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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밀리언하우스
세종시대 집현전 학자들의 연쇄살인사건을 소재로 한 역사추리소설 <뿌리 깊은 나무>가 출간되었다. 이 작품은 그동안 역사소설의 배경으로 잘 다뤄지지 않았던 세종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어 더욱 눈길을 모으고 있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금서를 둘러싸고 발생하는 의문의 살인사건과 훈민정음 창제를 둘러싼 음모와 비밀들은 세종시대를 단순히 태평성대로만 알고있던 일반인들에게 다소 낯선 모습일 수밖에 없다.

더구나 훈민정음 창제가 세종과 집현전 몇몇 학자에 의해 극비리에 진행되었던 특급 '프로젝트'였을 거라고 추측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도대체 세종시대에는 과연 어떤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이 책의 저자 이정명씨에게 <뿌리깊은 나무>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아울러 그가 생각하는 세종시대와 세종이라는 인물에 대해서도 물어보았다.

다음은 이메일로 주고받은 질문과 답변들이다.

- 이 책은 그 소재와 주제면에서 매우 독특하고 흥미롭다. 이 책을 처음 구상하게 된 계기는?
"대학시절 '훈민정음 강독' 시간에 훈민정음 해례본의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내용과 그 안에 담겨진 엄청난 사실들을 발견하게 되었다. 당시에는 훈민정음에 철학, 음악, 해부학, 수학 등의 지식이 들어있다는 것이 그저 하나의 흥미거리였지만 언제부턴가 한글 속에 숨어있는 여러 요소를 재미있게 풀어낼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게 되었다. 그 후 관심을 가지고 다양한 자료를 접하면서 소설의 형식으로 풀어내보자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 작품의 배경을 굳이 세종시대로 한 이유는? 태종이나 영정조시대에 비해 극적인 요소가 부족하지 않나?
"세종 시대는 조금 묘한 측면이 있다. 조금 심하게 말하면 우리나라 사람들 열 명중에 아홉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꼽는 왕이 세종대왕이고 초등학생들도 세종대왕을 모르진 않다. 그런데 정작 세종의 내면을 제대로 아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다. 오히려 영·정조나 연산군, 광해군 시대가 더 친숙한 것이 현실이다. 그것은 세종 시대가 일반적으로 부흥과 융성의 시대로만 알려져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다 보니 당연히 갈등과 같은 드라마틱한 요소가 없었던 것이다."

- 그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이런 생각은 교과서 속에 화석화된 역사의 영향 때문인 것 같다. 세종 시대는 분명 융성의 시대였지만 그것은 우리가 막연하게 생각하는 태평성대는 아니었다. 그 태평성대를 만들기 위해 세종은 얼마나 외로운 싸움을 해야 했을까를 한번이라도 생각해본다면 그렇다."

- 저자가 생각하는 세종시대는 어떠했나?
"일반적으로 태평성대로 알고 있는 세종시대는 사실은 한반도 역사상 가장 급격한 변화와 역동적 시대정신이 소용돌이치는 시기였다. 고려왕조를 대신한 조선왕조가 들어서고 기존의 모든 가치들을 대신할 새로운 시대정신이 도래했다. 또한 불교는 유교로, 중세적 세계관은 근대적 세계관으로 바뀌며 오랜 허물을 벗는 문명 대전환의 시기이기도 했다.

세종은 혁명과 투쟁, 전쟁과 대립, 개혁과 반개혁이 부딪치는 역동적인 시대의 변혁을 주도한 개혁군주였다. 우리가 교과서에서 배운 적도 없고 미처 생각하지도 못했던 세종 시대의 시대상을 그려보고 싶었다. 인간으로서 세종의 아픔과 갈등, 그리고 싶었다."

