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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한 지 한참 지나 아기가 없어 포기하고 있었는데 뜻밖에 임신소식을 듣게 되어 말할 수 없이 기뻤답니다.

아내는 정말 조심조심 10개월을 채우더니 예정일보다 일주일 먼저 병원에 가서 자연분만으로 순조롭게 출산을 하였습니다. 드디어 아기를 안아보게 되었는데 첫날밤은 병원에서 아기를 바라보며 뜬잠을 잤습니다. 아내도 집에서 산후 조리하는 동안 아기의 표정만 살피면서 3개월 정도 잠을 제대로 못 잤습니다. 아내는 아기의 백 일째까지도 잠을 제대로 못 잤지만 그래도 아기 얼굴만 보면 기운이 나고 최고로 행복한 얼굴이었답니다.

한번은 백일 전 어느 날 밤인데 보통 10시면 자던 아기가 12시 넘도록 잠을 안 자고 밤새도록 울기에 덜컥 겁이 나서 인근 병원 응급실로 달려갔는데 병원입구에 들어서는 순간 아기가 고요하게 잠이 들어 버렸답니다. 그냥 집으로 돌아와 눕히는 순간 또 깨어나서 울기 시작하고…. 이때가 제일 막막했답니다.

할 수 없이 다시 병원으로 달려갔는데 이번에도 병원 입구에서 살포시 잠이 들어 버린 아기 때문에 다시 집으로 돌아와야 했습니다. 다음날 소아과를 찾았더니 아기가 백일 전에 고통스러워하는 영아 산통이라며 곧 사라질 테니 며칠만 참으라고 하네요.

그래서 밤마다 울 때마다 우리 가족은 인근 동네를 차를 타고 돌며 드라이브를 즐기며 아기를 차에서 재우고 집으로 데려와 눕혔습니다. 정말 백일이 지나면서 밤마다 울던 아기가 조용히 잘 자더니 어느덧 돌이 되도록 한 번도 병원에 안 가볼 정도로 건강해졌답니다.

▲ 제법 의젓한 걸음걸이
ⓒ 송승헌
돌이 지나면서 온종일 집안 구석구석을 기어다니기는 잘하는데 서서 걷지를 못해 또 걱정을 했습니다. 그러다 14개월쯤 되어서 혼자 일어서기 연습을 하더니 덜컥 한 발짝 한 발짝 걷다가 넘어지곤 하네요. 집안에 형이나 누나가 있으면 걸어다니는 것을 보고 흉내를 내 볼 텐데 혼자 키워서 느린 것 같기도 해요.

이제 제법 걷는 게 자연스러워질 때가 되어서 처음으로 아기랑 포근한 오후에 외출을 해보기로 했답니다. 조선시대 때와 그 이전부터 제주의 관청이었던 목관아지를 찾았습니다.

아기가 빨간 잉어가 많이 놀고 있는 연못으로 가더니 물속으로 들어가려고 해서 얼른 잡았습니다. 그랬더니 들어가고 싶다며 놔달라고 떼를 씁니다. 연못 속을 보니 아기 키보다도 더 깊은 곳이어서 놀라 얼른 다른 곳으로 데려갔습니다.

데려가는 도중 아기가 넘어졌는데 태어나서 처음 흙을 만지더니 흙이 신기한지 자꾸 손바닥으로 흙을 잡기도 하고 손을 비비기도 하고 한참을 일어설 줄을 모르고 놉니다. 가만히 지켜보고 있는데 갑자기 땅을 기기 시작하더니 엄청난 속도로 연못을 향해 기어가기 시작합니다. 얼마나 놀랐던지 얼른 달려가서 아기를 안고 목관아지 관청이 있는 마당으로 데려갔답니다.

▲ 말이 없고 진지한 얼굴을 보자 이상해서 엄마를 찾는 아들
ⓒ 송승헌
아기가 없을 때 애완견을 키웠는데 강아지가 땅을 보면 코를 박고 땅 냄새를 맡으며 흙을 파고 했던 게 생각이 납니다. 아기에게 장난감을 사주면 잠시 놀다 던져버리는데 자연 속에서는 그 자체만으로도 아이에게 많은 것을 줄 수 있겠구나 하고 느꼈답니다.

▲ 흙길을 기면서 느끼는 아들
ⓒ 송승헌

▲ 흙을 바라보는 아기 표정
ⓒ 송승헌
아기는 나무 밑에 가 돌덩이를 줍고는 나무 위로 올리려고 애쓰기도 하고 나무도 만져보고 나무 앞에 있는 표지판을 잡고 운전하는 것 흉내도 내고 합니다. 처음으로 아기가 자연스럽게 자연 속에서 자유로워진 것 같아 참 흐뭇했답니다.

▲ 나무아래 돌맹이를 나무 위로 올려놓는 센스
ⓒ 송승헌
방에서도 기어다니지 않던 아기가 흙에서 기어다닌 것을 보니 마당이 있는 집으로 빨리 이사를 하고 싶더군요. 아이가 장난감이나 교육 자료에 파묻혀 살게 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냥 하루종일 마당에서 뛰어다니면서 놀게 하고 싶은 간절한 소망이 생겼답니다.

▲ '둥그런 게 차 운전대 닮았네' 아빠 운전 흉내내는 아기
ⓒ 송승헌

▲ 이제 돌아갈 시간 수돗가에서 세수를
ⓒ 송승헌
돌아오면서 요즘 광고가 내내 마음속에 남았답니다.

'산이 키운 거랑 사람이랑 키운 거랑 다르잖아요. 지리산이 키운 거잖아요.'

우리 스스로 크는 것이 아니고 자연이 아기를 키울 수 있게끔 해야 정말 건강하게 자랄 수 있구나 하는 자연예찬을 하게 되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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