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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시작전통제권 환수와 관련한 전 국방장관들의 모임이 10일 오전 서울 신천동 향군회관에서 열렸다. 전직 국방장관들은 회의를 마친 뒤 "전시작전통제권 환수는 언제라도 좋다는 노무현 대통령의 발언에 경악을 금치 못하며, 결코 이 발언에 동의할 수 없다"며 "국민적 합의를 형성하기 위한 국회 동의절차를 거쳐야 한다"는 등의 내용이 들어간 성명서를 발표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진풍경이다. 역대 국방장관들이 전시 작전통제권 환수에 반대하며 집단행동에 나선 것. 도대체 이런 경우가 어디 있던가. 과거 정권의 장관들이 나서가지고 현 정부의 정책에 대해 압박을 가하는 집단행동을 하는 것은 여러모로 온당치 못하다.

어디 떳떳한 정권의 장관들이기나 했나. 그들 가운데 상당수는 군의 정치적 중립을 파괴했던 독재정권 혹은 권위주의 정권 아래에서 장관직을 지냈던 사람들이다. 그런데 그 시대의 잣대를 가지고 오늘의 국방정책을 심판하려는 만용을 이들은 부리고 있다. 마치 자신들이 아직도 국방정책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세력인 것처럼 말이다.

'원로'들이 개인적인 의견을 말하는 것이야 뭐라 할 바 아니지만, 전직 장관들이 국가정책에 대해 이런 식으로 집단적 압력을 넣는 행동을 하는 것은 듣지도 보지도 못했던 일이다. 자신들의 위치를 잘못 생각한 행동이다.

국방원로의 의견 무시해도 좋은 이유

그러면 그들의 목소리는 '원로'들의 고견으로 과연 존중되어야 할까. 그들의 의견을 무시해도 좋은 몇가지 이유를 밝혀보자.

먼저 이날 회동에 참여했던 사람들의 면면이다. 유신독재 아래에서 줄곧 여당 의원하다가 민정당 대표를 지냈고 마침내 부정축재로 물러났던 인사, 12·12 쿠데타에 가담했던 인사들, 12·12 쿠데타 때 반란군 진압의 임무를 팽개치고 사라졌던 인사, 5·17에 가담하고 국보위에 참여했던 인사들, 율곡비리로 구속되었던 인사들….

우리 군을 독재정권의 사병으로 전락시켰거나, 국기를 무너뜨리는 하극상의 행동을 했거나, 신성한 국방의 책임을 비리로 오염시켰던 인사들이다. 전부는 아니지만, 집단행동에 나선 역대 국방장관들 가운데 상당수가 이렇게 떳떳치 못한 전력을 갖고 있다.

그런 전력의 소유자들은 안보를 무너뜨리거나 위협하는 행동을 했던 사람들이다. 과연 이들이 '원로'라는 이름을 내걸고 나라를 지키는 문제에 대해 목소리를 높일 자격이 있을까. 안보를 논할 자격이 있을까. 아무리 세월이 많은 것들을 잊게 해준다 해도, 우리 군의 역사에 오점을 남긴 그들이 안보의 수호자처럼 나서는 모습은 납득할 수가 없다.

도덕적인 자격의 문제뿐만 아니다. 이들의 주장은 이율배반적이다. 작전통제권 환수가 노태우 정부, 김영삼 정부 아래에서도 추진되었음은 여러 자료들을 통해 확인되고 있다. '평시' 작전통제권 뿐 아니라 '전시' 작전통제권 환수까지도 계획했었다. 전시 작전통제권 환수는 노무현 정부의 돌출적인 정책이 아니라, 역대 정권들의 공통의 목표였음이 확인되고 있다.

몇몇 인사들의 경우, 과거에는 자신들도 작전통제권 환수에 나섰으면서도 정작 현정부의 같은 정책에 대해서는 반대하는 이중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 자신들이 하면 '자주국방'이요, 노무현 정부가 하면 '한미동맹 파괴'가 되는 것이다. 1994년 평시 작전통제권이 환수되자 '자주국방을 향한 일보전진'이라며, 전시 작전통제권도 빨리 환수되어야 한다던 언론들이 이제와서는 정반대의 주장을 하고 있는 것과 닮은꼴이다.

결국 문제는 작전통제권 환수라기보다는, 그것을 추진하는 주체가 노무현 정부라는데 있는 것이다. 같은 정책을 갖고도 어떤 정권이 추진하느냐에 따라 '전진'이 되기도 하고, '파괴'가 되기도 하는 셈이다.

미국이 국내 반대론자 설득하는 모양새

그렇다면 철저한 정치논리이며 정치적 논란이다. 국방의 미래를 내다보며 걱정하는 우국충정보다는, 집권세력에 대한 적대적 태도가 이들의 집단행동을 낳고 있는 것으로 비쳐지게 되어있다.

미 국방부와 벨 주한미군 사령관은 한·미 동맹은 굳건히 유지될 것이며, 한국의 전시 작권통제권 환수를 적극 지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이드 미 하원 국제관계위원장도 "한국군이 여러 방면에 있어 상당한 궤도에 올랐고, 작전통제권은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이양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미국이 노무현 정부에 불만이 있어 전시 작전통제권을 넘기는 게 아니고, 양국의 장기적 관계 설정에 꼭 필요해서 한다는 것이 미 국방부의 설명이다.

이제 미국이 나서서 한국 내의 반대론자들을 설득하는 모양이 되고 있다. 전시 작전통제권 이양이 해외주둔미군 재배치계획(GPR)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것임을 미국 정부가 누누이 설명해도 국내의 반대론자들은 마이동풍이다. 굳건한 한·미동맹론자들이 미국정부의 말조차도 들으려하지 않는 상황이 빚어지고 있는 것이다.

한마디로 소동이다. 과거 국방장관을 지냈다는 사람들이 나서서 한미 양국 정부의 설명은 들으려조차 하지 않고 안보불안 심리를 자극하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된다. 역대 국방장관들은 오늘(11일) 보수단체들이 주최하는 집회에 참석하여 거리로 나설 것이라 한다.

지난날 그리고 오늘, 정말로 안보를 흔들었고 흔들고 있는 사람들이 누구였던가를 반문하게 된다. 자기나라의 군사주권마저도 저토록 당당하게 부정하는 오늘의 이 부끄러운 장면을, 우리는 역사에 또 어떻게 기록해야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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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종양 수술 이후 방송은 은퇴하고 글쓰고 동네 걷기하며 지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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