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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5년 6월 한미 정상회담 모습. 당시 오찬 회담에서 부시 대통령은 "한국 국민들이 미군이 한국에 주둔하는 것에 대해 싫증난(tired) 것은 아닙니까"라고 물었다.
ⓒ 청와대
노무현 정부 출범 직후인 2003년 3월. 미국이 주한미군 기지 재배치를 요구하고 나섰다는 소식을 접한 필자는 정부의 고위 관료에게 전화를 걸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주한미군 기지 재배치는 한반도 안보 상황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오는 사안입니다. 특히 북핵 문제가 걸려 있는 상황에서 미국의 요구를 쉽게 받아주어서는 안됩니다."

이에 대해 정부 관료는 북핵 문제는 단기적인 사안이고, 미군 기지 재배치는 장기적인 사안이기 때문에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핵심적인 정책 결정 라인에 있었던 이 관료의 답변을 들으면서 정부가 미군 재배치가 갖고 있는 민감성에 주목하지 않는 것을 보고 다소 놀랐던 기억이 난다. 노무현 정부가 집권 초기에 미국의 요구를 수용하기로 방침을 정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그로부터 3년이 지난 오늘날. 그가 '단기적 사안'이라고 말했던 북핵 문제는 여전히 해결 전망이 보이지 않고, '장기적 사안'이라고 말했던 주한미군 재배치는 대추리 주민의 생존권을 짓밟으면서까지 강행되고 있다.

반세기를 뛰어 넘은 3년간의 변화

변화의 크기가 너무 큰 탓일까? 한미동맹이 반세기만에 근본적인 변화를 겪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사회적 관심은 대단히 낮은 수준이다. 이는 동맹과 관련해 작은 문제만 터져도 호들갑에 가까운 논란이 벌어졌던 과거와 비교할 때, 이해하기 힘든 현상이다.

그렇다면 한미동맹은 어떻게 바뀌고 있는 것일까? 노무현 정부가 말하는 것처럼, 보다 대등하고 합리적인 방향으로 재편되고 있을까? 아니면, 시대적 요구와는 정반대로 미국 패권주의의 도구로 전락하고 있는 것일까?

한미동맹의 변화와 관련해 2006년 3월 7일 미 상원 군사위원회 청문회에서 버웰 벨 주한미군 사령관은 이렇게 말했다. "단일한 목적의 동맹에서 공유된 민주적 가치와 공동의 이익에 기반을 둔 포괄적인 동맹으로 발전해왔다." 그냥 넘어가기에는 그의 발언이 함축하고 있는 바는 대단히 크다. "단일한 목적"은 무엇이었고, 뭘 더 포괄하겠다는 것인지 밝힐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동맹의 성격 변화를 설명하기에 앞서, 지난 3년여 동안 숨가쁘게 진행된 동맹 재편의 과정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한미 양국은 김대중 정부 '말기'인 2002년 12월 워싱턴에서 열린 제34차 한미연례안보협력회의(SCM)에서 한미동맹 재편을 추진하기 위한 미래한미동맹정책구상회의(FOTA)를 발족하기로 합의했다. 먼저 이 시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동맹의 형성 및 존속의 가장 큰 이유가 '공동의 적(common enemy)'에 있다면, 그 위협이 크게 변하지 않으면 동맹 역시 변하지 않는 속성을 갖고 있다. 그런데 한미동맹의 재편은 한미양국이 '공동의 적'으로 삼고 있는 북한이 핵 개발을 다시 나선 시점과 거의 일치한다. 이는 1차 북핵 문제가 발생하자 주한미군 3단계 감축 계획을 중단시켰던 1990년대 초의 현상과 대비된다.

이후 북핵 문제가 악화일로를 걷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한미동맹 재편은 오히려 가속도가 붙었다. 합의대로 FOTA 회의를 여는 한편, 2003년 5월 노무현 대통령과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워싱턴 한미정상회담에서 공동성명을 발표해 한미동맹을 '현대화'하기로 했다.

또한 2004년 10월에는 용산기지 이전 협정과 연합토지관리계획(LPP) 개정안이 국회 비준절차를 걸침에 따라, 용산기지와 2사단을 평택권으로 이전하기로 합의했다. 2005년 11월 경주에서 열린 한미정상회담에서는 한미동맹의 지역적 역할 강화 및 가치 동맹으로의 발전을 골격으로 하는 '한미동맹과 한반도 평화 공동선언'이 채택되었고, 2006년 1월 한미간의 첫 전략대화에서는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에 대한 합의가 이뤄졌다.

이 정도면 지난 3년여의 변화가 이전 50년의 변화를 능가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할 수 있다.

한미동맹, 어떻게 바뀌고 있나?

