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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명수 동시집- <산속 어린 새>
ⓒ 이종암
197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한 김명수 시인이 동시집 <산속 어린 새>를 펴냈다. 그는 첫 시집 <월식>(민음사, 1980)으로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하였고, 네 번째 시집 <침엽수 지대>(창비, 1991)로 만해문학상을 수상한 한국 시단의 중견 시인이다. 그리고 <하급반 교과서><피뢰침과 심장><바다의 눈><아기는 성이 없고> 등의 시집을 상재하기도 했다.

젊은 시절 독일에서 유학을 한 바 있는 그는 여러 권의 외국 동화를 번역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가 펴낸 동화집으로는 <해바라기 피는 계절><달님과 다람쥐><엄마 닮은 엄마가 없어요><바위 밑에서 온 나우리> 등이 있다. 동시집 <산속 어린 새>는 그가 처음 펴낸 동시집이다.

보슬보슬 보슬비 / 도란도란 우산속
자박자박 발자국 / 봉긋봉긋 새싹들
아른아른 창유리 / 토닥토닥 엄마손
새근새근 아기잠 / 꿈속같은 보슬비
-<봄비> 전문.


시는 특히 동시는 한 번 씨-익 읽고 지나 가버리면 얻을 수 있는 게 거의 없다. 두 번 세 번 거듭해서 찬찬히 읽어보면 짧은 행간 속에서 엄청난 의미와 감동을 얻을 수 있다. 이건 전부 독자의 몫이다. 위 동시 <봄비>를 다시 천천히 읽어보시라. 8행으로 된 위 시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눠 읽을 수 있다.

앞부분(1행-4행)은 봄비가 내리고 있는 바깥 풍경이고, 뒷부분(5행-8행)은 봄비가 내리고 있는 방 안쪽 풍경이다. <봄비>는 동시라고 하기보다 동요라고 해야 할 만큼 노래적 요소가 강하다. 1행이 2음보(4,3조)의 규칙적 배열로 이뤄진 정형시지만 하나도 지루하거나 단순하다는 느낌을 받지 않는다. 그것은 '보슬보슬' '도란도란' '자박자박' '봉긋봉긋' '아른아른' 토닥토닥' '새근새근'이라는 의성어와 의태어로 된 첩어의 효과적 사용에서 기인한다.

봄비는 만물의 생명을 길러내는 생명의 비다. 앞쪽 4행의 바깥 풍경은 도란도란 우산을 받쳐들고 자박자박 길을 가며 키 커가는 아이들과 봉긋봉긋 새싹이 솟아나는 장면이고, 뒤쪽 4행은 보슬비가 내리는 창 안(방)에서 토닥토닥 엄마의 따뜻한 손길 아래서 잠드는 어린아이의 꿈속같이 평화롭고 따스한 풍경이다.

봄비를 맞으며 봉긋 솟아나는 새싹처럼 엄마의 사랑의 손길로 아이는 무럭무럭 커 나갈 것이다. 앞쪽 풍경이나 뒤쪽 풍경 모두 소중한 생명이 자라나는 우리 삶의 현장이다.

동시는 아이들의 마음을 노래한 것이다. 아이들의 마음이라는 게 때묻지 않은 순수한 마음이요, 세상 온갖 사물들과 하나가 될 수 있는, 친구가 될 수 있는 그런 마음이다. 그래서 동시집 <산속 어린 새>에는 민들레, 쇠무릎, 바람, 조개, 쑥부쟁이, 선인장, 개구리, 청설모, 어항 속 금붕어, 몽당연필, 남대문과 동대문, 전깃줄에 걸린 연, 소금쟁이 등 온갖 동식물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그리고 동시집 <산속 어린 새>에는 "이제는 사라져 찾아 볼 수 없게 된 지난날의 풍경과 사물을 간절한 그리움의 감정으로 그려내고 있는 작품들이 자주 눈에 뜨"(염무웅)인다. 이런 것들을 아버지와 아이들이 같이 읽어보면서 그 풍광들에 대해서 함께 그려본다면 참 의미 있는 일이 될 것이다. 문중 어른들과 같이 산소에 찾아가 조상들께 제사를 올리는 일을 그린 '시월 시사'라는 작품이 특히 그러하다. 조상을 찾아가 마음을 다해 절을 올리는 일은 지금의 내가 걸어온 길을 들여다보는 소중한 일이다.

차들이 오가는
큰길을 따라
유모차를 밀고
할머니가 간다.

유모차는 낡았다.
유모차 안에는
아기 대신
헌 종이와 신문지가 실려 있다.
빈 종이 상자가 수북이 실려 있다.

할머니 허리가
구부러졌다.

차들이 오가는
큰길을 따라
할머니가 힘들게
유모차를 밀고 간다.
- '낡은 유모차' 전문


김명수의 동시집 <산속 어린 새>에는 인용한 시와 '구멍가게' '몽당 연필' '반지하 방 아이' '버스표 파는 가게' '오징어 배'라는 시편들에서 볼 수 있듯이 가난하고 서민들의 힘겨운 살림살이를 노해하는 시편들이 많다. 이는 김명수 시인의 가난하고 소외받는 이웃들에 대한 깊은 사랑과 잘못된 사회 현실에 대한 비판 정신에서 나오는 것이다.

그리고 아래의 '나무들의 약속'이라는 시에서는 각 연마다 사계절과 연관된 나무의 생태적 삶을 그려놓고 있는데, 단순해 보이는 이 짧은 시가 품고 있는 그 의미는 자못 깊고 크다고 할 수 있다. 이 짧은 동시는 나무의 한 해 살이 삶을 통해 우리의 인생론적 성찰을 담고 있다. 부모와 어린 아이가 함께 김명수 시인의 동시를 같이 읽어보면 얻어지는 그 감동이 곱절의 것이 될 수 있다. 나는 김명수 시인이 펴낸 동시집 '산 속 어린 새'를 자라나는 어린 생명에게 생명을 주는 '봄비'에 비유하고 싶다.

숲 속 나무들의 봄날 약속은
다 같이 초록 잎을 피워 내는 것

숲 속 나무들의 여름 약속은
다 같이 우쭐우쭐 키가 커는 것

숲 속 나무들의 가을 약속은
다 같이 곱게 곱게 단풍 드는 것

숲 속 나무들의 봄날 약속은
다 같이 눈보라를 이겨내는 것.
-'나무들의 약속' 전문.

산속 어린 새

김명수 지음, 신민재 그림, 창비(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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