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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일본 언론의 논조나 표현 용어를 보면, 일본이 남·북 간의 밀착 가능성에 대해 상당한 관심 내지는 우려를 갖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일본 언론은 남·북 간의 '민족공조'가 실제로 어느 수준까지 이르렀는지에 대해 상당한 흥미를 갖고 있는 듯하다.

동북아 평화라는 대의명분 때문에 한반도 통일을 노골적으로 반대할 수 없는 일본 언론으로서는 한반도 통일에 대한 자신들의 우려를 그저 행간(行間)에서 표출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일본 외교관들이나 언론들은 한번쯤 자신들의 동아시아 인식이 과연 타당한 것인지를 되돌아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메이지유신 직후인 1871년까지만 해도 동아시아의 변방에 머물렀던 일본은 동아시아 외교를 한 번도 제대로 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1871년 이후에도 탈아외교(脫亞外交) 기조 하에 서양의 힘을 빌려 서양식 외교만을 해왔기 때문이다.

일본은 동아시아 외교가 일천한 나라

그러므로 일본의 엘리트들은 동아시아 외교에 대한 자신들의 지식과 경험이 일천할 수밖에 없음을 인정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만약 일본 엘리트들이 보다 새로운 각도에서 동아시아 내지 동북아를 바라본다면, 자신들의 기존 인식에 대대적인 수정을 가하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다.

인간의 의식이나 인식은 기본적으로 지리적 환경의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실제로 지리적 환경을 바꾸어 보거나 혹은 가상적으로 그렇게 해본다면, 인간은 전혀 새로운 인식 세계에 도달하게 될 것이다. 개인뿐만 아니라 국가도 마찬가지다.

국가가 처한 지리적 위치에 따라 국가의 외교적 판단이 뒤바뀔 수 있다는 점은 기존의 동아시아 역사에서도 얼마든지 입증될 수 있는 일이다.

중국의 한족은 수양제·당태종의 경험 이후로 한반도 침략을 자제해 왔다. 한반도 침략 자체가 쉽지 않을 뿐만 아니라, 무리한 한반도 침략은 중원 지역을 혼란 속으로 빠뜨릴 수 있다는 판단에 기인한 것이다. 당시의 한족들은 천년 이상의 경험을 통해 그 같은 산지식을 얻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경험이 부족했던 여진족·몽골족은 그 이후로 최소한 한 번 이상은 한반도 침략을 감행했다. 그러다가 그들이 중원을 장악한 이후로는 한반도 침략을 자제하는 방향으로 선회했다. 변방 민족들도 중원을 장악한 이후에는 한족과 똑같은 판단을 하게 된 것이다.

오랫동안 강화도에서 고려군과 대치하던 몽골군이 1260년에 갑작스레 철군하게 된 것은 바로 그때부터 몽골이 중원국가를 지향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동아시아의 변방 국가들은 처음에는 한반도 침략을 위해 혼신의 노력을 기울이다가 막상 중원을 장악한 이후에는 한족과 똑같은 판단을 하였던 것이다. 그리고는 한반도와 친선을 유지하는 방향으로 선회한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개인뿐만 아니라 국가도 그 지리적 환경에 따라 대외 인식이 크게 바뀔 수 있다는 점이다. 마찬가지로 지금 일본 엘리트들이 한반도 통일에 대해 우려를 갖고 있지만, 이 역시 일본열도라는 지리적 환경 때문에 생긴 '속 좁은 인식'일 뿐이다.

만약 관점을 동아시아 혹은 동북아 전체로 확대시키게 되면, 한반도 통일이 일본의 번영과 발전에 결코 불리하지만은 않다는 인식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일본의 인식을 넓혀 한반도 통일을 재인식해야 할 것

지금 상황에서라면 모르겠지만 적어도 '포스트 미국' 시대, 즉 미국이 동북아 패권을 상실한 시기에는 한반도 통일이 일본이라는 나라의 번영과 발전에 긍정적인 방향으로 작용하게 될 공산이 크다. 왜 그러한가?

지금 일본인들은 '포스트 미국' 시대, 즉 미국 없는 동북아에서 스스로 살아갈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일본이 군국주의적 국가통합을 서두르는 이유 중의 하나도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역사는 개인이나 국가의 주관적 의지만으로 전개되는 것이 아니다. 주관적 의지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은 바로 '객관적 환경'이다.

미국 없는 동북아에서 자립 기반을 확보하기 위해 지금부터 준비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겠지만, 이제까지 나타난 객관적 결과물로 볼 때에 일본이 과연 미국 없이 동북아에서 홀로 생존할 수 있겠는가 하는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게 된다.

탈아외교를 시작한 1871년 이래로 지금에 이르기까지, 일본은 기본적으로 서양세력에게 의존한 상태에서 대외관계를 해왔다. 일본에게 서양이 얼마나 긴요한 존재인가는 1920년대 중반부터 1945년까지의 역사를 통해서도 잘 드러난다.

1920년대 중반부터 1945년까지의 20년 기간은 일본이 서양을 배제하고 단독 행동에 나선 시기다. 서양을 배제하고 단독으로 중원과 세계를 지배해 보려 했던 것이다.

그러나 결과가 잘 알려주고 있듯이 이 시기의 일본은 브레이크 없는 화물차처럼 좌충우돌 양상만을 보이다가 결국 패망하고 말았다. 서양은 일본의 의식과 판단을 통제해 주는 존재인데, 일본 스스로 서양을 배제하다 보니 의식과 행동에서 무리수를 두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1945년 패망 이후로도 서양에 대한 일본의 의존은 여전히 바뀌지 않았다. 일본은 미국의 핵우산 아래에서 철저히 보호를 받으며 살아왔던 것이다. 어찌 보면, 일본의 '뽀얀 피부'는 미국의 핵우산이 '자외선'으로부터 일본을 보호해 주었기 때문에 생긴 결과일지도 모르는 것이다.

