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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대학생들이 한참 바빠질 때다. 캠퍼스의 로망스를 꿈꾸며 입학한 학교에는 로망스는커녕 이래저래 선배 찾아 밥 얻어먹으랴 허구한 날 선배, 동기들과 술자리 하랴 바쁘고, 갓 2학년이 된 친구들은 열심히 과외 해서 후배들 먹여 살리느라 정신이 없다. 3학년, 4학년은? 안타깝게도 구멍 난 학점 메우기, 취직 준비에 한창이다.

요즘 대학생들에게 좋은 학점만이 다인가? 아니다. 토익, 토플, 텝스, JPT 등 각종 외국어 성적은 필수다. 조금이라도 좋은 점수를 얻으려고 지금도 학원가는 북적북적거린다.

그대여, 그대의 지금 외국어 공부 재미있는가? 단어를 외우고 있을 때면 찢어서 확 먹어버리고 싶지는 않은가? 독해와 쓰기는 하버드대생 저리 가라인데 막상 외국인 앞에서는 이놈의 입이 열리질 않는 까닭에 비싼 돈 주고 회화학원을 등록하지는 않는가?

그래서 제안한다. 대한민국 늑대, 여우들이여! 헌팅하러 가자스라.

'헌팅'이라는 단어가 '콩글리시'라는 사실은 웬만한 사람들은 다들 알 것이다. 그럼에도 이 비표준어를 제목으로 채택한 까닭은 '외국어, 아직도 돈 주고 배우니?' 같은 제목은 왠지 무언가 학습지 광고 같은 냄새를 풍기기에, 조금 신선한 녀석으로 '어필'하고 싶었을 뿐이다.

필자는 예전부터 굳이 외국어를 목적에 두지 않고라도 워낙 새로운 친구 만드는 일이 취미였던 까닭에 한국인이든 외국인이든 '헌팅'을 즐겨 하곤 했다. 필자의 친구들은 필자를 두고 '낯 두꺼운 놈', '레벨 대비 자신감 일등'이라고 말한다. 그래, 나 낯 두껍다. 한마디로 뻔뻔하다. 근데 그대도 알아야 한다. 외국어 공부엔 뻔뻔한 녀석을 따라올 자가 없느니라.

히라이 켄이라는 일본 가수의 목소리에 푹 빠져 살 때였다. 목소리 좋고, 멜로디 좋고, 아 근데 문제는 무엇이더냐? 원체 가사가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가 있어야 말이지. 며칠을 고민하다가 결심했다. 아, 일본어나 한 번 공부해볼까?

책을 한 권 구입하여 하드코어로 시작했다. 방학인 터라 별로 할 일도 없었던 까닭에 아침에 눈뜨자마자 동영상 강의 1회분을 시작으로 초급 일본어 교재 한 과, 다른 동영상 강의 1회분, 일본 드라마 1회분으로 공부했다. 좋은 세상이다. 책만 사면 나머지 콘텐츠들은 지천에 널려 있다.

인터넷이라는 녀석이 얼마나 고마운 녀석이더냐. MP3를 다운 받으면서 죄책감 느끼지 않는 그대라면 나를 욕하지 말아주오. 공부가 하고 싶었을 뿐이라오. 심지어는 프린터만 있으면 책도 프린트해서 볼 수 있지만, 책만큼은 아날로그로 가기로 했다.

어찌되었든 이렇게 공부를 하고 난 후 나머지 시간은 신나게 히라이 켄, 우타다 히카루, 나카시마 미카 등 그래도 한국에 깨나 알려진 가수들의 느린 노래를 열심히 들으면서 출력한 가사를 보며 따라 부르고 잠들기 전에는 오늘의 새로운 표현, 단어를 깔끔하게 정리해놓고 키보드로 열심히 두드려서 '셀프 테스트' 시험지를 만든다. 출력이 끝나면 책상에 고스란히 올려놓는 것을 끝으로 하루를 정리한다. 다음날 아침 일어나자마자 혼자 시험을 보고, 틀린 것을 체크해 둔다. 다시 동영상 강의 1회분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이렇게 일주일 정도 했을까? 벌써 지쳤다. 작심삼일이라던데 그나마 일주일까지 버텨낸 게 어디더냐. 아 다른 인간들은 이 짓을 계속 한단 말인가? 나는 그나마 드라마도 보고 음악이라도 들었지.

마음은 이미 부풀어 있었고, 왠지 입만 열면 회화가 될 것 같았다. 내가 향한 곳은? 다름 아닌 우리 신촌역이다.

신촌은 헌팅의 최적의 장소이다. 영어든 일본어든 중국어든 신촌이 최고다. 왜냐고? 명동, 동대문, 남대문 근처에서도 물론 엄청난 수의 일본인을 비롯해 세계 각지에서 몰려든 외국인 관광객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은 관광객이다. 무슨 뜻이냐고? 곧 돌아갈 인간들이란 말이다.

