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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센병 환자는 지금까지 편견과 차별 가운데 막대한 고통과 고난을 강요당해 왔다. 우리나라에서는 소화 28년 제정된 '나병예방법'에서도 계속 한센병 환자에 대한 격리정책이 취해져 왔으며 더구나 소화 30년대에 이르러서는 한센병에 대한 지금까지의 인식이 잘못되었음이 명백하게 되었음에도, 여전히 한센병에 대한 잘못된 인식이 고쳐지지 않고 격리정책의 변경도 이루어지지 않고 한센병 환자였던 사람들에게 못된 장난 등에 참기 어려운 고통과 고난을 계속하게 한 채로 경과되었고, 겨우 '나병예방법의 폐지에 관한 법률'이 시행된 것은 1996년이었다.

우리들은 이러한 비참한 사실을 회개와 반성의 뜻을 담아 심각하게 받아들여 깊이 사죄함과 동시에, 한센병 환자였던 사람 등에 대한 이유 없는 편견을 근절하는 결의를 새롭게 하는 것이다.

여기에 한센병 환자였던 사람 등의 어려운 심신의 상흔의 회복과 생활의 평온에 이바지하기 위하여 한센병 요양소 입소자 등이 지금까지 받아온 정신적 고통을 위로하고 사과함과 동시에 한센병 환자였던 사람 등의 명예회복 및 복지증진을 도모하고 아울러 사망자에 대한 추도의 뜻을 표하기 위해 이 법률을 제정한다."


이 글은 이웃나라 일본에서 지난 2001년 6월 22일 제정된 '한센병 요양소 입소자 등에 대한 보상금 지급 등에 관한 법률'의 전문(前文)이다. 통상 헌법과 같은 법을 제외하고는 법률에 전문을 붙이는 예가 아주 희귀함을 살펴볼 때 위 '한센병 요양소 입소자 등에 대한 보상금 지급 등에 관한 법률'에 특별히 위와 같은 전문을 붙였다는 것은 일본 정부나 국회가 그만큼 지난 세월 한센병을 앓았던 병력을 가진 사람들이 받았을 고통에 대한 동참과 보상의지가 강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지난 4월 3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회의실에서 '한센인 피해자 보상 등에 관한 법률' 제정에 대한 의원 간담회가 있었다. 이 간담회에는 이 법의 제안자인 열린우리당 김춘진 의원을 비롯하여 법안심의 소위원회 위원인 열린우리당 이기우 보건복지위 간사, 한나라당 박재완 보건복지위 간사, 그리고 소위원장인 열린우리당 문병호 의원과 소위원으로 한나라당 안명옥, 정화원 의원 등 총 6명의 국회의원들이 참석했다.

그리고 간담회는 외부 전문가로 유준의학연구소 소장인 유준 박사와 정근식 서울대학교 사회학과 교수(국가인권위원회 한센병 인권침해조사 단장), 조영선 변호사(일제하 소록도 강제격리 피해자 보상소송 한국 변호단 간사) 등을 초청하여 의견을 듣는 절차로 진행되었다.

간담회는 외부 전문가로 초빙된 사람들의 주제 발표와 함께 이 발표에 대하여 의원들이 질의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는데 법률 제정에 필요한 절차 중 이러한 전문가 초빙 간담회는 필수적인 절차라는 것을 느끼게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법안심사 소위의 의원들로서 기초준비가 너무나 부실하지 않은가 하는 의문을 던지게 하는 발언들이 있었음은 이 간담회의 옥에 티였다.

특히 이 자리에 한센병 전문가로 초빙받은 유준의학연구소 소장인 유준 박사의 한센 병력자에 대한 인식은 평생 동안 한센병 퇴치에 노력했다는 그의 말을 의심케 했다.

현재 일본의 한센병 전문가들은 일본의 나학계에서 한 때 아버지로 추앙받던 미쯔다 겐스케에 대한 성토가 대단히 많다. 특히 전 세계의 모든 나라들에서 한센병은 격리할 필요가 없다는 연구결과와 함께 1950년대부터 이뤄진 비격리 치료를 일본만 도외시하고 최근인 1996년에 와서야 격리법을 폐지한 것은 미쯔다 겐스케의 영향이었다고 말하며 그 때문에 일본 정부의 보상비용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는데 많은 사람들이 동의한다.

