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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너무 자주, 너무 당연하게, 너무 일방적으로 누군가에게 사과를 강요하지 않는가. 강요받지 않는가. 사과를 강제로 끌어내고자 하는 욕구는 때로 법을 동원하기도 한다. 이번에 살펴 볼 사건은 '사과'와 '법'의 불협화음을 들려준다. 내면의 소신과 외부적 강제의 긴장을 보여준다.

방송법 제100조에 따르면 방송위원회는 방송사업자 등이 심의규정을 위반한 경우 '시청자에 대한 사과'를 명할 수 있다. 명령을 받으면 7일 이내에 이행하고 결과를 보고해야 한다. 사과방송을 할 때도 방송법에 따라 이행명령을 받았음을 고지한다. '명령을 받았고 그래서 사과합니다. 시청자 여러분 정말 죄송합니다'라는 서술구조를 띤다. 이러한 사과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것일까. 진심일까.

"사과명령을 받았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정답은 따로 없다. 예를 들어 보자. 2005년 8월 MBC 가요순위 프로그램 '음악캠프'에서 생방송 도중 출연자가 성기를 노출하는 사고가 일어났다. 방송위원회는 사과명령을 내렸고 MBC는 사과했다. 진심어린 사과라고 본다. 신체 노출은 방송국 의도가 아니었다. 공중파에서 다양한 인디밴드를 소개한다는 연출의도와는 무관한 장면이었다. 사과는 관리 소홀에 따른 책임을 인정하는 내용이다. 거짓으로 할 이유가 별로 없다. 물론 노출행위를 한 밴드 '카우치'가 사과명령을 받았다면 문제가 달라진다. 그들은 처음부터 고의적이었다.

당초 소신을 바꾸는 사과는 거짓일 가능성이 높아진다. 같은 날 방송위원회는 또 다른 프로그램에 대해서도 사과명령 제재조치를 내렸는데, 세계관이 충돌하는 사안으로 논란이 있었다. 갑론을박이 일었다. KBS 2TV 시트콤 '올드미스 다이어리'에서 '시어머니 뺨 때리는 며느리' 장면이 문제였다. 우발적 사고가 아니었다. 대본과 연출에 따라 방송되었다는 점에서 작가와 프로듀서의 가치관이 반영된 장면이다. 파장은 컸다. 신문일간지를 중심으로 패륜방송이라는 비판이 들끓었다. 여론 또한 우호적이지 않았다.

그렇다고 나무라는 목소리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팬들은 적극적으로 변호했다. 평소 시청하지도 않다가 한 장면만으로 전체를 재단해서 비난하는 일은 옳지 않다고 맞섰다. 노인 등 소외계층에 대한 시청자들의 주의를 환기시키고자 하는 기획의도를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실을 외면하고 아름답게 묘사하기만 하면 좋은 방송이냐는 항변도 했다.

맥락을 봐야 한다는 외침은 또한 방송을 만드는데 참여한 이들의 속내가 아닐까. 그럼에도 방송국은 군소리 없이 사과명령을 따랐다. 방송위원회가 내린 사과명령을 방송사업자가 거부했다는 얘기는 들어보지 못했다. 내심으로는 승복하지 않는 때도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겉으로는 순순히 응했다. 갈릴레오처럼 뒤돌아서서 독백을 되뇌었을까. '그래도 지구는 돈다.' '사과는 하지만 나의 진심은 변하지 않았다.'

사과를 권하는, 강요하는 사회

사과를 강제 받는 이들의 내면까지 헤아리는 배려는 찾아보기 힘들다. 사과를 했더라도 오히려 종종 진심이 결여되었다거나 불충분하다고 몰아붙인다. 어떻게 하면 보다 강력한 외적인 힘으로 속마음까지 완전히 굴복시킬 것인지 하는 궁리에 골몰한다. 분명 사과를 권하는, 강요하는 사회다.

개인적인 싸움에서도 '사과하라'는 말은 단골메뉴다. 대통령은 사과하라, 야당대표는 사과하라, 이익 단체 성명서 말미에도 상대에 대한 사과요구를 덧붙인다. '잘못한 게 뭔지 모르겠는데 단지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거래하는 식의 사과요구는 받아들일 수 없다'던 대통령은 탄핵소추 당했다. 사과거부는 상대에게 좋은 명분이었고 빌미였다. 사과를 받아내려는 집념은 때로 무섭다. 사과만 하면 다 끝난다는 강압적 분위기에서 거부하기는 쉽지 않다.

