽으로 들어가면 굽이져 돌아가는 내린천 상류를 만날 수 있다. 근방 분교 뒤로 너른 감자밭이 있고 그 뒤에 자그맣게 살둔산장이 보인다.

사람이 살만한 곳으로 "이곳에 머물면 산다"는 뜻의 살둔마을. 행정상으로 강원도 홍천군 내면 율전리에 속한다. 일제시대 행정구역 통폐합 조치에 의해 한자화 하면서 지명이 바뀌어 지도상에는 생둔(生屯)으로 표기돼 있지만 주민들은 지금도 살둔이라 부른다. '내린천'이라는 이름은 홍천군 내면과 인제군 기린면에서 한글자씩을 따서 지어졌다.

조선시대 예언서인 <정감록(鄭鑑錄)>은 '삼둔 사가리'라 하여 일곱 군데의 피난지소를 기록하고 있는데, 이는 난을 피하고 화를 면할 수 있는 곳이란 뜻으로, 전하는 말에 의하면 피난굴이 있어 잠시 난을 피했다 정착했다는데서 유래된 곳들이다.

그러나 그러한 피난굴은 찾을 수 없고 세 곳의 삼둔과 네 곳의 사가리만이 남아 있는데, 삼둔은 홍천군 내면의 살둔(생둔),월둔(달둔) 그리고 귀둔이고, 사가리는 인제군 기린면의 아침가리, 명지가리, 연가리, 곁가리로 예로부터 인정하는 오지 속의 오지들이다.

삼둔 사가리에 전해오는 유래

▲ 살둔마을을 감싸고 있는 높은 산
ⓒ 우관동
이러한 피난지소들이 홍천군 내면과 인제군 기린면에 집중된 이유는 다름 아닌 지형지세에서 찾을 수 있다. 방태산(1435.6m) 구룡덕봉(1388.4m) 응복산(1155.6m) 가칠봉(1240.4m) 등 대부분이 1000m가 넘는 고봉들로 둘러싸여 과연 이런데서 사람이 살았을까 할 정도로 믿기 어려울 정도의 험준한 곳들인 것이다.

그러나 그곳으로 찾아가는 길목이 그럴 뿐 일단 마을로 들어가면 다르다. 신기하게도 그곳엔 대부분 안락의자를 연상케 하는 아늑함과 함께 널따란 공간이 펼쳐져 있기 때문이다. 마을 앞으로는 사철 마르지 않는다는 계곡이 있고 알맞을 만큼의 농토도 있어 세상을 등져야 할 사연을 가진 이들이 정착하기에 최적의 장소였던 것이다. 예로부터 왕을 저버렸거나, 왕으로부터 버림을 받은 사람들이 숨어들어 살았다고 전한다.

강원 인제 땅에는 독특한 지명이 있다. 기린면이다. 말 그대로 기린(麒麟)이다. 기린이 우리 땅에 들어온 것은 일제시대 때 창경궁을 동물원인 창경원으로 만들면서이다. 그런데 어떻게 지명이 기린일까. 현지 향토사학자들은 진짜 기린이 아니라 사슴을 형용한 지명이라고 풀이한다.

지금은 찾을 수 없지만 인제에는 사슴이 많이 살았다고 전해진다. 사람의 흉한 손길을 피해 사슴들이 몸을 피한 곳이다. 워낙 골이 깊고 산이 험하기 때문이다. 사슴뿐 아니라 사람도 피했다.

▲ 미진각이라고 불렸던 살둔산장
ⓒ 우관동
살둔산장지기가 돌아왔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래서 조경동 답사겸 예정에 없는 계획을 세우고 달려갔다. 여행가, 산악인, 기자, 화가, 문학가, 시인들이 많이 찾는 곳 살둔산장.

2층으로 된 목조건물인 살둔산장의 외부는 아직 못다 지은 집이라 해서 '미진각(未盡閣)'이라고도 하고 산이 반, 물이 반이라는 뜻의 '산반수반정(山半水半亭)'으로도 불린다. 또 2층 작은 마루는 바람을 베고 눕는다 하여 '침풍루(寢風樓)'라 한다.

산장이 준공된 것은 1985년. 백담산장을 지키던 고 윤두선씨가 백담산장이 국립공원에 인수되면서 이곳에 터를 잡고 월정사를 짓던 대목을 불러다 지었다. 본디 산장의 이름은 '미진각(未盡閣)'이었다. 돌기와로 멋지게 지붕을 올리고 싶었지만 자금이 모자라 함석을 올린 게 한스러워 그렇게 이름 붙였다고 한다.

▲ 우리의 전통적인 귀틀집 형태로 지어진 산장.
ⓒ 우관동
1980년에는 이곳 도로가 잘 나있지 않아 오대산에서 구한 원목을 내린천 강물을 이용하여 떠내려 보내고 그것을 가지고 산장을 지었다고 한다. 1981년에 짓기 시작하여 1985년 10월에 완공되었으니 4, 5년 걸려 지은 것이다.

