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지난 2005년 9월 25일 KBS 9시 뉴스는 해태제과가 수백억원대 무자료 거래를 했다고 보도했다. 즉, 도매상에 물건을 넘기면서 세금계산서를 발행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에 질세라 MBC는 더 큰 건을 보도했다. MBC '시사매거진 2580'은 2006년 1월 22일에 수개의 음료회사가 조직적으로 음료수를 무자료 거래한 사실을 폭로한 것이다.

이 정도면 무자료거래가 거의 관행화되었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 당시 MBC에 무자료거래를 폭로한 제보자들은 거래의 50~70%가 무자료로 거래되는 것이 관행이라고 증언했다.

왜 도매상은 세금계산서 안 받을까?

위의 두 보도에서 제조회사의 당사자들 증언에 일치하는 것이 있다. 도매상에서 세금계산서를 받아가지 않으려 하기 때문에 어쩔 수가 없다는 것이다. 도매상이 세금계산서를 받으려 하지 않는 이유는 매출을 누락시키기 위해서다.

예를 들어, 도매상이 물건을 200만큼 구입하여 300에 판다고 하자. 매출을 300에서 150으로 줄이려면 매입액도 200에서 100으로 줄여서 신고해야 하므로 나머지 100에 대하여는 세금계산서를 받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다.

한편, 도매상 역시 할 말이 있다. 소매상도 세금계산서를 받으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즉 소매상부터 제조회사에 이르기까지 연쇄적인 탈세 고리가 존재하는 것이다. 이러한 관행은 제과회사나 음료회사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부가가치세 신고 때만 되면 의류도매상 밀집지역은 세금계산서를 팔려는 사람과 사려는 사람 때문에 한바탕 난리가 난다. 야간 의류도매상가에는 버스를 대절하여 단체로 의류를 사려고 온 지방 소매상들로 붐빈다. 소매상들은 한꺼번에 수십만원어치의 옷을 사가지만 대부분 세금계산서는 받아가지 않는다. 매출을 줄이기 위해서다. 게다가 대부분 소매상은 간이과세자로서 세금계산서를 발행할 의무가 없기 때문에 매출 축소의 유인이 더욱더 강하다.

부가가치세 신고 때가 되면 도매상은 고민에 빠진다. 비록 축소 신고하더라도 얼마간의 매출액을 신고해야 하는데 세금계산서를 발행한 실적이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도매상은 일반과세자라서 매출시에는 원칙적으로 세금계산서를 발행해야 한다. 세금계산서를 발행하지 않은 상태로 매출을 신고할 경우에는 가산세를 물어야 하며, 심한 경우에는 조세범처벌법에 의해 형사처벌도 가능하다.

예를 들어, 매출액을 200 정도 신고하려고 하는데 매출세금계산서를 발행한 실적이 100밖에 안될 경우 나머지 100 만큼의 세금계산서를 받아줄 거래처를 찾아야 불이익을 면할 수 있다. 반면, 매출액을 200 정도 신고할 경우 매입액을 150 정도 신고해야 하는데, 그동안 매입세금계산서를 받지 않았다면 다른 한편으로는 세금계산서를 구해야 할 형편이다. 이 두 가지 거래가 서로 얽혀 한바탕 난리를 피우게 되는 것이다.

이때, 구세주가 나타난다. 바로 자료상이다. 자료상은 세금계산서를 팔려는 사람과 사려는 사람을 연결해주면서 이익을 챙기는 유형과 이러한 연결고리 없이 직접 가짜세금계산서를 발급하여 수수료를 챙기는 유형으로 나뉜다. 후자는 '단순무식’한 유형으로서 국세청이 비교적 단기간에 적발할 수 있으나, 전자의 경우는 관련 업종(예를 들면, 원단도매상과 의류제조업 등과 같이 정상적인 거래관계가 있는 업종)끼리 잘만 엮는다면 장기간 적발되지 않고 버틸 수도 있다.

자료상은 도매상에게 접근하여 일정수수료(a)를 주고 세금계산서를 사겠다고 제시한다. 도매상으로서는 가산세를 물 각오로 세금계산서 없이 매출 신고를 해야 할 처지에 있었는데, 세금계산서를 받아주고 게다가 돈까지 주겠다고 하니 고맙기 그지없다. 세금계산서를 매입한 자료상은 세금계산서를 사려는 사람에게 일정수수료(b)를 받고 팔아 (b)-(a) 만큼의 이익을 챙기게 된다. (b)-(a)는 대개 세금계산서 공급가액의 3~5% 정도 된다고 한다.

공급가액이 100만원인 세금계산서로 10만원의 부가가치세를 환급받을 수 있으므로, 세금계산서 최종수요자는 자료상으로부터 10만원 이하로 세금계산서를 구입하여 그 차액만큼 이익을 보려고 한다. 그러나 비록 제값(10만원)을 다 주고 사더라도 부가가치세 자체에서는 이익이 안 나지만 매입세금계산서가 비용으로 인정되어 소득세 계산시 세금이 줄어드는 효과를 보게 되므로, 제값을 다 주고 사는 경우도 있다.

이 과정을 그림으로 보면 다음과 같다.

