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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6일(음력 6월11일)이 <삼국유사(三國遺事)>의 저자인 보각국사 일연 스님(1206~1289)이 태어난 지 800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이를 기념하여 삼국유사 대제전 조직위원회(위원장 법타스님)는 6일부터 다음달 1일까지 <삼국유사>를 편찬한 일연 선사의 자취가 서린 경북 군위 인각사, 출생지 경북 경산군, 대구 팔공산 등지에서 '일연선사 탄생 800년 기념 삼국유사 대제전'을 연다.

7월 6일 오전 인각사 법당에서 고불제를 시작으로 막이 오른 이 행사는 국제학술대회, 전야제인 기념음악회, 삼국유사 답사 기행, 삼국유사 대제전 개막식 및 주제 공연, 산사 불교 단편영화제, 일연문화상 시상식, 전국 청소년문학상 공모전 시상식, 회향 법회 등 다채롭게 진행되고 있다. 8월 1일 오후 3시 군위 인각사 법당에서 일연선사 입적 717주년 추모 다례제와 보각국사비 복원 제막식을 끝으로 이 행사는 마무리된다.

▲ 고운기 저 <일연을 묻는다>
ⓒ 현암사
일연선사 탄생 800주년을 맞아 시인이자 연세대 국학연구원 고운기 연구교수가 일연선사와 삼국유사와 관련된 독특한 책 한 권을 지난 6월에 발간했다. 현암사에서 펴낸 <일연을 묻는다>가 그것이다.

나는 이 책의 형식을 무어라 명명해야할지 무척 난감하다. <삼국유사>를 저술한 일연선사 평전(評傳)인데, 그것은 또 오롯이 <삼국유사>의 평전이기도 하다. 출판사의 자평(自評)은 "삼국유사의 저자 '일연'의 행적을 뒤쫓아 가 삼국유사 행간에 숨은 의미를 샅샅이 파헤친 13세기 여행 보고서!"라고 적고 있다.

저자 고운기는 "시 한 편으로 시작한 짝사랑"으로 삼국유사를 가슴에 품게 되었다고 한다.

압록강 봄 깊어 풀빛 고웁고
백사장 갈매기 한가히 조는데
홀연히 들리는 노 젓는 소리, 깜짝 놀라 멀리 나네
어느 곳 고깃배인지, 안개 속에 이른 손님.

이 시는 372년 전진(前秦)의 승려 순도(順道)가 처음으로, 이어서 374년 진(晉)의 아도(阿道)가 고구려에 불교를 전한 이야기를 적고 난 다음 쓴 것이다. 일견 평범해 보이는 이 시는 그러나 많은 의미를 그 안에 담고 있다.

1, 2행은 고요한 봄 풍경이다. 그것은 문명이 전해지기 이전의 미명 상태라 할 수 있다. 그러다가 3, 4행에서 분위기는 달라진다. 노 젓는 소리에 잠을 깨 갈매기가 날아간다. 이때 노 젓는 소리와 갈매기의 비상은 껍질이 깨지는 하나의 파각(破殼)이다. 새로운 세계가 열린다는 징조이며 신호이다. 신호의 주인공은 새로운 배에 타고 오는 손님인데, 5, 6행에서 '손님'이라 표현한 그는 곧 고구려에 처음 불교를 전한 순도이거나 아도이다.(15쪽)


시인이기도 한 고운기 교수는 <삼국유사> 속의 이 시 한 편으로 단박에 삼국유사와 일연에게 매료되었다고 한다. 그는 "<삼국유사>에는 삶이 있고 현장이 있다. 고대인의 숨결까지도 그대로 느낄 수 있을 것 같은 삶의 현장, 그것이 <삼국유사>가 가진 최고의 미덕이다. 나는 <삼국유사>를 밭에서 방금 캐낸 야채로 비유한다. <삼국사기>의 그것을 통조림이라 비유하는 것과 대조해서 말이다. 해석의 가능성을 풍부하게 제공해 주는 이야기는 마치 방금 캐낸 야채로 무엇이든 요리하는 것 같다는 것이다. 아니면 라이브 무대의 가수로 비유한다"고 적고 있다.

일연 비문과 삼국유사의 기록을 바탕으로 일연선사의 행적과 삼국유사의 현장을 찾아가 노래하는 고운기의 라이브 무대는 재미있고도 유익하다. 아니 차라리 황홀하다고 하는 게 더 적확한 표현일지도 모른다.

그 장면들을 사진작가 양진이 저자와 동행하면서 직접 찍은 100여 장의 작품 사진이 그 무대의 입체성을 확보해주고 있다. 360페이지가 넘는 이 책을 나는 소설책보다도 더 재미있게 읽었다.

저자가 삼국유사의 무대를 직접 찾아가는 현장답사식의 글쓰기 방식은 바로 <삼국유사>를 저술한 일연 스님의 중요한 글쓰기의 한 방식이기도 하다. 일연 스님의 탄생과 출가 그리고 입적까지의 행적을 일일이 찾아 가 과거와 현재를 가로지르는 시공(時空)을 초월한 언어로 불러대는 고운기의 노래는 참으로 소중한 것이다. 그가 시도하고 있는 일연 스님의 행적과 삼국유사가 갖는 의미의 재구(再構)는 우리 민족 문화의 자존을 한껏 높여주는 의미 있는 작업이다.

저자 고운기는 <삼국유사>의 의미를 다음과 같이 말한다.

"세계화가 진행되면 될수록, 한국이 커지면 커질수록 세계는 우리를 향해 '너희는 누구냐'는 질문을 더 자주 던지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우린 이런 사람이다'라고 얘기해줘야 하는데 우리가 누구인지를 아는 데 삼국유사만한 텍스트가 없습니다."

기실 이 <삼국유사>가 아니면 우리가 고대 삼국사의 여러 정취를 어떻게 그려내겠는가? 또 '향가(鄕歌)'로 나타나는 우리 문학사의 한 시대를 송두리째 유실되지는 않았을까?

나는 <삼국유사>를 편찬한 일연선사께 무한정 고마움의 인사를 드리지 않을 수 없다. 또 이를 <우리가 정말 알아야할 삼국유사> <길 위의 삼국유사> <어린이 삼국유사> 등의 책으로 오늘날 우리 시대 여러 독자들에게 널리 보급한 <삼국유사>의 전도사 고운기 교수께도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우리 한민족의 정체성과 뿌리를 알려주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책 <삼국유사가 온 국민들의 손에 들려지기를 희망한다.

시인 고운기와 사진작가 양진이 운전하고 있는 '삼국유사 속의 현장과 일연 행적을 찾아가는 버스'에 동행했던 나는 내내 황홀했었다. 다시 한 번 그 버스를 타고 싶다.

일연을 묻는다 - 위대한 국사(國師)

고운기 지음, 양진 사진, 현암사(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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