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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일본인들은 임진왜란(1592년)을 가리켜 조선정토(朝鮮征討)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임진왜란을 가리키는 일본측 표현은 다양하지만, 여기서는 ‘조선정토’에 국한하여 이 표현에 담긴 일본인들의 세계관을 살펴보기로 한다.

구글(Google Japan) 검색창에 ‘朝鮮征討’를 입력하면, 이 표현이 임진왜란과 관련하여 사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사진에 나오는 검색 결과에서 맨 아랫부분에 보면 “秀吉の朝鮮征討”라는 표현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도요토미 히데요시(풍신수길)의 임진왜란 도발을 가리키는 표현이다.

▲ 본문에 소개된 '구글 일본' 검색 결과.
ⓒ 김종성


그런데 이 '정토'는 단순한 표현이 아니다. '정토'라는 표현에 담긴, 일본 자신과 조선에 대한 일본인들의 인식을 알아보는 것은 흥미 있는 일이 될 것이다. ‘정토’가 어떤 의미를 갖는가를 살펴보기 위해서는, 고대 동아시아 고전에서 이 표현이 어떤 의미를 갖고 있었는지를 조사할 필요가 있다.

<주역> ‘계사전’에 의하면, 정(征)은 “정도(正道)로부터 행하는 것”이라고 했다. 정(征)에 정(正)의 개념이 담겨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맹자> ‘진심’에 의하면, “정(征)이라는 것은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벌주는 것”이라고 했다. <국어>에 나오는 “목왕이 견융족을 정(征)했다”는 기록에서도 그 점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정(征)은 천자(天子)의 명령을 받들어 무도(無道)한 제후국을 죽인다는 뉘앙스도 갖고 있다. 이러한 점은 <서경>과 <상서대전> 등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러므로 정(征)은 천자의 명령을 받들어 무도한 제후국을 벌준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위에서도 언급한 바와 같이, 정(征)이라는 표현이 사용되면 그 전쟁은 정당한 전쟁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토(討) 역시 천자가 아랫사람의 죄를 응징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 점은 <여씨춘추>에서 확인할 수 있다. 또 <맹자>에는 “천자는 토(討)할지라도 벌(伐)하지는 않는다”는 표현이 있다. 여기서도 토(討)의 주체가 천자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내용을 종합하면, 정(征)이나 토(討)는 천자가 아랫사람 혹은 제후국의 죄를 응징하기 위해 무력을 행사하는 것을 의미한다. 일본인들이 임진왜란을 가리켜 ‘조선정토’라고 부르는 것은, 일본 자신을 동아시아의 천자로 인식하고 조선을 아랫사람 또는 제후 정도로 인식하려는 심리적 경향을 깔고 있는 것이다.

‘조선정벌’이라 하지 않고 ‘조선정토’라는 부르는 데에도 이유가 있다. 위 <맹자>에 의하면, 천자는 토(討)할지라도 벌(伐)하지는 않는다고 했다. 정(征)과 토(討)의 주체는 천자이지만 벌(伐)의 주체는 천자가 아니기 때문에, ‘정벌’을 피하고 ‘정토’라는 표현을 택한 것이다.

다시 말하면, 정토는 천자만이 할 수 있지만 정벌은 천자가 아니라도 할 수 있기 때문에, 일본인들이 정벌 대신 정토를 선호하는 것이다.

이러한 인식의 표출은 근대에도 있었다. 1871년 이후로 일본에서 정한론(征韓論)이 대두하였는데, 그때 정(征)이라는 표현을 쓴 것 역시 일본이 천하의 중심이고 조선은 제후국에 불과한 나라라는 인식을 바탕에 깔고 있었던 것이다. 1874년의 대만침공을 ‘대만정토’라고 부르는 것도 마찬가지다.

이처럼, 일본이 주변국들에 대한 과거의 침략전쟁을 가리켜 ‘정토’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은 ▲일본이 천하의 중심이며 ▲일본의 전쟁은 정당하다는 인식을 저변에 깔고 있는 것이다.

덧붙이는 글 | <뉴스 615>에도 동시에 실리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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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일제청산연구소 연구위원,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패권쟁탈의 한국사,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조선노비들,왕의여자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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