▲ 지난 2004년 6월 7일 오후 국방부 중회의실에서 열릴 제9차 미례한미동맹정책구상회의(FOTA)에 미국측 수석대표 리처드 롤리스 국방부 부차관보(왼쪽)와 한국측 수석대표 권안도 국방부 정책실장직무대행(오른쪽)이 웃으면서 회의장으로 들어오고 있다.
ⓒ 시민의신문 양계탁
지난 3년여의 동맹 재편의 대략적인 과정은 'FOTA 발족→동맹의 재정의 기초 마련→용산기지 및 2사단 이전 합의→동맹 재정의의 가속화→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합의→동맹 재정의의 완성'으로 정리할 수 있다. 이미 9부 능선을 넘어 산 정상 바로 밑에까지 와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나타나고 있는 한미동맹 변화의 방향과 성격은 크게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는 한미 양국이 공동의 적으로 삼아왔던 북한에 대한 목표와 한미간의 역할 변화이다. 한미동맹은 북한의 남침 억제 및 억제 실패시 격퇴를 골자로 한 '방어형 동맹'의 성격을 갖고 있었다. 이는 주한미군 사령관이 말한 "단일한 목적"에 해당된다.

그러나 최근 한미동맹의 재편은 북한에 대한 예방적·선제적 군사 개입을 포함한 '공격형 동맹'의 성격이 부가되는 방향으로 이뤄지고 있다. 이는 부시 행정부가 대량살상무기(WMD) 위협 국가에 대해 선제공격 전략을 채택하고, 작전계획 5026, 5029 등에 이러한 전략을 반영시킨 것에서도 알 수 있다.

이러한 성격 전환에서 한미간의 임무 분담이 이뤄지고 있는데, 전통적인 한미동맹의 임무인 대북 억제 및 방어의 주도적인 역할은 한국군이 맡고, 주한미군을 포함한 미군은 대북 억제 및 방어에는 보조적인 역할을 하면서 북한의 대량살상무기 보유 및 확산 저지를 주된 임무로 삼고 있다.

이러한 분석을 뒷받침하듯 주한미군 사령관은 "우리는 한국 방어에서 한국이 더 많은 역할을 하고자 하는 것을 지지하며, 동시에 군사 변혁의 목적들을 충족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아울러 그는 한국에 전시작전권 이양을 마무리하게 되면 주한미군은 공군력과 해군력 중심으로 재편되어 한국 방어의 지원자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성격 전환은 부시 행정부의 '예방전쟁' 개념이 한미동맹에 강하게 투영된 결과이기도 하다.

한국 방위 동맹에서 지역동맹으로

둘째는 한미동맹의 지리적 범위 및 역할과 관련된 것으로서, '한국 방위 동맹'에서 '지역동맹'으로의 확대이다. 미국은 2002년 국가안보전략보고서(NSS)에서 이미 한미동맹은 지역동맹화를 지향한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또한 미국의 태평양 사령관인 윌리엄 팰런은 한미동맹이 북한의 위협에 대응하는 것 이상의 임무를 수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한미동맹도 변화하는 안보 환경에 적응해야 한다"며, 변화하는 안보 환경의 예로 테러 등 비재래식 위협, 중국 군사력의 현대화, 한반도의 통일을 제시했다. 아울러 팰런은 "한-미-일 3국 사이의 안보 협력이 강화되기를 희망하고, 한국이 보다 지역적인 관점을 수용한 것을 환영한다"고 덧붙였다.

'한국 방위의 한국화'를 통해 대북 억제 및 방어의 주된 임무를 한국군에게 넘기고 있는 미국은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을 확보해, 중국이 미국의 전략적 경쟁자로 부상하는 것을 예방·봉쇄하는 것을 비롯한 지역적 역할 강화를 추구하고 있다. 이는 부시 행정부가 중국을 군사적으로 '전략적 경쟁자'로 규정하고 중국이 미국과 대등해지려는 노력을 좌절시키겠다는 대중국 군사전략이 한미동맹에도 적용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분석을 뒷받침하듯 버웰 벨 주한미군 사령관은 "한국이 자주국방을 위해 전투 능력을 향상시키고 있는 것은 미국의 동맹국이 지역 안보에도 더 많은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하는 미국의 목적과 일치한다"고 강조했다.

군사 동맹에서 가치 동맹으로

셋째는 한미동맹에 '가치 동맹' 개념을 부가해, 한미동맹의 지리적 범위를 전세계로 확대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미 양국은 한미동맹이 위협에의 대처뿐만 아니라 전세계에 걸쳐 민주주의, 시장경제, 자유 및 인권이라는 공동의 가치를 증진하는 데에도 그 목적이 있다고 밝히면서, 특히 테러리즘 및 WMD 확산이 이러한 가치를 위협하는 핵심적인 요소로 규정하고 이에 대한 공동 대응을 강조하고 있다.

이는 2기 부시 행정부가 자유와 민주주의의 확산을 대외정책의 기조로 내세우면서 미국식 체제를 세계화하려는 전략적 의도가 한미동맹에도 반영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상의 설명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것은 한미동맹 재편이 한국이 지향해온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동북아 다자간 안보협력 구축과는 정반대로 이뤄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오늘날 한미동맹의 득실관계를 다시 따져봐야 할 근본적인 요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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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네트워크 대표와 한겨레평화연구소 소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저의 관심 분야는 북한, 평화, 통일, 군축, 북한인권, 비핵화와 평화체제, 국제문제 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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