미쯔다 겐스케는 일본의 한센병자 강제격리정책을 가장 강력히 주장했으며 한센병 환자의 근절은 완전한 격리가 최선이라고 역설했던 의사였다. 그리고 그는 사실상 한센병 환자들을 일본 땅에서 멸절시키려 했던 사람이기도 했다. 그의 이러한 강제격리정책에 뜻있는 나학자들이 격리를 폐지하고 통원치료를 주장하며 반기를 들기도 했으나 일본 정부의 강력한 지지를 받고 있던 그의 의지를 꺾지 못했던 것이며 그 영향에 따라서 일본은 1996년까지 격리정책을 존치했고 그만큼 국가가 부담해야 할 보상금액도 상향되었던 것이다.

유준씨는 그 스스로 한국의 한센병 퇴치에 일생을 바쳤다고 말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이 날 그의 발언을 들어 보면 그의 인식은 한센인 차별 논리나 다름없었다.

그는 1960년대 구걸하면서 동냥바가지밖에 없던 사람들이 이제 이만큼 살게 된 것이 정착촌 건설의 성공이라는 논리로 자신의 업적을 내세웠으나 정작 정착촌이라는 육지 속의 낙도에 유폐된 당사자들의 그 지난한 삶에 대한 고민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특히 그는 보상법을 제정할 필요도 없으며 만약 보상법이 제정되더라도 2세에 대한 인권침해를 보상하는 것은 또 다른 차별이라는 이해할 수 없는 논리를 내세웠다. 즉 이미 장성하여 각자의 삶을 살고 있는 2세들을 다시 보상이라는 이름으로 명부를 만드는 것 자체가 또 다른 차별이라는 것이었다.

2세들은 요양소에 입소한 부모의 자식일 경우 부모와의 강제격리에 의하여 거의 100% 보육원 생활을 경험했으며 요양소에 입소하지 않고 육지의 정착촌에서 살았더라도 1960년대 초등학교를 다녔던 거의 모든 2세들이 정상적 학업이수를 하려면 부모를 떠나 보육원으로 들어가야 했던 아픈 과거들을 고려하지 않은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장성한 2세들이 부모가 특정 질병에 감염되었다는 이유로 받았던 사회의 암묵적 차별을 고려하지 않은 것이다.

그는 지금이라도 한센병 병력이 있던 사람들의 기본적 인권을 살펴야 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그가 간담회 마지막 발언으로 했던 말은 기자에겐 큰 충격이었다.

"한센인 인권회복운동이라고들 하는데 한센병자들을 차별한 것은 비단 우리나라만이 아니고 한센병 자체가 한 때 무서운 질병이라는 인식이 전 세계 모든 사람들에게 있었으므로 세계 어느 나라나 다 이들에 대한 인권침해가 있었다. 그런데 왜 이러한 인권침해를 우리나라에서만 문제 삼느냐? 세계적 현상이었던 것을 문제 삼을 수는 없지 않느냐?"

어떻게 이런 말이 한센병 치유를 위해 평생을 바쳤다고 내세우며 스스로 희망촌 제안자로서 한센 정착촌 건설의 성공을 자평하던 사람의 입에서 나올 수 있는가?

현재 한센인 인권침해에 대한 문제를 가지고 차별철폐를 논의하는 나라는 OECD 국가 중 우리나라가 유일하다. 심지어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까지 한센인 격리장소를 견학지로 하여 지난 세월 한센인 차별에 대하여 반성하고 있으며 이 글 맨 처음에 서술한 그대로 일본은 국가의 반성을 법률 전문에까지 담았다.

이러한 명백한 진실 앞에 스스로 한센 전문가라고 말하는 사람의 사상이 1950년대의 전 근대적 사고라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

또 이 날 간담회의 옥에 티라고 할 수 있는 것은 법안심사 소위 위원들의 한센병에 대한 인식부족이었다. 물론 수많은 법률을 다루며 또 업무의 과중으로 일일이 개개의 사안에 능통할 수는 없겠으나 그렇더라도 기본적 인식에는 상당한 문제가 있음이 발견되었다.

