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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공 시절 보안사령부(현 국군기무사령부)가 강제징집과 녹화사업(순화교육)을 통해 키워낸 '협조망(일명 프락치)'에 장학금이나 급여를 줘가며 활동을 독려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또 1980년 9월부터 1984년 11월까지 4년간 총 1152명의 대학생과 일반인을 강제징집했고, 이들을 포함해 총 1192명을 대상으로 녹화사업을 실시한 것으로 드러났다.

국방부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이하 군과거사위, 위원장 이해동 목사)는 13일 강제징집·녹화사업·실미도사건 진상조사보고서를 통해 이 같은 사실을 발표했다.

군 과거사위에 따르면, 보안사가 관리하던 녹화사업 대상자가 전역할 경우 연고지 관할 보안부대 담당관이 접촉해 유대관계를 지속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역한 녹화사업 대상자를 학원가 지하 이념서클 발굴 등에 활용한 것으로 밝혀졌다. 당시 보안사 녹화사업을 담당하던 심사과 소속 간부와 군무원들은 군과거사위에 "일부 대상자에게는 장학금 알선 등 경제적 도움을 주기도 했다"고 시인했다.

A급 20만원, B급 15만원, C급 10만원

또 종교계와 노동계, 학원가에 침투시킨 침투망(협조망)에 대해서는 정기적인 급여를 지급한 것으로 드러났다. 보안사 대공처 심사과에서 지난 1983년 2월 만든 '녹화 침투 공작임무 시행 지침' 4항(침투망 운영)에는 "침투망 운영은 공작원 운영 개념에 의거 급여제(유급망)로 운영"하라는 지침이 포함돼 있다.

보안사는 학원가 등 각 단체를 A, B, C급으로 나눠 차별화된 침투망비를 지급했다. 종교분야의 A등급으로 분류된 단체에 침투한 침투망에게는 20만원이 지급됐다. B급과 C급은 각각 15만원과 10만원이 지급됐다. 학원이나 노조의 침투망에게는 각각 15만원(A급), 10만원(B급), 8만원(C급)이 주어졌다. 녹화사업이 실시되던 80년대 초반 일반 직장원의 평균 월급이 10~15만원임을 감안하면 결코 적지 않은 돈이다.

보안사는 또 강제징집된 군인뿐만 아니라 민간인도 잡아들여 녹화사업을 실시하고 협조망으로 활용한 사실도 새롭게 드러났다. 안보를 이유로 명백한 불법행위를 저지른 셈이다. 군과거사위 조사 결과 녹화사업이 이뤄지던 4년간 보안사가 연행해 조사한 민간인은 총 24명에 달했다.

특히 보안사는 군대와 전혀 관련 없는 민간인 여대생마저 연행해 수사한 뒤 협조망으로 활용했다. 군과거사위에 따르면 지난 1983년 3월 학생운동권 출신 입대자 이아무개씨를 조사하던 보안사는 수사 과정에서 모여대 3학년생인 A씨를 연행했다.

민간인 여대생도 '프락치'

이후 A씨는 보안사 협조망으로 활동하면서 학내 시위 계획 등을 건넸다. 당시 A씨를 담당하던 보안사 군무원 최아무개씨는 군과거사위 조사에서 "당시 A씨의 협조로 대공처장 포상(상금)을 받기도 했다"고 털어놨다.

이날 군과거사위가 밝힌 강제징집·녹화사업의 전모는 충격적이다. 군과거사위는 강제징집 등 반인권적 탄압이 전두환 전 대통령의 직접 지시로 이뤄졌다고 결론을 내렸다. 당시 보안사에서 실무를 총괄한 심사과장 서아무개씨는 군과거사위 조사에서 "(육사출신이 아닌 보안사 대공처장) 최경조가 진급 욕심 때문에 대통령을 자주 만나려고 (녹화사업) 보고서를 들고 매월 1회씩 청와대에 들어갔다"고 진술했다. 전 전 대통령이 녹화사업의 전과정을 사실상 승인했다는 얘기다.

보안사의 '과잉충성'도 심각한 인권유린을 낳은 것으로 드러났다. 보안사는 녹화사업의 성공을 위해 3대 독자나 미성년자, 장애인, 환자, 운동권이 아닌 일반 대학생까지 무차별 강제징집한 것으로 확인됐다. 나중에야 오류를 발견한 군 당국은 일부 강제징집자를 '의병제대' 시키기도 했다.

국방부와 보안사가 숨겨오던 강제징집·녹화사업의 규모도 새롭게 밝혀졌다. 국방부는 지난 1988년 국정감사와 '5공비리 특위'에서 강제징집인원 447명, 녹화사업 대상자 429명, 녹화사업 실시 265명이라고 발표했다.

하지만 군과거사위 조사 결과 강제징집자와 녹화사업 대상자는 모두 1100여명이 훨씬 넘었다. 보안사는 개인별로 심사카드를 작성해 이들을 체계적으로 관리해 온 것으로 확인됐다. 군과거사위는 기무사로부터 심사카드를 포함한 8만5000여매의 자료를 넘겨받아 전모를 밝혀냈다. 자료가 남아있다는 점을 볼 때 보안사와 현 기무사는 지난 20여년간 국민과 정부를 철저히 속여 왔다는 비난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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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오마이뉴스 입사 후 사회부, 정치부, 경제부, 편집부를 거쳐 정치팀장, 사회 2팀장으로 일했다. 지난 2006년 군 의료체계 문제점을 고발한 고 노충국 병장 사망 사건 연속 보도로 언론인권재단이 주는 언론인권상 본상, 인터넷기자협회 올해의 보도 대상 등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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