사과 강박증은 종종 사과를 강제하는 법으로 나타난다. 법을 지키려면 거짓말을 해야 한다. 거짓 사과가 잘못일까. 거짓으로라도 사과하도록 강요하는 법률이 문제일까. 법률이 틀렸다는 판단이 든다고 해서 준법의식이 약한 것이 아닌지 책망할 필요는 없다. 그러한 강단은 외려 상위법인 헌법 정신에 맞을 수 있다. 이번 사건은 그 가능성의 단면을 드러낸다.

동아일보, "사죄광고 양심상 할 수 없다"

사건(1991.04.01. 89헌마160)은 일찍이 사과만은 할 수 없다는 고집에서 야기되었다. 청구인 동아일보사와 발행인, 해당 기사를 쓴 기자 등이 주인공이다. 어떤 내막일까.

김모씨는 <여성동아> 1988년 6월호에 게재된 기사가 자신의 명예를 훼손하였다는 이유로 1988년 7월 18일 동아일보사 등을 상대로 서울 민사지방법원에 손해배상 및 민법 제764조에 의한 사죄광고를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우리나라 민법은 불법행위에 대한 권리구제 방법으로 금전배상을 원칙으로 한다. 원칙에는 대개 예외가 있기 마련이다. '민법 제764조 명예훼손의 경우 특칙'이 그렇다. "타인의 명예를 훼손한 자에 대하여 법원은 피해자의 청구에 의하여 손해배상에 갈음하거나 손해배상과 함께 '명예회복에 적당한 처분'을 명할 수 있다"고 규정되어 있는 것이다.

명예훼손의 경우 돈으로 배상을 받는 것만으로는 침해된 명예를 회복하기에 불충분하다는 취지에서 생긴 조문이다. 학설과 판례는 '명예회복에 적당한 처분'의 대표적인 예를 사죄광고로 이해했었다. 살인을 한 경우라도 사죄 강제는 없다. 오로지 명예권 침해의 경우에 한정되는 특유한 구제방법으로 인정되어오고 있었다. 명예훼손 사건에서 원고는 사죄광고를 청구했고 인정되면 법원은 이를 명하는 판결을 선고해왔던 것이다.

동아일보사 등도 그러한 판결을 받을 처지에 있었다. 그런데 기존 통설과 판례에 배치되는 주장을 폈다. 법원이 '명예회복에 적당한 처분'의 하나로 사과광고게재를 명하는 것은 헌법상 양심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목소리를 냈다. 법원이 위헌제청 신청을 기각하자 직접 헌법소원을 청구하며 설령 기사가 명예훼손을 했더라도 결코 사과는 할 수 없다는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언뜻 보아서는 황당해 보일 수도 있는 청구에 헌법재판소는 어떤 결정을 내렸을까. 동아일보 주장을 받아들였다. 민법 제764조의 '명예회복에 적당한 처분'에 사죄광고를 포함시키는 것은 헌법에 위반된다고 결정했다. 양심의 자유를 인정한 시금석으로 평가받는 결정이다.

헌재, "사죄광고강제는 양심의 자유 침해"

민법 제764조가 사죄광고를 포함하는 취지라면 그에 의한 기본권 제한에 있어서 그 선택된 수단이 목적에 적합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 정도 또한 과잉하여 비례의 원칙이 정한 한계를 벗어난 것으로 헌법 제37조 제2항에 의하여 정당화될 수 없는 것으로서 헌법 제19조에 위반되는 동시에 헌법상 보장되는 인격권의 침해에 이르게 된다.

사죄광고 명령은 헌법 제19조 양심의 자유를 제한하는데 과잉금지원칙 위배로 결국 양심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판단이다. 앞서 본 바와 같이 이 결정은 양심의 개념에 대해 상세히 논했다는데 공이 있다. 물론 이후 결정에서 이러한 태도는 조금씩 흔들려 아직 확립된 입장을 정하지 못하고 있지만, 여전히 의미가 있다. 중요한 대목이므로 중첩되지만 원문을 다시 본다.