특히 모 의원의 인식은 상당한 문제점을 노출하였다.

현재 한센인 인권회복운동의 상당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한센인 중앙등록제에 따른 거주이전의 제한(이주시 관할 보건소의 이관관리)이 헌법에서 보장하는 주거이전의 자유를 심각하게 침해하고 있다는 주제발표와 이 같은 중앙등록제가 지금도 한센병을 전염병으로 분류하여 관리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문제 제기에 대하여 이 의원은 다음과 같이 질문했다.

"이 병이 어쨌든 전염병이므로 발병자가 1년에 단 한 명이라도 나온다면 국가에서 관리해야 한다. 그것이 국가가 할 일이다. 그리고 지금 복지부 국장의 말로 1년에 30명이 발병하고 있다는데 이는 지금도 전염되고 있는 것이 아니냐? 이러한 전염병 환자를 국가가 관리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인가?"

이 질문은 그가 보좌관을 시켜서 국가가 운영하고 있는 국립소록도 병원이나 한국한센복지협회에서 운영하고 있는 나병연구원에 전화 한 통화만 해도 알 수 있는 사안이다.

우선 우리나라는 10여 년 전에 WHO에서 한센병 퇴치국가로 공인을 받았다. WHO는 인구 1만 명당 1명 이하의 신환자가 발생한(0.01%의 발병률) 나라에 대하여 한센선진국으로 판정하며 우리나라는 벌써 10여 년 전에 이러한 판정을 받았다.

지난 2005년 보건복지부 통계를 보면 신환자(엄밀히 말해서 신규 등록자)로 등록한 사람이 39명이었으며 이 중 단 1회도 공식적으로 국가에서 항나제를 투여 받은 적이 없는 순수 신환자는 15명이었다고 한국한센복지협회 연구원의 고영훈 원장은 증언했다.

하지만 고 원장은 "이 분들의 평균연령이 68세이고 또 일부는 결절 현상을 보인 다음에 병원에 치료를 받으러 온 사람들이므로 이들이 2005년에 발병한 신환자라고 말할 수는 없다"고 했다.

그는 "한센병의 잠복기가 짧게는 4~5년, 길게는 10년도 넘으며 외부 표식이 나기 시작해도 또 이상 피부 질환으로 병원진료를 받다가 완치가 되지 않아서 나균 양성반응검사를 하기 때문에 신규 등록자라도 언제 감염되었는지 판정하기가 쉽지 않다"고 말하며 "나균 양성자로 판정을 받은 신규 등록자가 매년 몇 분씩 나오지만 이분들도 이미 오래 전에 보균자가 되어서 자가 치료 등을 하다가 입원하거나 치료차 내원했으므로 이분들이 최근에 전염되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고 증언했다.

또 다른 통계와 증언을 보면 현재 의왕시에 있는 한센복지협회 한센연구원에는 총 29명의 환자가 입원해 있으나 항나제를 투여하는 양성환자(말 그대로 한센병자)는 총 3명이며 전라남도 고흥의 국립소록도 병원에 입원한 환자수가 667명이나 이중 양성환자로 치료를 받고 있는 환자는 9명이라는 국립소록도병원 김중원 원장의 증언으로 살펴보아도 한센병은 이제 완벽하게 퇴치된 질병이라는 것을 증명할 수 있다.

사실이 이러함에도 1년에 단 몇 명의 신환자라도 등록되고 있으므로 이를 국가가 전염병으로 관리해야 한다고 말하는 이 의원의 인식에는 상당한 문제가 있다.

이 날 간담회는 이렇게 전문가라고 초빙된 사람의 저열한 인식과 의원들의 인식부족으로 많은 토론이 오갔음에도 좀 더 연구하기로 한다는 결론을 남기고 막을 내렸다. 이 간담회를 취재한 기자는 국회 정문을 나오며 언제쯤 우리나라도 이웃 일본과 같이 위에 게시한 전문을 단 특별법을 제정할 수 있을 것인지 깊은 의문을 가졌다.

덧붙이는 글 | 임두만 기자는 한센병력자 단체인 사단법인 한빛복지협회에서 발간하는 월간 <한빛>의 전문편집위원이며, 2002년부터 한센인 인권회복운동을 해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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