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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평택 대추리 일대는 마치 계엄이 선포된 것처럼 보인다. 헌법은 물론, 법률조차 휴지조각이 됐다. 게다가 국방부 장관은 계엄사령관인양 행동하고 있다.

대추리 일대 철조망 설치의 근거가 된 군사시설보호법 제1조는 '중요한 군사시설을 보호하고 군작전의 원활한 수행을 위해' 군사시설보호구역을 지정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법은 또 보호구역이 국가안전보장에 기여해야 함도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지난 4일의 대추리 철조망 설치 작전은 중요한 군사시설보호나 군 작전에 관한 일은 아니었다. 오히려 대추리 주민의 영농 차단이었다.

대추리 일대가 군사시설예정지이긴 했으나, 군사시설법은 군사시설 '예정지'까지 규율하지는 않는다. 게다가 대추리 일대에 이미 뿌려진 볍씨를 중요한 군사시설로 볼 수도 없다. 대추리 철조망 설치 및 경계 작전은 따라서 법적 근거를 확보하지 못했다.

법적 근거가 없는 작전 수행을 위해, 국방부 장관은 '민간인인 시위대에게 군형법을 적용하겠다'고 했다. 헌법 제 27조 2항은 '중대한 군사상의 기밀-초병-초소…에 관한 범죄가 아닌 한 민간인이 군사재판을 받지 않도록' 하고 있다. 철조망 제거 시위 시 발생한 물리적 충돌이 헌법이 규정한 '중대한' 초병 및 초소에 관한 범죄인지는 의문이 남는다.

군인을 폭행하는 것이 폭행죄일 수는 있고, 경계병이었다면 초병폭행일 수는 있다. 그러나 '중대한' 초병 폭행은 아니다. 민간인을 군사재판에 회부할 정도의 '중대한' 경우는 국가안전보장에 심각한 해를 끼칠 수 있는 경우로 한정하는 것이 법 취지에 맞을 듯하다. 헌법 27조는 민간인이 군사재판을 받아서는 안 된다는 것을 명시해 놓은 것이지, 민간인의 군사재판 적용요건을 제시한 것이 아니다.

평택 시위에 국방부 장관이 전면에 나서는 것도 위법으로 보인다. 정부조직법 제33조는 '국방부장관은 국방에 관한 군정 및 군령과 기타 군사에 관한 사무를 관장한다'고 돼 있다. 국방부 장관의 임무는 대통령과 군대 사이에서 군이 본연의 역할을 하도록 하는 것이다. 국방부 장관은 군에 관한 사무를 관장하는 민간인 공무원이다.

예를 들어, 일부 장성이 쿠데타를 일으켰을 때, 국방부 장관은 지휘계통을 통해 불법적인 군 병력 이동을 금지시키고, 국무회의 소집을 건의해 적절한 조치를 보고한다. 국방부 장관이 이런 역할을 하지 못했을 때, 우리 현대사에서 국민은 엄청난 비극을 겪었다. 국방부 장관이 군대에 관한 사무를 맡았다고 해서, 대추리 주민과 국민들에게 직접 자신이 계엄사령관인양 행동하고 발언해서는 곤란하다.

평택시위에 나설 수 있는 공무원은 경찰청장, 검찰총장 정도라고 본다. 행정자치부 장관, 법무부 장관은 물론 국방부 장관이 나설 사안이 아니다. 각부 장관은 국무회의의 결정 심의 사항을 집행하고, 경찰 검찰 군대 등을 문민 통제하는데 그쳐야 한다. 각종 권력기관에 대한 문민통제는 참여정부의 일관된 정책 아닌가. 평택이 설사 비상계엄 상황이라 하더라도 계엄사령관이 직접 군을 지휘해야 한다. 국방부 장관이 아니다.

이번 대추리 영농중단을 위한 철조망 설치 작전이 국토방위와 무관하다면, 장관은 대한민국 군대 보호를 위해 국무회의의 결정을 거부해야 옳다. 대추리에 가서 병사들이 세수조차 못한다며 위로하는 게 군대보호가 아니다. 국무회의에서 정부 예산 예비비 100억을 타서 대추리에 나와 있는 군인들에게 보호 장구를 갖추도록 해주고, 컨테이너 막사를 지어주는 것 역시 군대보호는 아니다. 국방부 장관이 진정으로 군대를 보호하고 싶다면, 헌법 제 5조 2항에 따라 군대로 하여금 '국가의 안전보장과 국토방위의 신성한 의무를 수행'토록 해야 한다. 신성한 안보와 국방은 대추리에 있지 않다.

국방부장관이 대추리 갈등을 평화적으로 해결하고 싶은 의지를 갖고 있다면, 우선 대추리에 파견된 군대를 철수시켜야 한다. 이는 국방부 장관의 권한이자 책임이다. 국방부 장관은 헌법 및 법률을 지켜 부당한 권력으로부터 군대를 보호해야 한다. 군대가 쿠데타에 동원되지 않아야 하는 것처럼, 국방부 장관은 민-관 갈등에 군대가 개입되는 것도 막아야 한다.

민간인 공무원인 국방부 장관이 굳이 군 병력을 투입시켜 대추리 갈등을 해결하고 싶다면, 대통령에게 계엄을 건의하고 계엄이 선포되면 장관은 지휘계통에 따라 대추리에 군대 파견 지시를 내리는 것이 오히려 합법적이다. 국방부 장관은 대추리에서 군대를 철수시킬 것인지, 계엄선포를 건의할 것인지 조속히 결단을 내려야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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