ⓒ 오마이뉴스 한은희

위의 그림에서 거래①은 실제 거래액보다 금액이 적은 세금계산서를 발행함으로써 거래당사자 A, B 모두에게 매출누락에 의한 탈세를 가능케 한다.

거래②는 자료상으로 하여금 공급가액이 100인 가짜 세금계산서에 의해 부가가치세 10을 부당 환급받도록 한다. 이로써 자료상은 7(수수료 차이)의 이익을 본다.

거래③에서 세금계산서 최종수요자는 자료상에 수수료를 10% 지급하였기 때문에 부가가치세 환급으로 인한 이익을 볼 수 없지만, 가공비용을 통한 소득세 탈세는 가능하다. 즉, '매출 300 - 매입 100 = 이익 200’에 대하여 소득세를 납부해야 할 사업자가 100만큼 세금계산서를 산다면 '매출 300 - 매입 200 = 이익 100’에 대하여 소득세를 납부하기 때문에 탈세할 수 있다는 것이다(실제로 앞의 사례에서 음료회사는 거래관계가 없는 단란주점 등에 세금계산서를 발행해주어 소득세 탈세를 가능하게 하였다).

이로써 '① 매출누락에 의한 탈세 ↔ ② 부가가치세 부당환급 ↔ ③ 과다비용에 의한 탈세'의 삼중 탈세 연쇄고리가 형성된 것이다.

간이과세제도는 세금계산서 블랙홀

앞에서 본 탈세의 연쇄고리는 세금계산서 수수질서가 무너졌기 때문에 생긴 것이다. 대부분 전문가는 간이과세제도가 세금계산서 수수질서를 무너뜨린 가장 큰 원인으로 지적하고 있다.

부가가치세법은 연간 매출이 4800만원 이하인 개인사업자를 간이과세자로 규정하고 있다. 사업자는 원칙적으로 매 거래시 세금계산서를 발행해야 하지만, 간이과세자는 세금계산서를 발행할 의무가 없다. 이 간이과세자는 개인사업자의 약 50%를 차지하고 있다.

세금계산서를 발행해야 하는 일반과세자는 '매출세금계산서상의 부가가치세 - 매입세금계산서상의 부가가치세 = 납부할 부가가치세'의 방식으로 부가가치세를 신고납부하지만, 간이과세자는 세금계산서를 근거로 부가가치세를 계산하지 않기 때문에 세금계산서를 받을 이유가 없을 뿐 아니라 세금계산서를 받지 않아야 매출누락이 용이하므로 적극적으로 세금계산서 수령을 거부하게 된다.

간이과세자의 세금계산서 수령 거부는 '소매상 ↔ 도매상 ↔ 제조회사 ↔ 원료 제공업자' 등으로 이어지는 전 거래의 세금계산서 수수질서를 무너뜨리는 시발점이 된다. 마치 연못에 돌을 던질 경우 처음 발생한 물방울 하나가 연못 전체를 흔드는 파장으로 이어지는 것과 같다.

간이과세제도를 폐지하자는 주장에 대하여 영세업자에게 불이익을 준다는 반론이 있다. 일면 타당성 있는 반론이다. 그러나 간이과세제도가 주는 폐해의 심각성과 도매상 등 대규모 개인사업자가 그 폐해를 이용하여 가장 큰 이익을 본다는 점을 고려할 때 더는 이대로 덮어둘 수만은 없다. 영세업자에 대하여는 불이익을 상쇄할 별도의 대책을 도입하더라도 간이과세제도는 폐지해야 한다.

(간이과세제도를 폐지한다고 해서 세금계산서 수수질서가 저절로 잡히는 것은 아니다. 소비자로 하여금 정규영수증을 받도록 유인하기 위하여 근로소득공제제도를 실액공제제도로 전환하는 등의 추가적인 조치가 필요하다. 그러나 간이과세제도가 가장 근본적인 원인이므로 여기서는 이에 대하여만 언급하기로 한다.)

간이과세폐지, 왜 안 이뤄지나

간이과세제도가 주는 폐해에 대하여는 정부여당과 정치권이 모두 인정하고 있다. 그런데 왜 폐지하지 않는가? 정치적 이유 때문이다.

국회의원 선거시 향우회 등을 조직하여 적극적으로 선거운동을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자영업자다. 따라서 지역구 국회의원들에게는 추상적인 1400만명의 근로자보다 자신들 옆에서 도와주는 몇 명의 자영업자가 더 귀한 법이다.

99년도 이전에는 간이과세자 요건이 매출액 1억5000만원 이하로 지금보다 그 대상자 비율이 훨씬 높았다. 이를 99년 말에 매출액 4800만원 이하로 대폭 강화한 것이다. 당시에도 정치권에서 강한 반발이 있었으나, 시민사회단체의 지속적인 요구를 받아들여 정부여당이 결단을 내렸다.

그렇다면 노무현 정부가 김대중 정부보다 조세개혁 의지가 더 크다고 할 수 있을까? DJ 정부 때는 그래도 변호사 등 전문직에 대한 부가가치세 과세, 금융소득종합과세 재시행, 간이과세 대폭 축소와 같은 굵직한 조세개혁을 몇 가지 이루었다. 지금은 증세 여부를 둘러싸고 말만 무성했지 정작 알맹이 있는 조세개혁 논쟁은 찾을 수가 없다.

태그: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3,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