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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학년은 미술이 반이야. 미술은 꼭 시켜서 학교 보내야 해."

첫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게 되면 엄마인 내가 아무런 준비 없이 초등학교를 다니고 졸업했음에도 불구하고 마음이 불안해 진다. 우리 아이가 잘할까라는 생각에 여기저기 조언도 구하고 길거리에서 초등학교 1학년 정도 되는 아이 손을 잡고 삼삼오오 짝지어 수다 떨고 있는 사람들 말에도 귀가 쫑끗 선다.

그런데 내가 조언을 구했던 사람들 대부분이 아이에게 미술 선행학습을 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무슨 배짱인지 난 미술 선행을 포기했다. 내가 초등학교 아이 교육에 아는 것이 많지는 않지만 초등학교 1학년 교육이 아이에게 선행학습을 요구할 만큼 수준이 높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 아이는 미술을 그다지 좋아하지도 않는 아이였다. 모두가 시키라는 미술 선행학습을 포기하면서 내심 불안하기는 했지만 선행에 대한 생각을 접었다.

아이가 입학했다. 입학식 날 딸의 담임 선생님을 처음 뵈었다. 입학식 날 만난 다른 반 학부모 한 명은 이미 자기 반 담임 선생님은 물론 우리 아이 담임 선생님에 대해서 까지 줄줄 알고 나에게 말해 주었다. "좋으신 분 같아."

정확한 정보였다. 담임 선생님께서는 입학식에서 아이들 모두에게 햇볕을 비추게 하기 위해 노력하시겠다고 말씀하셨다. 입학하고 얼마 후, 학부모 총회가 있어서 학교에 갔다. 벌써 아이 반 아이들의 그림이 교실 뒤편에 붙어 있었다.

미술 선행 학습을 받은 아이들의 그림은 확실히 티가 확 났다. 색칠도 힘이 있었고, 형태도 돋보였다. 그에 비하면 우리 아이 그림은 형편없었다. 그러나 의외로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는 좋았다. 엄마인 내가 우리 아이를 정확하게 몰랐던 것이다.

'그래, 이제 배워가면 되겠지.' 느긋하게 생각하고 아이의 담임 선생님을 믿기로 맘을 정했다. 담임 선생님께서는 아이들의 미술 교육에 열의를 가진 분이셨다. 입학하고 난 후부터 우리 아이는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기 시작했다. 입학하기 전까지는 집에서 그림을 거의 그리지 않던 딸이었다.

그런데 입학하더니, 스케치북 몇 권을 한 달도 되기 전에 그림을 그려 다 쓰기 시작하였다. 제 방에 걸려 있는 화이트보드에도 보드마카를 사용하여 그림을 빼곡하게 그렸다.

방학하기 한 달 전부터는 물감을 가져가기 시작하였다. 아이는 물감을 가져가면서 돗자리도 함께 챙겨갔다. 아이 얼굴이 까맣게 타기 시작하였다. 알고 보니, 담임 선생님께서는 이제 1학년인 아이들과 함께 야외 스케치를 나가시는 것이었다.

나는 초등학교 시절 야외 스케치를 나간 기억이 전혀 없다. 아이 그림은 눈에 띄게 좋아지기 시작하였다. 물론 우리 아이만 좋아진 것은 아니었다. 급식 봉사를 가서 보면 반 아이들 모두 물감을 자유롭게 잘 사용한 그림을 교실 뒤편에서 볼 수 있었다.

담임 선생님께 여쭈니 물감을 사용하기 위하여 먼저 이론을 몇 시간 배우고 실기를 시작했다고 말씀하신다. 학기초에 현저히 차이가 나던 아이들의 그림은 학기초만큼 차이가 나지 않는다. 미술을 좋아하고 재능이 있는 아이는 묘사도 정확해지고 색을 섞어 써 다채롭다.

미술에 그다지 흥미가 없던 우리 아이도 미술을 좋아하게 되었고, 미술을 가깝게 느낀다. 그림을 그리는 데 망설임이 없다.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내 생각은 이렇다.

아이들의 그림이 전반적으로 좋아졌다. 그리고 그림을 잘 모르던 아이들이 더 많이 좋아졌다. 아이들이 미술에 대하여 친근하게 느끼게 되었고, 그림을 좋아하게 되었다.

이번 일을 계기로 알게 된 것은 아이보다 키우는 사람의 맘이 굳건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이들은 믿고 기다리는 만큼 자란다. 조급해지는 마음을 진정시키고, 다른 아이와 비교하려는 생각을 접을 줄 안다면 아이는 옆에서 자라게 하지 않아도 스스로 자란다.

그리고 좋은 선생님을 만나면 단비에 새싹 자라듯 쑥쑥 자란다. 이 자리를 빌어 아이들에 대한 열정을 가슴에 품으시고 아이들에게 맞는 미술을 연구하시고 연구하시면서 미술 수업을 해 주신 아이의 담임 선생님께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한 학기 동안 아이와 저는 행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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