이처럼 온실의 화초처럼 자라온 일본이 과연 미국 없는 동아시아에서 단독으로 살아갈 수 있을 지에 대해서는 회의를 품지 않을 수 없다. 거기에다가 한반도 통일을 반대하고, 한반도를 적으로 돌리면서까지 일본이 동아시아에서 자립할 수 있을 지에 대해서는 더욱 더 회의를 품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포스트 미국 시대에 일본의 자립은 현실적으로 불가능

그런데 여기서 분명히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있다. 미국은 어차피 동북아를 떠날 수밖에 없는 나라라는 점이다. 일본에게는 미국이 동북아에 그대로 남아 있는 게 최선책이겠지만, 그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이상 일본은 차선책을 택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 차선책이라는 것은 동북아에서 '견고한 친구'를 만들어 두는 것이다.

한반도가 통일되지 않은 지금 상황에서 미국의 동북아 패권이 갑작스레 와해되면, 그 최대의 수혜자는 중국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렇게 되면, 동북아의 힘의 중심은 자연스레 중국으로 집중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일본보다 훨씬 더 큰 영토를 갖고 있으며, 일본에 대해서는 한국만큼의 강렬한 증오심을 갖고 있는 중국이 동북아의 새로운 패권자가 되는 것은 일본의 안보에 검은 먹구름을 드리우는 일일 것이다.

서양의 견제 속에서도 군사·경제적 실력을 축적해 온 중국과 서양의 보호 속에서만 살아온 일본이 서양(미국) 없는 동북아에서 격돌한다면, 그 결과가 어찌 되리라는 것은 충분히 예측할 수 있는 일일 것이다.

이와 같이 포스트 미국 시대가 일본에게 불리하게 전개될 공산이 큰 상황에서 일본이 그런 시대에 동북아를 상대로 군국주의적 재도전을 해보겠다고 하는 것은 스스로 무덤을 파는 행위나 다름없을 것이다. 일본의 생존 자체가 위협받는 상황에서 일본이 동북아를 상대로 군사적 모험을 하겠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일 것이다.

그러므로 일본이 선택할 수 있는 현실적 대안은 영토 팽창이나 국력 팽창을 도모하기보다는 지금의 국력을 유지하면서 번영을 지속시키는 것이다. 미국 없는 동북아에서 남·북한, 중국, 러시아 등이 일본을 집중 견제할 것이 뻔한 상황이기에 일본이 팽창을 도모한다는 것은 매우 어리석은 일일 것이다. 그러므로 현실적인 방안은 현상을 유지하는 것이다.

일본이 이와 같이 현상을 유지하려면, 중국의 위협으로부터 일본을 보호해 줄 새로운 환경이 필요할 것이다. 그것은 바로 '통일 한반도'다. 한반도 통일로 강력한 완충지대가 조성된다면, 중국 등의 대륙세력이 함부로 일본을 위협하기 힘들어질 것이다. 이런 완충지대가 없다면, 포스트 미국 시대에 일본이 중국의 압박을 막아낼 만한 뚜렷한 수단을 갖기 힘들 것이다.

중국의 압박으로부터 일본 지켜줄 강력한 완충지대 필요

일본과 대륙 사이에 강력한 완충지대가 필요하다는 점은 과거 역사에서도 잘 드러나는 것이다. 전근대 시대에 일본열도가 오랫동안 외부의 침략을 받지 않은 것은 한반도가 대륙세력을 막아주는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물론 한반도가 일본과 대륙의 교류를 막은 측면도 있지만, 그에 못지 않게 한반도가 일본에 대한 대륙의 침략을 막아준 측면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리고 일본은 과거 13세기에 여몽 연합군이 일본 침략에 나설 수 있었던 원인을 검토해야 할 것이다. 한반도가 비교적 강력했던 그 이전 시기에는 대륙세력이 한반도를 거쳐 일본으로 진출하기가 힘들었다.

그런데 몽골이 일본 원정을 계획할 수 있었던 것은 그 당시 중간지대인 한반도가 무기력했기 때문이다. 당시의 고려가 강성한 국가였다면, 몽골이 고려를 동원해서 일본을 공격할 생각도 못했을 것이고, 또 한반도를 돌아 일본을 침략할 생각도 못했을 것이다. 이와 같은 역사적 사실은 강력한 한반도가 일본의 안보에 불리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유리한 것임을 보여 주는 것이다.

향후 중국이 새로운 동북아 패권국가가 된 상황에서 한반도가 여전히 분단상태에 있다면, 그만큼 중국이 일본을 압박하기가 쉬울 것이다. 하지만 한반도가 통일되어 강력한 완충지대가 된다면, 중국은 일본을 압박하기보다는 한반도를 견제하는 데에 우선 순위를 두게 될 것이다. 이는 일본이 중국의 관심권에서 멀어지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만큼 일본은 지금의 번영을 계속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한반도 통일은 미국 없는 동북아에서 일본의 안보와 번영을 담보할 수 있는 중요한 장치다. 그러므로 일본 외교관이나 언론들은 보다 새로운 시각에서 한반도 통일 문제를 재검토해야 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뉴스 615>에도 함께 실리는 글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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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일제청산연구소 연구위원,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패권쟁탈의 한국사,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조선노비들,왕의여자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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