지은 지 21년이 지났지만(1985년 준공) 틈새하나 나지 않아 '한국사람이 살고 싶은 집 100선'에 꼽히기도 한 살둔산장은 1년 내내 산사람들과 여행자들이 끊이지 않는다. 이곳에 오면 누구나가 자연인이 된다. 무념·무상의 상태로 맹현봉과 군암산, 개인산의 정기를 그대로 받으며 내린천의 시원한 물줄기로 목을 축이면 무릉도원이 따로 없을 정도로 이곳은 태초 그대로의 모습이다.

▲ 이층 누각 침풍루
ⓒ 우관동
2층 작은 마루는 바람을 베고 눕는다 하여 '침풍루(寢風樓)'라 한다. 이곳 살둔산장에 문명의 이기는 별로 없다. 그 흔한 TV도 없고 인터넷은 당연히 없다. 전화만 있을 뿐 수수한 시골 토담집같은 느낌 그대로이다. 온돌은 장작에서 기름보일러로 바뀌었고 주방에 공용 가스레인지와 냉장고, 그리고 주방식기가 있을 뿐이다.

1년 반 동안 닫혀있다 지난 6월 다시 열린 살둔산장

▲ 1층 마루와 이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 우관동
살둔마을이 세상에 알려진 것은 귀틀집 살둔산장 때문이다. 윤보선 대통령의 조카가 4년여에 거쳐 공들여 지었다는 산장은 마을을 감싸고 휘도는 내린천 앞에 자리 잡았다.

사람들이 겨울에 산골 살둔을 찾는 이유는 전통 귀틀집에서 순백의 오지마을을 보기 위해서다. 이곳을 대표하는 살둔산장 역시 강원도 지역의 전통 귀틀집 모양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이 집을 지을 때 산장 바닥을 사람 키만큼 판 다음에 숯가루 소금 모래자갈을 세 겹이나 쌓고 그 위에 통나무를 올렸고, 통나무 사이에는 짚을 넣고 흙을 개어 덧발랐다고 한다. 통나무를 '우물 정'자로 쌓아올려 지은 집은 각 모서리마다 홈을 파서 단단히 끼워 넣었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설경은 무척 아름답다. 겨울이면 눈이 참 많이 내린다. 눈이 한 번 내리면 사람 허리 높이까지 내린다. 그래서 순백의 살둔산장은 겨울이면 더욱 인기 있는 곳으로 떠오른다.

▲ 오랜만의 만남 속에 밤은 깊어만 간다.
ⓒ 우관동
시원하고 맑아서 오히려 밖에 있고 싶은 곳이다. 그러나 이곳의 바람은 추웠다. 밤이 늦도록 추억을 마셨다. 그리고 그간의 못다 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곳 공기가 좋아서 인지 아침 5시에 상쾌하게 눈이 떠졌다.

▲ 살둔산장 앞을 흐르는 내린천
ⓒ 우관동
머리 위로는 우수수 쏟아져 내릴 듯 수많은 별이 보였다. 밖에는 겨울 재킷을 입어야 할 정도로 거센 바람이 불었지만 방안에는 바람 소리 하나 들리지 않았다.

▲ 조경동 계곡 탐사를 위해 떠나야 한다.
ⓒ 우관동
한곳에 머물지 않는 바람처럼 또 다시 다음 목적지로 가기 위해 배낭을 꾸렸다. 조경동 계곡 트레킹 시 폭우를 대비해서 40m자일 1동을 챙겼다. 하얀 눈 덮인 겨울에 다시 이곳을 찾으리라 다짐하면서….

▲ 바람으로 남을 산장지기
ⓒ 우관동
태고의 신비가 그대로 살아 숨쉬는 '살둔산장'의 산장지기 이상근씨는 자연에 묻혀 산사람들의 가이드 역할을 톡톡히 해왔다. 40여 년 동안 산을 탄 산장지기 이상근씨의 덥수룩한 수염에선 오지마을의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그는 6년 전 이곳을 떠났었다. 그리고 이번에 다시 바람처럼 돌아왔다. 그는 우리 일행이 떠나는 내내 우리의 뒷모습을 쳐다보고 서 있었다. 그는 이곳에서 다시 기약 없는 만남을 기다리며 산마루에 불어오는 바람처럼 그리고 자연처럼 살아갈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여행 경로
서울 -> 영동 고속도로 -> 속사인터체인지 -> 운두령 -> 창촌 -> 살둔리(살둔산장) -> 미산계곡 -> 상남 -> 내면 -> 서울 

살둔리로 가려면 영동고속도로 속사 나들목에서 빠져 운두령을 넘는다. 창촌에서 56번 국도를 타고 북쪽의 구룡령쪽으로 올라가다가 광원리에서 좌회전해 446번 지방도(미산계곡길)를 따라 간다.

우관동 기자의 여행 블로그 Naver, Daum의 "한국의산천"에도 게재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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