- 개인적으로는 한 나라의 군주로서가 아닌, 고뇌를 지닌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표현된 세종의 모습이 역시 맘에 와 닿았다.
"세종은 한반도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인물 중의 한 사람으로 칭송되고 있지만 개인적으로 보면 엄청난 불행과 갈등을 지니고 살아간 사람이다. 사람들은 세종을 시대를 이끈 주류, 혹은 권력자로 생각하지만 내 생각에 세종은 궁궐 안에서도 철저한 비주류였던 것 같다."

-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한다면?
"우선 그는 왕의 아들로 태어나지 않은 왕이었다. 세종이 태어날 때 그의 부친인 태종은 정안군이었고 보위를 이을 세자도 아니었다. 세종 또한 왕이 될 장자가 아니었다. 왕이 된 해에 그의 장인은 반역죄로 죽고 장모와 처가 식구들은 관노가 되어 뿔뿔이 흩어져야했다.

평생을 안질과 소갈병(당뇨)과 피부병으로 고통받아야 했으며 말년에는 거의 실명상태에 이르렀다. 게다가 그의 며느리 두 명이 사가로 쫓겨나는 것을 보아야 했다. 한 나라를 이끈 군왕으로서는 참기 힘든 인간적인 시련이었을 것이다. 가장 존귀한 자리에서 이런 참담한 운명을 살아낸 그의 내면 깊은 곳의 인간적 갈등과 아픔을 돌아보고 싶었다."

공주·궁인들 모아놓고 음운 연구... 사료에도 나와있어

- 작품 속 무수리 소이는 문제의 실마리를 푸는데 결정적인 열쇠를 쥐고 있는 인물이다. 세종이 직접 가르친 훈민정음으로 인해 벙어리였던 그녀가 말문이 트이는 설정은 훈민정음의 음성학적 우수성을 고려하더라도 좀 무리라는 생각도 든다. 이 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물론 현실적으로는 무리한 측면이 있다. 그러나 세종이 한글을 만들 때 조정의 중신이나 고위 관료들과 함께 의논한 것이 아니라 공주나 왕자들, 그리고 궁녀들을 모아놓고 음운을 연구했다는 사실은 조선왕조실록에도 전하는 사실이다.

역사적 기록에는 기술되지 않았지만 그 궁녀들 중에 말 못하는 여인이나 듣지 못하는 여인이 있었을 수 있다는 개연성을 배제할 수 없었다. 역사학자라면 당연히 그런 시각을 경계해야 할 것이나 소설을 쓰는 나의 입장에서는 그런 상상이 큰 허물이 되지 않기를 바랐다."

- 이 책을 읽다보면 언어학, 동양철학, 천문학, 의학, 건축학, 서지학 등 저자의 해박하고 방대한 지식량에 놀라게 된다. 이를 집필하기 위해 꽤 많은 공부와 연구를 했을 것 같다.
"특별한 공부를 하지는 않았다. 연구라 할 것은 더더욱 없었다.소설을 쓰는 데 중요한 것은 자료의 양이 얼마나 많고 얼마나 오래 연구했느냐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우스운 것은 이 작품의 처음부터 끝까지 공간적 배경을 이루는 경복궁을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단 한 번도 가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경복궁에 가서 그 건물들과 소설속의 장소를 직접 본다면 스토리를 풀어나가는 상상력에 방해를 받을 것 같아서였다."

- 지금껏 자신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쳤던 책이 있다면?
"모든 책, 즉 활자로 된 모든 것이다. 교과서부터 참고서, 수련장에서부터 헤아릴 수 없는 만화책들과 신문 사이에 끼어서 오는 식당의 전단지까지.

특히 볼프강 보르헤르트의 작품들을 좋아한다. 헤밍웨이의 작품들 중에서도 노인과 바다를 좋아한다. 거기에는 극단적인 상황 속에서도 인간에 대한 따뜻한 시선과 유머감각이 있다. 물론 그 유머는 읽는 사람의 눈에 눈물을 고이게 만든다."