헌법 제19조는 "모든 국민은 양심의 자유를 가진다"라고 하여 양심의 자유를 기본권의 하나로 보장하고 있는바 여기의 양심이란 세계관·인생관·주의·신조 등은 물론, 이에 이르지 아니하여도 보다 널리 개인의 인격형성에 관계되는 내심에 있어서의 가치적·윤리적 판단도 포함된다고 볼 것이다. 그러므로 양심의 자유에는 널리 사물의 시시비비나 선악과 같은 윤리적 판단에 국가가 개입해서는 안되는 내심적 자유는 물론, 이와 같은 윤리적 판단을 국가권력에 의하여 외부에 표명하도록 강제 받지 않는 자유 즉 윤리적 판단사항에 관한 침묵의 자유까지 포괄한다고 할 것이다.

이와 같이 해석하는 것이 다른 나라의 헌법과 달리 양심의 자유를 신앙의 자유와도 구별하고 사상의 자유에 포함시키지 않은 채 별개의 조항으로 독립시킨 우리 헌법의 취지에 부합할 것이며, 이는 개인의 내심의 자유, 가치판단에는 간섭하지 않겠다는 원리의 명확한 확인인 동시에 민주주의의 정신적 기초가 되고 인간의 내심의 영역에 국가권력의 불가침으로 인류의 진보와 발전에 불가결한 것이 되어 왔던 정신활동의 자유를 보다 완전히 보장하려는 취지라고 할 것이다. 우리나라가 1990년에 가입한 시민적및정치적권리에관한구제규약(이른바 국제인권규약 B규약) 제18조 제2항에서도 스스로 선택하는 신념을 가질 자유를 침해하게 될 어떠한 강제도 받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사과강요는 현대판 탈리오 법칙

사죄광고 제도란 죄악을 자인하는 사죄의 의사표시를 강요하는 것이다. 국가가 재판이라는 권력 작용을 통해 자기의 행위가 비행이며 죄가 된다는 윤리적 판단을 강요하여 외부에 표시하기를 명하는 것이다. 양심도 아닌 것을 양심인 것처럼 표현하도록 하는 강제로서 인간양심의 왜곡·굴절이고 겉과 속이 다른 이중인격 형성의 강요라고 판단했다.

살피건대 원래 깊이 "사과한다."는 행위는 윤리적인 판단·감정 내지 의사의 발로인 것이므로 본질적으로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자발적인 것이라야 할 것이며 그때 비로소 사회적 미덕이 될 것이고, 이는 결코 외부로부터 강제하기에 적합지 않은 것으로 이의 강제는 사회적으로는 사죄자 본인에 대하여 굴욕이 되는 것에 틀림없다.

사과의 정도에 따라 굴욕감의 차이는 있을 수 있지만, 적어도 '사과'의 문구가 포함되는 한 그것이 마음에 없는 것일 때에는 당사자의 자존심에 큰 상처요 치욕임에 다름없으며, '사과문', '진사문', '해명서' 등 어떠한 명목의 것이든 관계없이 그러하다. 더구나 사죄광고란 양심의 자유에 반하는 굴욕적인 의사표시를 자기의 이름으로 신문·잡지 등 대중매체에 게재하여 일반 세인에게 널리 광포하는 것이다.


사과를 강제하는 것은 피해자의 명예회복에 효과가 있을 것이다. 허나 최후의 수단으로는 볼 수 없고 필요한 정도도 넘어선다고 평가했다. 피해자가 받은 굴욕을 원상 회복하기 위해, 사죄의사가 없는 자에게 국가가 강제력으로 자인·사죄라는 사회적 굴욕을 다시 감수시키는 행위는 응보적 보복이라고 말했다.

문명국가라면 응당 수호해야 할 기본가치인 인본주의에 배치되고 시대적 감각을 잃은 원시형으로 '이에는 이, 눈에는 눈'인 현대판 '탈리오'라고 보아도 무방하다는 판단이다. 하기 싫은 사죄의 의사표시를 본인의 이름으로 강제적으로 세상에 널리 알리는 것은 보복감정의 만족에 중점을 둔 고대법적 발상과 궤를 같이 한다고 본 것이다. 비교법적으로도 사죄광고를 인정하는 나라는 일본밖에 없다고 한다.

결국 이 사건 결정 이후 민법 제764조를 근거로 법원이 사과광고를 강제하는 판결을 하는 일은 사라졌다. 신문에 간혹 나오는 사과광고는 자발적인 것이다.

