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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기회를 놓치면 언제 다시 볼 수 있을지 모를 아주 귀한 전시회가 열린다. 4월 26일부터 5월 28일까지 한 달간 서울역사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열리는 <다시 태어난 우리 옷 / 환생>전이 그것이다.

▲ 마포구 상암동에서 출토된 심의(深衣). 남자의 평상시 겉옷으로 앞자락을 포개어 여민 후 허리춤을 띠로 매어 입는다. 지금 당장 입고 명동거리에 나가도 세련될 듯하다. 단국대 석주선기념박물관 소장품.
ⓒ 곽교신
조선 전기부터 후기까지의 일상복이 수의(壽衣)로 수 백년 동안 땅 속에 묻혀있다가 현대 보존과학의 힘을 빌어 찬란한 유물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개막에 앞서 25일 공개된 수의의 아름다운 자태에 관람자들은 눈을 의심했다. 그도 그럴 것이 예전에는 평상복이 수의였기 때문이다. 오랜 동안 땅 속에 있었기에 원색은 퇴색되고 흙색이 되었지만 시신을 감쌌던 옷이라는 다소 섬뜩한 선입견은 어느 순간에 사라진다.

특히 밀창군 이직의 아들 이익정의 무덤에서 출토된 심의는 그 우아한 자태에 단연 관람객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이 심의는 출토 당시 망자의 가장 겉에 입혀져 있었다고 한다.

▲ 옛 한복의 디자인이라고 믿어지지 않는 아름다운 치마. 단국대 석주선기념박물관 소장.
ⓒ 곽교신

▲ 위 치마를 재현해 입힌 모양.
ⓒ 곽교신
또 경기도 양주 남양 홍씨 부인의 묘에서 출토된 의례용 긴치마는 걸을 때 뒷부분이 바닥에 살짝 끌리게 디자인 되어 우리 한복의 복식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다.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 비비안 리가 입었던 파티복을 연상시키는데, 미 서부개척시대보다 200여년 전인 조선시대 치마가 이런 우아한 디자인이었다는 것이 선뜻 믿어지지 않는다.

상상를 초월하는 조선시대 복식의 우아함에 초청된 인사들은 여기저기서 탄성을 연발했다. 참관 인사들은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한복의 복식이 우리 옷의 극히 일부분임을 새삼 깨달았다고 했고, 일부 인사는 현대의 한복의 디자인은 과거에 비해 오히려 퇴보한 것 아니냐는 의견까지도 내놓았다.

삼베는 우리 전통의 수의가 아니다

26일부터 일반 공개되는 이 특별전을 보고 나면 우리는 지금까지 알고 있는 수의의 개념을 바닥부터 완전히 바꿀 수밖에 없다.

우리 상식 속의 수의는 거칠고 누런 삼베 일색이다. 그러나 땅 속 무덤에서 나온 수 백년 전 우리 선조의 수의는 신분의 상하를 막론하고 삼베가 아니었다. 전시된 수의들의 우아한 자태는 보는 이의 눈을 의심하게 하고 "이것이 정말 수의였나?"를 거듭 묻게 한다.

▲ 밑자락을 걷어올려 한껏 멋을 부린 치마. 여성 관람객들이 감탄을 연발했다.
ⓒ 곽교신
전시장을 둘러보던 이건무 국립중앙박물관장도 "정말로 귀한 전시회다. 많은 국민들이 관람했으면 한다. 우리 박물관 미술부 전원에게 찬찬히 관람하게 하고 싶다"고 말했다.

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박물관의 고부자(전통의상학과) 교수는 "마의태자와 관련된 역사 기록에서 보듯 삼베는 죄인의 옷이다. 거친 베로 수의를 지어드리는 것은 부모를 죄인으로 만드는 불효라고도 할 수 있다"고 말하며 목돈이 없으면 계까지 들어 중국산 삼베로 부모의 수의를 준비하는 잘못된 관습이 고쳐지길 바란다고 했다.

