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멧돼지 쓸개가 약이 된다고 합니다. 그러나 어디에 소용되는지, 어떻게 먹는지 제대로 아는 이가 많지 않은 듯한데 시장에서는 멧돼지 쓸개 거래가 심심치 않게 이뤄진다고 합니다.

요즘 야생 멧돼지가 자주 출몰하면서 멧돼지 쓸개에 대한 관심이 적지 않습니다. 야생 조수를 보호하기 위한 법령에 따라 야생멧돼지는 원칙적으로 잡을 수도, 먹을 수도 없습니다. 따라서 사육 멧돼지의 쓸개가 시중 유통량의 대부분을 차지합니다.

▲ 사육 멧돼지 쓸개도 야생 못지않은 효과가 있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 강상헌

물론 야생 쓸개보다 효험이나 기능은 덜 하겠습니다만 멧돼지 농장이나 전문유통업체 관계자들은 사육 멧돼지 쓸개도 족보(?)있는 좋은 것을 골라 정성을 들여 제대로 처리하면 최고품에 못지 않은 좋은 민간약이 될 수 있지 않겠느냐고 말합니다. 여러 문헌과 학자, 전통의학계의 멧돼지 쓸개에 관한 언급을 모아봅니다.

"생긴 것이 집돼지와 비슷하다. 허리와 다리가 길고 털이 갈색이다. 고기, 기름, 담에 생긴 누런 것, 쓸개, 이빨, 불알 등을 약으로 쓴다. 고기는 오장을 보하고 풍기(風氣)가 동하지 않게 한다. 기름은 얼굴빛이 좋아지게 하고, 산모의 젖을 잘 내게 하는 데 좋다. 멧돼지 담 속에서 나온 누런 야저황(野豬黃)은 헛것을 보아 까무러친 데나, 아이의 경기에 좋다."

위는 <동의보감>이 말하는 '멧돼지'의 효용입니다. 이 중 쓸개와, 담(膽) 즉 쓸개에 생긴 누런 것(야저황)을 약으로 쓴다는 내용이 주목할 만합니다. 고기 기름까지도 불알 이빨과 함께 '약'으로 쓴다고 적고 있네요. 멧돼지·멧돼지 고기· 멧돼지 쓸개가 어떠어떠하다는 속설들이 많고, 대부분 그 근거로 <동의보감>을 들고 있으나 그 '고전' 의학서가 직접 언급한 내용은 이게 전부입니다.

"지리산 부근 구례 사람들에게서 들은 얘기입니다. 이들은 예로부터 멧돼지 쓸개를 말려서 툇마루 위에 걸었답니다. 마을에 갑자기 정신을 잃거나 죽어가는 사람이 생기면 이 쓸개 가루를 물에 타 먹여 살려냈다는 것이지요. 잡식성으로 후각이 매우 발달한 멧돼지는 산속의 약초, 땅 속에 묻힌 각종 뿌리 등 진기한 물질을 먹는데, 좋은 성분이 쓸개에 많이 축적된 것으로 볼 수 있겠습니다."

▲ 흔치 않은 멧돼지연구자 중 한 사람인 정동기 제주대 교수
ⓒ 강상헌

흔치 않은 멧돼지 연구자 중 한 사람인 정동기 제주대 교수가 들려준 얘기입니다. 멧돼지 쓸개가 항간에서 일반적인 응급약으로 활용됐다는 것이군요. 야저황이 '헛것을 보아 까무러친 데나, 아이의 경기에 좋다'는 설명과 다소 통하는 것 같습니다. 아하, 웅담이 또한 이런 비슷한 용도로 쓰이지요? 우황청심환도 그렇고요.

웅담(熊膽), 즉 곰의 쓸개는 여러 동물의 쓸개 중에서 효능이 가장 좋답니다. 웅담만은 못하겠지만 멧돼지 쓸개는 웅담에 버금가는 효능을 가진다고 하네요. 그 다음으로 효과가 있는 것은 뱀(구렁이)의 쓸개랍니다. 간 치료에 좋다고 하는 중국 약 편자황은 뱀 쓸개를 넣은 것이지요.

전통의학에서는 쓸개가 기운을 발동시키는 역할을 한다고 봅니다. 봄의 생명력이 메마른 대지를 뚫고 나오는 것과 같은 작용을 말하는 것이지요. 화가 나는 것과 같은 원인으로 벌떡 일어나는 작용 또한 쓸개의 효용과 관련이 있겠습니다. 불의(不義)를 보고도 화를 내지 않는 이를 보고 '쓸개 빠진 놈'이라고 하는 이유겠지요.

무릇 여러 동물의 쓸개는 인체의 혈액순환을 촉진하고, 좋지 않은 피를 정화하는 효능이 있답니다. 피부 색깔이 어둡고 두꺼울수록, 또 동작이 둔한 동물일수록 쓸개의 작용이 강하다고 하는군요. 미련하고 게을러서 아예 겨울잠을 자야 하는 곰이 봄에 몸을 일으켜 기동하기 위해 가지는 강력한 힘의 쓸개가 '가장 좋은 약'이 된다는 것이지요. 웅담 또는 멧돼지 쓸개가 다른 동물에 비해 효능이 크다는 얘기입니다.

멧돼지 쓸개는 고혈압 동맥경화 등 심혈관 이상이나 간염·간경화증 등 간장 이상을 다스리는 데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웅담의 대용품으로 인식되는 것이지요.

가짜 시비가 끊이지 않는 웅담만큼은 아니지만 멧돼지 쓸개 또한 가짜가 많답니다. 외형이나 맛, 냄새가 특이하지 않아서 일반인은 물론 웬만한 관계자들도 혼란을 겪는다고 하네요. 돼지 쓸개가 멧돼지 쓸개나 중국산 웅담으로 둔갑하는 일이 잦다고 멧돼지고기 유통전문가 이옥현 씨(주성농장 대표)는 귀띔합니다.

깨끗한 쓴맛을 내며, 물에 잘 녹는 것이 좋은 쓸개의 특징이랍니다. 쓸개를 살짝 쪄서 껍질을 어느 정도 익힌 다음 통풍이 잘되는 그늘에서 말리는 것이 가장 일반적인 가공법이라 하네요. 말린 것을 가루 내어 술에 넣기도 하고, 물에 타기도 하여 마십니다. 아예 말린 것을 도수 높은 술에 담아 약술로 만들기도 합니다. 이 과정에 정성이 많이 들어가야 '좋은 약'이 되는 것 아닐까요?

덧붙이는 글 | 식품안전정보 전문언론 생명시대신문(www.lifereport.co.kr)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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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등에서 일했던 언론인으로 생명문화를 공부하고, 대학 등에서 언론과 어문 관련 강의를 합니다. 이런 과정에서 얻은 생각을 여러 분들과 나누기 위해 신문 등에 글을 씁니다. (사)우리글진흥원 원장 직책을 맡고 있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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