사과명령을 받은 방송국도 소신을 꺾고 싶지 않다면 방송법이 헌법에 반하다는 청구를 해보기를 권한다. 물론 최근 헌법재판소가 양심개념을 좁게 이해하는 경향을 보여서 승소를 장담할 수는 없다. 사과강제 취지도 달라 동일한 논리가 적용될 수는 없다. 허나 본질은 다르지 않다. '해당 방송프로그램의 정정·중지'나 '방송편성책임자 또는 해당 방송프로그램의 관계자에 대한 징계'라는 제재조치는 감수하더라도 거짓으로 하는 의사표현만은 할 수 없다는 뚝심이 있다면 해볼 만한 청구다.

대안은 무엇일까

이렇게 되면 가해자 양심은 중요하고 피해자 감정은 아무렇지 않은가 하는 문제 제기가 있을 수 있다. 헌법재판소는 사과를 강제하지 않고 판결문 자체를 게재하는 대안을 제시했다. 사과문 작성 주체는 가해자이지만 판결문은 당해 법관이 작성하므로 양심이 상할 일은 없다. 그러면서도 피해자 명예회복에 도움이 되는 사실을 널리 알릴 수 있다. ①가해자의 비용으로 패소한 민사손해배상판결의 신문·잡지 등에 게재 ②형사명예훼손죄의 유죄판결의 신문·잡지 등에 게재 ③명예훼손기사의 취소광고 등의 방법을 구체적 예로 들었다.

얼핏 보기에 무슨 차이가 있는지 구별이 잘 안될 수 있다. '독점규제및공정거래에관한법률 제27조 사건'(2002.01.31. 2001헌바43)과 비교해보면 명확해진다. 사업자단체의 독점규제및공정거래법 위반행위가 있을 때 공정거래위원회가 "법위반사실의 공표"를 명할 수 있도록 한 조항은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다고 본 사안이다. 사실진술을 강요하는 것과 내심의 의사표시를 강제하는 것은 그 성질이 판이하다.

'법위반사실의 공표명령'은 법규정의 문언상으로 보아도 단순히 법위반사실 자체를 공표하라는 것일 뿐, 사죄 내지 사과하라는 의미요소를 가지고 있지는 아니하다. 공정거래위원회의 실제 운용에 있어서도 '특정한 내용의 행위를 함으로써 공정거래법을 위반하였다는 사실'을 일간지 등에 공표하라는 것이어서 단지 사실관계와 법을 위반하였다는 점을 공표하라는 것이지 행위자에게 사죄 내지 사과를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따라서 이 사건 법률조항의 경우 사죄 내지 사과를 강요함으로 인하여 발생하는 양심의 자유의 침해문제는 발생하지 않는다.

타인의 가치관을 굴복시키려 해서는 곤란

'양심의 자유'가 보장하고자 하는 '양심'은 민주적 다수의 사고나 가치관과 일치할 때만 보호되는 것이 아니다. 그 대상이나 내용 또는 동기에 의하여 판단될 수 없으며, 특히 양심상 결정이 이성적·합리적인가, 타당한가 또는 법질서나 사회규범, 도덕률과 일치하는가 하는 관점은 양심의 존재를 판단하는 기준이 될 수 없다는 것이 헌법재판소 태도다.

동아일보사 역시 해당 기사가 현행법에 따를 때 불법행위가 되고 손해배상을 하여야 한다는 법원의 판단을 부정하지는 않았다. 위법성을 판별하는 국가 법체계를 부인한 것이 아니라 단지 '자신의 본심에 반하여 사물의 시비와 선악의 판단을 외부에 표현하게 하는 것'을 문제 삼았다.

우리는 평소 너무 자주, 너무 당연하게 , 너무 일방적으로 누군가에게 사과를 강요하지 않는지 곰곰이 짚어볼 일이다. 양심상 사과를 못하겠다는 사람에게 도리어 '양심도 없다'며 헐뜯지는 않는가. 이 사건 결정은 1991년에 있었다.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결정문이 담고 있는 헌법정신은 그다지 알려지지 않은 듯하다. 다수라는 이름으로 소수의 가치관을 머리 숙이게 하고 꿇어 엎드리게 하고 있지는 않은지 다시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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