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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1일, 이른 새벽에 집을 나섰다. 아직 여명도 밝기 전이라 새해 첫 날의 세상은 아직도 어둠에 묻혀있었다.

전철을 타고 가는데 앞에 부부인 듯 보이는 사람들이 앉았다. 아내가 남편에게 머리를 기대고 자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자 나도 아내가 생각났다. 아이들에겐 절대적인 존재이면서 내게는 은근하면서 매서운 조언자인 아내. 아내는 몸살감기에 결막염까지 겹쳐 을유년의 마지막을 아주 힘겹게 보냈다. 올 해에는 저 부부처럼 아내에게 좀 더 듬직한 남편이 되길 다짐해본다.

▲ 북한산성 매표소를 지나 나타나는 '북한산 국립공원' 이란 표석
ⓒ 염종호
구파발에서 내려 버스를 타고는 북한산 북한산성 매표소로 향했다. 아직 해는 뜨지 않았으나 병술년의 또 다른 세상은 이미 밝아오고 있었다. 이른 새벽이라 북한산성까지 가는 셔틀 버스가 운행하지 않아 계곡 탐방로를 따라 걷기로 했다. 20여 분을 올라가 등운각으로 해서 북한산 대피소, 백운대로 가는 길로 방향을 잡았다. 등산객들은 그리 많지 않았으나 오르는 사람과 내려오는 사람들이 띄엄띄엄 무리 지어 비슷하게 엇갈렸다.

▲ 가늘게 피어난 눈 꽃
ⓒ 염종호
등운각에서 북한산 대피소로 오르면서 내 자신에 대하여 생각해 보았다. 작년은 내 나름대로의 계획을 세워 많은 도전을 했던 해였던 것 같다. 그런 도전들이 성공하지 못한 미완의 것이긴 했지만 그래도 내게는 많은 배짱과 신뢰를 주는 계기가 되었던 같다. 또 <오마이뉴스>의 시민기자로 활동하면서 식었던 열정을 다시 찾기도 했다.

허나 다시 돌이켜 생각해보면 많이 허술했고 부족했다는 아쉬움이 더 많이 있다. 그래서 미련이 남는 해였다. 올 해는 그런 과오들을 다시 꿰매고 보완하여 결실을 맺길 기원해본다.

북한산 대피소에서 잠시 쉬며 귤을 하나 까먹었다. 혼자서 먹는 맛이란 그리 썩 달착지근한 맛은 아니었으나 생각의 맛만은 점점 더 개운해져 갔다. 그리고는 위문 쪽으로 길을 잡았다. 그곳으로 가는 길엔 싸라기눈까지 왔고 곳곳에 박혀있는 철봉을 잡고 가야했기 때문에 순탄치 않았다. 하지만 가는 길 곳곳엔 눈꽃들이 다소곳이 피어 있었다.

▲ 깡마른 잎에 핀 서리 꽃
ⓒ 염종호
눈꽃이 되어버린, 깡마른 잎을 보며 부모님 생각을 했다. 벌써 고희를 훌쩍 넘기신 아버지, 그리고 뒤이어 고희를 향해 막바지 줄달음을 치시는 어머니와 장모님까지. 내가 그 분들에게 한 일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라는 생각을 했다. 회사가 어렵다는 핑계로 몸으로 만, 그리고 간사한 세치 혀로만 때우기를 서슴지 않았던 것을 돌이켜보며 너무나 못 되었고, 불효막심한 놈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할수록 자꾸 내 가슴에 저미어 왔다. 그러지 말아야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한 순간일 뿐이었다. 이제 더 이상은 그러지 말자, 말자하며 다짐을 해 본다.

▲ 백운대 올라가는 길목에 있는 위문
ⓒ 염종호
이제 위문을 지나 백운대가 얼마 남지 않았다. 올라가는 길은 내리는 싸라기눈에 더 미끄러웠으며 철봉을 잡고 올라가는 길 또한 더욱 가팔라져 갔다. 그렇게 한 참을 올라가는데 내려오는 등산객들 중에 어린 아이가 끼어있었다. 내려오다 잠시 쉬고 있던 그 아이는 초등학교 5학년이라 했다.

내가 처음 도전해보는 이 산을 저 아이는 벌써 오르고 내려오는 것이라 생각하니 대견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내 아이들은 왜 저렇게 키우지 못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 백운대 전경
ⓒ 염종호
회사 일에 바쁜 아빠라는 이유로 아이들을 제대로 보듬어 주지도 못하고, 틈만 나면 잔소리만 해대며 휴일이면 집에서만 뒹굴거나 모임 핑계로 나돌기만 했던 그런 나를 돌이키자 아이들에게 미안함만이 들었다. 어찌하면 아이들에게 자랑스런 아빠가 될 수 있을까?

▲ 멀리 오른쪽으로 백운대를 오르는 등산객들이 아련하다
ⓒ 염종호
이제 드디어 정상에 섰다. 산을 오른 지 3시간 만에 이루어 낸 성과다. 그런 하늘은 하얗다. 온 천지사방이 모두 그랬다. 단지 하늘 위로 태극기만 힘차게 휘날릴 뿐 모두 하얀 옷을 입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어떤 등산객은 그 태극기가 매달린 깃봉을 부여잡고서 바람을 전한다. 올 해에는 궂은 일 없이 좋은 일만 많이 생기게 해달라고.

내가 새해를 맞아 이른 새벽에 불쑥 산에 오르려 했던 것도 내 자신에게 다짐을 하고 내 자신에 대하여 냉정해지기 위해서였다. 그러기에 그 모습을 보면서 나도 바람을 전했다.

▲ 백운대 정상에 휘날리는 태극기가 선명하다
ⓒ 염종호
부디, 아내가 지금 것 잘 해왔던 것처럼 가사에 충실하며 또 건강해 주기를, 부모님 또한 무탈하게 하루하루를 건강하게 살아주시기를, 그리고 아이들도 튼튼히 잘 자라주기를, 끝으로 내 자신도 한 해를 보내며 가능하면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 수 있기를 기대했다. 굉장한 기원보다는 가장 보편타당한 기원을 바랐다. 삶이란, 어차피 더하지도 덜 할 거도 없는 것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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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브리태니커회사 콘텐츠개발본부 멀티미디어 팀장으로 근무했으며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스마트스튜디오 사진, 동영상 촬영/편집 PD로 근무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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