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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말로 학문하는 모임' 열 번째 집담회 모습
ⓒ 김영조
가끔 학자들의 발표회에 가보고, 학자들의 글을 읽어본 일반인들은 한결같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정말 이해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꼭 그래야만 하나?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일까? 이에 '아니다.'라고 반기를 든 사람들이 있다. 우리말로 학문을 하면 얼마든지 쉽게 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우리말로 학문하는 모임'이 바로 그들이다.

또 그렇게 하는 것이 진정 학문하는 길이라고 그들은 말한다. 소통하지 않으면 학문의 목적이 제대로 달성될 수 없기에 쉽게 이해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학문을 어렵게 하여 거드름을 피울 일이 아님을 강조한다.

그들은 4년 전 모임을 결성하고, 이에 동의하는 200 여명의 학자들이 동참하고 있다고 한다. 4년 동안 초대 이상기 회장(외국어대학교 철학과 교수)이 바탕을 다져놓고 현재 정현기 교수(연세대학교 국문학과)에게 자리를 물려주었다. 그 '우리말로 학문하는 모임'이 2월 13일로 10번째 집담회를 열었다. 이번 집담회 주제는 '교과서 속의 학술용어문제와 외국어 번역문제 그리고 대학교에서의 영어강의 바람'이다.

▲ 여는말을 하는 '우리말로 학문하는 모임' 정현기 회장
ⓒ 김영조
아침 10시부터 집담회를 시작했는데 정현기 회장이 다음과 같은 여는 말을 했다.

"말은 사물을 베끼는 그릇이다. 그것을 얼마나 잘 베꼈는지에 따라 그 나라 사람들의 문화 깊이나 높이가 결판난다. 그리고 남이 지닌 물건을 받아들였을 때면 필연적으로 그 물건에 붙은 이름과 쓰임새, 물건의 생성 역사들이 따라붙어 들어온다. 한 나라 말의 쓰임 속에 들어 있는 여러 종을 어떻게 잘 고르며 삭혀야 하는지에 대한 학술적 따짐을 '우리말로 학문하기' 모임에서는 여러 다른 시각에 따라 살피고 따지며 토론한다."

그러면서 이 모임은 국수주의가 아니라 위기의식의 발로임을 강조하고, 앞으로 마음을 열고 대학교수만이 아닌 초중등 교사들과 함께하는 모습을 일굴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이어서 첫째 마당에선 변광배 한국외국어대 교수의 사회로 3명의 학자가 '기조발표'를 했다. 먼저 김수업 우리말교육연구소장이 ''배달말꽃으로 본 토박이말 살리기'라는 제목의 발표를 한다.

"학문하는 말은 본디 따로 만들어 놓고 쓰는 것도 아니고 어디서 따로 받아와 쓰는 것도 아니고 그냥 먹고 자고 입고 살면서 쓰는 말을 학문에도 끌어다 쓰는 것일 뿐이다. 지난날 우리네 크고 거룩하신 학자들이 학문이라 하면 으레 중국 한문으로만 해야 하는 줄로 여기고 살았던 사실이 안타깝다. 이 분들이 우리 토박이말로 학문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 우리에게 학문할 토박이말이 없는 것이다."

▲ 집담회 첫번째 마당의 발표자들(왼쪽부터 김수업, 강호석, 조재수)
ⓒ 김영조
이어서 연세대 원주의대 해부학과 강호석 교수는 그동안 해부학 용어들을 쉬운말로 바꿔온 과정을 설명하고, 그 예를 설명했다. 그는 새롭게 다듬는 기준으로 '고유의 우리말이 있는 것은 우리말로 바꾼다.', '용어의 표현이나 비교 대상은 될수록 우리 문화에 바탕을 둔다.', '용어는 체계와 통일성을 갖도록 한다' 따위를 들었다. 그래서 바뀐 말들로 '이개 → 귓바퀴', '추골 → 망치뼈', '브레그마 → 정수리점', '경추 → 목뼈', '두개골 → 머리뼈' 등을 제시했다.

다음은 조재수 겨레말큰사전 편찬위원의 '국어사전을 통해 본 학술용어' 순서였다. 그는 "동서양의 모든 경전이 그러하듯 깊은 지식 내용도 쉽게 표현해야 잘 읽힌다. 그래서 철학도 자연과학도 어려운 말로 설명해야 학문이 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다만, 설명하는 이의 지식과 역량이 쉽게 풀지 못하는 수준이기에 이해가 안 되는 어려운 말이나 문맥이 나온다고 본다"고 꼬집었다.

둘째 마당은 이기용 연세대 교수의 사회로 '교과서 속의 학술용어문제'를 짚어보는 자리였다.

먼저, 김두루한 광양고등학교 교사는 '국어교과서 속의 우리학술용어'란 제목의 발표를 했다. 그는 교과서와 신문들을 직접 보여주며, "조선일보의 기사를 보면 교과서에 한자말이 90%임을 강조하고 한자를 더 많이 쓸 것을 주장한다. 그러나 그 90%라는 주장에도 허구가 숨어있다. 또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그에 따른 부작용 즉, 공부하는 학생들의 고통을 외면하는 모습이 안타깝다"고 말한다.

