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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프리스트>가 할리우드에서 영화화된다. 우리 만화가 원작이 돼 할리우드에서 영화로 제작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 더욱이 판권을 완전히 넘기지 않는 형태의 계약으로 좋은 선례로 자리잡을 듯싶다.

형민우 작가는 3월 초 비밀리에(?) 계약서에 사인하고, 태어날 영화 <프리스트>와의 조우를 기다리고 있다. 영화 <프리스트>는 <스파이더맨> 시리즈로 유명한 셈 레이미 감독이 제작을 맡았으며 <아미티빌 호러>의 앤드루 더글러스 감독이 메가폰을 잡아 6월 크랭크인에 들어간다.

악마의 부활 음모에 휘말려 엑소시스트가 된 신부 이반의 모험과 투쟁, 그 연속선상 속에 깃든 처절한 갈등과 대립, 그리고 형민우만의 독특한 그림체 등으로 2000년 들어 우리 만화계 최대 수확 가운데 하나로 거론되는 <프리스트>.

우리 만화계는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될 것인가. 8년째 인기리에 연재되고 있는 이 만화의 주인공을 만나봤다.

다음은 형민우 작가와의 일문 일답.

- 우리 만화가 할리우드에서 영화화 되는 것은 처음인데?
"아직 실감이 안 난다.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이었고, 선례가 없어 더욱 그렇다. 작가 입장에서는 자기 원작 그대로 해달라 요구해야 하는 게 맞겠지만 내 입장에서는 그런 욕심도 안 들더라. 만화 <프리스트>가 가진 소스도 완전히 오리지널이라기보다는 내가 좋아하는 영화나 게임 등이 그대로 녹아 있어 '고스란히' 영화화한다는 것에도 아마 무리가 따를 것이다."

▲ 그는 작가적 최면이 깨지는 것을 염려하며 한사코 사진촬영을 고사했다. 대신 큼직막한 문신이 새겨진 자신의 팔 사진을 제공했다.
ⓒ 형민우
- 그간의 계약 과정이 궁금하다
"현재 미국에 <프리스트>를 공급하는 도쿄팝에서도 영화화에 대한 욕심이 있었고, 에이전시 계약을 위해 2년 정도 뛰어다닌 모양이다. 소니엔터테인먼트에서 배급을 맡아 지난 3월 초 계약을 체결하게 됐다."

- 계약의 주내용은 무엇인가?
"내가 내 원작을 마음대로 쓸 수 있고, 영화화된 내용도 갖다 쓸 수 있는 것. 또한 부가판권을 모두 포함한 원작 수출이라는 것 정도를 들 수 있다. 영화 제작사가 자기 입맛대로 바꿔 만들 수 있는 대신 나한테도 선택의 폭과 권리를 준 셈이다."

- 계약 체결과 더불어 고민했던 점이 있다면?
"계약서만도 50페이지가 넘어 일반 변호사 뿐 아니라 국제 변호사들도 해석이 어려웠다. 선례가 없던 것이고, 매우 테크니컬하게 씌어져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해외수출과 관련된 계약이 늘어날 텐데 만화가들에 대한 그러한 방면의 지원이 있으면 좋겠다. 흔히 만화가들은 그런 방면에 약하잖은가."

- 이렇듯 국내외로 많은 인기를 모으고 있는 <프리스트>의 인기 비결은 뭘까?
"독특하니까 좋아하는 듯하다. 또 싫어하는 사람들도 적잖다. 그런데 나는 자기 세계로만 걸어들어가는 스타일이 못 된다. 눈이 낮기 때문이다.(웃음) 전체적으로 대중적인 분위기에 톡톡 튀는 요소를 담기 때문이 아닐까."

- 작품을 시작한 특별한 계기가 있는가?
"특별한 것은 없다. <프리스트>는 처음부터 뚜렷한 주제의식을 담고 출발한 작품이 아니다. 등단 초기, 만화를 연재하면서 경험이 없어 자꾸 지치게 되면서 무조건 내가 좋아하는 것을 다 담아서 하자는 생각으로 <프리스트>를 시작하게 됐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영화인 <신의 군대>를 기본 틀로 좋아하는 모든 것들을 쏟아부었다."

