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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양에서 도주한 우리 백성들을 돌려보내라며 용골대가 윽박지르지만 성상께서도 저어하시고 조정 대신들도 민심이 두려워 이를 함부로 말하지 못하니 난감할 따름이오.”

이조참판 이시백은 좌의정 최명길에게 최근 불거진 심양에서 도주해온 백성들에 대한 처리문제에 대해 토로했다. 최명길은 침통한 낯빛으로 대답했다.

“대신들이 어전회의에서는 아무 말도 않았지만 각 지방 관영에서는 어디서 언질을 받았는지 돌아온 이들을 잡아 보내거나 잡혀간 이들을 대신하여 다른 백성들을 억지로 보내기도 한다는 소문도 있소. 국고에서 백성들의 쇄환금을 대신 내어 주는 게 마땅한 도리나 청에서 이를 순순히 받아들일지도 모르겠거니와 그 재화를 충당할 곳도 마땅치 않소이다.”

“허! 그것참….”

최명길과 이시백은 어두운 심정으로 궁궐에서 퇴청하였다. 집까지 걸어온 이시백은 대문 밖에서 서성이는 사람을 보고서는 가까이 다가가 얼굴을 바라보았다. 관복을 차려입은 이시백을 보고 그 사람은 바닥에 넙죽 엎드렸다.

“너는 무엇 하는 사람이기에 여기서 서성대는가?”
“예, 저는 좌의정 나으리의 동생 집에 기거하는 안첨지라는 자이올시다.”
“헌데?”
“여기서는 곤란하니 안으로 드시옵소서.”
“허...... 참 괴이한지고.”

이시백은 안첨지라는 자의 행동이 기분 나빴지만 좌의정 최명길과 관계가 있는 자를 허술히 대할 수는 없다고 여겨 그를 안으로 들여 사정을 들기로 하였다.

“그래 무슨 일이 길래 날 기다렸는가?”
“요사이 최만길 어른에게 접근한 자가 있어 그 뒤를 캐어 본 바가 있습니다.”

“최만길? 좌의정 영감의 아우님 말인가?”
“그러하옵니다. 그 어른에게 이괄의 잔당들이 줄을 대어 보려 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이시백은 뜬금없는 소리라며 안첨지의 말에 코웃음을 쳤다.

“아직도 이괄의 잔당이 남아있다는 건 처음 듣는 말이며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너는 어찌 그런 사실을 알아낸 다는 것이냐?”

“나으리! 소인이 비록 첨지이긴 하나 한때 한양 뒷골목의 껄렁패들과 어울린 적이 있습니다. 호란 이후에 이들이 말하기를 이괄이라는 말을 공공연히 내세우며 백성들을 현혹하는 무리들이 있다고 했습니다. 제 말이 못 미더우시면 그들을 데리고 와 증언하게 할 수도 있습니다. 그들 중 하나가 최만길 어른을 통해 신분을 숨기고 좌의정 나으리께 접근하려 했지만 정체가 드러날 것 같자 눈치를 채고 사라졌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참판 나으리를 찾아온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나이다. 포도청에서도 이 사실을 조금은 눈치 채고 있으며, 곧 사헌부에서 이를 알게 되면 나으리께 큰 누가 될 것이 아닙니까.”

이시백은 안첨지의 말을 반신반의 했으나 행여 모르겠다는 심정으로 대책을 물었다.

“그렇다면 그 자를 잡아 보내야할 것 아닌가?”

“그렇습니다. 허나 나으리께서 손을 쓰실 것은 없습니다. 제가 사람을 풀어 집 근처에 매복시켜 놓고 그 자가 나타나면 사로잡을 생각이오나 그 전에 먼저 나으리의 허락을 얻고자 찾아온 것입니다. 그리되면 나으리께 어떠한 누도 미치지 않을 것이지 않습니까?”

이시백은 그 말이 그럴듯하게 여겨졌지만 마음 한구석은 어쩐지 찜찜하기 그지없었다.

“그러하다면 할만도 한데… 괜한 생사람을 잡는 것은 아닌지.”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그 자를 잡으면 어차피 조정에서 소식을 들을 것입니다.”

“…그리하게.”
“나으리께는 결코 누가 되지 않게 하겠습니다.”

이시백 앞에서 물러선 안첨지는 등을 돌리며 슬쩍 웃음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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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 '고주몽', '홍경래의 난' '처용'을 내 놓은 작가로서 현재도 꾸준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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