▲ 두번째 마당 발표자들(왼쪽부터 김두루한, 박영하, 박용훈)
ⓒ 김영조
이어서 서울여자상업고등학교 박영하 교사는 '도덕 교과서 쓰임말에 대한 연구'를 발표했다. 그는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한국 사람이 한국 사람이 쓴 책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 학생들이 수학 과학 따위에 어려워하고 싫증 내는 까닭은 용어가 어려워서다. 교육은 일부 공부 잘하는 소수의 학생만을 위함이 아니다"고 강조한다.

다음 나온교육연구소 박영훈씨는 '수학 교과서의 용어로 풀어 본 우리의 교육'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그는 "연애편지를 써도, 채팅을 해도 상대를 떠올리면서 쓴다. 따라서 교과서는 교사와 학생을 떠올리며 써야 하는데 그렇게 할 수 없는 제도에 문제가 있다. 또 수학만 잘하면 가르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이다. 학생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어떤 말로 의사소통을 해야 하는지 고민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점심시간이 지난 뒤 시작한 셋째 마당은 한규석 전남대 교수의 사회로 '번역을 둘러싼 문제와 우리말로 학문하기'였다. 이 마당에선 한국외국어대학 유재원 교수의 '그리스 신들 이야기로 본 뒤침말 옮기기', 경희대 영어학부 한학성 교수의 '영어 공용어 논쟁과 영어 교육', 부경대 김영환 교수의 '번역문화의 전통과 우리말로 학문하기', 연세대 김형중 교수의 '영어번역과 글쓰기 그리고 우리말로 학문하기', 서울여대 김인경 교수의 '발자크 문학 작품의 우리말 옮기기 문제 검토' 따위의 발표가 있었다.

▲ 세번째 마당의 발표자들(왼쪽부터 윗줄 유재원, 한학성 아랫줄 김영환, 김형중, 김인경)
ⓒ 김영조
이중 사람들의 관심을 끈 것은 한학성 교수의 발표였는데 그는 영어 전문가의 눈으로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영어 공용어 문제에 대해 다음과 같이 날카로운 지적을 쏟아냈다.

"영어 공용어 주장은 영어 교육을 개혁해야 한다'라는 말이 일그러져서 나온 것이다. 영어를 써야만 하는 미국에서도 영어가 공용어가 아니며, 공용어 자체만으로는 영어를 잘할 수 없다. 영어 공용어에 찬성하는 사람들은 영어를 전공하지 않은 사람들이 대부분이며, '현실에서 무엇이 영어를 못하게 했는가에 대한 진지한 반성 없이 하는 말이다.

사회 상층부가 영어 교육문제의 해결을 진정으로 원치 않는 것인지도 모른다. 상층부는 이 문제가 영어 교육의 문제임을 알면서도 제대로 된 해결책을 내놓기보다는 적당히 막고 있다는 생각이다. 이는 결국 영어를 잘 못하는 사람들에 대한 사회의 장벽을 만드는 또 다른 양극화로 가는 길임을 지적하고 싶다."


또 김영환 교수는 눈길을 끄는 번역과 관련한 몇 가지 제안을 했다. 제대로 된 번역을 위해서는 번역 장려정책을 펼 것, 고전번역을 학위 논문으로 인정할 것, 외국대학에서 받은 학위 논문을 의무적으로 번역하게 할 것, 여러 대학에 번역론을 개설하고 번역사를 길러낼 것, 좋은 영한사전을 만들 것을 말한다. 또 그는 영한사전에 한자말 대신 토박이말을 적극 올림말로 삼아야 한다는 주장도 빼놓지 않았다.

또 유재원 교수는 고대 그리스어를 영어식이 아닌 발음대로 적을 수 있도록 명쾌하게 정리해 주었다. 그리고 김형중 교수는 실제 북아메리카 토착어를 예로 들어 번역의 문제점을 짚어주었으며, 김인경 교수는 발자크 문학작품을 예로 들어 문학작품 번역에서 '문화적 전이'라는 특수한 노력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 모닥불토론 마당의 토론자들(왼쪽부터 구연상, 염시열, 최봉영, 정현기, 최용기, 유성호)
ⓒ 김영조
셋째 마당까지 마친 뒤 잠시 쉰 다음 모닥불 토론마당을 열었다. 이에는 정현기 회장의 사회로 최봉영 교수, 유성호교수, 염시열 교사, 최용기 국립국어원 연구관, 구연상 교수와 청중 등이 참여하여 열띤 토론을 벌였다.

어떤 사람들은 말한다. 전문가나 학자들이 어려운 말로 강연하고, 글을 쓰는 것은 어쩌면 잘난 채이거나, 내용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것이나 게으른 것이라고. 어려운 말을 쓰는 전문가들은 대중들이 자기 것을 잘 몰라준다고 하소연한다. 하지만, 그들은 그 책임이 소통을 막은 자기에게 있음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이제라도 학자들이 자기가 주장하는 것을 많은 사람이 알아주기를 바란다면 쉬운 우리말로 글을 쓰고, 강연해야 할 일임을 충고하고 싶다. 자기들만의 학문으로 고립을 자초할 생각이 아니라면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의 이 '우리말로 학문하는 모임'이 연 집담회는 큰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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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으로 우리문화를 쉽고 재미있게 알리는 글쓰기와 강연을 한다. 전 참교육학부모회 서울동북부지회장, 한겨레신문독자주주모임 서울공동대표, 서울동대문중랑시민회의 공동대표를 지냈다. 전통한복을 올바로 계승한 소량, 고품격의 생활한복을 생산판매하는 '솔아솔아푸르른솔아'의 대표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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