신촌역을 기준으로 자리한 E대, S대, Y대(알파벳 순)에는 모두 외국인을 위한 어학당이 있다. 우리가 미국, 영국, 일본 등으로 어학연수 가는 것처럼 외국인들이 우리나라에 한국말을 배우러 공부하러 온다는 뜻이다. 솔직히 다른 대학교에도 어학당이 꽤 있는 걸로 알고 있지만 필자가 저 세 대학교 중 한 학교에 다니기에 다른 동네는 잘 모른다.

어찌되었든 이들의 목표는 한국말 공부이다. 나를 포함한 그대들의 목표는 외국어 공부이다. 이제 이 글의 제목대로 움직여보자. 헌팅을 하자!

가장 원초적인 방법은 필자처럼 낯 두꺼운 정도를 레벨 1에서 10으로 나눈다고 할 때, 적어도 7이나 8 이상의 학생이 가능한 방법이다. 뭐냐고? 어학당 건물 앞에 죽치고 서 있자. 그리고 수업을 마친 학생들이 나올 때쯤 아무나 한 명 잡는다. 아, 주의할 것이 하나 있다. 목표를 정확히 설정하자. 일본어 공부하려는 인간이 금발 머리를 잡으면 곤란하지 않겠는가,

살짝 동태를 살펴 자신이 공부하고 있는 언어를 쓰는 나라에서 온 사람을 잡고, 이렇게 외친다. "친구합시다!" 아, 한 가지 팁이 더 있다. E대, S대, Y대 어학당은 보통 오후 한 시에 수업을 마친다. 점심 굶고 기다리고 있다가 시도하여 무조건 같이 점심부터 먹어라.

두 번째는 레벨 5 이상이면 누구나 해 볼 만한 방법이다. 사실 레벨 5는 눈 한 번만 질끔 감아도 충분히 이뤄낼 수 있는 레벨이니 긴장하지 말자. 두 번째 방법은 외국인 학생들이 자주 이용하는 카페나 바 등을 찾아가 우연을 가장한 헌팅을 하는 것이다. 물론 필자는 첫 번째 방법으로 사귄 친구도 있고, 이 두 번째 방법으로 사귄 친구도 있다. 살짝 비밀을 공개하자면 두 번째 만난 친구와는 현재 아름답게 교제 중이다.

내가 선택한 장소는 카페였다. 커피가 대세다. 이대와 신촌, 홍대 지역에 자리 잡은 '별다방'을 비롯한 각종 커피전문점이나 조명이 밝은 카페 안을 들어서면 E대, S대, Y대 등에서 한국어를 공부하는 외국인 학생들을 쉽사리 찾아볼 수 있다.

사실 바에서 술의 힘을 빌려 객기를 부리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하지만 필자는 술이 없어도 항상 뻔뻔하고 눈에 보이는 게 없는 까닭에 대낮에 밝은 카페를 택했다. 신촌의 한 카페에서 전자사전을 열심히 들여다보며 공부하는 아리따운 여인네를 발견했다. 보자마자 박차고 일어나려다 잠시 진정했다. 일주일 동안 배운 것 중에 지금 순간에 걸어야 할 말들을 머릿속으로 정리하고 있었다. 사실 메모지에 적어놓고 두세 번 연습했다. 이제 때가 왔다.

더듬더듬 거리긴 했지만 나는 열의와 성의를 보였고, 그 친구 역시 한국어를 공부하고 있는 까닭에 서로 도와주며 같이 공부하기로 약속했다. 물론 그때는 여자친구가 될지는 꿈에도 상상 못했다. 하지만 필자의 일본어를 향한 열의가 열의이니만큼 우리는 정말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 매일 만났다. 각자의 교재를 보며 공부하면서 모르는 것은 질문하기도 하고, 책은 덮어두고 커피 한잔과 함께 수다를 떨기도 했다. 하긴 수다 떠는 것도 공부가 아닌가? 비싼 돈 주고 회화학원은 도대체 왜 다니는 것이야?

나의 일본어를 향한 열정은 어느덧 사랑으로 바뀌어 있었다. 일본어 공부 때문에 만난 친구였는데, 이제는 어떻게 된 것이 이 여자와 더 많이 얘기하고 싶다는 생각에 일본어 공부를 더 열심히 한다. 과정이야 어찌되었든 동기부여는 확실하지 않은가?

물론 첫 번째 방법으로 만난 친구도 꾸준히 연락하고 있다. 일본어의 특성상 남자와 여자의 말투나 표현 등이 조금씩 다르기에 여자친구의 일본어만 따라하다가는 자칫 오해를 받을 소지가 다분하기에, 첫 번째 방법으로 만난 잘생긴 일본 친구 녀석과도 수시로 전화 통화도 주고받고, 점심식사도 함께 한다. 또 여자 친구와도 같이 자리를 마련해 술자리를 함께 하기도 한다.