고 교수는 1920년대 쯤부터 삼베 수의가 등장했다고 추측한다. 일제하 궁핍하던 때 입을 것이 변변치 않았을 것이며, 당연히 망자에게 깨끗하게 입힐 마땅한 평상복이 없도록 살기 힘들었던 세태가 삼베 수의를 일반화 시킨 것으로 추측한다고.

박성실(전통의상학과) 교수도 "평상복이 수의이던 우리 전통의 아름다운 풍습이 이 특별전을 계기로 재인식되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조선판 사랑과 영혼

이번 전시에는 2001년 11월 경기도 양주군 해평 윤씨 무덤을 이장하던 중에 발견된 5세 가량 된 소년 미라 실물이 출토 유물과 함께 전시된다.

사후 350여년만에 세상으로 다시 나온 미이라 곁에는 부모와 형제의 것으로 추정되는 큰 옷이 함께 발견되어 소년의 죽음을 애틋해하는 가족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소년이 착용한 수의는 천을 덧대고 기운 흔적이 있는 것으로 미뤄 부유한 집안이 아니었음을 말하고 있으나 바느질 등은 정갈해서 복식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알려져 있다.

내시경 등을 이용한 의학적 검사 결과 소년은 병으로 죽은 것으로 추정되었다. 또 피부가 건조한 상태가 아닌 탄력이 있는 채로 발견되어 관심을 끈 바 있다. 이 미이라는 4월 30일까지만 공개 된다.

▲ "다른 사람들도 우리처럼 서로 어여삐 여기고 사랑할까요. 남들도 정말 우리 같을까요. / 나는 꿈에는 당신을 볼 수 있다고 믿습니다. 몰래 와서 보여주세요" 등 죽은 남편에 대한 사랑이 종이 빈 곳까지 빼곡히 적힌 '원이 엄마'의 애절한 편지.
ⓒ 곽교신
또 <조선판 사랑과 영혼>이란 소주제 전시실에는 먼저 죽은 남편과 함께 묻혔던 부인의 편지가 전시되어 보는 이를 뭉클하게 한다.

(전략) 당신을 여의고는 나는 살 수가 없어요. 빨리 당신께 가고 싶어요. 나를 데려가 주세요. (후략)
-임세권 안동대 교수가 현대어 번역.

이 편지는 1998년 4월에 경북 안동시에서 택지 개발로 이장하던 한 무덤에서 412년만에 발견되어 큰 감동을 주었었다. 안동대에서는 이 편지를 창작 오페라로 재탄생시킨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아주 귀한 특별전이지만 서울역사박물관 입장료(어른 700원, 어린이 무료)만으로 관람이 가능하다. 평일은 09:00~22:00 토, 일, 공휴일은 10:00~19:00까지 개관하며 매주 월요일은 휴관.

수의(壽衣)의 고정관념이 바뀌는 계기가 되기를

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박물관과 이번 전시를 공동기획한 김우림 서울역사박물관장은 "우리 조상의 전통 수의는 사후(死後)를 위해 일부러 만든 베옷이 아니라 생전에 입던 평상복이었음을 이 특별전의 출토복식 유물들은 증명하고있다."고 강조한다.

평상복을 수의로 쓰던 풍습이 있었기에 조선 전기부터 후기까지 우리 옷 모습이 땅 속에 원형대로 남아있었고 우리가 실물을 볼 수 있게 되었다는 것.

보존 관계상 관련 전문가들도 접하기 어려운 귀한 유물들을 한 자리에 모으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는 김 관장은, "한달 간의 전시 기간 동안에 서울 시민뿐 아니라 많은 국민들이 관람하여 우리 옷을 옛 모습대로 보고 옷에 나타난 선조들의 미의식을 다시 인식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특히 수의는 당연히 삼베로 짓는 것으로 아는 잘못된 인식이 바뀌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 곽교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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