치밀하고 정교한 퍼즐 같은 소설
<뿌리깊은 나무>는 어떤 책?

조선의 요순시절로 우리에게 인식되었던 세종시대의 집현전 학자들의 수수께기와 같은 연쇄살인사건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이 작품은 그 소재면에서 우선 눈길을 끈다. 이어지는 의문스러운 죽음과 갈수록 커지는 의혹, 하나씩 벗겨지는 새로운 사실 등은 이 작품의 빠른 이야기 전개와 속도감 있는 문체에 기대어 독자들의 시선을 단 한번에 사로잡기에 충분하다.

'오행'에 따른 연쇄살인사건과 궁궐 바깥에서 시작해서 점차 궁궐 안으로 좁혀들어가는 사건의 발생, 피살자들에게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마방진의 수수께끼, 마방진의 열쇠를 쥐고있는 무수리 소이 등은 <뿌리깊은 나무>라는 집을 구성하고 있는 치밀하고도 정교한 블록과 같다. 마치 맞추기 어려운 복잡한 퍼즐을 마주하고 있는 듯 난감한 것은 사실이다. 게다가 오행이나 태극설, 건축학, 서지학 등 어려운 이론까지 겹쳐 그 난감함은 배가한다.

그러나 작품 후반부로 가면서 하나씩 벗겨지는 새로운 사실과 그와 함께 풀리는 수수께끼들은 난감함을 보상받기 충분할 만큼 통쾌하고 재미있다. 소설이 주는 재미도 재미지만 너무 어려워 근접할 엄두조차 내지 못했던 동양학의 여러 분야에 대해 짬짬이 공부하게 되는 즐거움도 크다.

책의 줄거리

1443년 세종 25년 가을 어느날, 경복궁 후원 열상진원의 우물 안에서 집현전 학자의 시체가 발견된다. 그는 고려의 후예라는 신분적 제약에도 불구하고 집현전 학사로 뽑혀 입방아에 오르내렸던 장성수라는 인물이다. 우연히 이 사건의 조사를 맡게 된 겸사복 강채윤은 비록 신분은 낮지만 명석하고 예리한 인물. 그는 이 살인사건에 무언가 미심쩍은 부분이 있음을 어렴풋이 느낀다.

뒤이어 장성수 살인사건의 용의자로 지목되었던 윤필이 불에 타죽는 사건이 발생하고 이어서 역시 집현전의 학자인 허담이 피살되는 사건이 발생한다. 이 사건을 차례로 조사하던 강채윤은 이들 피살자들의 죽음이 오의 순서대로 발생한다는 것을 발견한다. 살인이 발생하는 장소는 주상의 '천지인' 철학이 오롯이 담겨있는 곳이며 피살된 학자들 역시 경학파가 아닌 실용사상을 연구하던 '작약시계'의 계원들이라는 공통점을 찾아내기에 이른다.

또한 채윤은 금서를 보관하는 비서고의 장서관인 윤후명으로부터 오래 전부터 금기시되어왔던 문제의 서적 <고군통서>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이 연쇄 살인사건이 이 금서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사실도 알게된다.

자신의 신변을 위협하는 보이지 않는 위험속에서도 사건을 끝까지 추적하던 채윤은 <고군통서>에 얽힌 놀라운 비밀을 알게된다. 또한 학자들의 죽음에는 '새로운 글자'에 대한 비밀이 얽혀있음도 알게 된다. 단순히 궁궐내 자객들이나 무인들에 의한 살인사건으로 생각했던 채윤은 이 사건의 배후에는 커다란 음모가 숨어있음을 알아낸다. / 안소민

덧붙이는 글 | 뿌리 깊은 나무 1,2/ 이정명 지음/ 도서출판 밀리언하우스/ 각권9,500


뿌리 깊은 나무 1

이정명 지음, 은행나무(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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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아픈 것은 삶이 우리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도스또엡스키(1821-18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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