이뿐만이 아니다. 여자 친구의 친구들의 국적은 당연히 일본만이 아니다. 미국에서 온 교포도, 금발 머리의 독일 친구도, 까무잡잡한 피부의 아프리카 친구도 있다. 인맥이 중요한 세상이라지 않는가? 인맥은 비단 비즈니스를 위함 만이 아니다. 한 명만 터 놓으면 나머지는 줄줄이다.

피부색이 다른 친구들과 맥주 한잔 같이 하며 완벽한 한국말과 그래도 말은 통하는 영어, 아직은 어쭙잖은 일본어, 이 3개 국어를 섞어가며 대화하는 재미를 아는가? 모른다면 이제 알아야 한다! 대한민국 늑대, 남녀들이여 그대들의 와일드한 본성을 드러내라! 들이대라! 두드려라! 두드리면 열릴 터이니.

끝으로 몇 가지만 당부하고자 한다. '따라하지 마세요'라는 말을 보면 더 따라하고 싶은 것이 사람의 심리인지라 노파심에 하는 당부이다. 필자가 '헌팅을 해보자'라는 다소 자극적인 제목을 채택하기는 하였지만, 이는 절대로 카사노바 혹은 꽃뱀이 되자는 의미가 아니다. 외국어 공부에 가장 필요한 것이 두려움을 없애는 일, 자신감이니 만큼 자신감을 갖고 외국인 친구를 사귀어보자는 것이지 절대 여기저기 외국인에게 '어글리코리안'의 이미지를 보여주려 안달하자는 뜻이 아니다.

굳이 필자처럼 이성 친구가 되지 않아도 외국어 공부는 충분히 가능하다. 그냥 친구로도 충분하다. 너무 외국어 공부에 혈안이 된 나머지 필자가 쓴 글을 그대로 따라하여 다짜고짜 사랑하는 마음도 없이 교제를 시작하고 결국에 서로 마음을 다칠까 염려스런 마음에 조심스럽게 부탁하고자 한다.

한 가지 덧붙이자면, 처음에 외국인 친구에게 다가갈 때, 아무리 외국인 학생들이 한국어를 공부해서 한국어로도 의사소통이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적어도 처음에는 작은 성의라도 보이자. 그 나라 말로 말을 걸자. 다짜고짜 한국말로 '친구하자'보다는 적어도 그 외국인 친구의 나라에 관심 있고, 또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는 정도의 성의는 보여주어야 하지 않을까?

요즈음 파티 문화, 클럽 문화가 트렌드라는 말이 자주 들리곤 한다. 혹자는 무작정 미국 문화를 따라하고자 발악하는 개념 없는 것들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물론 무작정 외국의 문화를 따라가는 것이 좋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자신이 관심을 둔 외국어를 쓰는 외국의 문화가 그렇다면 가끔은 맞춰 볼 필요는 있을 것 같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모르는 사람을 만나도 'Hi'가 튀어나오고, 호텔에서 아침 식사를 하러 내려가다가 만난 방 청소해주시던 아주머니도 '오하이요'를 외쳐주는 그네들이 아닌가.

아직 부끄럼 많은 우리네들은 엘리베이터 안에서는 몇 층이나 남았는지 높은 곳을 쳐다보기 바쁘고, 심지어 얼굴은 알지만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선후배, 동기들마저도 조심스레 외면하지 않는가. 바에서는 일행과 열심히 비밀 얘기하기 바쁘고 행여나 누군가 말을 걸기라도 하면 이상한 인간 취급하기 십상이며, 클럽에서도 맥주잔을 부딪치며 이야기를 나누기보다는 얼굴 안 보이게 뒤에서 다가가 부비부비하는 편이 덜 부끄러울 것 같은 우리들이다.

가끔은 대담해지자! 가끔은 뻔뻔해지자! 얼마나 좋은가, 같은 술자리라면 가끔은 외국어로 이야기하는 술자리로 바꿔보고, 같은 수다떨기라면 가끔은 외국어로 해보자. 맘에 드는 사람과 같이 이야기하는 것보다 더 즐거운 일이 어디있겠는가? 어거지로 책만 붙잡고 늘어지는 일이 지겨울 때는 즐거운 일탈을 꿈꿔보자. '재미'를 느낀다는 것은 어떤 일이든지 능률을 올려줄 수 있는 최고의 조건이다.

대한민국 늑대, 여우들이여 헌팅을 해보자! 그대들의 주머니 걱정과 하얀 종이와 잉크가 이뤄내는 답답한 하모니로부터 받은 스트레스를 덜어줄 터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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