- <프리스트>를 통해 말하고 싶었던 것이 있다면?
"나는 결코 종교인을 탓하는 게 아니다. <프리스트>는 종교 자체가 갖는 허구에 대한 혐오다. 동시에 종교적인 성스러움에 대한 동경이다. 그런 모든 것들이 섞여 나오니까 사람들은 무조건 종교에 대한 비판을 하느냐고 묻는다. 하지만 난 사실 종교는 잘 모른다. 무지에 대한 혐오를 얘기하려고 했는데 그 '혐오'가 잘 드러나지 않더라. 오히려 신에게는 다른 뜻이 있다는 해석의 여지만 남아 걱정이다.(웃음)"

- 종교는 없을 듯한데 무신론자인가?
"무신론자다. 나에게 종교란 뭘 믿는다는 게 아닌, 그냥 '신화'일 뿐이다. 즉 이야깃거리일 뿐이다. 물론 우리가 모르는 영역도 분명히 있겠지만 적어도 인간의 사고방식에서 만들어진 그런 것은 아닐 거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수학이야말로 인간이 따라야 할 진리탐구의 기본이 아닐까."

- 작품을 위해 종교관련 서적 등을 보며 연구도 많이 했을 듯한데?
"유명한 문구는 좀 느끼해서 싫다. 왠지 이 사람도 쓴 것 같고, 저 사람도 쓴 것 같은 느낌이잖은가. 대신 내가 발견한 문구들이나 기존에 알던 것과는 다른 해석을 발견하곤 사용하기도 한다. 나는 다른 시각으로 보는 것을 즐긴다."

▲ 우리 만화로는 최초로 할리우드에서 영화화되는 <프리스트>. 우리 만화의 새로운 전기가 될 성싶다.
ⓒ 형민우
- 8년간에 걸쳐 연재 중이다. 언제쯤 완결될 것 같은지?
"시작할 때는 스무 권에서 스물다섯 권 정도를 생각했다. 그런데 이렇게 오랜 기간 그리게 될 줄은 몰랐다. 위험하다. 작가적인 생명과도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문제다. <프리스트> 하나만 하다간 곧 마흔이 될 거다. 새 작품을 시작해야 할 듯.(웃음)"

- 본래 느리게 그리는가?
"나쁜 버릇인데 문하생 경험이 없어서다. 학원 한 번 안 가고 미대에 들어가려다 실패하곤 대원 만화 공모전에 지원했다 붙은 뒤로 만화가 생활이 시작된 터다. 슬럼프는 없지만 많이 게으른 편이다. 인내를 가지길 바란다.(웃음)"

- 다음 작품을 계획하는 것이 있는가?
"대원을 통해 곧 연재가 시작될 것이다. 뉴욕과 같은 거대한 섬에서 벌어지는 마초들간의 전쟁과 같은 액션물이 될 거다. 들어갈 수 있지만 나올 수는 없는 범법자들의 천국 이야기. 거대한 도시 자체가 감옥이 되어 둘셋 정도의 마초 주인공들이 끊임없이 싸우는 내용을 주로 하고 있다."

- 형민우가 만화를 그리게 하는 힘은 무언가?
"철없기 때문이다. 사람이 성숙해지면 상상을 안하게 되는데 나는 공상하는 것, 멍하니 있는 것을 좋아한다. 멍하게 있다 불현듯 생각나는 잡상들이 사람의 창작욕을 불러일으키는 요소가 아니겠는가. (나처럼) 게으르고 자기밖에 모르는 사람들은 분명 사회적으로는 마이너스이겠지만 문화적으로나 예술적으로 봤을 때는 자원이다. 창작욕을 불태우기 위해서는 자기가 뭔가 열심히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언제 그런 사고방식이 부풀어오는가를 잘 아는 것도 중요하다. 나의 경우는 게으름에서 그 힘이 온다. 괴팍한 사고방식, 쓸데없는 걱정 같은 것이 형민우를 뒷받침해주는 힘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 CTNEWS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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